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6

        

         탁, 탁…!

         버릇처럼 뽑아낸 티슈로 자판과 단축 키 패드가 놓인 책상 언저리를 헤멧이 털어냈다.

         

         매일같이 일하는 자리에 먼지 따위가 쌓일 겨를은 없었지만. 비슷한 이유로 흘린 음료수 자국이나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게 남을 수도 있었으니까.

         

         한편 연결부에 이동식 메모리가 삽입된 걸 인식한 컴퓨터는 파일 목록을 표시한 채 맹렬한 속도로 안정성 검사를 실행하고 있었다.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팔러 왔다는 개발자를 상대로는 얼핏 불필요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간혹 서킷 리파이너리에 등록된 무형의 상품.

         그러니까… 각종 프로그램이나 손님 리스트, 외부 반출 금지인 각종 계약서나 장부를 노리고 슬쩍 되면 좋고 아님 말고라는 식으로 상담을 가장해 크래킹을 시도하는 경우도 심심찮았기에.

         

         뭐 그런 것도 고려해서 제품을 테스트하는 이 사무실 컴퓨터는 정작 가게 메인 네트워크와는 분리되어 있었지만, 그렇다고 또 망가져도 괜찮은 물건은 없으니까 알아서 조심하는 셈이다.

         

         전자 제품을 입맛대로 커스텀 하는 걸 선호하는 그로서는 고장 난 컴퓨터를 분해하고… 선도 처음부터 다 다시 정리하는 게 영 귀찮기도 했고.

         

         ‘그나저나 작명 센스 한 번 무지막지하게 고약하군.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대체 누가 백신 이름을 폭심지(폭탄이 터진 지점)나 착탄점으로 짓는감….’

         

         가게 자주 오는 동양 매니아 녀석이 가끔 열변하던 화룡점정畫龍點睛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작품에 이름을 짓는 건 결국 혼을 불어넣는 행위.

         

         틀림없이 개발 기간만큼이나 긴 시간 고민을 -둘 다 엇비슷하게 초 단위로 끝냈으니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거쳤을 텐데, 그 결과가 저거라니.

         

         – ……. –

         

         ‘이크…!’

         

         외양적으로 연관점이 전혀 보이지 않아서 더욱 알쏭달쏭한 기분이 들었기에, 무심코 진담인지 아니면 그녀 나름의 가벼운 농담이었는지를 구분하고자 소파에 폭 파묻힌 소녀를 연신 힐긋거리다가.

         

         곁에 있던 드로이드로부터 오싹한 느낌을 받은 헤멧이 냅다 얼굴을 모니터에 처박았다.

         

         수입 좀 괜찮다는 엔지니어들이 다목적 보조용으로 데리고 다니는 중고 로봇과는 달리, 유막 코팅이 어찌나 잘 빠졌는지 구동부가 돌아가는데 흔한 소음조차 안 내는 모양새가 더욱 아찔했다.

         

         이 분야에서 나쁜 작명 실력쯤이야 세일즈 감점 요소 정도로 귀엽게 작용할지라도, 괜한 호기심은 죄악. 보통 극적인 수명 단축으로 직행하는 지름길이나 다름없었으니.

         

         ‘모르는 건 굳이 들춰보지 말고, 알아봐도 우선 모른 척해라.’

         

         서비스 업계를 지탱하는 불후이자 최고의 명언에 따라 헤멧은 시선 처리를 말끔하게 고쳤다.

         

         실제로도 그는 제 역할에 따라 착실하게 행동하고 수수료 겸 수임료(Fee)만 받을 수 있다면 이게 장물이더라도 별상관이 없었으니까.

         

         아니, 경력이 확실한 인물이 가져온 물건이라면 장물 쪽을 더 선호하기도 했다. 무서운 인간들이 들이닥칠 염려가 없다면 암묵적으로 얹는 입막음 비용을 챙기는 것도 꽤 달달하지 않겠나?

