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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8

       질서라는 것은 무엇인가.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 것, 법을 따르는 것, 돈을 벌면 세금을 내고 다른 이의 것을 함부로 탐하지 않는 것.

        

       하지만 이런 우리가 생각하는 ‘질서’는 그저 인간의 눈으로 본 것일 뿐이다.

        

       질서라는 것을 파고들고 또 파고들면, 결국 나오는 것은 물리법칙뿐이다. 사상도 감정도 아무 의미 없다. 그 모든 것도 결국에는 물리법칙에 따르는 것이니까.

        

       그래서 팬그리폰은 생각했다.

        

       만약 여신이 사랑하는 질서가, 인간들이 질서 있게 살아가는 것이라면, 훨씬 미시적인 것을 건드려서 그 모든 것이 ‘의미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팬그리폰의 ‘질서’를 만들어 여신의 질서가 틀렸다고 증명해버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혼돈이 아니겠냐고.

        

       그리고 그 망상에 가까운 계획을 실행할 힘이, 팬그리폰에게는 없었다.

        

       그렇기에 이 세계의 질서를 ‘이용’해서 여신의 힘을 역으로 활용하자고 생각한 것이다.

        

       “질서가 그렇게 훌륭한 것이라면, 그 ‘질서’ 안에서 여신의 힘을 강탈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방법이지. 그리고 그는 그 힘으로 세상을 다시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가 생각하던 그 아름답던 시절로.”

        

       그렇게 말하는 황제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이제 교황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래에서 솟아 나온 한 ‘기계장치’ 때문에 옆으로 형편없이 쓰러져, 그 화려한 장식에도 불구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사실 기계장치 자체는 어떤 장식도 없었다.

        

       다만, 그 장치의 부품에 쓰인 형형색색의 부품들 하나하나가 빛을 받아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크고 작은 톱니바퀴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마치 비싼 손목시계의 구동부를 거대하게 만들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보았던 그리스의 고대 유물 안티키테라 기계의 내부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섬세한 기계의 움직임은 그저 규칙적이라서, 그 기계가 철저하게 모독적인 이유로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 아아…….”

        

       하지만 그 기계를 본 소피아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황제의 말에 따르면 팬그리폰이 만들어낸 그 장치는 그저 여신과 대적하기 위한 것.

        

       그 어떤 다른 목적도, 대의도 없는 순수한 의미의 반달리즘.

        

       ……그리고 그 반달리즘의 결과는—

        

       “당신도, 이 세상을 혼돈으로 몰아넣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아니.”

        

       황제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씩 웃었다.

        

       “혼돈에 빠진 세상에서 제국은 있을 수 없다. 제국이라는 존재 또한 결국 인간의 섬세한 질서 위에 세워진 것이니. 다만, 그래. 나는 여신의 힘이 탐난다. 그것으로 세상을 내가 원하는 질서 아래 둘 수 있을 테니까.”

        

       그랬다.

        

       황제는 자기 아래에서 철저하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종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챙, 하고, 순간 칼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큭……!”

        

       신음을 뱉으며 뒤로 튕겨 나간 사람은 소피아였다.

        

       끼긱, 하고 매끈한 돌바닥에 신발이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피아는 순간 휘청이긴 했지만, 완전히 넘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황제 폐하께서 이야기하시는데 끼어들면 안 되지. 무례한 짓이잖아?”

        

       촤락, 펼쳐져 있던 채찍 같은 칼날이 다시 모여들었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치 뱀처럼 움직이던 그 검은 평범한 세검의 모양으로 돌아갔다.

        

       “벨라.”

        

       “우리 여동생들이 다 모였네.”

        

       소피아의 공격을 막아낸 벨라는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벨라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여기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건물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황제가 정말로 이 도시의 모든 사람을 희생시켰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하지만 아니었다.

        

       방 안으로 천천히 밀려들어 오는 이들의 눈엔 초점이 없었다. 전부 처음 보는 얼굴들이긴 했지만, 그 사람들이 원래 법국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혈색은 있으니 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째서.”

        

       “으음, 어째서일까.”

        

       소피아가 넋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벨라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사실 나도 제대로 이해는 못 하겠는데, 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생각해보면 이것도 ‘질서’ 아니겠어?”

        

       “……이미 성공했다는 뜻입니까?”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결국 마지막 조각이 필요한 모양이더구나.”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황제가 들고 있는 것은 ‘완성된’ 부품이었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 크기보다 조금 더 큰, 하나의 완성된 톱니바퀴.

