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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내가 생존한 시간은 단 하루.

       짧은 시간밖에 즐기지 못했으나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이 정도면 꽤나 멋있는 최후였으니까.

       

       좀비 세상에서 맞이하는 결말 중에선 나름 좋은 축에 속했다.

       나는 만족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배를 정박시켰던 섬의 부둣가였다.

       언제 여기까지 와 버린 건지.

       파도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레비나스가 내 몸을 꼭 끌어안았다.

       

       “왕아!”

       

       “렙히나흐.”

       

       레비나스의 품에 얼굴이 막혀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레비나스의 허리를 콕콕 눌렀다.

       

       “히힉.”

       

       레비나스가 몸을 움츠리며 뒤로 돌아갔다.

       걱정하던 처음의 표정은 어디 갔는지, 킥킥 웃고 있기만 했다.

       

       “레비나스, 왜 같이 잡혔어. 끝까지 살아남아야지.”

       

       “왕이가 없으면 놀 이유도 없다!”

       

       “그, 그래?”

       

       “응!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도 제일 재미없는 게 된다!”

       

       “···응.”

       

       레비나스가 나를 참 좋아해 준단 말이지.

       나도 그만큼 레비나스를 좋아하긴 하지만.

       

       “헤헤.”

       

       자연스레 꼬리가 흔들렸다.

       우리의 주변으로 일행들이 나타난 게 그때였다.

       

       “웅?!”

       

       남도연, 김준서, 홍성우.

       차례대로 나타나는 그들의 모습에 레비나스의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모두 좀비에게 잡혔다는 의미였다.

       

       “저, 전부 잡혔어요···?”

       

       멋있게 희생했는데.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다니.

       허탈한 마음에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겨울이 너···”

       

       “네?”

       

       “요녀석.”

       

       남도연이 조금 화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뺨을 죽죽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탄력 있는 뺨이라서 길게 늘어났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웨, 웨오···?”

       

       뺨이 늘어나서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 의사는 충분히 전달된 것 같았다.

       

       “누구 허락 맡고 좀비한테 달려든 거야?”

       

       “그, 그게, 일행들을 지키려고···”

       

       “···우리 의견도 안 듣고?”

       

       “어···”

       

       의견을 듣기 힘들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었는데.

       그녀에게 혼난다는 생각에 꼬리가 축 가라앉았다.

       

       “겨울이 네가 좀비한테 당하는 모습 보고 얼마나 놀란 줄 알아?”

       

       “그렇게까지 잔인하진 않았잖아요.”

       

       “겨울이 넌 삼 단계잖아. 우린 일 단계고.”

       

       “···일 단계면 죽는 모습이 많이 끔찍한가요?”

       

       내 물음에 남도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김준서와 홍성우도 눈을 꼭 감았다.

       레비나스랑 내가 상당히 끔찍하게 죽은 모양이었다.

       

       “겨울아, 동료랑 상의 없이 그렇게 희생하는 건 돌발 행동밖에 안 되는 거야.”

       

       “네, 네에··· 죄송해요···”

       

       모두를 향해 손을 빌었다.

       나 때문에 일행들이 탈락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못했다.

       뒤에서 한여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 그때였다.

       

       “맞아 겨울아. 희생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돼.”

       

       뒤에선 한여름이 나를 안아 들었다.

       축 가라앉았던 꼬리가 흔들리며 한여름의 몸과 턱을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전 이게 최선인 줄 알았어요.”

       

       “희생은 절대로 최선이 아니야.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살아남는 게 최선이지.”

       

       “네에···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얼굴을 마주하기가 부끄럽다.

       그래서 한여름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 한여름의 손길이 좋다.

       기운이 없어 잠시만 이러고 있기로 했다.

       

       “여러분, 우리 겨울이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여름이 다른 일행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때에도 내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아, 아뇨, 할 일을 했을 뿐이예요.”

       

       “덕분에 재밌었습니다.”

       

       나 때문에 탈락했음에도 다들 괜찮다고 한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었다.

       

       “음··· 다음번에 대회가 또 열리거든요? 그때 다시 참가하실래요?”

       

       “네? 그래도 되나요?”

