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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7

        

         “조심히 들어가시지요 회장님. 특이사항이 있으면 즉각 비서 로봇 쪽에 메시지를 남겨놓겠으니 부디 안심하고 맡겨 주시길…!”

         

         떠나가는 이쪽. 나와 제로들을 향해 아주 활기찬 작별 인사가 날아왔다.

         

         꼬맹이에서 아가씨, 아가씨에서 사장님으로. …그리고 불과 몇 십분만에 회장님까지.

         

         무슨 사장단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닐진대,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려서 불가사리 같은 바이러스를 -콕 집어서 말하기엔 너무 의도가 노골적인 것 같아서 조금 뭉뚱그려 표현했다- 박멸하라 요구했더니 ‘그럼 저는 바지 사장이군요!’라고 멋대로 납득하면서 이쪽의 호칭을 더더욱 올려 쳤다.

         

         세상에 이렇게 단시간 내로 호칭이 자주 뒤바뀐 경우가 있을까… 감탄하면서도 본인이 맡은 바를 다하겠다며 결연하게 직각 인사를 박는 헤멧에게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덤으로 ‘세상에 다시없을 정도로 해맑게 웃는 털북숭이 소인 아저씨’라는 조합에, 부르르 떨리는 몸을 보이기 전에 후딱 사무실을 빠져나왔고.

         

         “……생각보다 많이 어렵네. 뭔가를 판다는 건.”

         

         – 미스터 헤멧으로선 상업 보안 업계의 일원이자, 아샤님의 목표 달성을 위한 대리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상인 본연의 입장까지 모든 분야의 안정성을 고려하여 낸 절충안이라 봅니다. –

         

         약간 과장된 면이 있긴 했으나 바랬던 대로 일 자체는 원활하게 잘 풀렸건만.

         

         기껏 만들어낸 프로그램을 다시 뜯어고치고… 요청대로 버전을 다양화하고….

         

         수익금 정산 창구도 마련하랴~ 제로를 경유한 헤멧이 복제품을 만들어낼 수단도 강구하랴~ 호오오옥시나 파라다이스에서 기웃거리면 아론 드레이퓨스를 찾아라 등등, 이것저것 신경 써서 마무리하느라 답답했던 숨을 허공에 토해냈다.

         

         결국 불쌍하게도. 보람 없게도.

         전문가에게 생태계 교란종을 넘어 파괴종으로 지정되어버린 비운의 프로토타입은 봉인되었다.

         

         대신 헤멧의 요청에 따라 성벽을 마구 두들겨서 미약한 틈새도 좀 만들고, 감시 카메라에 의도적인 사각 지대도 추가하고, 담당한 병사에도 좀 느긋하게 근무하는 친구들을 추가한 그라운드 제로 1.0 버전이 릴리스 되었지.

         

         구시대적인 나 개인의 관점에서는 어차피 내 사이버웨어에서도 안 보이게 밀어버린 거, 신경 거슬리게 줄타기를 하는 광고들 좀 차단해주는 게 인기가 많아질 요소라 여겼는데.

         

         기업도 구태여 터치하지 않던 미약한 규제를 일개 프로그램이 나서서 단숨에 조여버리면 여기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잡음이 나올 거라나 뭐라나.

         

         헤멧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차피 완성된 소프트웨어의 성능은 물론 편의성도. 그리고 품질도 확실하기에 굳이 미움 받는 역할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시장을 좀먹어 들어갈 건 기정사실…이라 한다.

         

         정직하게 말해서 제대로 알아들은 부분이 두루뭉술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넘어간 문장보다 훠어어얼씬 적었지만 대강 요약하자면 이런 거겠지.

         

         

         ‘명명법과는 달리 역으로 다운그레이드한 그라운드 제로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무조건 팔린다!’

         ‘방탄복을 헐값에 넘긴다는데 안 사는 새끼가 병신이다! 그런 병신 걱정을 우리가 해주는 건 인생 낭비고!’

         ‘1.0으로 풀리면서 빠진(?) 기능들은 하나씩 다시 집어넣을 때마다 더럽게 비싼 사용료를 청구하는 고급화 모델로 포장해서 팔면 장땡이다!’

         

         

         으음….

         

         “…있던 걸 빼돌렸는데 그냥 사기 아니야?”

         

         아닌가? 그래도 들어있던 영양 성분을 빼 버리고 웰빙을 강조하거나, 집어넣던 감미료와 첨가물을 공정에서 제외하고 무첨가 딱지를 붙이는 것보단 낫나?

         

         – 현재 메트로폴리스 시스템은 일반 대중들이 앎으로서 굴러가는 것보다, 모르고 살기에 더 편하게 유지되는 게 크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세 명만 아는 사실이라면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이 진실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

         

         “그거야 그렇긴 하다만….”

         

         시대를 불문하고 개인이 너무 많은 걸 알아서 자신의 손에 있는 것과 일일이 비교하게 되면 큰일나는 법이다.

         

         가령 거대한 규모로 굴러가는 시장 조사 보고서라든가 상류층의 생활을 보고, 내가 지금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게. 선택을 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감을 느낀다면 좋은 영향을 남기지는 않으리라.