         

         [ 압축 해제 및 안정성 검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 내부에서 게시자를 알 수 없는 실행 파일이 탐지되었습니다. 지금 바로 실행 하시겠습니까? ]

         

         진단 결과 이상 무, 손상율 0%, 압축이 풀린 용량은…… 조금 많이 크다. 일부 전문 작업용 툴과 비견되리만치.

         작동 원리나 세부적인 구조를 알아볼 수 없게 병합되어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지만 수상쩍은 소프트웨어를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니 이건 제외.

         

         어째 종류 불문 모든 파일들의 최초 생성일이 오늘로 되어있는 건 조금 이상했지만, 상담 직전에 출시를 위한 대대적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치면 완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흠흠.”

         

         딸깍. 그런고로 부담 없이 실행.

         

         어디 그 성능을 한 번 보여달라는 의미로, 단말기 저장 장치를 일괄적으로 포함한 전체 검사를 킨 헤멧이 팔짱을 꼈다.

         

         이런 류 프로그램은 최적화에 따라서 소요되는 시간이 천차만별로 차이 나기에 앞으로 이어질 어색한 침묵을 대비해서 집중하는 연기… 같은 걸 한 건 아니다.

         

         현재의 그는 감정사. 접근성, 정확한 실성능, 사용자에게 주어진 옵션 등을 보고 소프트웨어의 객관적 가치를 매겨야 하는 입장.

         

         따라서 지금만큼은 손님의 눈치도, 고무 장갑 낀 기계 팔로 연신 턱을 두들기느라 우스꽝스러울 자신의 모습도 일절 신경 쓰지 않았다.

         

         시신경 전달 속도를 개선해주는 임플란트를 키면서까지 느리게.

         최대한 찬찬히, 그 도도한 유수와도 같은 데이터 처리 흐름과 경악스러운 효율성을 음미하느라 충분히 바빴으니까.

         

         먼저 인근 전자기기라면 다소 선을 타는 악질적인 방식마저 마다하지 않으며 흩뿌려지는 광고, 정크 애드(Junk Advertisement)들이 모조리 화면에서 쓸려 나갔다.

         

         응? 그쯤은 막아주는 백신 프로그램이 흔히 있지 않냐고?

         

         그래, 맞다. 그리고 그걸 교묘하게 우회하여 송신하도록 꼼수를 부린 서킷 리파이너리의 호객 배너(Banner; 이미지와 하이퍼링크가 합쳐져서 누르면 해당 페이지가 열리는 타입의 인터넷 광고)가 방금 무참히 썰렸다.

         

         검사 도중이라고 네트워크 연결을 아예 닫아걸었나 싶었지만 그런 기미는 없었다.

         헤멧이 사적으로 열어 놨던 인터넷 창들은 무사했으니까. …물론 거기에 있던 난잡한 광고들도 어느새 몽땅 막혔지만.

         

         “으응…?”

         

         신기하게 여긴 그가 몇 차례 새로고침 키를 연타했으나.

         분명 이런 이미지 노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접속 자체를 막아버리는 사이트 중 하나였을 터인데, 저쪽 시스템은 송출이 차단당한 걸 인식하지도 못하는 걸로 보였다.

         

         이건… 눈 뜬 채로 코 베어간 셈이 아닌가? 밥그릇이 걷어차였는데 당사자는 그걸 알 수조차 없다니.

         

         “허어….”

         

         하지만 거기에만 한 눈을 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와중에도 파일 검사 쪽 또한 대충하는 게 아닌가 의심될 수준의 비정상적 속도로 진행도가 차오르고 있어서 그랬다.

         

         빠르다. 그렇지만 정확하고 무자비하다.

         

         기존에 쓰던 안티바이러스에 걸려서 삭제되지 않도록 휴면 상태로 보관하던 악성 코드들이 전부 격리, 클릭 한 번에 소멸할 삭제 대기열에 추가되었고.