        

       “미래의 내게 도움을 받았다.”

        

       내 표정을 보고, 황제는 진심으로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미래에서 보낸 부품을 쓸 수 있다면, 애초에 여기서 부품을 새로 찾아야 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

        

       미래라니—

        

       아.

        

       나는 나도 모르게 앨리스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내가 자신을 보았다는 사실에 앨리스는 조금 당황한 것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

        

       그래, 그 가면녀도 수상하긴 했지. 나도 이해한다. 그 옆에 있을 때는 나도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까. 가면녀가 지보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게 ‘미래에서’ 보낸 일부 완성품이라면—

        

       타임 패러독스는 엿 바꿔 먹었느냐?

        

       아무리 양자역학이니 평행세계니 하는 이론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 세계관이라고 해도 너무 의심 없이 조립한 거 아니야?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넘쳐흐르나?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황제가 쥐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완성된 부품이었다.

        

       ……지보가 사실은 두 개니 뭐니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이 부품이 완성되자, 여신은 결국 자기 말을 바꾸어야 했다. ‘질서 아래에서는 무엇을 하건 자유를 보장하겠다’라는 말을 깨뜨리고 이 지보를 깨뜨려야만 했지.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뛰어나고 마음이 넓은 왕이라고 해도 자기 왕권에 도전하는 이를 봐주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팬그리폰은 만족했다.”

        

       결국 자기 힘으로 여신의 ‘질서’를 깨버릴 수 있었으니까.

        

       “질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것이 혼돈이지. 그 시점에서 여신의 힘은 질서에 침입한 불순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황제는 몸을 돌려, 기계장치가 있는 곳으로 한 걸음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푸른 빛을 본 이는 없다. 신성력은 남아있기에 여신이 어딘가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뿐이다. 자신이 자신의 원칙을 깨버렸다는 수치심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이 기계가 한 번 작동한 것이 그만큼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인지, 우린 알 수 없다. 그 이야기는 전해 내려오지 않으니까. 나는 후자가 진실에 가까우리라 생각한다만.”

        

       황제는 기계장치 앞에 섰다.

        

       그 복잡한 기계장치 안에는, 딱 톱니바퀴 하나가 들어갈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황제는 그 장치 안에 자기가 들고 있던 톱니바퀴를 넣었다.

        

       “여신은 절대로 이 세상을 포기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네가 여기 있는 이유가 그것이겠지.”

        

       황제는 뒤로 돌아서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신이 이 세상에 관여할만한 힘이 아직 남아있다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존재를 내보냈겠지.”

        

       ……황제는 수많은 여인과의 사이에서 자기 핏줄을 이은 자식들을 낳았다.

        

       원작에서는, 황제와 여신 사이의 아이 따위는 없다. 이건 아직 추측일 뿐이지만, 그저 우연히 황가의 피를 짙게 이은 클레어가 태어났고, 황제는 그 클레어를 이용해서 장치를 이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장치 자체는 팬그리폰이 만든 것이니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다.

        

       그렇기에 나는 클레어 쪽을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황제는 지금 내가 ‘여신과 자신 사이에서 나온’ 존재로 착각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그 착각은 끝까지 유지되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이기건, 지건, 상관없이 황제는 실패할 테니까.

        

       “하지만 나는 마냥 당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그 여신의 힘이 완벽한 것은 아니니. 여신조차 완벽하게 파괴하지 못한 장치다.”

        

       황제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한번 말이나 해보자꾸나. 나와 손을 잡을 생각은 없느냐? 나는 팬그리폰과는 다르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고, 훌륭한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그렇겠지.

        

       자기 나름대로 생각대로.

        

       그러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시행하는 것이 황제의 취미생활이었으니까.

        

       “……거절한다면?”

        

       “그렇다면 나는 너의 힘을 강탈하겠지. 그거 아느냐? 이 기계 안에는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팬그리폰의 피를 이은 이만으로 충분하겠지만, 양쪽 모두의 피를 이은 존재가 있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실험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나까지 부품으로 쓰겠다는 소리인가.

        

       ……만약 클레어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았다면, 황제는 클레어를 이용해서 그렇게 하려고 했겠지.

        

       나는 말없이 총을 들었다.

        

       “그게 대답인가. 알았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힘의 대화 말고는 방법이 없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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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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