         

         몇몇 악질 기업들이 ‘쓰던 사람이 뒈지면 새로 뽑으면 되는데? 지원자는 널렸으니까~’ 같은 마인드로 사업을 하는 것도 공공연하게 모두가 알지만 제 입으로 진짜라 밝혀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하지만 프로토타입이 있다는 걸 모르고 쓰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거기에 포함되려나…? 잘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수익금 분배 얘기에 대해 긴가민가하던 헤멧이 즉각 전용 계좌와 더불어 세탁용 계좌까지 개설한 것도 다운그레이드 버전이 나온 직후였다.

         

         나로선 꽉 조였던 볼트를 약간 느슨하게 푼다는 느낌으로 즉석에서 수정해준 건데 역시 썩 일반적인 광경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디자이너가 요청에 따라 시안을 수정하는 것과 엔지니어가 상품 구조를 뜯어고치는 건 다른 얘기겠지. 다음부턴 그럴 줄 알고 미리 만들어 둔 게 있다는 식으로 핑계를 대야겠다.

         

         – 허면 바로 귀가하시겠습니까? 호출한 엔터크루즈 택시가 아까부터 길 건너편에서 대기 중입니다만. –

         

         “아, 이런 씨….”

         

         덜컹! 하고, 직원 전용(Staff Only) 스티커가 붙은 문을 여닫고 빠져나오자마자 까먹고 있던 크레딧 줄줄 새고 있다는 좋지 못한 소식을 제로가 자각시켜주었다.

         

         분명 들어올 때 넉넉잡아서 두 시간쯤 걸린다 보고 예약하지 않았었나?

         얼마나 초과된 거야 맙소사. 최근 벌이가 괜찮아져서 그런가 금전 감각이 해이해졌어, 이런 불필요한 낭비를 저지르다니.

         

         “하… 기왕 늦은 김에 쇼핑이나 좀 하고 가자. 헤멧이 다음 주 첫 정산까지 본인이랑 장사하기로 한 걸 절대 후회시키지 않겠다고 자신까지 했으니 택시비 정도는 메꾸고도 남겠지.”

         

         괜히 부담 가질라, 목표액은커녕 초도 판매 물량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거나 따로 제시한 것도 아니건만.

         완전히 맡긴다는 감각으로 전권 위임서까지 써주었더니 외려 더 눈빛부터 폭주하기 시작한 소인의 모습을 뇌리에 떠올렸다가… 금세 지워버렸다.

         

         알아서 어련히 잘 하겠지. 알아서.

         

         –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셨습니까? 소프트웨어라면 자택에서도 얼마든지 수집할 방도가 있으셨을 텐데요. 여차하면 저에게 맡겨 두셔도 괜찮습니다. –

         

         “음… 소프트웨어라기보단 교본? 훈련서?? 하여간 그런 거라 인터넷을 뒤적거리면 자극적인 것만 나올 것 같아서.”

         

         왠지 ‘훌륭히 해내 보이겠습니다!’ 같은 분위기로 헤멧처럼 불타오르려는 바보를 진정시키고, 출구 방향이 아니라 매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카페보다 침대 위를 더 선호하는 사람은 원래 한 번 외출했을 때 뭐든 겸사겸사 전부 해결하고 싶어서 없던 볼일도 쥐어짜내는 법이거늘 이걸 모르다니.

         

         아직 거기까지 이해하긴 너한테 일렀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서 작게 웃어 보였다.

         

         그나저나 내가 오는 길에 칩 샵에서는 캐릭터가 쓸 수 있는 스킬을 팔았었다고 추억하지 않았나?

         해당 부분은 현실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다. 엄연히 다른 형태로 도시의 일상과 비일상에 녹아 들어 상품으로서 존재하고 있었지.

       

         딸깍!

         

         당당하기 그지없는. ‘서바이벌’이란 안내 표지판이 유달리 눈에 띄는 진열장에 걸린 칩 케이스를 하나 뽑아 들었다.

         

         표지엔 한창 격발하는 도중인지 머즐 플래시(Muzzle Flash; 총구 섬광)가 그대로 찍힌 사진이.

         뒷면엔 ‘쿡 오프(Cook off; 화기 연사로 인해 약실이 과열되어 장전된 차탄의 장약이 노리쇠 격발 없이도 미친듯이 계속 발사됨) 현상 발생 시 실체험과 대처법에 관하여’ 라고 적혀 있다.

         

         “…흐음.”

         

         중화기라… 재질 발전으로 총기들이 많이 가벼워진 건 사실이지만 내가 저런 걸 직접 써볼 기회가 생기려나.

         

         마치 책장에 책을 원위치 시키듯 가볍게 돌려놓고, 이번엔 사막 사진이 인상적인 녀석의 첨부 설명을 확인했다.

         

         ‘메트로폴리스 간 이동 도중 조난 시에 기억해야 할 환경 위협들’.

         

         아마 이 세상에서의 서바이벌이란 한가롭게 나무를 쪼개서 불을 피우거나, 산 속에 낙오되는 게 아니라 정말 도시 안팎에서 좆 됐을 때 살아남는 거란 의미렸다.

