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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7

       보통 이런 스토리의 ‘게임’이라면,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스토리 끝에 존재하는 최종 던전이고, 그 안에서는 적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 층 한 층 던전을 돌파할 때마다 그 끝에서 상대편의 간부라고 할만한 존재들이 하나씩 나오고, 주인공 일행은 그 존재들을 한 명씩 쓰러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상대가 설정상 매우 강력한 존재일 경우에는 시스템상으로는 승리했더라도 스토리상, 그러니까 컷신으로는 쓰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보통 다른 아군 캐릭터가 난입해 ‘여긴 내게 맡기고 앞으로’라는 클리셰를 보여주기도 한다.

        

       ……원래는 그랬어야 했는데.

        

       “참 당당하게도 기다리고 있군.”

        

       어이없다는 듯 그렇게 말한 사람은 검성이었다.

        

       검성의 말대로였다.

        

       우리 앞에는 대단한 던전이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고, 커다란 짐승 같은 것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지도 않았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받아친 존재는 황제였다.

        

       법국의 성당에 직접 와보는 것은 처음이다. 종교라는 것을 가져본 적 없는 나는 사실 이런 성당에 와본 적이 없고, 그래서 성당 내부가 정확하게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내가 보기에도, 이 성당의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성당이나 교회라고 한다면 떠오르는, 신자들이 앉아있을 자리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넓은 홀이 있고, 저 앞에는 높다란 등받이를 가진 의자가 몇 개 나란히 놓여있었을 뿐이다. 의자는 모두 화려한 붉은 색이었다.

        

       그러니까…… 여긴 아무리 봐도, 성당이라기보다는 왕궁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하긴, 그럴만도 한가. 나라라고 부르기에 매우 작은 곳이긴 했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교황이 상대해야 할 존재는 다른 국가의 왕들이다. 권위가 떨어져 보일 수는 없겠지. 현대의 교황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해도 될 정도니까.

        

       그러니, 저기 보이는 왕좌처럼 생긴 의자는 사실 교황의 자리였을 것이다.

        

       지금은 황제가 앉아있었지만.

        

       위풍당당한 자세로 앉아서 팔걸이에 한쪽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괴고 있는 그 자세도 클리셰라면 클리셰겠다.

        

       “지난 며칠 동안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리고만 있었던 건가? 이것 참 미안허이.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건 아닌가 생각되는군.”

        

       “뭘, 이쪽에서도 할 일은 많았다. 이것저것 조정할 것이 있어 심심하지는 않았지.”

        

       도발하듯 말하는 검성에게 황제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사실 내가 기다리던 존재는 내 딸들이었다.”

        

       “호오, 우리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라는 뜻인가?”

        

       “음, 그렇다고 찾아온 이들을 내쫓을 수는 없지. 내 관대하게 용서해 주도록 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황제의 표정은 그저 즐거워 보였다.

        

       “……여기 다른 인원이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의 의도가 아니라는 뜻입니까?”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며 물어보자, 황제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평소에 나를 보던 시선과 완전히 똑같은 시선이었다. 이런 상황을 만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치고는 평소와 너무 다를 게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면, 애초에 지금 하는 일 자체도 황제가 평소에 하던 일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나는 그걸 네게 물어보고 싶었다만.”

        

       황제는 양손으로 팔걸이를 잡더니,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황제의 나이가 젊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황제의 몸은 그저 중년이라고 하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건강해 보였다. 양어깨가 떡 벌어졌고, 키도 나보다 훨씬 컸다. 바로 앞에서 올려다보지 않아도, 자리에 버티고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황제의 모습은 그저 커 보였다.

        

       무엇보다, 누구 앞에서도 자기를 낮추지 않는 그 당당함이 눈에 보일 듯 느껴졌다.

        

       “장치는 완성되었다.”

        

       황제는 왕좌에서 한 걸음 내려오면서 말했다.

        

       “그러니, 이 세상을 제어하던 여신의 힘도 부서졌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 이 세상에는 아직 여신이 남겨둔 규칙이 그대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황제는 양팔을 좌우로 벌리며 말했다.

        

       “…….”

        

       뭐라고 질문이라도 할까 생각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왠지 여기서는 굳이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황제가 다 알려줄 것 같았으니까.

        

       “너라면 황궁의 모든 자료를 찾아 읽어봤겠지. 그럴 시간은 충분했을 테니까.”

        

       뭔가에 심취한 듯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던 황제가 문득 그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황제는 굳이 내가 대답할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는 듯, 천천히 이야기를 해나갔다.

