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6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찾아왔을 때.

   

   페이비는 밝은 웃음과 함께 내일 보자는 인사를 건네고는 불안한 듯 내 눈치를 살폈다.

   

   무슨 할 말이 더 남은 것일까 싶어 가만 침묵을 지키고 있으려니 페이비가 조심스레 목소리를 냈다.

   

   “저. 영애님. 전 오늘 당신께 도움이 되었을까요?”

   

   무슨 걱정을 하는가 했더니. 피식하고 새 나오는 웃음을 견디지 못한 나는 몇 번인가 쿡쿡 거리다 이렇게 답해주었다.

   

   ‘당연하죠.’

   “난 악신의 기운을 느끼지도 못했거든? 허접 성녀 네가 도움이 안 됐으면 난 뭐야?”

   

   “…아.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그.”

   

   허둥거리는 페이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가 내가 알던 성녀와 많이 달라졌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게임 속 그녀는 당황하는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운 캐릭터였는데 말이야.

   

   내가 신의 사도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게임 속 성녀라면 저지르지 않을 잘못을 저질러버린 탓일까.

   

   어느 쪽이라 하더라도 난 지금 페이비의 모습이 싫진 않았다. 세상 모든 것에 초연한 성인보다는 인간적인 지금이 친구로 삼기엔 좋으니 말이다.

   

   ‘충분히 도움이 됐어요. 페이비.’

   “충분히 도움이 됐어. 허접 성녀치고는 말야.”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마음의 시름을 던 페이비가 밝게 웃으며 떠나간 후.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저 멀리로 향했음을 확신하게 된 순간.

   

   난 방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크게 환호성을 내질렀다.

   

   던전.

   

   그것도 게임에 존재하지 않았던. 이 세상에만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가 합쳐져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내가 공략해보지 못한 던전이라니!

   

   이전에 할배가 그 저택에 들어가는 일을 던전을 공략하는 것이라 생각하라 이야기했었는데 이제는 진짜 던전 공략이 되어 버렸네?!

   

   흐헤. 흐헤헤헿.

   

   허술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던전이라니.

   

   이 얼마나 달콤한 울림이란 말인가.

   

   소울아카데미라는 게임이 나온 후로 몇 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끝마친 걸로도 모자라 어떻게든 게임을 즐길 방법을 찾아 헤매며 발악하던 나날이 드디어 보답 받는구나.

   

   아니 이럴 때가 아냐.

   

   저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서 무얼 준비할 지부터 생각을 해야지!

   

   책장에서 빈 노트를 꺼낸 나는 거기에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여러 정보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단 전제로 잡아야 할 건 버로우 가문이 나크라드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사실이야.

   

   우리가 만나러 갔을 때 버로우 공작은 스스로의 병환이 거의 회복되었다고 이야기했어.

   

   그의 병환이 악신의 기운에 저항하다 생겨난 것이라 가정한다면 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곧 악신의 기운에 잠식되었다는 것이겠지.

   

   공작마저도 집어삼켜지고 말았는데 다른 이들이라 하여 멀쩡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뭐어. 그래도 버로우 가문 전체를 상대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1학기 내내 나한테 휘둘리느라 무어 하나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한 나크라드다. 공작가 전체를 쥐락펴락 할 힘이 있을 리가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영원한 악몽에 빠트리는 것 정도가 한계일 테고. 한 번에 다룰 수 있는 인원은 많아봐야 기사 셋에서 넷. 거기에 악신의 하수인 몇 정도?

   

   기사들에게 이성이 없을 것이란 걸 생각해보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일 거다.

   

   버로우 가문 저택의 길이야 다 외우고 있으니 별 문제 안 되고.

   

   나크라드 녀석이 설치할 함정이야 거기서 거기이니 대처할 수 있고.

   

   으음. 결국 문제가 되는 건 보스전인가.

   

   나크라드 그 녀석이 만들어 내는 다른 던전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보스전은 이렇게 이루어 질 거야.

   

   우선 중간 보스로 열등 공자.

   

   그 녀석이 먼저 출현하고 그 다음에 페이크 보스로 버로우 공작이 모습을 드러내. 그러고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숨겨진 스테이지가 하나 더 있는 거지.