       

       “네. 덕분에 저희도 원하는 바를 이뤘거든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등을 쓰다듬어주는 한여름의 손길이 더욱 부드러워졌다는 착각이 들었다.

       너무 편안해서 졸음이 쏟아질 정도였다.

       

       “···역시 그랬군요?”

       

       남도연이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는 듯한 투로 답했다.

       얼굴을 숨겨 눈앞이 캄캄했음에도,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뭐지?

       고개를 들고 싶은데 너무 졸렸다.

       일단은 자고 일어나기로 했다.

       

       

       **

       

       

       편안하다.

       몸뿐만 아닌, 마음도 편안했다.

       

       “우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조심스레 눈을 떴다.

       가장 처음 보인 것은 미소를 짓고 있는 한여름이었다.

       그녀가 나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겨울이 일어났어?”

       

       “네에.”

       

       눈을 문지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여름이 나를 안은 채 길드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내려서 걸을래?”

       

       “어··· 근데 저는 조금만 더 이러고 있고 싶어요.”

       

       “응. 그럴까?”

       

       한여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건물 일 층을 향해 걸었다.

       그 뒤를 레비나스와 새벽이가 따랐다.

       

       오독오독, 우물우물.

       레비나스와 새벽이가 당근 스틱과 마른 멸치를 먹고 있었다.

       나는 눈동자를 굴려 아이들을 번갈아 보았다.

       

       “왕아, 앙 해봐라.”

       

       “앙?”

       

       앙 하며 입을 벌리자, 레비나스가 내 입에 당근 스틱을 밀어 넣었다.

       새벽이도 뒤따라 멸치를 밀어 넣았다.

       

       “냠.”

       

       두 개를 동시에 먹으니까 나름 맛있네.

       사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긴 했다.

       

       “마싯냐?”

       

       “응. 되게 맛있다.”

       

       그렇게 간식을 먹으며 도착한 일층 로비.

       권아린이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향해 달려나왔다.

       

       “언니! 겨울아!”

       

       “네?”

       

       상당히 급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남아있던 잠기운이 싹 날아가 버릴 정도였다.

       

       “나 좀 도와주라!”

       

       “어떤 거 도와 드려요?”

       

       “게임!”

       

       “깨임?!”

       

       권아린에게 답한 건 내가 아닌 레비나스였다.

       게임이라는 말에 레비나스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무슨 게임이에요?”

       

       “이번에 신규 보스 최초 클리어 이벤트 하거든? 근데 파티원이랑 합이 잘 맞아야 하는 보스라서.”

       

       “아···”

       

       그거라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나는 한여름의 몸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아린아, 애들 게임 너무 오래 시키면 안 된다?”

       

       “네. 어차피 겨울이가 잘해서 금방 끝날 거예요.”

       

       “헤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름 잘하는 편이긴 했다.

       반사신경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으니까.

       

       “깨임! 레비나스도 깨임 할래!”

       

       “응. 같이하자.”

       

       우리는 그렇게 근처 pc방으로 이동했다.

       권아린의 컴퓨터가 한 대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pc방에 가야만 했다.

       

       “어서 오···”

       

       우리를 마주한 직원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pc방을 돌아다니던 이들도 상당히 놀라 해하고 있었다.

       

       “야, 저기 여명길드 애들 왔다.”

       

       “수인족 애들? 애들이 여길왜와?”

       

       조용히 말했으나, 내게는 전부 들렸다.

       밖에서 뛰어놀길 좋아하는 수인족이 오니 놀랄 수밖에 없을 테지.

       굳이 신경 쓰지 않고 권아린의 뒤나 쫄쫄 따라다녔다.

       

       “자리는 두 개면 되겠지?”

       

       나랑 레비나스가 한 대를 쓰고, 권아린이 한대를 썼다.

       게임을 즐기지 않았던 새벽이는 권아린의 무릎 위에 앉아있기만 했다.

       

       “저, 근데 게임 아이디가 없는데···”

       

       “괜찮아 내가 계정 두 개거든.”

       

       “아하.”

       

       권아린이 켠 게임은 온라인 RPG였다.

       내 캐릭터는 조금 특별했는데, 1인칭으로 총을 쏘는 캐릭터였다.

       권아린이 내 특성에 맞춰 캐릭터를 키워준 것 같았다.

