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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손님들에게 바깥세상 소식을 제공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역 술집이 갖춰야 할 기본 덕목 중 하나로 여겨졌다.

         

       작게는 동네 가십거리부터 크게는 국가 간 정세까지.

       구미를 당기는 화제는 꺼져가던 술자리도 다시 불붙게 하는 힘이 있었고, 이는 곧 술집의 매출 증가로 이어졌다. 그래서 바텐더들은 셰이커 흔드는 솜씨를 갈고닦는 것 외에도 세상만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찰하는 것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떤 술집은 아예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는 광대를 고용해 놓기도 했다. 광대는 손님들의 흥이 떨어져 갈 때쯤 자신의 방에서 내려와 코미디로 가게의 분위기를 달구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상인들에겐 정보를 팔았고,

         

       “토마토를 마음껏 뿌리고 던지고 논다니? 역시 상계의 재녀로 유명한 ‘철 가면’다운 발상의 전환입니다. 하하, 저는 무대에 서는 사람으로서 조금 무섭지만요. 내년 처음 개최되는 토마토 축제! 어디서 열리는지 그 후보지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사람들은 크게 세 군데로 추측하는데 말이죠.”

         

       병사들에겐 음담패설을 늘어놓았으며,

         

       “공작의 딸이 한낱 광대와 눈이 맞아서 달아나다니! 처녀의 뭔가를 자극할 만큼 그 광대의 인물이 좋았을까요? 아니면 혀 놀림이 끝내줬거나, 낄낄! 어이어이, 거기 혀 날름거리지 말라고! 뭘 상상한 거야? 나는 말솜씨를 말한 거라니까! 그런 거 함부로 보여주면 우리 급사 베스 양이 오늘 잠 못 자요……. 어이쿠, 베스 양. 물건 던지지 마세요!”

         

       농부들에겐 현실의 부조리를 욕할 대상을 제공해주었다.

         

       “황태자 전하께서 이번에 세금 감면 정책을 펼치셨는데 그걸 원로원에서 제동을 걸었다더군요. 대리청정 중인 분의 발언권은 역시 한계가 있다는 거죠. 하여간 그 탐욕스러운 늙은이들 때문에 자영농들만 죽어나는 거예요. 원로원이 뭡니까? 대귀족들에게 용돈 받으면서 법 심부름이나 해주는 노인정 아닙니까?”

         

       그렇게 화두를 던져주고 나면, 손님들은 그걸 소재로 다시 왁자지껄 술을 마시곤 했다.

         

       광대들은 그렇게 여러 종류의 손님들에 대비하여 늘 몇 가지 주제의 재담을 준비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소재 선정으로 고민하는 광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커스 그랑프리 덕분이었다. 그것은 대회가 시작된 지 4개월이 넘었는데도 매주 이런저런 화젯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예선전 시험에 관한 소식부터 시작하여 서커스단이 모이면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 사고들에 주최를 맡은 여섯 나라 간의 자존심 다툼 등.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계까지 관련 이슈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누구나 즐기기 좋았고 할 얘깃거리도 워낙 많았기에 서커스 그랑프리가 술집 광대들이 가장 자주 찾는 소재가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스티유의 어느 소도시의 술집 광대가 코미디의 주제로 고른 것도 바로 서커스 그랑프리에 관련된 것이었다.

       그는 오늘 아침, 전보를 통해 전달받은 따끈따끈한 소식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대본을 짰다. 마침 술집에는 땀 식히러 온 주당들의 등과 입술이 말라가고 있던 참이었다.

       그는 대본을 머릿속에 정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이름은 시크릭.

       그는 구성원 전원이 광대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한 ‘르 보드빌리앙’의 단장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주로 준비된 무대에서 잘 짜인 대본과 캐릭터로 콩트를 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크릭은 종종 신분을 감추고 이런 술집의 작은 무대에 서는 것을 즐겼다. 날것 그대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은 큰 무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종류의 고양감을 느끼게 해줬다.

         

       그가 오늘 풀어놓을 이야기는 ‘짝퉁’에 대한 것이었다.

         

       짝퉁은 최근 사회적으로 크게 논의되는 이슈였다.

       현재 세상에는 한 회사가 심혈을 기울여 신제품을 개발하면, 얼마 안 있어 그것을 흉내 낸 물건들이 시장에 쏟아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상표를 베끼는 경우도 흔했다. 심한 경우 가품이 정품 대신 시장을 장악하는 일도 있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누구나 기계와 설비만 있으면 물건을 찍어낼 수 있는 시대가 오면서 벌어지는 현상이었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전매권을 통해 그것을 조정해주었으나 자유 무역 시대에는 소금이나 화약 같은 전략 물자를 제외하고는 시장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나라는 적극적으로 가품 산업을 밀어주기도 할 정도였다.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해결방안들을 이론화하고 있지만, 현실에 적용된 것은 별로 없었다.