   

   바로 대 나크라드 전이 말이야.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던전의 공략법을 기억하고 있는 나다.

   

   던전이라는 것이 저 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지만 그 모두가 아예 다를 수는 없는 법이니.

   

   던전의 테마. 그 던전을 만들어 낸 자. 보스가 될 이. 던전이 존재하는 것.

   

   이러한 정보를 집어넣으면 그 안의 구조가 대충 어떻게 될지 짐작이 된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모두 노트에 정리한 나는 다음 장으로 넘겨 앞으로 준비해야 할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버로우 저택으로 향하기 전 어지간한 걸 모두 인벤토리에 넣어 두었기에 자잘한 것을 신경 쓸 이유는 없다.

   

   필수적인 것들만 생각하면 돼.

   

   우선은 내 개인적인 스펙의 강화.

   

   최소한 버로우 공작을 상대로 시간벌이를 할 정도는 되어야 해.

   

   그리고 파티원은…

   

   새 던전을 공략하는 신성한 일에 다른 놈들을 끼워줄 순 없지! 정 불가능하다 싶은 게 아니라면 되도록 혼자서 움직이자.

   

   그리고 준비해야 할 물건들이.

   

   일단 악신의 마력을 감지할 수단을 구하고.

   

   나크라드 그 새끼가 도주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한 쐐기를 손에 넣고.

   

   그리고… 필요한 물건들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나가다 보니 어느새 노트 한 쪽이 가득 차 있었다.

   

   마음 같아선 이 모든 걸 구비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번 일은 빠르게 해결하면 해결할수록 좋으니 말이다.

   

   꼭 필요한 것들만 골라내야겠다고 생각한 나였지만 이것도 필요해 보이고 저것도 필요해 보여서 손이 멈추고 말았다.

   

   으으. 어떡하지? 여기서 뭘 포기해야 하지?!

   

   <여아야.>

   ‘뭔데요.’

   <내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다만. 왜 다른 이들의 도움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야.>

   ‘네?’

   <그 저택에 악신의 손길이 닿아있다면 그냥 다른 곳의 힘을 빌리면 그만이지 않으냐는 말이다.>

   

   아니 할배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간단한 이야기다. 아무리 교회가 썩어있다 하더라도 악신의 흔적을 그냥 넘겨버리지는 않을 터. 성녀의 증언이 있다면 저들은 전력을 다해 버로우 가문을 공격할 것이다.>

   

   그렇겠지. 아무리 썩었다 하더라도 교회는 교회다.

   

   최소한의 의무조차 수행하지 않으면 여러 나라의 지지를 얻지 못함을 아는 그들은 분명 버로우 가문에서 악신의 손길을 떨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 교회가 꺼림칙하다면 네 아비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도 있다. 성녀의 증언을 기반으로 녀석이 출정할 명분을 만들어주면 손쉽게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

   

   이 말도 맞다. 제 아무리 나크라드가 1학기보다 강해졌다한들 어디까지나 1학기와 비교했을 때의 일이다.

   

   베네딕의 무위를 견딜 수준은 아닐 테니 그가 버로우 가문을 공략하러 든다면 어렵잖게 해결할 수 있겠지.

   

   <왜 굳이 홀로 모든 걸 해결하려 드느냐. 왜 이번엔 다른 이들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홀로 위험에 달려드려 하느냐.>

   

   타이르는 것 같은 할배의 어투에선 내가 불필요한 위험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차마 내 본심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세상을 넘어와서야 겨우 찾은 컨텐츠를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주기 싫다는 이야기를 나를 진지하게 걱정해주는 사람에게 어찌 말하겠는가!

   

   나 스스로 생각해도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들으면 어떻겠어!

   

   물론 이것만이 이유인 것은 아니지만 그 쪽도 굳이 입에 담고 싶지 않은 것은 똑같았으니.

   

   어찌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망설이고 있으려니 할배가 따지듯이 물었다.

