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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편지의 초반부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언니 나 잡혔어.]

       

       아카샤의 눈 밑이 가늘게 떨렸다.

       

       로즈마리가.

       

       내가 친동생처럼 아끼는 로즈마리 타르케닐이, 천하고 무지몽매한 인간들에게 잡혔다고?

       

       “너 이 새끼─!!”

       

       아카샤는 버멜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내 의자매에게 무슨 개짓거리를 한 거야!”

       

       이건 명백한 협박이었다.

       

       동족을 잡아채 억류한 다음, 자신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만들려는 간악한 엘프놈의 협박.

       

       의도는 진작 알아챘다. 그러니 좌시할 수 없었다. 로즈마리는 수백 년 전부터 함께한 소중한 동생이었으니까.

       

       제아무리 마왕군에 모략과 뒤통수가 난무한다고는 해도, 그래서 다른 동료는 비즈니스로만 대한다고 해도.

       

       로즈마리만큼은 절대로 험한 꼴을 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

       

       “내 동생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기만 해 봐. 네 모가지를 썰어서 리바이어던에게 던져줄 테니까!”

       

       그것이 아카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협박이었다. 리바이어던. 얼마 전 대대적인 습격을 받은 엘프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으니까.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버멜은 태연하게 두 손을 들며 한숨을 쉬었다. 절멸급 마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괘씸했다.

       

       “편지 끝까지 읽은 거 맞아?”

       

       오히려 편지를 계속 읽으라고 권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기껏해야 토터스 하나 잡은 무지렁이가 구천지대계 2석인 자신을 상대로 이리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불성설인 일. 틀림없이 믿는 구석이 있으리라.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아카샤는 멱살을 놓고는 편지지를 마저 읽어나갔다.

       

       [잡히긴 잡혔는데, 이게 이유가 있어.]

       

       [길라흐, 그 눈깔 노란 하이엘프가 연구실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다니까? 두 언니가 없는 사이에 말이야.]

       

       [이유? 이유랄 게 있나. 클라라 하스펠트를 내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데.]

       

       호천(昊天) 길라흐.

       

       그 눈깔 노란 하이엘프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원자폭탄으로 모조 세계수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는 광경을 보았는데도 어떻게 큰언니의 물건에 손을 댈 수 있는지….

       

       [나는 끝까지 막으려고 했지. 그런데 안 들어먹더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스펠트 자매와 함께 제국으로 피신을 왔던 거야.]

       

       [하스펠트와 버멜 호르데가 잘 말해준 덕분에 목숨은 붙어있어. 큰언니 건을 말해주니까 공작이 믿어주더라고.]

       

       [특히 버멜. 그 엘프는 해치지 말고 당분간 살려둬.]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우리 편이니까.]

       

       어이가 없었다.

       

       “상의도 없이 이런 멀대같은 새끼를 동료로 영입했다고…?”

       

       뭘 믿고서?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생각해 보면 못 할 것도 없었다.

       

       로즈마리가 제국에 억류되게 된 과정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길라흐, 그놈이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에테르와는 사이가 안 좋았으니까.

       

       “불쌍한 동생.”

       

       고래같은 두 사천 싸움에 새우등만 터진 꼴이었다.

       

       틀림없이 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무수히 많은 플레어와 백야에 둘러싸였겠지. 요양하고 있던 몸이니 뭘 할 틈도 없이 구속당했을 것이다.

       

       ‘언니 살려줘!’

       

       그런 소리를 연발하며 감옥에 꼼짝없이 갇혀 있을 블루베리가 눈에 훤하다.

       

       아카샤는 이를 갈면서 편지를 전부 읽어내렸다.

       

       [멋대로 행동한 건 사과할게. 큰언니가 화내면 작은언니가 잘 타일러 줘. 알겠지? 절하는 사진도 찍어서 보내줄게.]

       

       아카샤는 다시 한번 사진을 훑어보았다.

       

       머리를 박고 물구나무 자세로 서 있는 로즈마리의 모습.

       

       이 와중에도 큰언니한테 미움받을까 봐 최선을 다하는구나. 아카샤는 가슴을 팍팍 쳐대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네놈이 우리와 한패가 되었다 이 말이지.”

       “정 믿지 못하겠으면 기숙사 위로 올라와. 거기에 ‘내면의 거울’을 가져다 놓았으니까.”

       

       내면의 거울이라.

       

       로즈마리가 가지고 있던 매직 아이템이다.

       

       그 귀하디귀한 걸 로즈마리가 그냥 내놓을 리가 없었으니, 확인만 한다면 동맹을 맺었다는 증거로서는 충분할 것이다.

       

       “좋아.”

       

       아카샤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마력초를 물었다.

       

       아직 완전히 믿는 건 아니다. 신고하거나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곧바로 버멜을 제거하고 도련선까지 탈출할 루트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갔다.

       

       “방 안에 들어가기는 뭐하니까 내가 가지고 나올게.”

       “그러시든가.”

       

       몇 분이나 지났을까.

       

       버멜은 3미터가 조금 넘는 거울을 들고 나타났다.

       

       온갖 고풍스러운 장식과 무늬가 즐비하고, 흠집 하나 없이 깔끔한 평면거울이 코앞에 놓였다.

       

       “……정말이군.”

