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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6

       그래서 호명 그룹과 최나경은 어떻게 움직였는가.

        

       의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지, 이 사람들은 내가 아닌 유진 그룹에 먼저 접촉한 모양이다.

        

       나를 직접 흔드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뭐, 이제는 더 이상 각이 안 나오긴 했을 거다. 가스라이팅도 먹히지 않고, 눈앞에 호명 그룹의 전 회장이 있는데도 당황 한번 한 적도 없고.

        

       대체 이전에는 사라를 얼마나 쉽게 보고 있었길래.

        

       하긴,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쓰지 않으면 티가 잘 나지 않는 법이다. 이론적으로는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 돈을 가진 사람이 돈을 쓸 의지가 없다면 돈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겠지. 그런 의미에서 최나경의 그 방법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대로 흘러갔다면, 사라는 얻지 못해도 돈은 얻을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최나경의 목적은 사라 그 자체였기에, 상식적으로는 옳다고 볼 수 있는 상황도 최나경 개인에게 있어서는 완전히 틀려먹은 이야기가 되긴 했다.

        

       “그러니까…….”

        

       내 앞에 앉아있던 예인혁이 말했다. 나이 지긋한 ‘삼촌’은, 얼굴에 대놓고 걱정이 드러나 있었다.

        

       “정신병을 겪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구나.”

        

       “네. 제 안에 또 다른 인격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이에요.”

        

       그게 병은 아니었지만. 그냥 몸 안에 사람이 하나 더 겹쳐있을 뿐이다. 사실 따지자면 진짜 주인은 사라고, 나는 그냥 좀 신세 지고 있을 뿐이긴 했지만.

        

       “그렇구나.”

        

       예인혁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되면 이야기가 복잡해지나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삼촌’은 조금 지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심신미약 같은 상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글쎄다.”

        

       그는 조금 애매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가 그쪽으로 제대로 된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말이다. 심신미약이라면 평소에 정상적인 사고를 못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냐. 적어도 내가 보기에 너는 그렇게까지는 보이지 않구나.”

        

       확실히, 나나 사라 모두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했다. 이 몸에 들어오고 나서 최나경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명백하게 심신미약이라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제 와서 따진다면 아무래도 ‘아니다’라는 대답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회복이 정말 판타지스러울 정도로 빠르긴 했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정상이 되기까지 반년이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전부 사랑의 힘이지.

        

       “크흠.”

        

       사라가 뜬금없이 낯간지러운 소리를 해서, 나는 나도 모르게 헛기침하고 말았다. 다행히 ‘삼촌’은 그런 나의 행동에 크게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사실 저쪽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그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아마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뿐만이 아니라, 아니기를 바랐을 거다. 기업을 물려받을 후계자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은 여러모로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나한테서 후계자 자리를 빼앗을 수도 없다. 사라의 아버지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남겨두고 가셨으므로.

        

       “혹시, 치료받을 생각은 있니?”

        

       ‘삼촌’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솔직히, 최나경이 있건 없건 간에 사라에게 일어나던 일들을 제대로 막지도 못했던—혹은 ‘않았던’—사람이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해도 별로 감흥은 없었다. 차라리 피도 이어지지 않고 만난 지 반년이 채 되지 않은 하늘이, 수아, 소희가 훨씬 더 신용이 간다.

        

       “네, 치료받을 생각은 있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를 백 퍼센트 신용하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니다.

        

       그저, 내가 최나경을 완전히 떨쳐내기 위해 생각한 계획의 일부일 뿐이었다.

        

       “사실, 생각해 둔 병원도 있어요.”

        

       “생각해둔 병원?”

        

       ‘삼촌’의 미간이 다시 살짝 모였다.

        

       “지방에 생각해 둔 병원이 하나 있어요. 조만간 여름방학이니까, 그 기간 동안은 거기서 집중 치료를 받을 생각이에요.”

        

       “유진 그룹이 후원하는 대학병원에도 정신과는 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는 희소병이야. 훨씬 더 전문적인 경험이 있는 의사한테 도움을 받는 건 어떻겠니?”

        

       “제가 정신병이 있다는 걸 여기저기 소문내고 싶다면 그 병원에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죠.”

        

       ‘정신과’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는 아직도 꽤 부정적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의 폐해가 널리 알려지며 개인이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는 행위에 대한 이미지가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정신과=정신병동’이라는 이미지도 그대로 존재했다. 실제로도 심각한 정신병 사례가 많기도 했고.

        

       만약 내가 대학병원 정신과에 다닌다고 하면 그걸 놓치지 않은 인간들은 아주 많다.

        

       게다가, 내 계획이 실행되려면 대학병원같이 빡빡한 곳은 안 된다. 조금 더 컨트롤하기 널널한 병원이 좋다.

        

       “…….”