   

   <혹여 주신께서 그대에게 홀로 모든 걸 해결하라 하시더냐?>

   

   그렇지는 않다. 아직 허접 주신은 그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여전히 퀘스트 창엔 보상을 집계 중이라는 이야기가 올라오고 있을 뿐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혹여 그대의 행동으로 인해 생겨날 죽음을 감당할 자신이…>

   “거. 노친네. 적당히 하거라.”

   

   할배의 추궁을 멈춘 것은 얼빠여우였다. 어느새 책상 위로 올라와 있던 그녀는 메이스에 자신의 육구를 댄 채 서 있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된 것이 없거늘 왜 이리 주책을 부리는 게야.”

   <숲의 주인이여. 그대는 악신의 위험을 모른다. 녀석들과 관계된 일에서 그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단 말이다. 그러니.>

   “악신의 위협에 의해 몇 번이나 죽을 뻔 했던 아이가 그를 모르겠느냐.”

   <…>

   “답답하니 내 대신 질문을 해주마. 네가 물을 것은 말이다. 왜 그런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했을 때 성공할 자신이 있느냐는 것이다.”

   

   얼빠여우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엄한 어투로 할배를 다그치고는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리긴 어렵지 아니했다.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해달란 것이겠지.

   

   ‘자신 있어요.’

   “날 뭐라고 생각 하는 거야? 당연히 자신 있지.”

   

   열등 공자건. 버로우 공작이건. 저택 안의 기사들이건. 나크라드건. 어둠의 악신이건. 이미 수도 없이 쓰러트려 본 상대들이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맨손 빤스 플레이로도 때려 잡아 죽이는 게 가능한 놈들이란 말이다.

   

   당장 몸을 내던져야 하는 것도 아니고 위험을 알고 준비를 한 후에 그들을 상대하는 게 가능한데 내가 실패할 리 없잖은가.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 이런 걸 실패할 리 없지 않나.

   

   – 띠링.

   

   내가 속으로 확정을 짓기 무섭게 알림음과 함께 푸른 색 창이 떠올랐다.

   

   [새로운 퀘스트가 지급됩니다!]

   [악신의 사도를 쓰러트려라!]

   [버로우 가문의 저택에 악신의 사도가 숨어들어 있습니다! 당신의 힘으로 그를 처치하십시오!]

   [보상 : 루엘의 메이스의 잠재능력 중 하나 해방, ???]

   

   …하.

   

   허접 주신 당신. 내가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어?

   

   여태까지 도청을 하고 있었던 거야?!

   

   으. 진짜 기분 나빠.

   

   속으로 그리 투덜거리는 했지만 입가에는 웃음이 지어졌다. 이 녀석이 내 선택을 지지하는 건 사실이니까.

   

   [이전 퀘스트의 보상이 지급…]

   

   “그럼 난 이만…”

   

   메이스에서 육구를 떼고 도망치려는 얼빠여우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무. 무어냐. 이번에 본녀는 그대에게 아무것도.”

   

   ‘저기…’

   “야. 얼빠여우. 너 언제부터 할배랑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야?”

   

   난 여기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는데?

   

   *

   

   버로우 공작가문을 공략하기로 마음을 먹고서 다음 날.

   

   순간이동의 진을 이용해 알른 영지에 방문한 나는 바로 교회 쪽으로 향했다. 요한을 만나서 부탁을 할 것이 있었기에.

   

   “아르테아의 여주인말입니까? 예. 영애의 말대로 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제 이름을 댄다면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죠.”

   

   그건 바로 이사벨 아르테아. 내가 굴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석판을 빼앗아 간 이에게서 석판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나크라드를 압도하기 위해선 그 석판을 통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필요하니까.

   

   물론 그 석판을 받아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사벨은 허접 주신과 관계된 물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으니 허접 주신의 기운이 담긴 그 석판을 그냥 내어줄 리가 없지.

   

   그치만 난 그녀에게서 석판을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어젯 저녁 버로우 공작 가의 이상을 찾아낸 보상으로 허접 주신이 지급해 준 물건. 그의 신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아이템이 있으니까.

   

   이사벨은 결코 이걸 거절할 수 없을 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빠여우는 루시와 연관되지 않으면 꽤 제대로 된 어른입니다.

루시와 연관되지 않으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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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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