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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풀벌레가 우는 밤, 작은 마을의 구석에 한 오두막이 있었다.

    그 안에는 추레한 늙은이가 벽난로에 땐 불길을 생기 없는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한 노인은 잠시 고양이를 내려두고는 불길을 쬐고 있던 몸을 일으켜 문을 열었다.

     

    -끼기긱…….

     

    문을 열자 보이는 것은 한 인영.

     

    로브를 푹 눌러써서 자신의 모습을 감춘 듯한 모습이다.

    허나 이런 밤중에 굳이 이 작은 오두막을 찾아올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로브에 가려졌음에도 그 체형은 너무나 눈에 익다.

     

    “레네, 또 몰래 궁을 빠져나왔는가.”

     

    노인의 말을 들은 정체불명의 인물은 그제서야 정체를 가리고 있던 로브를 벗으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말한다.

     

    “후훗, 사실……. 연구는 잘 되고 있으신지 궁금해서 말이죠.”

     

    최후의 전투에서 마왕을 타도한 영웅.

    언제나 여유롭고 위엄있으며, 현명하고 자애로우신 현 아린세이아의 국왕.

    불사의 성녀.

    이 물질계에 존재하는 지적생물체라면 그 누구라도 반드시 알 수밖에 없는 여인.

     

    바로, 레니에 아린세이아였다.

     

    하지만 로브를 벗자 나타난 것은 익히 알려진 인상과는 정반대인 장난스러운 아이 같은 표정의 여인이었다.

    그 표정을 본 노인은 금세 그녀의 목적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저었다.

     

    “고작 늙은이의 연구가 궁금해서 여기까지 왔을 리가 있나.”

     

    그녀는 사실 마법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처럼, 신성력과 마법이 상극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사용하는 기적에 비하면야 마법은 굉장히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녀도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자신에게 배운 마법을 사용하곤 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마법을 잘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단지 그녀의 신념과는 반대되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마법은 특별한 재능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면 엄두조차 낼 수 없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공부 역시 선행되어야 하기에 필연적으로 책과 마법재료, 그리고 스승을 구할 수 있는 정도의 재산과 권력 역시 필요로 했다.

     

    따라서, 마법은 특권이다.

     

    반면, 신께 기도하고 믿음을 가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비록 능력이나 짊어진 업이 부족하여 기적을 이룰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평등’을 중요시여기는 레니에의 성격에는 마법보다는 기적이, 지성보다는 신앙이 더 맞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녀가 마법의 연구 따위가 궁금해서 이런 곳에 왔을 리는 없다.

    그런 이유로, 노인은 레니에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바로 간파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이유에서 그녀가 그 귀한 발걸음을 이런 외딴 마을의 오두막까지 행차하셨는가를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간단하게 결론이 나온다.

     

    그는 한번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문을 더욱 열어젖히며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비는 저쪽에 있다네.”

    “감사해요! 루크 이루시님!”

     

    루크 이루시, 역사상 최고로 위대한 마법사의 이름이 그녀의 입에서 들림과 동시에 추레했던 노인의 모습은 마치 환상이었다는 것처럼 사라지고, 그 명성에 걸맞는 위엄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그는 그렇게 여왕으로서의 체통조차 벗어 던지고 고양이를 안아든 채 얼굴에 부비는 레니에를 바라보았다.

     

    “레비! 언니 보고 싶었지? 얼마나 보고 싶었어? 어머, 얘 무거워진 것 좀 봐!”

     

    -냐아아…….

     

    해맑은 표정의 레니에와는 달리, 고양이의 표정은 너무나 지쳐보였다.

    이런 상황 자체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물질계의 모든 것에게 사랑받는 존재인 성녀이기 때문에, 레니에에게 레비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동물은 굉장히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레비는 고양이처럼 보여도 사실은 물질계의 존재가 아니었다.

     

    고양이 형태를 취한 마수, 그중에서도 생물보다는 현상에 더욱 가까운 존재.

    그리고 현상은 성장하여 재해나 재앙이 되곤 한다.

    허나 마계가 멸망한 지금, 레비가 재해로 성장할 가능성은 희박하기는 하지만.

     

    마계의 생물인 마수는 기본적으로 이 세계의 환경, 그것도 신의 기운과는 더욱 상극인 데다…….

    결정적으로 레비는 자신을 저런 식으로 마구 만지는 것 역시 굉장히 싫어했다.

     

    그러니, 레비가 성녀를 꺼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하지만 오히려 그런 반응이 레니에의 마음에 들어버렸을 줄이야.

    레비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낮게 울었다.

    그러다 문득, 레니에의 얼굴에 강제로 부벼지는 것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건지, 레비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냐아아아!

     

    레비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레니에의 얼굴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레니에는 그렇게 얼굴이 마구 할퀴어지는 와중에도 싱글벙글 웃으며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꺄악~! 루크님, 마수가 절 공격해요! 어떡해요! 구해주세요! 루크 이루시님!”

    “그냥 손에서 내려놓으면 되잖은가.”

    “안돼요! 그러기엔 레비가 너무 귀엽단 말이에요!”

     

    얼굴에 새겨진 자상에서 피까지 흘러내리고 있을 지경이었지만, 루크의 표정 역시 평온하기 그지없다.

    그 뿐만 아니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신이 마실 영약을 서랍에서 꺼내 뚜껑을 연다.

    어차피 레니에에게 저런 상처쯤은 몇 초 있으면 흉터 하나 없이 말끔히 나을 정도의 얕은 상처이니까.

    그러다가 문득, 레니에는 고양이의 배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이내 속삭이듯 묻는다.

     

    “아니면, 얘 혹시 드디어 임신했나요?”

    -냐아아악!!

    “아얏!”

