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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미국에서 자주 쓰는 표현 중에 이런 것이 있다.

         

       『 너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다. 』

         

       여러 의미가 있는 말이었다.

         

       [ 위험이라는 것은 원치 않아도 다가오는 법. 마치 갑자기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예고도 없이 나타나 휩쓸어버리곤 하는 것이다. ]

         

       위험이라는 그런 것이다.

       당하는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재해처럼 나타나는 것.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위험이라는 것은 연약할수록, 그 위험에서 회피할 힘이 부족할수록 더 거세게 다가와 목숨까지 끊어놓고는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이치였다.

         

       [ 그러니 나는 네가 이 일에 발을 디디지 못하게 할 것이다. 위험이라는 것은 본디 그런 것이니까. ]

       “그치만….”

       [ 안된다. ]

         

       그레모리는 완강하게 이세린이 진성을 엿보지 못하게 막았다.

         

       [ 비밀이라는 것은 본디 위험과 맞닿아 있는 것. 그렇기에 비밀에 접근하는 것은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밀을 탐하려다가 비밀 속에서 뛰쳐나온 위협이 목을 물고 한입에 집어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비밀의 양면성이며, 비밀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위험이다. ]

         

       비밀이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자면 누군가의 치부와 약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생물도 자신의 치부와 약점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며, 드러났다면 다시 비밀로 간직할 수 있도록 알게 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순리였다.

         

       그리고 지금의 이세린에게는 그 비밀의 위험성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 계약자야. 성급할 필요는 없다. 네가 나의 권능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매우 가파르다. 이는 너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초월자들의 계약자들과 비교해서도 월등하다. 그러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비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것이며, 비밀의 위험을 피하는데 급급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밀이 가지고 있는 힘을 휘두르며 자기 몸을 지킬 힘을 얻을 수 있겠지. ]

         

       그레모리가 이세린에게 주는 권능은 강력한 것이다.

         

       ‘비밀’이라는 것은 처음에는 사소하지만, 나중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하게 불어나는 개념이었으니까.

         

       처음 그레모리의 권능을 받은 이세린이 볼 수 있는 비밀은 별것이 없었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놀이터에서 소꿉놀이하면서 나눈 약속.

       지나다니는 강아지가 뼈를 묻어놓은 장소.

       길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들 몰래 먹이를 얻어먹고 애교를 부리는 사람에 대한 정보.

         

       고작 그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이세린은 어떤가?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수준의 강력한 능력자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 불륜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권력과 재력으로 사방에 손을 뻗치며 부를 키워온 재력가의 검은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있다.

       정치인이 몰래 차명계좌로 빼돌린 거대한 규모의 비자금을 알아낼 수 있다.

       한때 이름을 날렸던 조폭이 산에 묻어두었던 귀금속의 위치를 알 수 있다.

         

       일상의 한 모습조차 되지 못하는 사소한 비밀밖에 보지 못했던 권능이, 이제는 힘을 휘둘러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게 발전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권능의 발전 속도는 마치 눈덩이가 산 위에서 굴러가며 살을 붙이듯, 점차 거대하게 변해갈 것이다.

         

       능력자들이 꼭꼭 숨기고 있는 비전까지도 알아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때가 된다면 이세린은 자기 몸 정도는 능히 지킬 수 있으리라.

         

       적어도, 그녀가 지금 원하고 있는 박진성의 비밀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궁금한데….”

         

       이세린은 이러한 그레모리의 설명을 듣고는 진성을 훔쳐보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미련이 남았는지 낙심한 듯 어깨를 늘어뜨렸고, 분을 풀기 위해서라는 듯 몸을 돌려 얼굴을 낙타의 몸에 푹 파묻고는 이리저리 흔들었다.

         

       마치 간지럽혀서 괴롭히려고 하는 것처럼.

         

       악마는 그런 이세린의 귀여운 애교에 기분이 좋은 듯 웃었고, 자기 꼬리를 움직여 복수라는 듯 이세린의 몸을 간질여주었다. 그러자 이세린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간지럼에 놀란 듯 몸을 뒤틀었고, 이내 꼬리를 완전히 피하고자 그레모리의 혹 위에 올라타고는 몸을 바싹 붙였다.

         

       그리고는 팔을 들어서 그레모리의 목 부분을 찰싹찰싹 때렸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손길이라 소리만 찰싹거릴 뿐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지만.

         

       그런 이세린의 애교를 받으며 그레모리는 꼬리를 움직여 이세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눈동자를 굴려 이세린의 ‘호기심’이 존재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기묘한 냄새를 묻히고 돌아온 이세린의 오빠, 박진성이 있는 곳을 향해 말이다.

         

       ‘보이지 않는다.’

         

       본래 그레모리의 눈은 모든 비밀을 꿰뚫어 보는 것.