         

       시크릭은 ‘짝퉁’이라는 소재로 어제 예테린푸르크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명할 생각이었다.

       그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받아들고 무대 위에 올랐다.

         

       “진짜와 가짜가 구분이 힘든 시대! 품질의 저질화는 덤! 비싸게 주고 산 맥주잔의 손잡이가 뚝 떨어지는 건 예사고, 어쩌면 여러분이 마시던 맥주조차 알코올을 섞어 만든 말 오줌일지도 모르죠!”

         

       손님들은 박장대소했지만, 시크릭은 저 뒤편에 있던 술집 주인이 화들짝 놀라는 것을 보았다. 그는 자신과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홱 돌리기까지 했다.

         

       시크릭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오줌 향이라도 맡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그것을 테이블 저 멀리 치워버렸다.

         

       “여러분, 짝퉁은 비단 공장에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짝퉁은 한 극작가의 작품입니다. 아, 생각해보니 이게 공장에서 나온 게 맞긴 하군요. 저 북쪽의 과자 공장을 가진 공작 각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오늘 아침 예테린푸르크에서 온 소식을 과격한 농담을 섞어가며 손님들에게 들려주었다.

         

       돈을 써서 수집품만 모을 줄 아는 공작의 허영심!

       가짜 영광에 눈이 멀어 개망신당한 다섯 서커스단!

         

       그는 로드 판타스틱의 명성은 도금된 것으로 치부했으며, 은막 아르노는 환상을 탐닉한 나머지 진짜와 가짜도 구분도 못 하게 된 늙은이로 매도했고, 미노바는 목소리만 큰 깡패라고 조롱했으며, 홉스는 몸만 쓸 줄 아는 원숭이라고 낄낄댔고, 원더스타인은 구습을 추종하는 야만인으로 묘사했다.

       그리고 그들을 후원한 상회들이 파는 물건은 짝퉁이라 의심돼서 못 사겠다는 둥 너스레도 떨었다.

         

       2주 전, 그들이 ‘환상의 13번’의 초연을 연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시크릭은 그들에게 열등감과 질투심을 느꼈다.

       그래서일까.

       그의 농담 수위는 평소보다 높았다.

         

       그러나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광대와 곡예사는 황제부터 천민까지 누구나 깔봐도 되는 존재였다. 서커스 그랑프리가 술집에서 농담거리로 부담 없이 소비되는 이유에는 그러한 사회적 배경도 한몫했다.

         

       자신의 코미디에 동조해주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시크릭은 자신이 왜 오늘따라 술집 무대에 서고 싶어 했는지 깨달았다.

       그들을 한껏 비웃어주고 싶어서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동종업계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깎아내리기에는 부담스러우니 이런 자리를 빌린 것이었다.

       그는 큰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받은 팁들을 주인장에게 주며 손님 모두에게 맥주를 돌리라고 소리친 뒤 갈채를 받으며 술집을 나갔다.

         

       모두가 시크릭이 말한 ‘눈먼 공작과 다섯 얼간이’에 대해 떠들어대며 즐겁게 맥주를 들이켜는데, 유독 분위기가 험악한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이 도시에 중요한 거래를 하러 온 한 상인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앉아 있는 인상이 험악한 남자는 상단의 단주였다.

       그는 이곳에 그들이 유통하는 업소용 냉동고 200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왔다.

         

       그것은 상단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거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 거래를 준비하느라 몇 주 동안 제대로 잠도 못 잤다. 철저한 시장 분석은 물론, 경쟁자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막판까지도 긴장을 놓치지 않고, 거래 상대를 면밀하게 조사하여, 상대가 좋아하는 술집까지 알아내 접대 자리를 마련했다.

         

       상대의 취향에 맞춰 지린내 나는 맥주를 10잔도 넘게 마셨다. 시범용으로 숙소에 설치해둔 냉동고에 들어갔다 나오는 퍼포먼스도 단주인 그가 직접 했다.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게 거래는 만족스럽게 성사될 듯했다.

         

       단주는 샴페인을 대신해서 냉동고에 얼려둔 과일을 꺼내왔다.

       그것은 그가 얼마 전에 얻은 귀한 물건으로, 8분의 1로 조각내 중요한 거래가 있을 때마다 자리를 축하하는 용도로 사용하곤 했다.

         

       “오, 이게 그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이걸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제가 후원하는 서커스단이 있습니다. 아, 물론 그랑프리에도 참가했죠. 거기서 베르그송 상회와 연을 맺은 덕분에…….”

       “베르그송! 상단의 기량이 엿보이는군요.”

         

       그렇게 잘 풀릴 것 같았던 일은 광대가 무대에 서면서 갑자기 엉클어졌다.

         

       “샛별 상단? 저라면 거기 물건 안 삽니다! 짝퉁 극본을 가지고 가짜 명성을 탐하는 사기꾼을 후원하는 곳 아닙니까. 거기서 파는 물건도 분명 짝퉁일 거야!”

