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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

        

       혹시 사라가 기억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으면 어쩌나 싶어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그러지는 않았다.

        

       나는 사라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아간 곳도, 우리가 지내는 방이었다. 사라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여기서 지냈으니까.

        

       다만, 지금의 방은 사라가 외로움에 파묻혀 지내던 시절과는 다르다.

        

       그때보다도, 훨씬 더 많이 차오른 방이었다.

        

       사실 이제는 별로 쓰는 일이 없었지만, 아직 치우지는 않은 소희의 침대라던가.

        

       그 침대 옆에 있는 옷걸이. 사실 옷걸이는 그 이후로 두 개 더 들여왔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더 지내다 보니 옷을 걸 자리가 부족했으니까.

        

       옷걸이로도 부족해서 옷장 안도 서서히 세 사람의 옷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도 열어보면 그 분위기는 비슷하겠지.

        

       책상도 늘었다. 하늘이와 소희, 수아도 공부해야 했으니까. 테이블이 꽤 넉넉하긴 했지만, 각자 따로 앉아 공부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방구석에는 가방 네 개가 나란히 있었고, 테이블 위에도 책이 몇 권 놓여 있었다. 교과서도 있고, 소설책, 만화책도 있었다.

        

       책이 듬성듬성 꽂혀있던 책장에도 이젠 책이 한가득하였다. 같은 종류의 교과서가 네 권씩 꽂혀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 방은, 이제는 외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아주 넓기는 했지만 이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결코 텅 비었다고는 할 수 없는 방이 되었다.

        

       전부 소희, 수아, 하늘이가 들어온 덕분이었다.

        

       사라는 이 방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그래도, 너가 없으면 한없이 외로울 거야. 언제나 내 가슴 속에서 함께 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셈이니까.”

        

       그래, 여기에도 나와 사라뿐이었다.

        

       나와 사라가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으니까. 눈을 감고 잠이 들면 언제고 만날 수 있는.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떤 상황이고, 어떤 시간대에 있어도 아무 상관 없이 언제나 함께일 수 있는 이유.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절대로 사라질 생각 없어. 여기 평생 있을 거니까.”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으니 당연히 죽은 이후는 내가 어떻게 보장할 수가 없지만, 적어도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동안은 계속 함께할 생각이었다. 나의 그 약속은 아직도 유효하다.

        

       “정말?”

        

       사라가 묻는다. 요즘에는 언제나 더 큰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라였지만, 지금은 나보다 조금 작았다.

        

       어쩌면, 이게 사라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지.

        

       강한 척하고, 악독한 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한없이 약하고 너무나 여린. 착한 사라.

        

       그런 사라의 본질이, 이렇게 투영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정말.”

        

       내 대답에, 사라는 잠시 망설였다.

        

       망설이다가, 이내 뭔가 엄청나게 두려운 사실을 물어본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런 소리를 해?”

        

       “정신과 치료를 하겠다는 말?”

        

       “……응.”

        

       나는 숨을 짧게 내쉬었다.

        

       사라는 여전히 불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원래의 나이부터 몇 살이나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말없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사라가 주춤거리고 있어서, 옆자리를 손으로 툭툭 건드렸다. 사라는 조심스럽게 와서 앉았다.

        

       마치, 나의 말을 함부로 거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자.”

        

       내가 손바닥을 위로 해서 내밀자, 사라는 손을 겹쳤다. 나는 사라가 종종 하던 것처럼 사라의 손가락 사이로 나의 손가락을 넣어 깍지 꼈다. 그저 힘을 줘서는 쉽게 뺄 수 없도록.

        

       “…….”

        

       사라도 말없이 나를 따랐다.

        

       “내가 그 치료 때문에 사라질까 봐 걱정돼?”

        

       “……응.”

        

       “그렇구나.”

        

       사실, 나도 여기 오고 나서 얼마 뒤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이방인. 원래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 사라라는 어린아이의 머릿속을 멋대로 차지하고 앉아있는 이상한 놈. 그게 나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으니까.

        

       사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사실 나의 기억이 전부 사라가 만들어낸 환상이고, 나는 사라 생각대로 만들어진 사라 삶의 구원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뭐, 거기에 구멍이 아주 많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늘이, 수아, 소희를 내가 알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원작 게임을 하는 스트리머의 영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절대로 나중에 만난 다음에 그 아이들의 과거를 상상해낸 게 아니라, 원래 그런 아이들의 성격과 이름, 성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일부는 미래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뭐 큰 의미는 없었고.

        

       그리고 그런 것은 그저 혼자 상상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라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을 원래 알고 있었다고 착각했다’고 하는 수준의 망상을 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불안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또 확신도 있었다. 나는 외부에서 온 존재라고.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이 여전히 존재한다.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이나 군대 시절의 나쁜 기억도 다 가지고 있었다.