         

         심지어 유지 보수 용으로 으레 존재하는 시스템 백도어에 유동성 감시 체제까지 적용되었다고 뜨는 알림은 소름을 유발했으며.

         

         솔직히 말해서 그조차 있는 줄도 몰랐던 몇몇 프로그램들의 유사 키로깅(Keylogging; 사용자가 입력하는 내용을 복사하거나 기록하는 것) 스크립트, 크립토재킹 기능까지 비활성화 처리되었다고 쫘라락 목록이 펼쳐지는 건 일종의 마법과도 같았다.

         

         ……냉정한 평가를 위해 시험삼아 구동한 게 어쩐지 방 정리를 지적당하는 꼴이 되어버렸다는 점은 제쳐 두고라도.

         

         “크흠!”

         

         어정쩡해진 기분을 환기할 겸 헛기침한 그가 다리를 배배 꼬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슬쩍 확인.

         

         빈 시간이 지루하다면 사이버웨어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괜찮으련만.

         그런 건 상호간의 예의가 아니라 여겼는지 고지식하게 자리에 앉아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까맣지만 뽀얀 소녀는 과연 이런 마법을 부릴만한 요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좋다. 딱 봐도 귀하신 분이, 범상치 않은 상품을 들고 협업을 요청하러 오셨으니 자신도 응당 진심으로 대하는 게 맞겠지.

         

         드르륵!!

         와르르….

         

         거칠게, 따로 잠금까지 되어있던 책상 서랍을 풀고 열어젖힌 헤멧이 전용 방지막을 걷어내고 안에 깔끔하게 정렬, 보관되어 있던 데이터 칩들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안에 들어있는 건 다름이 아니라 네트워크 세계를 떠돌던 온갖 바이러스와, 공식적으로는 ‘구입한 적이 없는’. 일부 손님들의 공격성 높은 작품들을.

         

         장단점을 파악하고 평가하고자 한다면 우선 대상의 강도를 확인할 겸 뚫어보는 게 가장 명확하고 당연한 선행 작업이 아니겠나?

         

         

         

         ★ ☆ ★ ☆ ★

         

         

         

         “어이, 이보게나. 이봐! 손님 아가씨!!”

         “으에…?”

         

         안마하듯이 조심스레 어깨 근처를 어루만지는 딱딱한 손길이 기분 좋다.

         

         일그러지고 희끄무레한 구름처럼 몽실몽실 시야 안을 떠돌던 천장과 실내 인테리어의 형상이 간신히.

         물기가 말라서 캔버스에 달라붙는 물감처럼 마침내 자리를 잡고 정착한다.

         

         뭐여, 이게 무슨 상황이지.

         여긴… 사무실인데. 어라? 그러고보니 아직 견적 내던 도중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이런 미친.

         

         “………아? 미안! 나 잠들었어? 기다리지 말고 그냥 깨우지 그랬…… 아니다. 혹시 얘가 못 깨우게 막았나?”

         

         – !? –

         “그냥 단순히… 내가 고집을 부리다 너무 오래 걸렸네. 얼추 세 시간쯤 지났군. 미안허이.”

         

         도리도리…를 넘어서 붕붕.

         곧장 느긋하게 어깨 안마나 하고 자빠져 있던 손목을 붙잡고 째려보자, 억울하다며 머리를 마구 돌리는 제로 대신 헤멧 사장님이 사과하셨다.

         

         세 시간? 아니, 어쩐지. 안 그래도 작은 얼굴이 반쪽이 되신 걸로도 모자라 무슨 몸무게까지 줄어든 것처럼 수척해 보이시더라니 진짜였잖아?

         

         하지만 아무리 오래 걸렸어도 상담 도중에 푹 잠들은 건 명백한 실수, 전문가의 ‘종합 평가’에 걸리는 시간을 너무 우습게 봤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게임에서 상담 없는 매입 과정은 그냥 프로그램이 담긴 물건을 가져오면 ‘으으음…!’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 감정 중이라 뜨고 금방 최종 평가액이 표시되는 복권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역시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풀리지 않는구나. 음.