        

       ‘삼촌’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미리 정한 곳이 있다면 내가 어떻게 말릴 방법이 없구나.”

        

       그리고 몸을 쭉 펴고 소파에 기대 앉으며 말했다.

        

       “고집 있는 것은 너의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인수의 모습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구나.”

        

       아뇨, 완전히 잘못 짚으셨는데요.

        

       나는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

        

       방학식.

        

       지긋지긋한 기말고사도 끝나고, 내일부터는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젖어 마음이 끝도 없이 들뜨는 시기. 아이들은 학교를 나오면서 신이 나서 재잘재잘 떠들었다.

        

       여름방학에 어느 해외의 별장에 가겠다든지, 남미의 어느 유명한 해안가를 가겠다든지 등등. 대다수의 학생이 부잣집이니 해외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다.

        

       특히 고1은 대단히 열심히 공부할 필요도 없다. 아직 취업이니 대학이니 하는 것들은 저 멀리 있는 나이였으니 마음 놓고 놀기 딱 좋았다. 해외여행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나의 그룹 아이들도 얼굴이 밝은 것을 보면, 국내 여행이라도 갈 생각인 듯 하다.

        

       안부 인사나 전하자고 생각해서 도서관에 갔더니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사실 학생회실에 모이는 경우도 많긴 했지만, 그래도 여기가 더 밝고 더 넓어서 대화를 나누기는 더 좋았으니까. 원래 도서실은 그러라고 있는 곳이 아니기는 했지만, 뭐 아무렴 어떻겠어. 여길 이용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내 그룹의 아이들이다.

        

       “선배는 내년에는 3학년이네요.”

        

       “그러게…….”

        

       도서 위원장, 류바다는 조금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대답했다.

        

       사실 이 사람과 그렇게 대단히 친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학생회 회의할 때가 아니라면 직접 만날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묘하게 옆에 있으면 분위기가 편안해졌다. 음침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다르게, 어떤 말을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었던 것이 한몫했다.

        

       “아마 올해 여름방학이 제대로 즐기는 마지막 방학이 될지도 모르겠네.”

        

       류바다가 말했다.

        

       “겨울방학 때는 열심히 공부해야 할 테니까.”

        

       “선배라면 분명히 잘 해내겠죠.”

        

       음, 솔직히 내가 이런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류바다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뭐, 장학생이니까.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혹시 나중에 취업할 곳 없으면 찾아오세요. 사람 하나 들어갈 자리 정도는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되는 거야?”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그룹이다. 지금 당장 엄청나게 친해질 생각은 없지만, 오랫동안 얼굴을 보면서 확실하게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을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원래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오래 가는 법이잖아.

        

       “제가 돈이 워낙 많아서.”

        

       나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그렇게 말했다.

        

       *

        

       “확실히 처음보다 훨씬 체력이 좋아졌네. 여름방학 때도 운동은 열심히 해야 한다.”

        

       전력 질주 후에 바닥에 쓰러져있는 나에게 남다운이 말했다.

        

       처음에는 대체 달리기 따위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미친 듯이 뛸 때는 엄청나게 괴롭다.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다리도 어깨도 아프고, 땀이 흐르고 온몸이 긴장하게 되니까.

        

       하지만, 뛰고 있을 때는 그렇게 괴로워도, 목적지까지 가서 긴장을 탁 풀리는 순간 폐로 들어오는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긴장하고 있던 몸에 힘이 풀리고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되지만, 동시에 내가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엄청나게 더운 상태에서 갑자기 시원한 음료수를 쭉 들이켰을 때의 감각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물론 사람들이 왜 뛰는지에 대한 이유를 조금 이해했을 뿐이지, 뛰는 것이 좋다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죄송하지만, 그 말은 못 지킬 것 같네요.”

        

       “엉? 뭔 일이라도 있냐?”

        

       내가 바닥에 대자로 뻗은 채 대답하자, 남다운이 되물었다.

        

       “방학 때는 할 일이 있어서요. 아마 뛰는 건 못할 거 같아요.”

        

       “잠시 시간 내서 뛰면 되잖아.”

        

       “그게 안 될 것 같으니까 문제죠.”

        

       남다운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미간을 모았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서 내 옆에 퍼져있는 아름이를 보았다.

        

       “아름아, 너는 방학 때 꼭 열심히 운동해야 해?”

        

       “엑.”

        

       그래도 방학하기 전에 마지막까지 나랑 있고 싶다면서 우릴 따라온 아름이는, 결국 우리에게 휘말려서 함께 전력 질주를 한참이었다.

        

       매일 공부만 해서 그런지 체력이 바닥이었던 아름이가 제일 먼저 퍼졌다. 그래도 아름이는 이길 체력이라 다행이네.

        

       “후우.”

        

       나는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2학기 때는, 정말로 아무런 걱정 없이 이런 평범한 나날을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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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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