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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8

        

         

       “근데 이거 무슨 원리로 망나니를 내쫓을 수 있다는 거야? 뭔가 저주 같은 건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진성은 그림에 대해서 계속 호기심을 느끼는 이아린의 질문에 답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남의 트라우마를 후벼팔 수 있냐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물론 설득할 수는 있기는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부적은 효과만 있으면 그만인 것인데.

         

       ‘반쪽짜리 예언자는 지금 나와 마주해서는 아니 되느니.’

         

       진성이 남의 트라우마의 근원을 현실에 끌어와서 내쫓으려 하는 것은 딱히 은원관계 때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회귀 전에도 별로 크게 얽힌 적도 없고, 회귀 후에도 얽혔다고 해봐야 약간 무례한 정도에 그치지 않았던가.

         

       그 정도 무례함이라면 진성이 만나봤던 부자들에 비해선 딱히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런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수단을 사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말로 해서 들어 처먹을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예언의 때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 자신과 얽히지 않도록 설득이 가능한 인간도 아니었고, 설득하려고 하면 오히려 반발해서 더 튀어 올라 온갖 지랄을 해서라도 진성을 찾아올 인간이었다.

         

       윌리엄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을 이용해서 자중하게 시키는 것?

       저 망나니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단언컨대, 없었다.

       만약 그런 인물이 있다면 아르투아 가문이 저 망나니를 가만히 내버려 뒀겠는가?

       아무리 선을 넘지 않는다고 한들 마이너스밖에 없는 행동을 하게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다.

         

       아그네스?

       아그네스는 그냥 윌리엄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 윌리엄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윌리엄이 아그네스에게 품고 있는 감정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다 줄 수 있는 그런 절실한 사랑이 아니었다.

         

       ‘소유욕.’

         

       물론 다른 여자들에 비해서는 조금 진심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할 것이다.

       진성의 추측으로는 아그네스라는 여자는 윌리엄의 취향에 딱 들어맞는, 이상형에 가까운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진심이든 아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그동안 해왔던 사랑의 방식을 바꿀 리가 없는데.

         

       윌리엄은 언제나처럼 여자를 자신의 품에 안을 수 있었던 방법을 사용할 것이고, 그것이 진리라고 여기고 있으리라.

         

       그동안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렇게 해와도 성공했으니까.

         

       그러니 아그네스는 윌리엄을 말로 못 오게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났으면 났지, 그를 저지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면 무력을 사용하면 가능한가?

       그것도 애매했다.

         

       어차피 예언이라는 것이 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사지를 부러뜨리거나 척추를 망가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런다고 또 포기할 인간도 아니지.’

         

       진성이 소문으로 들었던 윌리엄의 행적을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해서도 막기 어려울 것 같았다. 용병들을 고용해 흠씬 두들겨 패는 것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닐 것이고, 아예 자신이 위험하니까 지켜달라는 핑계를 대고 아그네스의 곁에 들러붙을 것 같았다.

         

       골절?

       그것 역시 마찬가지.

       자중하기는커녕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고 허구한 날 아그네스를 찾아 방문할 인간이다.

         

       자신의 병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그네스의 마음에 동정심이 들게 만들고, 그 동정심을 토대로 거리를 좁혀서 꼬실 생각으로 말이다.

         

       ‘여자에 미쳐있으니 오히려 좋은 기회라 여길 수도 있으리라.’

         

       주술을 사용하면 편하리라.

       몇 개월 동안 제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 수도 있고, 여자는 찾아올 수 없을 정도로 열이 펄펄 끓게 만들 수도 있고, 기생충에 감염이 되어서 밖에 돌아다니기도 힘든 추악한 꼴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여성 호르몬을 과다 분비시켜서 한동안 여자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으니까.

       그뿐일까?

       희귀한 기생충을 얻는다면 생식기에 문제가 생기게도 할 수 있고, 정력을 엄청나게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요로결석이 생기게 해서 한동안 아랫도리를 제대로 놀리지 못하게 공포를 심어놓을 수도 있고, 요도나 고환에 염증을 일으켜서 끔찍한 일상을 보내게 할 수도 있다.

         

       대가?

       직접 흑주술로 하는 것이 아니니 그렇게 대가도 크지 않으리라.

       진성은 그냥 기생충이나 원생생물을 윌리엄의 몸에 집어넣기만 하면 그만이다.

       그러면 그 후에는 기생충이나 원생생물이 알아서 해주겠지.

         

       이러한 방법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라우드켐빙어(Raudkembingur)의 끝없는 악의’에 당해서 악령과 정신 계열 주술에 취약해진 상태일 것이니 환각과 환청을 들리게 만들어서 피폐하게 만들 수도 있고, 조현병과 비슷한 증상을 유도해서 정신병원에 가둬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더라도 정신병원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밖으로 나오기는 쉽지 않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술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윌리엄에게 저주를 건 주술사가 진성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진성의 존재를 눈치채고 보험을 만들어둘 수 있었으니까.

         

       ‘주술이 아니라 그냥 기생충을 감염시키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그 방법 역시 문제가 있다.