         

         “…푹 자고 일어난 사람이 받을 사과는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알겠어.”

         

         부끄럽지만 당사자가 괜찮다 하니 일단은 묻어가듯이 넘어가도록 할까.

         

         그나마 잠깐이나마 눈을 붙인 덕분에 조금 지끈거리던 감각이 가신 건 고마웠다.

         헛된 기 싸움…이라 표현할 것까진 아니더라도, 이제부터 민감한 돈 얘기를 해야 할 텐데 정신이 말끔하다면 좋지 뭐.

         

         “으흠…! 어디, 그래서?”

         “…….”

         

         이렇게 깨우러 왔다는 건 아마 나없이 할 수 있는 작업이 끝났다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물론 어떻냐고 직설적으로 소감을 물어보기엔, 세상 사람들은 다 몰라도 나로선 약간 수치스러운… 속되게 말해서 쪽팔린 행위인지라 약간 돌려서 표현했다.

         

         가상 세계를 입맛대로 주무르는.

         그리고 아무리 정교한 요새가 완성되도록 노력했다 해도, 나와 제로의 시각엔 똑똑하게 그 장엄한 광경이 보였다 해도 결국엔 상상으로 그림 그리던 형국.

         

         따라서 칭찬 같은 걸 바랬다고 하기보단 전문가의 시선에선 과연 어땠는지, 상품화를 하기 어려울 것 같다면 어떤 점을 명확하게 고쳐서 다시 내야 할지 알아야 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눈앞의 소인은 해쓱하던 얼굴을 한층 더 홀쭉하게 만들며 입술을 삐죽였다.

         마치 순순히 대답하기엔 뭔가 자존심이라도 상한다는 것처럼.

         

         “저기요…?”

         “……%@했네.”

         

         나로선 일정이 여러모로 지체된 만큼 얼른얼른 얘기를 풀어나가고 싶어서 되물은 건데, 그는 모기 날아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릴 뿐 크게 대답하지 않았다.

         

         괜한 채근을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불쾌하게 여겼나? 딱히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어리둥절한 기색을 내비치자 이번엔 본격적으로 열이 오른, 시뻘건 표정으로 꽥! 소리를 내지르셨다.

         

         “자네가! 자네 팀이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다고 했네!! 정말 이런 종합 핵폭탄 같은 프로그램을 완성했다면 미리 눈치를 주던, 시험해보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던 얘기는 할 수 있지 않았나!? 오기를 부릴 테면 부려보라는 식으로 슬쩍 찔러주고 음흉하게 모른 척하기는!!”

         

         예? 아뇨, 음흉한 목적을 가지고 놀리려던 건 아니었는데요….

         

         “중간부터는 내 쌩돈으로 씨팔 악명높은 데이터 바이러스를 구매해서 어떻게든 처박아보려고 노력까지 헀어! 연결하는 족족 전부 갈려 나가서 크레딧이 공중분해 됐지만 어쨌거나!”

         

         얼굴을 들이밀려던 헤멧의 이마빡을 제로가 붙잡아서 제지하거나 말거나.

         휙 치켜든 그의 로봇 팔을 따라 곁눈질하자 책상 한 켠에 산처럼 쌓이다 못해 툭툭 바닥으로 흘러내리고 있는 데이터 칩의 언덕이 짜잔.

         

         어… 거 굉장히 열심히 일하셨네요. ……근데 그게 왜 내 잘못이죠.

         

         쿵!

         

         “엥?”

         

         당황스러움을 넘어서 미묘.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잘 감이 오지 않아서 시큰둥한 태도로 일관하자 그는 아예 무릎을 꿇어버렸다. 배어 나오는 처절함은 그걸 애원으로 만들기 충분했고.