        

       ……소희가 데리고 갔던 떡볶이 집의 떡볶이 맛마저 내 상상이라고 한다면.

        

       이것조차 다 상상해낸 것이라고 퉁치겠다면, 뭐. 그때부턴 사라 혼자서의 상상이라기보다는 어떤 질 나쁜 신 같은 존재가 사라를 농락하고 있는 거겠지.

        

       그래. 나는 확신한다.

        

       나는 사라가 아니다.

        

       사라와는 다른 존재다.

        

       대체 어떻게, 어떤 원리로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와서는 조금 감사하고 싶어질 정도다.

        

       이렇게 한 아이의 삶에 빛을 가져다주고, 친구를 만들고, 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사라지고 싶지는 않다.

        

       이제야 안정되게 되었는데. 이제야 친구들과 좀 편하게 삶을 즐기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전부 포기하기에는, 나의 욕심이 너무 크다.

        

       그렇기에, 나는 사라질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사라지지 않아.”

        

       “어째서?”

        

       하지만 사라는 여전히 불안한 모양이었다.

        

       “어째서, 무슨 근거로? 너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거야?”

        

       “사라.”

        

       나는 사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그저 너의 다른 인격일 뿐이라고? 너가 너무 괴로워서 그저 상상만으로 만들어낸 존재라고?”

        

       “…….”

        

       사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사라조차도 확신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긴, 사라 처지에서 봐도 그렇겠지. 그토록 바라던 구원자가, 그저 갑자기 어느 날 자기 머릿속에 들어온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니. 차라리 그냥 다른 인격이었다고 하는 쪽이 개연성으로도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거다.

        

       “만약 내가 인격이라면, 그저 네가 생각해낸 존재라면, 그래, 그렇게 되겠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냥 사라져버릴 거야. 너 하나만 남겨두고.”

        

       내 손을 쥐고 있는 사라의 손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해. 애초에 너와 나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니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저 같은 몸을 쓰고 있을 뿐이라고.”

        

       “……그러면.”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주 인격을 제외한 나머지 인격들을 지우는 과정이야. 그리고 그 과정은 인격 간의 갈등의 요소를 하나씩 제거하는 거고. 만약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가며 보호해야 할 이유 자체가 사라지면, 인격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돼.”

        

       나는 전문의는 아니고, 전문적인 지식도 없지만, 적어도 내가 찾아본 바는 그랬다.

        

       “만약 그래서 인격이 사라져야 했다면, 나는 진작에 사라져야 했어.”

        

       그게 나의 첫 번째 확신이었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인격’이 아니야. ‘사람’이지. 너, 사라와는 전혀 다른 사람.”

        

       그래. 애초에 ‘인격’이 아니니, 지울 수 없다. 내가 아예 이 몸에서 떠나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나를 없애버릴 수는 없다. 의학은 그저 의학일 뿐이니까.

        

       이게 나에 대한 확신이었다.

        

       나의 믿음이었다.

        

       “나는 어째서 여기에 왔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봤어.”

        

       나는 사라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저 우연일까? 죽은 뒤에 원래 가야 할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을 뿐일까? 내가 보아왔던 작품 중 하나에 우연히 떨어진 것은 아닐까? 충격으로 영혼이 다른 세계로 이동해버린 걸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전부 아니야.”

        

       나는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사라를.

        

       사라의 눈을.

        

       “내가 여기에 온 건, 이런 의미였을 거야.”

        

       손을 꽉 잡는다.

        

       “사라, 너를 만나기 위해서였을 거야. 만약 신이 있다면, 너를 만나게 하려고 나를 이곳으로 보낸 거겠지.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출해달라고, 신이 나를 보내 준 거야.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어.”

        

       물론 그 신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른다. 아니, 사실 나는 신을 제대로 믿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실 그런 방법이 아니라면 지금 이 상황을 설명할 방도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너도 나를 믿어주지 않겠어?”

        

       어두웠던 방이 환해졌다.

        

       내 얼굴에서도 빛이 쏟아지고 있을까? 지난번에 사라에게 들어본 바에 의하면 아마 그럴 거다.

        

       하지만, 지금 이 하얀 빛은 나의 얼굴이나, 사라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은 아니었다.

        

       사라가,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서 쏟아지는지 알 수 없는 하얀 빛.

        

       사라의 생각에 따라 방이 환해진 걸까?

        

       아니면, 내 생각에 저 위의 어떤 존재가 대답이라도 해준 걸까?

        

       잘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모르는 와중에 한가지는 알겠다.

        

       내 생각이 옳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사라를 반드시 지켜내 보이겠다고.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그저 저 빛이 그 믿음에 대한 대답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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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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