       일단 아르투아 가문의 철통같은 경호를 뚫어야 했으니까.

         

       그러니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게다가 이것은 진성에게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윌리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뼈가 부러지지도 않고, 몸 전체가 알록달록한 멍에 물들지도 않을 것이고, 몸 건강히 걸어 다닐 수도 있으며, 끔찍한 고통을 겪지도 않고, 펄펄 끓는 고열에 시달리다가 후유증이 생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정신적으로 잠깐 괴로우면 끝이다.

         

       정말 별것 아니지 않는가.

         

       ‘모두가 행복한 방법이로다.’

         

       윌리엄은 다치지 않아서 좋다.

       마녀들은 망나니를 만나지 않아서 좋다.

       이세린과 이아린은 자신과 친한 마녀들이 평화로워지니 좋다.

       그리고 진성은 미지의 주술사에게 경계를 사지 않으니 좋다.

         

       ‘저번에 점괘를 보았을 때는 그냥 넘어갔겠지만, 계속해서 엮이게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본래 한 번은 우연으로 치부할 수 있으나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필연이 되는 법이다.

         

       윌리엄에게 흑주술을 날린 주술사는 진성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했으리라.

       점괘를 통해 운기에 접촉했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크게 마음에 두지는 않았으리라.

         

       점이야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어느 주술사에게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점술을 주력으로 삼는 점술사에 비해서는 점괘의 정확도나 그 경지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주술사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점술 한둘은 할 줄 안다.

         

       그러니 진성이 점을 봐주면서 운기를 툭툭 건드렸던 것은 그저 윌리엄이 변덕을 부린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 아니면 정보력이 어느 정도 있다면, 그냥 윌리엄이 꼬시는 여자와 관련 있는 주술사에게서 점술을 본 정도로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진성이 윌리엄과 계속 얽히게 된다면?

         

       윌리엄에게 저주를 건 주술사는 진성의 존재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리라.

       저것은 무엇인데 입천장에 박힌 가시처럼 자신을 신경 쓰이게 하냐고.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그 주술사는 본래는 하지 않았을 방비를 하게 될 것이다.

       같은 주술사를 막기 위한 방비를 말이다.

         

       그리고 그 주술사가 방비하면, 그 주술사의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어진다.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았을 때보다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은 분명했으며, 운이 없다면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게 되리라.

         

       진성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았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도 대가를 지불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은 바가지를 잔뜩 뒤집어쓴다고?

         

       그런 미련한 짓을 왜 해야 한단 말인가.

         

       진성에게 윌리엄이라는 존재는 별 쓸모가 없는 존재였다.

       인간으로의 가치보다는 제물로의 가치가 월등히 높은, 죽는 게 더 나은 인간.

         

       그러니 그가 윌리엄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단지 윌리엄이라는 남자는 중계기의 역할만 제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진성과 미지의 주술사가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중계기 말이다.

         

       “조형물을 되도록 빨리 만드는 것이 좋겠다. 어설퍼도 되니 빠르게만 만들면 되느니라.”

         

         

         

         

        * * *

         

         

         

       진성은 예감했다.

       저 망나니가 곧 저택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본래 사람은 위협을 느끼거나 공포에 질리게 되면 이성을 찾게 된다.

         

       자손을 남기려는 본능이 증가해서 그런 것도 있고, 이성을 곁에 둬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을 희석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느끼고 있는 위협과 공포를 이성과 함께 견디며 흔들다리 효과를 이용해서 꼬시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진성은 윌리엄이 이러한 습성을 그대로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본능을 제대로 거스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따르는, 본능에 휘둘리는 것과 같은 삶을 사는 인간이었으니까.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짐승에 가까운 망나니였으니까.

         

       이러한 진성의 예감은 안타깝게도 딱 들어맞았다.

         

       윌리엄은 자신이 안 좋은 꿈을 꿨다면서 ‘구원자’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면서 전화로 난리를 피웠고, 오지 말라는 아그네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저택에 찾아왔다.

         

       게다가 이게 무슨 무례냐면서 항의하는 관리인을 한 대 치기까지 했으며, 몰려든 저택의 경비원들에게 도리어 호통까지 쳤다.

         

       “이 새끼들이, 내가 누구인지나 알아? 내가 가고 싶다면 가는 거지 어딜 막아! 연락?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나 몰라? 나 윌리엄이야! 아르투아 가문의 윌리엄! 위대한 예언자! 당장 내 앞에서 안 꺼져?! 야, 저 경비원 새끼들 2m 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잘 막아! 알았어?!”

         

       손님이라기보다는 깡패에 가까운 태도였다.

       그것도 빚쟁이에게 빚을 독촉하러 온 깡패 같은 태도 말이다.

         

       마치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고, 이 저택의 주인은 나에게 마땅한 대접을 해줘야 한다는 것 같았다.

         

       윌리엄은 그렇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저택에 발을 들였고….

         

       “이, 이, 이런 미친?”

         

       저택에 발을 디딘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히 목격하게 되었다.

         

       엉성한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로 이루어진 조형물.

       악몽으로 끊임없이 나왔던 트라우마.

         

       ‘더 크리스마스’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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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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