         

         “광고는 제발 좀 살려줘! 조금만 약하게, 하다못해 버전을 나눠서 결제 액수에 따라 조절할 수 있게라도!! 이걸 그냥 팔기 시작하면 우리 같은 소상공인은 다 굶어 죽어!!”

         

         “아니, 그쪽은 유통 중개업자에 더 가깝지 않으셨어요!?”

         

         “가게 홍보도 못하게 이런 식으로 막아버리면 일반 손님은 그냥 기업 직영점으로 가지 이쪽에 왜 오겠나!!”

         

         끼긱, 끼긱!

         

         그래도 명색이 연장자신데. 무릎으로 사무실 바닥을 기면서까지 난리를 치는 그 모습은 짠할 지경이었으나,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얘기의 핵심은 여전히 따라잡기 어려웠다.

         

         “오늘 감정료도 무료, 유통 수수료도 따로 안 떼고 홍보비도 알아서 하겠네. 대리 판매 매출의 0.7%…… 아니, 0.6%만 떼어주게! 어차피 한 번 입소문이 돌면 이런 오프라인 매장은 직원 인건비도 안 나와!!”

         

         “……아하.”

         

         왜 이 소란인지 이젠 그 윤곽이 희미하게 보였다.

         본론은 한순간도 탈선한 적 없이 그대로였다. 지긋지긋한 돈 문제였지.

         

         단지 그는 내가 일반적인 경우처럼 이곳을 비롯해서 수많은 가게를 돌아다니며 위탁 판매 계약을 맺고, 자체적으로 온라인 판매도 할 예정이라 생각했기에 자기 몫의 파이를 온존해달라며 부탁하는 것이었다.

         

         바보 같은 오해이자 착각이었다.

         번거롭게 그럴 예정이었다면 그냥 귀찮더라도 사고 현장 근처에서 폭주 로봇들이나 수거했지 내가 여기 몸소 찾아왔을 리가.

         

         “0.6%라… 다른 어중간한 소프트웨어 같은 건 얼마나 가져가?”

         

         “…10%. 대체재가 많은 분야의 녀석이라면 11%, 거기에 홍보를 원하는데 냉정하게 평가해서 가게에서 추천하기엔 모자란 수준의 물건이라면 15%까지 치솟네. 기준 미달이면 처음부터 위탁을 거부하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자 살짝 진정한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동등하고 치열한 협상이 될 줄 알았는데 저쪽이 매달려온다면 이것 또한 썩 나쁘지 않았다.

         

         바이러스가 멋대로 민간에 퍼지고 있다면, 그에 대한 백신은 그가 사업 수완을 발휘해서 쭉쭉 퍼트려 주길 기대하고 찾아온 나로서는 더더욱.

         

         서킷 리파이너리의 오너, 속칭 리틀 헤멧. 인격적으로 그리 특출 난 것도 아니오 돈을 너무 밝혀서 얽힌 말썽도 많지만, 그만큼 계산도 확실하고 거래에서 속이는 흉내는 안 하는 인간.

         

         그런 상대가 선뜻 매달릴 정도라면 일단 사업 가능성은 확실하다고 봐도 되겠고.

         

         다시 말해서 크레딧으로 뺨을 후려갈기면 서비스 퀄리티를 무지막지하게 끌어올림과 동시에 불가사리 사태 수습도 빠르게 마칠 수 있다는 뜻이렸다?

         

         ……그렇지만 대리 판매 매출이라 못박은 걸 보면 패키지 가격 따로, 백신 서비스 월 정액(Monthly Payment)도 별도로 청구하는 걸 생각한 모양인데. 많이 퍼트린다는 목적이 명확한 이상 오히려 그런 창렬 시스템은 이쪽이 용납못하거든?

         

         “10%. 그냥 원래대로 10% 먹으시죠.”

         

         “!? 그게 무슨….”

         

         “판매 매출만이 아니라 월 정액도 똑같이 10% 떼어 가지시고.”