       

       “파티는 구해서 가자.”

       

       “파티원 따로 없나요?”

       

       “응. 방송인만 특혜를 준다는 말이 돌아서, 그냥 방송 없이 깨려고.”

       

       “아···”

       

       게이머로서의 자존심 같은 건가.

       충분히 이해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삼십 분 정도 파티를 구하고 던전에 들어섰다.

       

       

       **

       

       

       레비나스가 캐릭터를 움직이고, 내가 마우스를 이용해 적을 쏘았다.

       공격이 맞을 것 같을 때에는 내가 캐릭터를 움직이며 피했다.

       내 직업 거너는 약점을 노릴수록 데미지가 세게 들어가는 캐릭터였는데, 열 발 쏘면 열 발이 전부 약점에 맞았다.

       

       “이건 모냐?”

       

       레비나스가 숫자키를 눌렀다.

       물약을 마시는 키였다.

       체력이 거의 가득 차있었음에도 우리는 물약을 마셨다.

       내 캐릭터 위에 체력이 회복되고 있다는 표시가 떠올랐다.

       

       탕탕-!

       

       내가 정확하게 약점만 맞추자 네임드 보스가 수시로 그로기에 걸렸다.

       덕분에 우리는 손쉽게 1번 네임드를 잡을 수 있었다.

       

       “얘들아, 나 잠깐 화장실 갔다 올게.”

       

       “네에.”

       

       다음 네임드로 넘어가는 시점에 잠시간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권아린이 화장실에 가고,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캐릭터를 가지고 놀기로 했다.

       

       장난감 아이템인 폭죽도 던져보고, 메롱 하는 이모티콘도 써 보았다.

       나름 재밌었다.

       

       -저분 뭐임??

       

       -풀피에 물약쓰고, 무빙도 이상하게 해서 초본 줄 알았는데 ㅋㅋ

       

       -거너님 아까 광분 패턴 때 한 대도 안 맞으심. 거의 한 틱 차이로 다 피하시던데.

       

       -거너님이 딜량 1위네용.

       

       쉬는시간.

       남아있는 사람들끼리 채팅을 치며 놀았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우리가 게임을 이상하게 플레이 하고 있는 탓이었다.

       

       “엣헴.”

       

       가슴을 쭉 내민 레비나스가 키보드 위로 손을 올렸다.

       느린 동작으로 한글자 한글자 타자를 쳐 나가기 시작했다.

       

       -★!아가고양이는개임잘해!★

       

       아가고양이.

       내 캐릭터의 닉네임이었다.

       레비나스가 특수문자 쓰는 법은 어떻게 알아낸 거지?

       놀란 눈으로 레비나스와 모니터 화면을 번갈아 보았다.

       

       -ㄷㄷ;;

       

       -채팅만 봐도 썩은물 ㅋㅋ

       

       레비나스의 채팅에 대한 파티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단 한사람을 제외한다면.

       

       -컨셉 에반데.

       

       “왕아! 컨셉 애바가 무슨 뜻이냐?!”

       

       “음··· 레비나스가 친 채팅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헉!”

       

       흠칫 놀란 레비나스가 다시금 채팅을 쳐 나가기 시작했다.

       반말로 답하려 하길래 빠르게 존댓말을 붙여주었다.

       급하게 개입한 거라 오타가 났다.

       

       -미안해!오;ㅠㅠ

       

       -;; 거너님 진짜 다 좋은데 귀여운척은 하지마셈…

       

       -○왜냐?! 아가고양이는귀여운대?!★

       

       -아씹…

       

       돌아온 채팅은 레비나스도 알 법한 비속어였다.

       레비나스가 분노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우우!”

       

       큰 소리에 PC방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PC방과 수인족이라는 보기 드문 조합 덕분에 꽤나 많은 시선이 모였다.

       

       “수인족 애들이네?”

       

       “응. 아까 들어오더라.”

       

       “근데 애들 왜 저리 화났대?”

       

       “몰라, 럴하나?”

       

       관심을 보인 이들이 우리 화면을 힐끔거렸다.

       때마침 분노로 가득한 레비나스의 채팅이 올라가는 중이었다.

       

       -바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레비나스의 분노 가득한 타자…!
    그것은 바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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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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