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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5

   

   째깍. 째깍.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복도의 위에 다소 거친 걸음소리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복도를 정리하는 시종들 중에서 그 폭력적이고 귀족적이지 못한 걸음을 제지하는 이는 없다.

   

   걸음소리를 내는 이가 그들이 모셔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소란의 범인이 저들의 작은 주인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시종들은 주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 가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그들의 눈엔 작은 주인의 폭력적인 걸음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시종들의 작은 주인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저택의 주인이 머무르고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아무리 가문의 유일한 계승자라 할지라도 현 가주를 향한 예의를 지켜야 할 터이거늘 작은 주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벌컥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가서는 쾅! 하는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아버렸다.

   

   “공작께서 주무시는 데 너무 소란스러운 것 아닌가?”

   

   그런 작은 주인에게 주의를 준 것은 버로우 공작이 아니었다.

   

   방금 전 손님이 방문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정정한 모습을 보이던 그는 어느새 너무나도 깊은 잠에 빠져 편안한 숨을 내쉬고 있었으니까.

   

   주의의 말을 내뱉은 것은 버로우 공작 옆에 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으로 치창을 한 남자였다.

   

   남자의 서슬퍼런 눈빛은 누구에게나 공포를 심어줄 만큼 위협적이었지만 작은 주인은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이래도 안 깨지 않나.”

   

   그 대신 가벼이 대꾸하며 적당한 곳에 앉을 뿐.

   

   “그건 그렇지.”

   

   실로 무례한 모습임에도 남자는 불평을 하는 대신 기분 나쁜 웃음만을 지었다.

   

   “그래서 어땠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친구? 오늘 친구가 왔었나?”

   “그럼 바꾸어 묻지. 적은 어땠나.”

   

   작은 주인. 자칼 버로우는 남자의 질문을 듣고서 오늘 만난 이들을 떠올렸다.

   

   성녀. 파트란 영애. 솔라딘의 3왕자. 이름 모를 꼬맹이. 그리고 알른 가문의 빌어먹을 영애.

   

   과거의 자칼이 질투심과 열등감을 품고 있었던 존재들.

   

   “다들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더군. 특히 루시 알른 그 빌어먹을 년은 도가 지나쳤다. 알른 가문의 피에는 대체 뭐가 섞여 있는 거지?”

   

   저들은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지 않고 끊임없이 수련을 거듭한 게 분명했다.

   

   어느 하나 방학 이전과 비교할 수 있는 이가 존재치 않았으니까.

   

   특히 루시 알른이라는 인간은 정도가 심했다. 방학 전에도 충분할 정도로 강하던 년이 이제는 기백만으로 자신을 짓누르려 들지 않나.

   

   “하. 그건 나도 동의할 수밖에 없군. 그녀가 품은 신성은 이미 중앙의 어지간한 성기사를 뛰어 넘었으니. 과연 신의 사랑을 받는 자야.”

   “감탄할 일이 아닐 텐데.”

   “아니. 감탄할 일이 맞다. 상대의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그것이 사그라 들었을 때 느껴질 어둠도 짙을 테니까.”

   

   그대가 저들을 쓰러트렸을 때에 얻을 희열도 말이다.

   

   남자가 내뱉은 말에 자칼이 입술을 씹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생각한 것이다만 쓸데없이 혀가 긴 놈이다.

   

   자칼이 저 불길한 남자와 처음으로 만난 건 아카데미의 기말고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휴식을 지우고. 잠을 지우고. 식사를 지우고.

   

   모든 것을 시험에 바친 끝에 이전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등수가 떨어졌던 그 때.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내기만 하는 루시 알른과 달리 어둠에 처박히고 있는 자신을 자칼이 마주했을 때.

   

   절망에 빠진 그가 무작정 어두운 거리를 걷고 있을 때에.

   

   저 남자가 자칼을 찾아왔다.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겠다는 허황된 말과 함께.

   

   ‘소원을 이루어줘? 하. 그래. 그럼 나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만들어봐라.’

