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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8

       편지였다.

       

       필리우트 제국의 인장이 찍혀있는 편지였는데,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나는 편지를 열어보았다.

       

       “…….”

       

       방금 한 말 취소.

       

       전혀 예상치 못한 게 동봉되어 있었다.

       

       “이 사진은 뭐지?”

       “로즈마리가 물구나무서고 있는 사진.”

       

       그러니까 이게 왜 여기에 들어있냐고.

       

       아카샤는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내 침대에 몸을 눕혔다. 아무래도 내일 베개를 빨아야겠다. 괜히 나까지 덩달아 취하는 느낌이라서 코를 틀어막은 채로 편지를 읽었다.

       

       “흐음.”

       

       클라이스 하스펠트를 노린 길라흐가 내 연구실을 급습했다고 한다. 이에 맞서던 로즈마리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여 제국으로 도망쳤다가 억류되었고. 그 외에도 이런저런 이야기가 적혀있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상하네. 언니라면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누워있던 아카샤가 가자미눈을 뜬 상태로 물었다.

       

       “내가?”

       “응.”

       “이런 걸로 화를 낼 이유가 있나?”

       “동료가 뒤통수를 쳤잖아. 정말로 화 안 난 거 맞아?”

       

       글쎄다.

       

       […그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이걸 화난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에테르’는 단단히 뿔이 난 모양이었다.

       

       나는 아니었다.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곤 예상하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꼬며 말을 이었다.

       

       “호천이 하는 짓이야 뻔하지. 날 아니꼽게 보았으니 내가 떠나자마자 내 방을 수색했을 거고, 로즈마리는 어쩔 수 없이 도망쳤겠지.”

       

       거기까지 예상했었기에 로즈마리에게 제국으로 향하는 공간이동진을 만들어 놓으라고 얘기했던 것이다.

       

       아카샤는 의외라는 듯 탄성을 흘렸다.

       

       “오호. 연구밖에 모르는 언니가 거기까지 예측했어? 신기하네.”

       “이 정도 움직임은 바보라도 예상할 수 있어.”

       

       속에서 뜨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뭔지 알겠다.]

       

       편지에는 신경 쓸 것도, 주의할 것도 없었다. 버멜과 로즈마리가 손을 잡았다는 내용이 흥미롭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참고로 말하건대, 버멜은 계약 대상에서 예외다. 그 녀석은 내가 아닌 너와 친분을 가진 것이니까.]

       

       그래, 그렇겠지.

       

       프레이나 유피엘처럼 ‘나’와 ‘에테르’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삼진아웃 대상에 들어간다는 것도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상정하고 있었다.

       

       사실상 2타를 날렸으니 이제 한 명만 오면 끝난다. ‘에테르’도 이걸 아는 것인지 침음을 흘렸다.

       

       제아무리 인간관계에 무지한 ‘에테르’라도 완전 천치는 아니다.

       

       체크메이트를 내는 대상이 너무나 명료했다.

       

       […빌어먹을.]

       

       ‘에테르’는 나에게 다그쳤다. 가능하면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신체 주도권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간원 아닌 간원을 했다. 제 딴에도 위기감을 느꼈으니 이러는 것이다.

       

       마음대로 하던가.

       

       어차피 나는 이 이상으로 무언가를 꾸밀 계획이 없었다.

       

       “아카샤.”

       “…….”

       “아카샤?”

       

       이 새끼, 그 사이에 잠들었네.

       

       부서진 책상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하고, 오늘은 다음 수업을 위해 숙면을 취하기로 했다.

       

       나는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에테르는 아카샤를 조심스레 옆으로 밀어넣고는 그 자리에 누웠다. 술 냄새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피로의 적수는 되지 못했다.

       

       에테르는 천장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까무룩 잠들었다.

       

       

       **

       

       

       다음 날.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대비가 이제는 아예 물폭탄이 되어 일리야드를 강타했다.

       

       그나마 고지대에 위치했던 일리야드 아카데미도 조금씩 물에 잠겼다. 하수시설이 뛰어나서 어떻게든 되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위태로운 면이 있었다.

       

       시설 관리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사이, 학생들은 교실을 찾아 등교했다. 

       

       “흐아아….”

       

       어젯밤 유피엘은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커피를 1L는 마신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려서 밤새 눈을 감을 수 없었다.

       

       밤새 번개가 쳐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아직, 아직 더 배울 수 있어.”

       

       어젯밤 아스테야 선생님과 불편한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유피엘을 너그러이 봐줬다. 자신이 마수를 옹호한 것을 묻지 않았고, 개인 교습도 계속해 주겠다고 하셨다.

       

       유피엘은 아스테야 선생님이 고마웠다.

       

       감사에 보답하기 위해선 이런 장마철에도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 한다. 유피엘은 졸음을 털어내고자 자판기에서 에너지 드링크를 뽑아 마셨다. 그나마 몸에 활력이 도는 것 같았다.

       

       쏴아아아.

       

       빗줄기가 한층 굵어졌다. 유피엘은 교실에 도착하자마자 화분에 물을 주고 암막커튼을 쳤다. 불을 켜고 대학원생을 대신해서 지우개까지 빨아두었다.

       

       어느덧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아스테야 교수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출석 부를게요.”

       

       수업 시간이 되었다.

       

       유피엘은 자기 차례가 돌아왔을 때 당당히 대답했다. 아스테야 선생님과 잠깐의 아이컨택을 거쳤다.

       

       어떻게든 더 선생님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눈에 띄고 싶었다. 그래야만 받은 친절에 부응할 수 있을 테니까.

       

       탁.

       

       아스테야는 출석부를 내려놓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으며 교탁 사이를 오갔다.