    그 말을 들은 레비의 한층 더 격렬한 거부반응에 결국 눈이 긁힌 레니에는 손에서 레비를 놓치고 말았다.

     

    그에 레니에는 조금 씁쓸하게 웃으며 루크를 바라보았다.

    “들렸나 보네요.”

    “그렇겠지.”

     

     

    현상이 종말해 멸망해가던 마계에서 살아남은 마지막 개체이며, 자신의 연구의 실마리가 될 수도있는 생물이다.

    그러니 당연히 교배의 시도는 있었으나, 현재까지 그 결과는 실패.

     

    그러고보면 레니에가 처음에 말한 ‘마법 연구를 보러 왔다’는 말은 완전히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마법사처럼 말하는 것에도 너무나 익숙해진 레니에는 이젠 예전처럼 마음대로 거짓말을 일삼고 다니지는 않는다.

     

    이건, 그녀도 성장을 했다는 것일까.

     

    ‘그녀의 모습은 소녀에서 조금도 바뀌진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레니에에게 중요한 것은 내면이리라.

     

    “뭐, 아무튼 건강해보여서 좋네요! 무겁긴 하지만! 너무 밥을 많이 주시는 거 아니에요?”

    “녀석이 물질계에서 제대로 생존하기 위해선 필요 이상으로 영양분을 섭취시킬 필요가 있네.”

     

    그러니, 레비가 살이 찌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몸을 성장시키면 될 텐데, 어째서 아직도 레비가 이정도 크기를 고집하는 것인지 루크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레니에는 예의 그 밝은 미소를 한차례 띄운 채, 곧 회복한 눈에서 아직 마르지 않은 핏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나저나, 시골 생활은 요즘도 마음에 드시나요?”

     

    레니에의 질문에, 루크는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적한 환경은 세간의 눈을 피해 개인적인 연구를 하는 데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고, 마나를 구하기도 쉬운데다, 귀찮은 일도 적었다.

     

     

    게다가, 이곳에선 그 누구의 의심도 받지 않으니까.

     

     

    레니에는 루크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바라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뭐, 당신이 좋다면 그걸로 됐어요.”

    “그거 고맙군.”

    “그럼, 옆에 앉아도 될까요?”

    “안타깝게도 이 집에 의자라고는 이것 하나뿐이네만?”

     

    겉으로 보기엔 노인 혼자서 사는 집이기에 별다른 가구도 들이지 않았다.

    때문에 집 안에는 자신이 앉은 이 의자 하나가 전부.

     

    “하나 밖에서 가져오시면 되잖아요?”

    “흠, 내게 한밤중에 의자를 빌리러 남의 집 문을 두드리라고? 나라면 과연 손님이 누군지 굉장히 궁금해질 것 같군.”

    “그럼 아공간에서 하나 가져오시던가요.”

    “오늘 밤은 별의 구조상 아공간을 여는 소모가 큰데.”

    “그럼 어쩔 수 없네요, 무릎 위에 앉을게요.”

    일부러 자신 역시 다 알면서도 말을 빙빙 돌리던 레니에는 드디어 본심을 말했다.

    루크는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응석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자신이 얼마나 나이를 먹던, 루크에게만큼은 언제나 소녀인 것이다.

    “그건 거절하지, 무거우니까.”

    “레비도 무거운데 잘만 앉게 해주시잖아요?”

     

    -냐아아.

     

    루크는 순간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레비는 크기는 일반적인 고양이라고 해도 무게만 따지면 한계에 달한 밀도 때문에 레니에와 그닥 차이가 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을 훨씬 상회하는 신체를 지닌 레니에조차 계속해서 ‘무겁다’며 중얼거린 것이기도 했다.

     

    “그건 일종의 실험일세.”

    “실험이요?”

    “그래, 마음을 통해 레비를 이 물질계에 더욱 동화시키기 위한 작업이지.”

    “마음이라…….”

     

    레니에는 루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이 마법사도 타인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인가, 하고 말이다.

    말년이 다 되어서야 깨닫다니, 루크는 이런 쪽으로는 배움이 굉장히 늦는 남자였다. 

    그렇다면, 레니에는 이런 방식으로 말해보는 것은 어떤가 하고 번뜩 떠올렸다.

    음흉하게 웃으며 입을 여는 레니에.

     

    “옛날엔 해 주셨잖아요?”

    “그건 80년도 더 된 이야기잖은가. 그리고, 그대도 이제는 할머니가 아닌가? 나잇값을 해야지.”

     

    레니에는 순간 굳은 표정을 지었다.

    틀렸다, 이 마법사는 여전히도 배려심따위 없는 마법사였다.

     

    “……여성의 나이를 이야기하시다니, 큰 실례군요.”

    “이런, 용서해주게. 가벼운 농이었다네.”

    “그런 건 가벼운 농담이 아니라, 저질스런 농담이라구요.”

    “물론 그대가 아니라면 하지 않는 농이라네. 그리고, 어차피 현 시점에서 그대의 나이가 적을것이라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 아직도 그 사실을 신경쓰는가?”

    “룩, 당신이란 남자는 정말…….”

     

    물론 그 사실을 모두가 안다고 하더라도, 굳이 입 밖으로 낼 필요가 있었느냐는 말이다.

    기껏 그런 걸 확인 받고 싶어서 이곳에 찾아온 것이 아니었는데.

    “하아,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레니에는 곧 허리를 바로세우고 근엄한 표정을 지어내며 말했다.

     

    “여왕의 명령입니다. 저를 무릎 위에 앉히세요.”

     

    그 말에, 루크는 정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명 받들겠나이다, 왕이시여.”

    성녀가 아니라, 여왕의 명령이었다.

    자신은 여왕에게는 충성을 맹세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레니에, 전혀 성장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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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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