         

       화기애애했던 자리가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단주는 아까 들어갔다 나온 냉동고에 다시 들어간 기분을 느꼈다.

         

       잠시 후, 밖에서 무슨 소식이 담긴 쪽지를 받은 거래 상대들은 급한 일이 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 상단의 물건은 매우 인상 깊게 잘 봤습니다. 당장이라도 계약서에 서명하고 싶지만, 이런 큰 거래는 다시 상회 내부적으로 논의를 거쳐야 합니다.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분명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단주는 상인으로서의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왔다. 그는 상대에게 올 긍정적인 답장을 기대하며 기다릴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꺼내놨던 황금 토마토 조각을 다시 방으로 가져와 냉동고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동안 냉동고에서 나오는 한기를 쐬며 열을 가라앉혔다.

         

       그러나 그것도 그가 폭발하는 것을 잠시 늦출 뿐, 막을 수는 없었다.

       곧 쩌렁쩌렁한 고함이 여관방 안을 뒤흔들었다.

         

         

       ***

         

         

       “단주님께서 많이 진노하셨다는데요?”

         

       여성은 언성을 높이지도 인상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무심하게 손에 든 서류들을 넘길 뿐이었다.

         

       그것만으로 미노바는 숨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다.

       여성은 읽던 서류 뭉치를 그 앞에 던져놓았다.

         

       “제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고요.”

         

       그것은 대륙 각지에서 날아온 샛별 상단 소속 상인들이 보낸 전보들이었다. 예테린푸르크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거래가 틀어지거나 사교장에서 우스갯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 그게 이렇게 심각한 일인가…….”

         

       미노바는 그녀가 내민 서류를 뒤적이며 민망한 듯 입맛을 다셨다.

       여성은 안타까운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 정도 되는 분이면 정적도 많죠. 거기에서 다섯 후원자까지 얽혔으니 평소 물어뜯고 싶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 소식을 퍼트리며 흠집을 내는 거죠. 환상의 13번이니 뭐니 하면서 이쪽에서 먼저 대대적으로 선전한 탓도 있고요.”

       “단주가……많이 뭐라고 하던가?”

         

       그의 질문에 여성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녀는 샛별 상단에서 이번 그랑프리 후원 건을 추진한 담당자였다. 평소 서커스를 좋아하던 터라 일을 맡은 것이었다. 홍보 공연을 통해 인맥을 쌓고, 협찬 품목을 조정하면서 영향력도 다지고, 지역 상권에 대한 안목도 넓혀가면서 제법 일하는 보람이 있었다.

         

       상단 내에서 입지도 커질 거라 여겼다.

       어제 단주로부터 온갖 상스러운 욕을 바가지로 먹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상대에게 전달하지 않을 정도의 자제력은 있었다.

         

       “상회 내에서의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그러니 단장님은 신경쓰지 말고 대회에만 집중하세요. 아마도 11월에 있을 시험에서는 반드시 별을 따셔야 할 거예요.”

       “못 따면?”

       “서커스단이 없어질 수도 있죠. 아니면 단장님이 갈리거나.”

         

       샛별 서커스단은 후원자가 만든 기획형 서커스단이었다.

       서커스단 자체를 해체하는 것은 후원자도 주최 측과 계약한 게 있어 쉽지 않겠지만, 단장을 교체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었다.

         

       업무 이야기를 마친 여성은 냉정한 태도를 조금 풀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그래봤자 남들보다 불룩 솟아 있지만-미노바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루리는 어디 갔나요?”

       “도스빌이랑 할로윈 구경 갔어.”

         

       그의 말에 여성은 눈썹을 치켜떴다.

         

       “그런 남자한테 애를 맡겼다고요?”

       “괘, 괜찮을 거야. 루리는 강하니까……. 그리고 그……다, 다른 애들도 있고.”

         

       여성은 ‘다른 애들’이 누구를 말하는지 짐작했다.

       어쩌면 누구보다 힘든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그들일 수 있었다.

       그녀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타텐 님, 10코인 후원! 응원 감사합니다!

    -도둑 고양이 님, 15코인 후원! 아마 몇 백화가 지나야 결착이 나지 싶습니다.

    -어굴해 님, 100코인 후원! 상당히 연재 주기가 느릿느릿 해졌지요. 챙겨야 하는 캐릭터가 늘어나니 점점 고려할 게 많아지네요. 노력해보겠습니다.

    앞서 멋진 팬아트를 많이 그려주신 XONE 님게서 아르노와 루미도 그려주셨습니다!
    정말 상상한 거랑 똑같이 생겨서 깜짝 놀랐습니다!
    루미가 넘 귀욤귀욤하네요..ㄷㄷ

    아르노의 바리에이션 스킨은 아틀리에의 XONE님 게시물을 가시면 볼 수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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