         

       아무리 외진 곳에 있더라도, 땅속이나 해저 깊숙한 곳에 있더라도 그것이 ‘비밀’이라면 그레모리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본래라면 말이다.

         

       하지만 그레모리는 초월자로서의 힘을 모두 발휘할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규칙이었으니까.

         

       그레모리는 계약자를 매개로 사용해서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 힘은 본래의 능력에 비하면 아주 보잘것없는 먼지와 같았다.

         

       그렇기에 그레모리는 진성의 방을 꿰뚫어 볼 수 없었다.

         

       이세린이 사용할 수 있는 권능의 힘이 강했다면 능히 볼 수 있었을 터이나, 지금의 그레모리로서는 진성의 방은 그저 이리저리 유영하는 어둠과 같은 장막으로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그냥 어둠이 아닌, 노이즈처럼 바스락거리며 움직이는 듯한 어둠이었다.

         

       여러 에너지가 섞여 있는 듯도 보이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대며, 그 자체로 하나의 개체같이 보이면서도 여러 존재가 모여있는 군체같이 보이는 어둠이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아주 투박한데다가 세련되지 못한 형태로 보이는 장막이었다.

         

       심지어 그레모리가 처음 보는 주술이었다.

         

       아니, 완전히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다.

         

       옛날 페니키아에서 봤던 주술과 흡사한 면이 있기는 했으니까.

         

       페니키아와 폰토스에서 숭배했던 달의 여신, 타니트(Tanit)를 숭배하는 주술사가 사용하는 밤의 주술의 흔적이 묻어나오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그레모리조차도 간신히 흔적만 볼 수 있을 정도로 변질이 된 상태이기도 했다.

       달 원반도, 달 원반을 지탱하는 삼각형 장치 문양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밤의 주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달의 기운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

       달의 기운만 없는 것이 아니다.

       밤의 주술인데도 밤의 상징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고, 오직 은닉과 그 안에 숨겨진 공포에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마 당시 페니키아의 주술사에게 저것을 밤의 주술이라면서 보여준다면 아마 크게 화를 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은닉은 하고 있으되 그 안에는 끝없는 무저갱과 같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고, 그 어둠의 끝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어둠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안에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어둠 속 무언가와 눈이 마주치는 듯한 찜찜한 기분이 든다.

         

       그래.

       저것은 밤의 어둠이 아니라, 저승의 어둠 혹은 짐승의 굴에 드리운 어둠과 흡사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 녀석들의 흔적도 보이지 않고.’

         

       게다가 더 기이한 것은 저 주술에서 그레모리가 잘 알고 있는 초월자들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

         

       달의 여신 타니트는 초월자와 관련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니트’라는 우상과 실제 존재하는 초월종들을 연관 짓는 주술사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아스타르테(Ἀστάρτη)라고 불리는 초월자.

         

       풍요와 다산의 힘을 가지고 있는 초월자이자, 페니키아를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오랫동안 계약자를 만들며 활동해온 존재였다. 그 때문에 많은 인간에게 숭배받았고, 많은 전설과 많은 이름을 남겼다.

         

       그녀는 아쉬토레스, 아쉬타로스, 아슈타로트 등 여러 이름을 가졌으며, 때에 따라서는 신으로 숭배받기도, 사악한 존재로 취급받기도 하면서 존재해왔다.

         

       ‘타니트라는 우상과 아스타르테를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

         

       타니트라는 초월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타니트라는 우상을 증명하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고 많은 전설을 만들어낸 아스타르테의 행적을 끌어와 우상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했다.

         

       그렇기에 타니트와 아스타르테는 긴밀하게 연결되어있었다.

       의식 하나, 주술 하나에 그녀의 흔적이 묻어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지금 진성의 방에 쳐져 있는 장막은 그런 것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아름다운 명화를 찢어버리고 제멋대로 배치해서 모자이크(Mosaic)해서 완전히 다른 그림을 만든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주술사로는 만들 수 없는 주술이고, 대가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경지의 주술사가 온 힘을 다해서 만들었을 주술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의문이 솟는다.

         

       진성이라는 인간은 스승도 없고, 귀여운 계약자의 돈 많은 부모의 힘을 제대로 빌리지도 않으며, 필사적으로 주술을 얻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 같지도 않으며, 주술을 얻을 수 있는 대단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그런데 어떻게 주술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저런 주술을 알고 있는 진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의문밖에 생기지 않는 존재였다.

         

       특히 그레모리의 눈에 보이는 진성의 본질이 사람 흉내를 내는 알 수 없는 존재의 형상이었기에 더더욱 그 의문은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박진성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계약자에게 소중한 사람이며, 자신의 계약자에게 도움이 되었을지언정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었기에 크게 경계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진성이 이세린에게 위험이 되지 않을지는 몰라도, 진성이 하는 일은 이세린에게 매우 위험하고 치명적일 것이 분명했다.

         

       저런 존재가 벌이는 일이 작고 가벼울 리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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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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