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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제국력 1월 24일, 지브롤터 후작성.]

     모든 게 황금으로 된 전열함을 만들어라.

     비상식적인 명령이다.

     말도 안 되는 부당한 지시다.

     그러나 이 명령을 내린 이가 누구인지 확인이 된다면, 모두가 ‘아’하고 탄식을 내뱉을 것이다.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 국왕 전하께서 황금으로 된 배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으니, 이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

     서재에 앉은 아버지는 심각한 얼굴로 명령서의 사본을 펼친 채 그 위에 손가락을 두드리기만 했다.

     “예산은?”

     “없습니다.”

     “설계도는?”

     “만들어야 합니다.”

     “조선소는?”

     “그 또한 만들거나, 아니면 세이레네의 조선소를 이용해야겠죠.”

     “그러니까 맨 땅에서 황금으로 배를 만들어라?”

     “예.”

     “죽일까?”

     아버지는 허리에 찬 검을 만지작거리며 진지하게 고뇌하기 시작했다.

     “이 인간은 왜 계속 자기가 목숨이 두 개인 것처럼 행동을 하는 거지?”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본인이 그럴 거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 걸수도 있죠.”

     “일단 베어보면 알 수 있지 않겠느냐.”

     “참으십시오. 이제 1년도 안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20년 넘게 참고 또 참아왔는데, 고작 이런 일로 못 참아서야 지금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아깝겠는가.

     “불가능했다면 애초에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이미 아버지께 드린 사업계획서 말입니다만.”

     나는 아버지의 앞에 놓여진 ‘골든 세인트 호’ 건조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가리켰다.

     

     “…아버지.”

     “음.”

     “사과, 원래 껍질 안 드시지 않았습니까?”

     

     사업계획서의 옆에는 제국에서 들여온 붉은 사과가 제각기 토끼 모양으로 깎인 채 놓여있었다.

     “레타르가 깎아준 것이다.”

     

     아버지는 자랑을 하듯, 아니 진짜로 자랑을 하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큰오빠가 온다고 하길래 열심히 연습해서 직접 깎았지. 역시 지브롤터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런지, 칼질은 참 잘 해.”

     “…….”

     레타르. 칼질.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큰오빠가 온다고 이렇게 깎아줬다니. 정말이지, 나중에는 어떻게 사탕이라도 깎아서 선물로 줘야겠군요.”

     “…한 가지 말을 하자면, 평소에는 아주 얇게 저며낸 사과를 꽃잎처럼 만들어서 주고는 하지.”

     “…….”

     내가 아는 레타르는 나에게 얇게 저며낸 시체를 던져주고는 했는데.

     

     “아버지. 제게 진짜로 고마운 줄 아십시오.”

     “무슨 소리냐?”

     “다 제 덕분입니다.”

     “그야 당연하지. 네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아니겠느냐?”

     “…됐습니다. 말을 말죠.”

     나는 속에서 끓는 무언가를 애써 억누른 뒤, 사과 옆에 놓여있는 사업계획서를 가리켰다.

     “이미 준비는 끝났습니다. 아버지의 승인만 받으면 나머지는 진행만 하면 됩니다.”

     “내가 가장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바로 여기 이 부분이다.”

     아버지는 사업계획서에 붉게 동그라미를 친 곳을 가리켰다.

     “예산, 정말로 이것만 드는 게 맞나?”

     “예. 그렇게 많이 드는 편은 아니긴 하죠.”

     “…….”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이건 생각보다 쉬운 일입니다.”

     나는 적혀있는 예산 중 가장 많은 예산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골든 세인트 호의 모델이 될 배 한 척을 구입해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제국모델이든 아니면 실제 전열함이든.”

     “전함을 사는 거야 문제가 되지 않겠지. 그리고 그걸 운반하는 것도 아래에 바퀴를 달고 철도를 달리게 하면 그만이니까. 이미 지브롤터에서 바르셀로나로 통하는 철도는 착공되고 있으니.”

     “예. 그쪽을 이용할 겁니다.”

     황금으로 된 배를 만들기 위해서는 1:1 비율의 진짜 배가 필요하다.

     “배의 이송은?”

     “제가 직접 할 겁니다. 바르셀로나의 기사단 전원을 동원할 생각도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군.”

     “예. 배의 원형이 있다면 황금으로 된 배를 만들기 너무나도 쉬우니까요.”

     나는 벽에 걸린 검 한 자루를 들었다.

     “검이랑 똑같습니다. 검신을 처음부터 새롭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검을 똑같이 만들어내는 건 생각보다 절차가 간단하죠. 거푸집을 가져와서 그 모양 그대로 녹게 하면 되니까.”

     “…그리고 그 안에 황금을 부으면 되지.”

     아버지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금이 어느 정도의 열에 녹아내리는지 알고 있느냐?”

