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7

        

        * * *

         

         

         

       그렇게 이세린은 진성에 관한 관심을 거뒀다.

         

       완전히 거두었다기보다는 뒤로 미룬 것에 가깝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녀의 약간은 음침한 욕망의 불길은 일단 진화되었다.

         

       하지만 한 곳에서 불이 꺼졌다고 해도 다른 곳에서 다시 불이 피어오를 수 있는 법.

         

       이세린의 자매이자 인간 카피바라, 인간 표범 소리를 듣는 이아린이 바로 그 불씨였다.

         

       “오라비!”

         

       그녀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자기가 언니라고 우기는 생물학적으로 서로 죽이라고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혈연메이트’, 줄여서 이세린이라고 부르는 존재와는 다르게 그녀는 앞뒤 잴 것 없이 그대로 진성에게 들이박아 버렸다.

         

       다짜고짜 진성의 방으로 찾아가서 호출한 것이다.

         

       심지어 방문으로 찾아와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무려 저택의 벽을 타고 올라가 진성의 창문을 주먹으로 쾅쾅 두들기며 진성을 호출한 것이다.

         

       “거기 안에 있지? 있으면 대답하시지!”

         

       이아린은 마치 자신이 떼먹힌 돈을 받으러 온 사채업자라도 된 것처럼 거침없이 문을 두들겼고, 안을 살펴볼 수 없을 정도로 새까만 커튼 너머에 인기척이 느껴지는지 감각을 바싹 세우며 방 안을 염탐하려 시도했다.

         

       “어이, 나와! 있는 거 다 알아!”

         

       게다가 이러한 이아린의 독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사채업자의 행동과 흡사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간 장난조였던 말투에 껄렁함이 묻어나오기 시작했으며, 창문을 두들기는 이아린의 손짓에 약간의 짜증마저 묻어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오라비라고 부르는 최소한의 존중은 어디론가 갖다버리기라도 한 것인지 ‘어이’라는 말이 되어버렸다.

         

       시간이 더 흐른다면 저 ‘어이’라는 표현은 또 다른 무언가로 바뀌게 되리라.

       적어도 예의의 단계가 좀 더 떨어진 무언가로 말이다.

         

       이러한 이아린의 집요함 때문이었을까?

         

       진성이 움직였다.

         

       촤아악.

         

       진성은 시끄러움을 견딜 수 없다는 듯 커튼을 걷어내고는 창문을 사이에 둔 채 이아린과 눈을 마주쳤고, 그러자 조금 전까지 깡패처럼 껄렁이는 태도였던 이아린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배시시 웃었다.

         

       그러더니 얌전한 척을 하며 아주 약하게 문을 두들겼다.

         

       똑똑.

         

       앞서 주술이 걸린 창문을 힘으로 때려 부수려 했었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솜털처럼 가볍고 깃털처럼 부드럽게 말이다.

         

       하지만 안광을 빛내며 기회를 슬쩍슬쩍 엿보고 있는 것이, 진성이 창문의 잠금장치를 해제하는 순간 창문을 벌컥 열어버리고 안으로 뛰어 들어올 것만 같았다.

       마치 먹이를 덮치는 표범처럼 말이다.

         

       진성은 이러한 이아린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기에 창문 잠금장치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그저 이아린을 빤히 바라보았고, 그러자 이아린은 다시 반쯤 껄렁이는 모습으로 진성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 쏘아보더니 그녀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창문의 잠금장치를 말이다.

         

       빨리 창문이나 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그녀가 보내는 무언의 압박에 고개를 천천히 젓는 것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했다.

         

       대신에 빨리 이야기나 하고 가라는 듯 그녀를 계속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어이, 오라비. 나 지금 여기 서 있느라 힘든데. 안에 좀 들어가면 안 되나? 응?”

       “별로 내키지 않는구나.”

       “열라고.”

       “거기서 말하거라.”

       “안에 뭐 좋은 거라도 있어? 왜 이래?”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위험한 것은 있느니라.”