        

       “팬그리폰 황가에만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너무나 불경하고 다른 이들은 이해하지 못할 이야기라, 팬그리폰의 이름을 제대로 이을 수 있는 이들에게만 해주는 이야기지. 다른 누군가가 듣지 못하고 읽지 못하도록, 글로도 남기지 않은 채 자기 자리를 이을 자식과 독대한 자리에서만 딱 한 번 해주는 이야기다.”

        

       황제는 시선을 내려서 나를 보았다.

        

       “그러니, 잘 듣거라. 너도 언젠가 이 이야기를 너의 자리를 이을 이에게 해주어야 할 테니.”

        

       황제의 시선이 움직였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앨리스에게.

        

       *

        

       옛날 옛적에.

        

       한 세계가 있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마구 부서지고 뒤섞인 세상이.

        

       최소한의 법칙조차 없이 뒤엉켜 혼란스럽던 세상에서 사람들은 신음하고 있었다. 시간조차 정리되지 않은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르게 늙어가고, 마모되고, 썩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계시가 내려왔다.

        

       부서지고 금이 간 하늘의 사이에서 내려온 한줄기의 푸른 빛.

        

       그 빛의 한가운데서 처음으로 세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무렇게나 돋아나오던 팔과 다리는 각각 두 개씩.

        

       머리 이곳저곳에서 뜨이던 눈은 모두 얼굴에.

        

       뒤로 꺾였던 손가락과 발가락도, 빙글빙글 돌아가던 척추도, 모두 제 자리를 찾았다.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나 자신의 원래 모습도 모르던 인간들은 그 푸른 빛을 따르며 비로소 자기 진짜 모습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이 세상 어디에나 다 닿은 것은 아니다.

        

       부서진 하늘의 틈은 한정적이었고, 그렇기에 그 빛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여전히 뒤틀린 세상에서 뒤틀린 몸을 가진 채 괴롭게 살아갔다.

        

       그 빛이 닿지 않는 공간에서, 어느 날 한 영웅이 태어났다.

        

       뒤틀린 몸으로 다른 뒤틀린 괴물들을 평정하고, 독수리와 사자가 뒤섞인 기괴한 괴물을 이끌고 여신에게 대적한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오로지 자유였다.

        

       여신에 의해 그 형질이 고정된 이들은 결코 빛의 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 바깥에 있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고, 그저 여신의 품 안에서 만족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만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사람 위에 사람을 놓았다. 사람 아래 다시 사람을 놓았다.

        

       한층 한층 확실하게 분리된, 견고한 사람의 탑. 사회의 모든 곳을 각자의 역할대로 지지하는, 질서 그 자체인 도시.

        

       독수리와 사자가 기괴하게 섞인 괴물— 그리폰들의 왕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붉은빛과 푸른 빛이 어지러이 섞인 하늘의 한가운데를 날아다니는 것.

        

       부서진 땅의 안쪽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끝없는 황금 광맥을 감상하는 것.

        

       얼어붙은 동시에 불타는 대지를 그저 한없이 바라보는 것.

        

       —스스로의 의지만 있다면, 더 강한 자도, 더 약한 자도 없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세상.

        

       그리폰의 왕, 뒤틀린 것들의 왕 팬그리폰이 보기에 질서의 세상은 그 모든 기회를 박탈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여신과 대적하기로 했다.

        

       *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신과 대적하기에 그의 힘은 충분하지 않았다.”

        

       황제는 느긋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지. 뒤틀린 이들에게는 체계적인 무기 체계를 적용할 수 없다. 갑옷을 필요한 모양으로 원하는 만큼 만들어 배급할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쓰이는 무기들도 그들이 쓰기에는 지독하게 불편했지. 하나의 존재를 따르며 하나의 질서 아래에서 일관되게 움직이는, 마치 하나의 생물 같은 이들과 싸워서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팬그리폰은 결국 항복했다.”

        

       황제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 여신의 말을 받아들여서 질서의 세상으로 들어갔고, 그 안에서 다시 위대한 자리까지 올랐다.”

        

       “…….”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이없을 만큼 허탈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황제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어려있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일 리가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에 답하듯, 황제는 입을 열었다.

        

       “여신의 결점이 무엇인 줄 아느냐?”

        

       황제의 말에 다들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저 멀리 시야 끝에 보이는 소피아만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을 뿐이다.

        

       “여신은 ‘질서’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팬그리폰은 그 질서에 순응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혼돈을 그렸지.”

        

       황제가 오른손 손바닥을 천장을 향하게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여신이 질서에 집착했던 만큼, 팬그리폰의 집착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바닥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르륵, 그르륵, 거친 돌이 긁히는 소리가 들리고, 교황의 자리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한 거다. 그렇다면, 여신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오로지 ‘질서’만을 이용해 혼돈을 불러올 수는 없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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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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