       

       이 정도로 정교하게 베끼는 건 불가능하다. 아카샤는 입을 살짝 벌린 채 거울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눈, 코, 입을 비롯하여 모든 부분이 자신과 똑같은 소녀였다. 하지만 다른 부분이 딱 한 군데 있었으니, 바로 머리카락이었다. 아카샤의 머리카락은 백발인데, 상에 맺힌 소녀의 머리카락은 큰언니와 같이 검은색이었다.

       

       “뭐가 보여?”

       “……쌍둥이 언니가 보이는군.”

       

       내면의 거울이 지닌 특성이었다.

       

       내면의 거울도 거울이니만큼 자기 자신을 투영한다. 단, 내면의 존재를 투영한다.

       

       내면은 또 다른 세계이다. 혹자는 그 세계를 심계(心界) 또는 심상(心象)이라고 부른다.

       

       보통 한 사람의 심상은 자기 자신이다. 버멜의 심상은 버멜이고, 로테의 심상은 로테일 것이며, 프레이의 심상 또한 프레이일 것이다.

       

       그러나 흑의 심상은 백이다. 백의 심상은 흑이고.

       

       에테르의 심상은 아카샤였으며, 아카샤의 심상은 에테르였다.

       

       “그렇군.”

       

       버멜은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치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네가 아는 내면의 거울 맞지?”

       “맞아.”

       

       이전에도 내면의 거울 앞에 서 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신이 아닌 에테르 언니가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내면의 거울이 지닌 특성이라 생각하여 두 번째부터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오늘, 아카샤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들었던 에테르의 수업 때문이었다.

       

       ‘패리티는 거울입니다.’

       

       거울, 거울이라.

       

       내면의 거울은 심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렇다면 내면의 패리티가 보존된다는 말은 무엇일까. 심상이 보존된다면 대칭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칭되는 양은 무엇인가?

       

       아카샤는 의도치 않게 사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명민한 머리가 분주히 돌아가며 답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이제 믿어줄 거지?”

       “…어?”

       

       생각하는 동안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다. 버멜의 재촉에, 아카샤는 멍때리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부터 나와 로즈마리가 짠 계획을 얘기해 주려는데 시간 돼?”

       “안 될 건 없는데.”

       

       아카샤와 버멜은 정자에 마주보고 앉아 공책을 비롯한 물건을 이것저것 꺼냈다. 개략적인 설명이 오갔다. 버멜이 이해했냐고 물어볼 때마다 아카샤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은 오늘 배운 패리티 이야기로 한가득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강력한 가설을 하나 세웠다. 아카샤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혼잣말을 자꾸만 되뇌었다.

       

       “만약 패리티가 보존된다면…….”

       

       

       **

       

       

       “…어떻게 되나요?”

       

       이 녀석, 기특하구나. 벌써 거기까지 생각할 줄이야.

       

       나는 유피엘의 등을 토닥여주며 대답했다.

       

       “그건 다음 수업 시간에 알려줄게.”

       “아…….”

       

       유피엘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먼저 알려주시면 안 돼요?”

       “미리 알고 들어가면 재미없잖아.”

       

       시무룩한 얼굴이 퍽이나 귀여웠다. 이런 대학원생이 하나… 아니, 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는데.

       

       나는 지금 유피엘에게 개인 교습을 해 주는 중이었다.

       

       말이 교습이지, 궁금한 거 있으면 질문하고 대답해주는 시간에 불과했지만.

       

       유피엘은 상상 이상으로 똑똑한 친구였다. 다만 공부량에 비해 성적은 미진한 편이었다.

       

       주로 마도이론에 관한 이해도가 그러했다. 다른 암기과목은 잘하는 모양인데, 유독 고위계 마법이나 스크롤만 나오면 맥을 못 춘다.

       

       사실 이는 당연했다. 마법은 일정 부분 직관이 필요하다. 이른바 ‘감’이라는 것이 요구된다. 직접 마법을 써 보면서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메울 시간이 초보 마도사에겐 필요했다.

       

       마나 고갈증이 있었던 유피엘에겐 그런 연습이 불가능했다. 결국 노력과 재능 중 한쪽 날개만 달고 있는 꼴에 불과한 것이다.

       

       “…선생님.”

       

       한참이고 끙끙거리던 유피엘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저도 열심히 하면, 선생님처럼 될 수 있나요?”

       “교수가 될 수 있느냐고?”

       “네.”

       

       갑작스러웠다. 동시에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교수가 아니어도 돼요. 훌륭한 마도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의미로 훌륭하다는 거니?”

       “절멸급 마수도 덜덜 떨게 만드는 마법을 만들어서, 나라와 세상을 위해 봉사했으면 좋겠어요.”

       “훌륭한 생각이구나.”

       

       나는 순수하게 감탄하며 칭찬했다.

       

       유피엘이 다음 말을 내뱉기 전까지는.

       

       “저, 부끄럽지만…. 플레어를 만든 에테르라는 이름의 금안족이 롤모델이에요.”

       “…뭐?”

       […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감각이 마비되고, 머리가 뒤집어지며 혼이 뒤섞이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곧 잠잠해졌다. ‘에테르’는 심신을 추스르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금안족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모습이 유피엘에게는 한탄하는 교수의 모습으로 보이겠지.

       

       “…그자는 마수라고 밝혀진 지 오래다.”

       

       ‘에테르’가 물었다.

       

       “검은 피가 흐르는 그 괴물을 존경하는 거니?”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사나운 어투였다.

       

       주변 공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말하렴.”

       “…….”

       “대답에 따라 국가반역죄에 해당할 수도 있어.”

       

       유피엘은 황망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가 몇 차례 눈치를 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저,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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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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