   

   처음에 자칼은 그의 말을 당연히 헛소리라 치부했지만.

   

   ‘아니. 그대의 소원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남자의 말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깃들어 있었다.

   

   ‘형이 죽는 날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저택을 원망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그 때에 종속된 버로우 가문의 공자여.’

   ‘…너.’

   ‘잃어버린 가문의 시간을. 그리고 그대의 시간을 되찾고 싶지 않은가?’

   ‘…’

   ‘만일…’

   

   “저택의 준비는 거의 끝났다. 두어달 후면 저택 바깥으로 나가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겠지.”

   

   자칼의 회상은 남자의 목소리에 흩어져 버렸다. 과거의 풍경에서 현실로 돌아온 그는 여느 때처럼 기분 나쁜 웃음을 짓는 남자를 바라봤다.

   

   “기대해라. 그대가 바라는 모든 것이 그 때에 이루어 질 테니.”

   

   그 뒤 편에 있는 시계는 째깍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고장이 난 듯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

   

   어둠의 악신이라.

   

   팔짱을 낀 채로 머리를 굴린다.

   

   어둠의 악신 본인이 벌써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 녀석은 악신 중에서도 강대한 힘을 가진 축에 속하는 놈. 본래 지니고 있던 힘이 막대한 만큼 그걸 회복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심지어 그 부활을 도와야 할 나크라드가 아카데미 1학기 동안 헛짓거리만 하다가 도주했는데 게임에서 그랬던 것보다 더 빠르게 부활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렇다는 것은 버로우 가문 저택에서 활동하는 건 아카데미 인근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 악신의 사도. 나크라드라는 거겠지.

   

   그 놈이 어떻게 버로우 공작에게 수작을 부린 거지?

   

   아카데미의 1학기 동안 나크라드와 투닥거렸던 나는 녀석이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 대충 알고 있다.

   

   녀석은 분명 강한 편이지만 강자의 반열에 들지는 못한다.

   

   당장 칼과 알새틴의 연합에 격퇴당한 것을 보라. 아무리 내가 불리한 싸움을 강요했다곤 하지만 이 둘에게 패하는 것이 녀석의 한계란 말이다.

   

   거기에다 마지막에 할배에게 얻어맞으며 힘의 대부분을 잃어버렸을 녀석이 어떻게 버로우 공작에게 영향을 끼친 걸까.

   

   내 머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현실이 그러했다. 이상의 근원이 그 놈이라고 허접 주신이 공언했으니까.

   

   “정확하지는 않아요. 문득 그렇게 느꼈을 뿐이라서. 혹시 영애님께서 다르게 느끼셨다면 그게 맞을 거에요.”

   

   고민을 이어나가는 내 모습을 어찌 생각한 것일까. 페이비가 안절부절 해하면서 말을 덧붙였다.

   

   아니 얘는 왜 자기가 정답을 말해놓고도 내 눈치를 보는 거야?

   

   내가 허접 주신의 사도라서 그런가?

   

   신의 계시를 받는 내가 자기를 시험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에요. 페이비. 당신이 이야기한 게 맞아요.’

   “내가 언제 틀렸다고 그랬어? 왜 정답을 말하고도 눈치를 보는 건지. 이렇게 자신감이 없으니까 내가 허접이라고 부르는 거야. 이 허접허접성녀.”

   

   “맞…았나요?”

   

   ‘그렇대도요.’

   “왜? 틀렸다고 말해줄까? 허접하고 무능한 성녀란 매도를 듣고 싶어? 그냥 허접인 줄 알았더니 뒤틀린 취향을 지닌 허접 변태였구나?”

   

   “…그. 그런 게 아니에요! 전 그게. 그러니까!”

   

   변태라는 이야기를 듣고서 얼굴이 벌게져서는 팔을 마구잡이로 휘젓는 페이비를 내버려 둔 채 생각을 이어 나간다.