     “예. 알고 있습니다.”

     “거푸집을 만든다고 친들, 황금으로 된 금의 열을 버티려고 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거푸집이 황금을 녹인 열을 버틸 수 있어야겠죠. 다행히 철이라면 제법 오래 버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거푸집까지 녹아서 철과 금이 섞여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예. 녹인 황금을 배 모양의 형틀에 대고 붓는다거나 한다면.”

     “…또 무슨 앙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

     아버지는 골치아프다는듯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세인트 지오가 몰상식한 방식으로 사람을 어처구니없게 한다면, 너는 상식 밖의 방식으로 사람을 허탈하게 만들지.”

     “세상에. 저를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과 동급으로 만드는 겁니까?”

     “차이가 있다면 세인트 지오는 그냥 무능하기만 하고, 너는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낸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지팡이에서 검을 뽑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지브롤터의 방식대로 하면 그만이니까요.”

     “지브롤터의 방식이라….”

     “아버지께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단지, 엄청 더럽게 귀찮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

     “흠.”

     아버지가 잠시 손으로 턱을 쓸며 생각에 잠겼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금방 답을 찾아낼 것이다.

     “…오러로 깎나?”

     오러로 깎는다.

     무엇을?

     “내가 예전에 샤를로트에게 장신구를 선물하려고 했을 때, 바르셀에서 나오는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해주려고 한 적이 있었지.”

     아버지는 자신의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원하는 모양이 하나도 없었어. 당시 유력한 보석상들은 전부 모르가니아가 꽉 잡고 있어서, 그들과 거래를 하는 것도 힘들었지.”

     “그건 자업자득입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느냐. 결국 기존에 있던 것도 사들이지 못했고, 주문제작조차 불가능했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가 잠시 결혼반지를 꺼내더니, 그대로 나를 향해 던졌다.

     “살펴봐라.”

     “보는 거야 그냥 멀리서도 보이는데.”

     “끼고 있으면 안 보이지 않느냐.”

     “…안에도 각인이 새겨져있군요.”

     이건 처음 보는 건데.

     회귀 전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은 이후로도 결혼반지를 종종 착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처형 이후에 이 결혼반지를 본 적은 없었다.

     “[그 어떤 시간에서도 당신과 함께 하기를].”

     그 어떤 시간.

     나는 잠시 등골이 서늘해졌지만, 애써 웃으며 다시 아버지에게 직접 결혼반지를 건넸다.

     “누가 보면 그냥 얼룩인 줄 알겠습니다.”

     “마스터 급 아니면 알아볼 수 없을 크기긴 하지.”

     “이니셜을 박은 것도 아니고 문장을 이 작은 반지 안에 각인시키다니. 무슨 마법이라도 쓰신 겁니까? 축소 마법 같은?”

     “바늘에 오러를 담아 각인하느라 제법 힘들었지.”

     “…….”

     집무실에서 홀로 원형의 반지의 안에 바늘을 들고 내부를 긁어 문장을 새기는 아버지가 떠올라 잠시 웃음이 터져나올 뻔 했다.

     “왜 그러느냐. 너라고 안 그럴 것 같으냐?”

     “저는 그냥 사서 주기로 했습니다.”

     “쯧쯧. 너무 어렸을 때부터 한 사람만 보고 커서 그런지, 네가 여자를 잘 모르는구나.”

     “…….”

     잠시 울컥한 기분이 들었지만, 괜히 이 화제로 각을 세웠다가는 결과는 하나밖에 없다.

     “왜? 뭔가 할 말이 있으면 말해보거라.”

     “예. 아버지께서 옳으십니다. 그러니 의견차이가 있으면 검으로 겨뤄보자는 그런 말씀은 넣어두십시오. 저 바쁩니다.”

     “쳇.”

     아버지는 이걸 빌미로 나와 대련을 노렸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다.

     “사흘 정도 뻗어있으면 되는 것을.”

     “아스타시아가 옆에서 마사지 해주고 간호해주면 모를까, 아스타시아도 없는 곳에서 청승맞게 얻어맞은 곳을 문지르기는 싫거든요.”

     “…….음, 그건 맞지. 나도 아버지께…흠흠.”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여튼 다시 황금선의 이야기로 돌아가지.”

     그러고는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서재의 벽을 향해 검을 겨눴다.

     “황금의 배를 만든다. 이 만든다는 관점은 당연히 ‘조선’이라는 것에 맞춰지기 마련.”

     용골을 만들고, 판을 조립하고, 물이 새어들지 않도록 못을 박는 것이 배를 만드는 과정.

     “하지만 지브롤터는 다르지.”

     아버지가 벽에 걸린 지도의 협곡을 향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우리는 만드는 것보다 베는 것이 더 익숙하며, 조립보다 깎는 걸 더 잘하는 이들이니.”