         

         계약 조건가지고 함부로 장난치지 말라는 투로 제자리에서 튀어 오르려는 헤멧의 발작을 손을 내밀어 제지하고는 몇 마디 덧붙였다.

         

         절대 제가 바보라 공짜로 선심 쓰는 게 아닙니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주셔야죠.

         

         “대신 난 여기 온 적도, 우린 만난 적도 없는 거야. 덧붙여서 민간 판매는 물론이고 기업 애들이 그리 쉽게 쓰던 보안 툴을 내버린 채 이런 출처도 모를 물건을 써줄지도 모르겠지만 대금 협상이 필요하다면 전부 당신이 대리 출석. 만약 치료제를 찾는 업체가 있다면 여기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신나게 팔아주고.”

         

         “……맙소사.”

         

         드디어 봐줄만한 진지한 얼굴이 된 헤멧을 향해 나는 손깍지를 끼고 턱을 괴었다.

         내가 수습해야 할 일을 남에게 맡기는 게 무슨 해결이냐 욕하려면 마음껏 욕해라. 가능하다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이 나서는 게 뭐가 어때서!

         

         대리인이자 동업자가 되는 셈이다.

         이미 완성된 소프트웨어에서 뒤늦게, 그것도 1할에 달하는 지분을 떼어준다는 게 얼마나 허황된 소리처럼 들릴지는 알지만 그 원가가 거의 0이라면?

         

         엄밀하게, 구체적으로 따진다면 어느 레스토랑의 수제 버거 세트 정도의 가격에 불과하다면 이렇게 통 크게 선심 쓸 수도 있는 법이다.

         

         기존에 쌓은 신뢰 관계는 없더라도 그의 행동 원리를 알고 있다면 가능한 편법. 다소 치사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명분과 이득을 주며 속삭이는 정도는… 용서해주겠지?

         

         – 되려 저쪽이 영광인 줄 알아야 하는 일이 아닐까요? –

         

         …넌 잠깐 빠져 있어 인마. 난 뭔가 아는 사람을 상대로 갑질하는 기분이라 영 불편하다고!

         

         “어때?”

         “…….”

         

         쓸데없는 외야의 한마디를 날려버리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재촉하듯이, 어여 결정을 내리라는 의미로 웃음기를 담아 쾌활하게 묻자 얼빠진 태도로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리고 있던 그가 돌연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가타부타 따져보거나 승낙하는 말조차 없이.

         갑자기 다짜고짜 직각으로 인사를 박으셨다.

         

         “앞으로…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사장님!! 얼른 계약서… 따위가 아니라, 대외적으로 써먹을 권한 위임장부터 얼른 가져오겠습니다. 누추한 곳이지만 잠시 기다려 주시지요!”

         

         “………어라?”

         

         그건 좀 한방에 너무 공손해지신 게 아닐지.

         아뇨, 그게 아니라 몫을 나눠가지는 동업자라니까요? 저기요. 말도 안 듣고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시는데.

         

         …야, 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에이 설마 사람들이 쓰던 물건을 그렇게 쉽게 바꾸겠어? 역시 전문가를 써야지!

    Glacia샤샤 님의 관대한 123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코인으로 때리면 어떤 딜레마든 해결되야 하는 게 노벨피아의 법칙 아닐까요.

    두 시간이나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가족 경유로 따로 돕는 서류 작업이 생겨버려서 안 그래도 꽤 일정이 빡빡했는데, 저쪽에서 회의 참석자들에게 나눠주고 남는 샌드위치가 있다고 얻어먹은 게 설마 이 날씨에 상온 보관하던 물건을 그냥 줬을 줄은….

    새벽에 구토, 복통, 설사, 발열이 진짜 무슨 환자 예시처럼 터지는 식중독을 겪느라 조금 많이 꼬였습니다.
    대신이라 하긴 뭐하지만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얼른 자러 가보겠습니다. 진짜 공짜만큼 무서운 게 없어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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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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