       

       “오늘은 저번 시간에 이어서 대칭성과 보존법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에서 유피엘은 최대한 집중했다. 아는 건 고개를 끄덕이고, 모르는 건 곧바로 손을 들어 질문했다. 등록금이 아깝지 않도록 처절하게 강의를 들었다.

       

       강의 말미로 갈수록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해서 이걸 뇌터의 정리라고 부릅니다.”

       

       대칭성이 있으면 보존되는 양이 있다…. 유피엘은 그 정리를 그렇게 알아들었다.

       

       “시간 대칭성이 있으면 에너지가 보존되고, 병진이동 대칭성이 있으면 선운동량이 보존됩니다. 회전이동 대칭성이 있으면 각운동량이 보존되고요. 이런 식으로 뇌터 차지와 파라미터를 이용하여 보존되는 물리량을 찾을 수 있답니다.”

       

       많이 어려웠다.

       

       필기하는 손이 급급해졌다.

       

       “이 개념은 여러분이 중간고사 과제를 할 때 매우 중요합니다. 반드시 익혀 두어야 하는 정리예요.”

       

       솔직히 전부 이해하진 못했는데.

       

       암기를 해야 하나…?

       

       “이해 안 된다고 무작정 외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잘 모르겠으면 더 질문하고, 이번 시간에 자세히 알아가야 합니다.”

       

       역시 질문해야겠다.

       

       유피엘이 손을 들려던 그때였다.

       

       “저, 선생님.”

       

       다른 학생이 먼저 손을 들어 질문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암적색 머리카락은 비단처럼 고왔으며, 초췌해 보이기도 하는 금빛 눈동자에선 이지가 느껴졌다.

       

       금안족 엘프 소녀, 레니냐였다.

       

       “제가 다른 수업시간에 정령과 마소의 상관성을 배웠는데요, 혹시 그거랑 이 정리랑 상관이 있는 걸까요?”

       “상관이… 있죠.”

       

       정령과 마소의 상관성이라.

       

       유피엘은 다른 과목에서 배운 내용을 곰곰이 따져보았다.

       

       주변에 마소가 많을수록 근처에 정령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을 확률밀도함수로 표현하는 것이 ‘원소마도총론’의 2단원에서 배우는 내용이었다. 얼마 전 익힌 내용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과 지금 배운 내용이, 서로 연관된 내용이라고?

       

       유피엘의 머리로는 도저히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었다.

       

       자연스레 이목이 레니냐에게로 집중됐다.

       

       “제 생각엔 세상에 어떤 원소의 마소가 없으면 그에 해당하는 정령도 없는 것 같아서요.”

       “그렇겠죠. 빛의 정령이나 어둠의 정령은 우리가 찾아볼 수 없잖아요?”

       “그러면 혹시 금안족이 마법을 못 쓰는 이유도…….”

       

       레니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관련된 계통의 정령왕이 없어서, 그래서 마소 대칭성이 사라져서 그런 거라면…….”

       “…학생.”

       

       아스테야가 자그맣게 탄성을 흩뜨렸다.

       

       “정확히 짚었어요.”

       

       그러면서 칠판에 복잡한 수식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쓰이는 관련 이론이 있어요. 이해하지 못해도 좋아요. 이해하라는 거 아니에요.”

       “그런 이론이 정말로 있나요?”

       “네. 마소 초대칭 이론이니 뭐니 하는 게 있는데, 이론적으로는 아주 깔끔해요.”

       

       아스테야는 레니냐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아까 시간 이동에 대해 대칭이면 에너지가 보존된다고 했죠? 마찬가지예요. 정령 이동에 대해 연속 대칭이면 마소가 보존돼요.”

       

       금안족을 비호하는 정령이 근처에 있다면.

       

       금안족도 마력초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다.

       

       간단하면서도 복잡하고, 흐릿하면서도 명료한 이야기였다.

       

       “사실 이것 때문에 대칭성과 보존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거예요.”

       

       머리가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

       

       유피엘인지, 레니냐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학생인지.

       

       누구인지 모를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

       

       

       뜻밖의 천재가 반에 있었다.

       

       내 관심은 어느덧 레니냐라는 소녀에게 쏠리게 되었다.

       

       동족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도 금안족, 레니냐도 금안족이니까. 아무래도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뇌터의 정리와 정령이론마도의 접목. 이것 자체는 내가 생각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뇌터 정리를 알려주자마자 레니냐도 똑같은 의문을 가지다니!

       

       “이거….”

       

       탐난다.

       

       이런 학생, 정말로 탐나서 가지고 싶다.

       

       제자로 입양해서 둥가둥가 키우고 싶었다.

       

       “학생, 그….”

       “네, 선생님.”

       “오늘 나와 점심 같이 먹을래요? 내가 쏠게요.”

       

       정신을 차려보니 레니냐에게 그리 권하고 있었다. 레니냐는 인형처럼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레니냐는 귀를 위아래로 조금씩 까딱이고 있었다.

       

       좋아, 지도교수가 날 낚았을 때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통찰력 있는 질문을 한 학생에게 ‘학생 이름이 뭐예요?’부터 시작해서 ‘식사 같이 할까요?’까지 성공했다.

       

       이제 다단계 조지듯이 해서 자연스레 학부 인턴으로 모시면 된다.

       

       “학생.”

       “레니냐라고 불러주세요.”

       “…그래, 레니냐.”

       

       친근감을 위해 존대도 풀었다.

       

       어차피 외모만 보면 나이 차이 별로 안 난다. 동생처럼 대해주면 금방 편안함을 느끼겠지? 틀림없이 그럴 거다.

       

       나는 부드럽게 물어보았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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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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