         

       이아린은 여러 번 재촉했다.

       어서 창문을 열고 나를 손님으로 맞아들이라고.

         

       촤아악!

         

       하지만 진성은 그러한 이아린의 요청을 완강히 무시하고는 다시 커튼을 쳐버렸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방을 나선 뒤 축지를 사용해 순식간에 이아린의 아래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인기척을 느끼고 아래로 내려온 이아린을 보며 물었다.

         

       “무엇이 궁금해서 나를 찾아왔는고?”

       “뭐겠어.”

         

       진성은 아주 가벼운 태도로 이아린에게 물었다.

       마치 아이에게 ‘사탕 하나 더 줄까?’라고 묻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 토끼들 때문에.”

         

       우리 토끼들.

       이아린이 아나스타시아와 엘라를 부를 때 쓰는 표현이었다.

         

       “우리 아샤가 이상한 녀석이랑 얽힌다고 해서 큰 토끼가 고민이 많은 것 같아. 오라비가 걱정 좀 덜어줄 수 없어?”

       “걱정이라?”

       “어. 밥도 잘 못 먹어. 매운 떡볶이도 잘 못 먹고, 매운 곱창도 잘 못 먹고, 매운 족발도 잘 못 먹고, 매운 짬뽕도 잘 못 먹더라니까. 게다가 매운 닭발도, 매운 치즈 등갈비도 얼마 못 먹더라. 이거 큰일 난 거 아냐?”

         

       이아린은 여고생이 수다를 떨 듯이 진성에게 자신의 고민거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친밀감의 표현을 하려고 하면 질색하지를 않나, 쇼핑하러 가자고 해도 별로 내켜 하지도 않고…. 이상한 식물이나 붙잡고 위치크래프트 연습이나 하고 있어! 이상하지?”

         

       이아린의 말은 간단했다.

       엘라와 아나스타시아가 평소랑 다르니까 주술인지 뭔지로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성은 이아린이 빙빙 돌려서 요청한 ‘도움’을 거절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라.”

         

       그는 예언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윌리엄에게 흑주술을 날린 주술사의 얼굴이 궁금하니 끼어들기는 할 것이되, 예언을 바꾼다거나 예언을 이용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윌리엄을 위기에서 구해줄 생각 역시 전혀 없었고 말이다.

         

       물론 아나스타시아가 위험하지 않도록 도울 생각은 있었지만 그것은 이아린이 원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이리라.

         

       이아린은 엘라와 아나스타시아가 이야기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미친 망나니와 아예 얽히지 않는 것을 원하고 있었으니까.

         

       진성의 역할은 보험과 관전자에서 그친다.

         

       예언은 실행될 것이며, 아나스타시아는 꿈의 세계에 개입하게 되리라.

         

       마녀들이 ‘저 미친 망나니에게 얽히지 마라.’라고 말했음에도 아나스타시아가 어찌하여 꿈에 개입하게 되는지는 모른다. 윌리엄이 마녀들이 원하는 것을 대가로 바치며 도와달라고 말하는 걸 수도 있고, 아르투아 가문에서 직접 나서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겠지. 그것도 아니라면 윌리엄이 신들린 솜씨로 아나스타시아를 설득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아무 생각도 없는 아나스타시아가 평소처럼 꿈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윌리엄의 꿈에 떨어지게 되는 일 역시 있으리라.

         

       그래.

       모른다.

         

       예언이라는 것은 결과에 불과했기에.

         

       씨앗도 줄기도 없이 오직 열매만이 맺힌 것이기에.

         

       그렇기에 인과가 어찌하여 그렇게 흐르고 그러한 형태로 빚어지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반쪽짜리 예언자인 윌리엄은 그것을 상세하게 알 수 없으며, 반쪽짜리 예언자를 도울 수 있는 점술은 운기가 뒤틀어졌기에 알아낼 방법이 없다.

         

       그러니 진성은 이아린의 고민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아니, 해결하지 않는다.