         

         이럼 내가 제대로 배워보고자 찾던 전문 사격술이나 은엄폐 테크닉 같은 물건들도 이 근처에 있을지도?

         

         타박타박.

         사실 정확하게 목적한 상품 종류가 있다면 가게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검색해보는 게 제일이겠지만… 또 다른 괜찮은, 깊게 생각치 못한 소득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발을 놀렸다.

         

         아, 조금 전에 하다가 끊은 이야기를 계속 해볼까?

         내가 두서없이 엇나간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는데 실은 같은 주제로 떠들고 있었단 말이지.

         

         게임 캐릭터가 스킬을 얻는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특별히 고민해본 적이 있나?

         

         그야 일반적으론 없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보통과는 거리를 둔 채로 살고 있는 몸이다 보니, 충분히 시끌벅적한 동거인과 같이 살더라도 무심코 느껴지는 일상의 정적 속에서 이런 걸 멍하니 사색하게 되는 것이다.

         

         성장을 통해서, 학습을 거쳐서, 발상의 전환을 이용해서.

         기존에 하지 못하게 되던 걸 갑자기 깨우치는 승화의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단순히 새롭고 멋진 걸 쓴다는 재미 외에도, 무의식적으로 캐릭터가 이룬 발전에 공감하고 함께 기뻐하기에. 플레이어는 스킬을 얻는 걸 더욱 좋아하는 게 아닐까?

         

         본론으로 돌아와, 데이터 칩에는 자료화할 수 있는 건 뭐든지 담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가상 공간도, 시답잖은 누군가의 공상도, 일어나지 않은 미래도 데이터로 치환할 수 있는 이 시대엔 색다른 상품이 실존한다.

         

         쌓은 지식을, 소중한 기억을, 희귀한 경험을 칩의 형태로 팔아 치우는 것이다.

         

         글과 이미지의 한계에 갇힌 교본과는 다르다. 중추 신경계에 부착된 임플란트와 적절한 정제 과정만 더해진다면 뇌에다 직통으로 그걸 때려 박아서 공부하는 시간마저 아낄 수 있다.

         

         그야 받는 사람의 재능에 따라 흡수율이나 체득율이 달라서 보편화하긴 어렵겠지만 기본적으로 엘리트를 만드는 것조차 가능하다는 단적인 예고.

         

         대부분 사람들이 크레딧~ 크레딧~ 아주 노래를 부르는 건 과장이 아니라니까 정말?

         

         나야 몸에다 저런 걸 직통으로 꽂을 곳도 없고, 시각계 통신 임플란트와 뇌파 제어형 사이버웨어는 있더라도 의사한테 들은 말이 있으니 참고하는 정도로만 써야겠지만.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그걸 그대로 추출-복사해서 팔 경우엔 개인 정보나 신상도 세트로 넘어갈 터이나.

         매대를 가득 채운 상품들로 판단하건대, 그런 단점을 따위 취급할 만큼 보다 귀중하고 값어치 있는 보상. 즉, 돈을 바라고 상품화하는 사람들이 장난 아니게 많은 모양이다.

         

         잃어버린 삶의 편린을 칩으로 되찾는다!

         저기 흘러가는 광고의 문구도 마냥 허황된 과장은 아니리라.

         

         게다가 단순한 은유 같은 게 아니라 넓은 의미로 보면 일종의 반칙 능력을 사용한 내 프로그램으로부터도, 담기거나 드러난 줄도 모르던 나의 일부를 읽어낼 능력자가 세상에 있을지도?

         

         으음, 무섭다 무서워.

         

         “어.”

         

         오, 찾았다. ‘헤이롱 총기 다루기 + 개인적인 리뷰까지’? 타이틀이 조금 쌈마이 한데 이걸로 괜찮으려나.

         

         고민은 짧았고 행동은 빨랐다. 하지만 뻗어진 손이 미처 케이스를 쥐기도 전에, 내 선택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옆에서 울려 퍼졌다.

         

         “나라면 아마 다른 걸 고를 거야. 오래된 칩인 덴다가 그걸 찍어낸 친구가 워낙 짠돌이기도 해서, 피스메이커 권총은 다루긴 고사하고 손에 잡아본 적도 없을 테니까.”

         

         “!?”

         

         그래, 실상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할지라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별로 엮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거미의 첨병이. 거기서 이쪽을 바라본 채 생긋 웃어 보였다.

         

         

         “안녕? ‘아이보리’ 씨? 실제로 만나서 반가워.”

         

         ……저는 정말 그다지요. 쓰읍.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으어억 간신히 세이프! 펑크는 면했습니다.

    블루 피리어드라는 작품 일본 만화 대상 수상작에서 인상 깊게 본 한마디를 공유해보고 얼른 몸조리하러 가보겠습니다.

    내 머릿속에 있는 ‘나의 그림’은 최고로 멋있다.
    하지만 한 획, 다시 한 획, 내가 나의 그림을 망쳐간다.

    소설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인지라 가슴이 시큰거렸습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신이시여저에게힘을 님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오모시로이한 소설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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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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