   

   허세 멀대 그 녀석이 정석적인 수단으로 버로우 공작을 해하진 않았을 거야. 그럴 능력이 없으니까.

   

   그렇다는 건 지 주신마냥 음침한 짓거리를 저질렀다는 건데.

   

   눈을 감은 채 게임 속에 존재했던 여러 시나리오를 떠올린다.

   

   어둠의 악신과 관계되어 있던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지금 버로우 가문의 상황과 비슷한 시나리오를 찾아낸다.

   

   악신의 사도가 자기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를 집어 삼킬 때 사용했던 방법을 말이다.

   

   베올 저택의 시나리오.

   

   아냐. 이 때는 악신의 봉인이 풀린 상태였어. 나크라드가 지닌 권능이 없다시피 할 때를 떠올려야 해.

   

   강식 던전의 지배 시나리오.

   

   이것도 아냐. 그 보스는 강했지만 지성이 너무 부족했어. 거기에다 자신의 측근을 너무 굳건히 믿었기에 속여 넘기기 간편했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머릿속 메모장에 존재하는 글자에 하나하나 X자를 치던 중 한 시나리오가 내 이목을 붙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퀘스트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어둠의 악신이 저질렀던 여러 악행 중 하나를 설명하는 책자에 불과했지.

   

   허나 거기에 적혀 있던 내용은 분명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소울 아카데미로부터 먼 남 쪽. 정령여왕이 머무르는 숲.

   

   어둠의 악신이 그 곳의 정령들을 집어 삼킬 때에 사용했던 방법은 자신의 기운이 지닌 은밀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통자를 통해 정령의 숲 아래에 흐르는 지하수에 자신의 기운으로 오염시켰다. 그를 통해 숲 전체를 천천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무리 정령 여왕이 강대하다고는 하나 힘의 원천이 되는 수많은 정령과 자신의 숲이 망가진 상황에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어둠의 악신은 별 피해 없이 정령여왕을 잡아먹는 데에 성공했다.

   

   그 일화를 버로우 저택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거야.

   

   나크라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는 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택의 식용수를 기운으로 물들이거나 식량창고를 오염시키면 충분해.

   

   침입할 필요가 있다면 까다롭겠지만 녀석에겐 내통자가 있었으니까.

   

   어둠의 악신이 지닌 기운은 할배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다. 버로우 공작가에 아무리 인재가 많다 한들 이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할 터.

   

   버로우 공작이 병환을 앓았던 이유?

   

   이것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버로우 공작은 강한 사람이니까. 악신의 기운이 퍼지는 와중에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정도로.

   

   “영애님! 전 결코 그런 나쁜 마음을 품지 않았습니다!”

   

   공상에서 빠져 나와 여전히 얼굴을 붉히고 있는 페이비에게 물음을 던졌다.

   

   혹시 버로우 저택에서 이상한 것을 더 느끼지 않았냐고. 아주 자잘한 것이라도 좋으니 대답을 해달라고.

   

   일순에 동요를 지울 순 없었는지 페이비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더듬거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로 된 답을 내어 주었다.

   

   “버로우 공자와 헤어지고 저택 바깥으로 나오는 길에 위화감 같은 게 있었습니다.”

   

   열등 공자에게서 악신의 기운을 느낀 후 그 기운에 민감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페이비는 그 이전에 멀쩡하다 생각했던 곳들에서 자그마한 위화감을 발견했다.

   

   저택의 시종에게서. 저택의 여러 장식품에서. 그리고 저택의 시계에서.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버로우 가문의 저택은 이미 악신의 기운에 잠식된 상태라는 것.

   

   쉽게 말해서.

   

   그 곳은 이미 하나의 던전이 되어 있는 셈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 세상에만 존재하는.

   

   나크라드와 자칼의 손에 의해 완성된 던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던?전?

—-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늦을 것이란 판단이 섰을 때 공지를 올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후일 비슷한 일이 생길 것 같을 땐 반드시 지각 공지와 언제 올 것인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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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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