     소드 마스터는 규격외의 존재들이며, 때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상식을 초월한 자들.

     지브롤터는 과거, 협곡을 오러로 깎았다.

     그리하여 바람이 노스트럼에서 테르시안 쪽으로만 흐르도록 지형을 바꿔버렸다.

     “예, 그렇습니다.”

     지브롤터 스타일.

     “저희는 조선소에서 배를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은 결코 하지 못하는 우리만의 방식.

     나는 아버지의 책상 위에 올려진 토끼 모양의 사과를 가볍게 베어물었다.

     “배를 깎을 겁니다.”

     

     * * *

     황금의 배를 만들라는 과제와 별개로, 나에게는 그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그 과제가 잠들어있는 곳, 제법 오랜만에 나는 지브롤터 협곡에 왔다.

     ‘많이 변했네.’

     협곡의 관문은 1관문부터 3관문까지 활짝 열려있고, 그 가운데에는 나무가 아닌 ‘철’로 만들어진 철도가 깔려있다.

     당연히 마도자동선-열차가 오다니기 위한 열차용 도로다.

     노스트럼 곳곳에 일부 존재하는 나무로 된 레일과 달리 철로, 심지어 철로 아래는 철판과 달걀만한 바위 덩어리들이 즐비하게 깔려있다.

     혹시나 나중에 전쟁이 일어나서 관문이 닫히게 될 경우, 지브롤터의 관문은 분명 철로에 걸려 닫히지 않겠지.

     그런 의도가 깔려있지만 정작 지브롤터는 그런 부분에 대하여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걸 지적할 왕국의 충성병자들은 급히 협곡까지 달려왔으나 이미 아래에 깔려있는 철제 레일을 보고 난 뒤였다.

     그들은 뭐라고 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열차에 서서 ‘이런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아니되오!’라고 외치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노스트럼에서 철로에서 치여 죽은 제 1호가 되었다.

     “여기는 언제봐도 정말이지, 높군.”

     “올라가시려고요? 멘테 경, 좀 말려보십시오. 이러다가 저희 저 위까지 올라갈 것 같습니다.”

     “올라갈 이유가 있다면 올라가는 거지. …그래도 올라갈 거 아니지?”

     나를 따라 협곡에 온 두 소드마스터는 깎아지른 절벽에 진절머리를 냈으나,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올라갈 이유는 없지.”

     승강기는 철거되었다.

     승강기로서 역할을 하던 풍석은 영지전에서 후작성 성벽을 넘는데 사용된 걸로 역할을 다 했으니까.

     “배를 만드는데 황금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게 황금만 있는 게 아니지 않나.”

     나는 지브롤터 후작성에서 가져온 검을 뽑아, 오러를 일으켰다.

     “조선소도 지어야 하고, 성벽도 다시 만들어야 하고, 무엇보다 바르셀 땅에 지어질 수많은 건축물을 위한 석재가 필요하지 않겠나.”

     “저기, 도련님. 혹시….”

     “나무가 필요하면 숲에서. 바위가 필요하면 채석장에서.”

     눈 앞, 500년 동안 한 번도 개발되지 않은 석재 자원의 보고가 있다.

     “도련님. 바위가 필요하면 금광을 캐내면서 나온 걸로 충당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어디에서 채석했느냐가 중요한 거지.”

     나는 절벽을 향해 오러가 깃든 검을 찔러넣은 다음, 그대로 옆으로 그었다.

     “금광에서 캐낸 석재에는 금이 섞여있을 수도 있는데, 그걸로 벽돌을 구워 집을 지을 수는 없지 않겠어?”

     “…사실은 이 협곡 안에 막 황금으로 된 배가 숨어있는 건 아니고요?”

     “그랬으면 좋겠군.”

     이건, 나도 모르는 일이다.

     “이야. 참 재미있겠군 그래. 바르셀로나 땅에서 마구잡이로 금이 쏟아지는데, 만일 지브롤터 협곡을 파기 시작했는데 금맥이 나온다?”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법이다.

     “왕국 전체가 협곡을 파러 오겠지.”

     “그래도 이렇게 넓은 절벽을….”

     “무겁지만, 팔린다니까?”

     나는 적당히 잘라낸 지브롤터 협곡의 바위덩어리를 가볍게 들었다.

     “평화의 상징. 지브롤터의 인장이 찍힌 ‘기념석’을 단 10탈러에 모십니다.”

     “…팔릴까요?”

     “팔려.”

     안 팔려도 팔 거다.

     “추첨을 통해, 당첨된 사람에게는 지브롤터 성 방문권을 준다고 하면 되거든.”

     팔리게 만들 거니까.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돌멩이라면, 가치를 부여하면 그만 아니겠어?”

     가장 강력한 가치를 담아.

     “왕국과 제국이 500년 동안의 전쟁을 끝냈다는 상징, ‘평화기념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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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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