         

       하지만 임시방편은 줄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평온을 얻게 해줄 수는 있느니라. 그것이 바로 주술사가 하는 일이 아니더냐?”

         

       주술사가 할 수 있는 것.

       사람들이 주술사에게 원하는 기복과 액막이의 주물.

         

       “그러니 망나니가 집에 접근하지 못하는 부적을 주겠느니라. 보금자리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훨씬 심경이 나아지고 편해지지 않겠느냐?”

         

       부적을 사용해서 말이다.

         

       진성은 품에서 필기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여러 색의 네임펜들을 꺼내 허공에 띄웠다.

       그리곤 이아린이 입고 있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 티셔츠를 보며 말했다.

         

       “말이 부적이지 주술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니 복채는 필요가 없다. 자, 티셔츠를 가져오거라.”

       “응?”

         

       하지만 이아린은 이러한 진성의 호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슬쩍 시선을 내려 자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쳐다보았다.

         

       티셔츠.

       하얀색 티셔츠.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색 민무늬 티셔츠.

       무공을 수련할 때 편하게 입기 위해서 품이 넉넉한, 반소매 티셔츠.

       땀을 잔뜩 흘려야 하니까 별다른 것 없이 위에 걸친 반소매 티셔츠.

         

       이걸 가져오라고?

       지금?

         

       이아린은 순간 자기 눈앞에 있는 이 비혈연메이트가 자신을 남자로 착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뭘 달라고?”

        “그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줄 터이니 이리 내밀라는 소리이니라.”

       “응? 아, 아아!”

         

       이아린은 진성의 말을 듣고 그제야 깨닫고는 배시시 웃으며 티셔츠의 아랫부분을 잡았다.

       그리고는 가수에게 사인이라도 받는 것처럼 평평하게 쭉 늘려 진성에게 내밀었다.

         

       진성은 잘했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주고는 허공에 띄운 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펜은 마치 어검술을 사용하는 무인이 움직이는 것처럼 종횡무진 날아서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아린이 꼭 붙잡은 채 내밀고 있는 티셔츠가 도화지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완성된 그림은….

         

       “이야. 그림 더럽게 못 그린다. 이렇게 못 그린 그림은 또 오랜만에 보는데?”

         

       그림이라기에는 그림에 대한 모독처럼 느껴지고, 낙서라고 보기에는 묘하게 정성이 들어가 있는 듯한 산타와 루돌프 그림이었다.

         

       이아린은 그렇게 말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오라비, 그림 어느 정도 그리지 않았나? 원시인 벽화 비스름한 것도 막 그리고, 자로 댄 것처럼 이상한 상징 같은 것도 거침없이 그리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거 일부러 그런 거야?”

       “그러하다.”

         

       진성은 그녀의 말에 긍정했다.

         

       “내가 그려준 이것을 거대한 크기의 조형물로 만들어 전시하도록 하거라. 저택 근처에 세워놓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기왕이면 집 밖에서 또렷하게 볼 수 있도록 정문이나 벽에다가 세워놓는 것도 괜찮겠지.”

         

       진성은 그렇게 말했다가 티셔츠에 그려진 못생긴 그림을 보고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니다. 이런 흉물을 밖에 세워두면 어떤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구나. 담장의 안쪽,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하지만 저택에 발을 디디면 반드시 볼 수 있는 위치에 세워놓는 것이 좋겠다.”

       “그래? 그렇게 들으니까 무슨 귀신 쫓는 부적 같네.”

       “비슷한 것이니라.”

       “근데 부적이면 이름이 있을 거 아냐. 이거 이름은 뭔데?”

         

       그림이 너무 못생겼던 탓일까?

       이아린은 꽤 흥미를 보였다.

         

       “더 크리스마스.”

         

       진성은 그런 이아린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듯 답해주었다.

       저택에 발을 들여놓는 즉시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만들 물건이자, 윌리엄이 발작하며 돌아가게 만들 조형물의 이름을 말이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