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48

       녹음기를 켜긴 했는데 뭔 말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녹음기가 켜진 화면을 한여름에게 내밀었다.

       

       “웬 녹음기야?”

       

       “그냥 제 목소리 녹음해서 들어보게요.”

       

       “아··· 목소리 확인하게?”

       

       “네에.”

       

       곧바로 녹음기를 끄고 방금 나눴던 대화를 확인해 보았다.

       내 목소리를 들은 나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네···?’

       

       레비나스처럼 깜찍한 느낌의 말투는 아니었다.

       아이가 어떻게든 또박또박 말하려 하지만, 그 속에 있는 미숙함은 숨기지 못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엄청 심한 정도는 아니네.’

       

       사람들이 내가 귀여운 척을 하는 거라 생각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범위였다.

       

       “제 목소리 듣기 이상한가요?”

       

       “아니? 언니는 엄청 좋아하는데? 맨날 듣고 싶을 정도야.”

       

       “그, 그래요···?”

       

       “응. 조곤조곤하면서도 똑 부러지게 말하잖아. 목소리도 예쁘고. 언니는 겨울이 목소리 들을 때마다 안정감을 느껴.”

       

       “음···”

       

       내가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랑 비슷한 느낌인 건가.

       한여름이 이렇게까지 말해주니, 목소리를 신경 썼던 내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목소리는 듣는 사람이 좋아해 주는 게 최고인 거 같아요.”

       

       “응. 겨울이가 되게 생각이 깊네.”

       

       한여름이 헤헤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아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시청했다.

       

       오늘의 화는 영웅 뿔토끼가 땅속에 파묻힌 전설의 검을 찾아내는 것으로 끝이 났다.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선조들이 숨겨놓은 검이었다.

       

       “전설의 무기!”

       

       귀를 쫑긋 세운 레비나스가 내게 달려왔다.

       레비나스가 왠지 모를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왜?”

       

       “레비나스도 전설의 무기 할 거다!”

       

       “응. 나가서 놀까?”

       

       “웅!”

       

       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원으로 이동했다.

       인적 드문 풀밭에서 레비나스가 땅을 파기 시작했다.

       

       “레비나스, 무기 찾아?”

       

       “아니! 레비나스가 무기를 숨길 거다!”

       

       “아하.”

       

       찾는쪽이 아니라 숨기는 쪽인가.

       나도 삽을 가져와 레비나스가 땅을 파는 걸 도와줬다.

       우리는 내 허리 정도 되는 구덩이를 만들고 나서야 땅 파기를 멈췄다.

       

       “얍!”

       

       레비나스가 구덩이에 당근을 한가득 집어넣었다.

       레비나스의 전설의 무기는 당근인 것 같았다.

       

       흙에다가 당근을 심으면 당근이 더 자라는 거 아닌가?

       깊이 파묻었기에 괜찮으려나?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구덩이 속의 당근을 내려다보았다.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뭐지?’

       

       내가 뭔가를 깜빡하고 있었는데.

       떠오를락 말락 하네.

       

       “끙···”

       

       팔짱을 끼며 고민하고 있으니, 레비나스가 구덩이를 메우기 시작했다.

       

       “먹으면 힘이 나는 전설의 당근이다! 나중에 힘없을 때 꺼내 먹는 거다!”

       

       힘이 없을 때 꺼내먹는 음식.

       레비나스의 말에 귀와 꼬리가 쭈뼛 솟아오르고 말았다.

       

       “맞다···!”

       

       “뭐가 맞냐?!”

       

       “나 전 집에다가 두고 온 게 있어.”

       

       “그러냐?! 중요한 거냐?!”

       

       “응. 정말 중요한 거야.”

       

       내가 멍청했지.

       왜 지금까지 그 소중한 것들을 깜빡하고 있었지?

       다급해진 마음에 주먹 쥔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조금 아이 같았으나, 급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이것밖에 없었다.

       

       “그러면 레비나스랑 어둠에 왕이랑 같이 갔다 오냐?!”

       

       “응. 무거운 거라서 도와줬으면 좋겠어.”

       

       무겁다는 단어에 풀밭에 엎드려 있던 새벽이가 일어났다.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는 의미였다.

       

       새벽이는 어린데도 뭔가 든든하단 말이지.

       나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내가 살던 산으로 이동했다.

       

       

       **

       

       

       내 천막은 원래 험준한 산속에 있었다.

       가는길이 어려웠으나, 야생이 주 무대인 수인족에게는 딱히 힘든 일도 아니었다.

       

       “우아아!”

       

       레비나스가 오르막길을 빠르게 뛰어 올라갔다.

       뿔토끼다운 움직임이었다.

       새벽이도 나름 지치지않고 열심히 올라갔다.

       

       “새벽아 조금만 더 힘내자. 이제 곧 도착이야.”

       

       “응.”

       

       그렇게 도착한 공터.

       본래 천막이 있어야 할 자리였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없었다.

       

       “왕아 여기 아무것도 없다아아아!”

       

       레비나스가 자리에서 뱅글뱅글돌며 말했다.

       돌면서 가져가야 할 물건을 찾으려는 것 같았다.

       

       “물건 땅속에 있거든.”

       

       “허억! 전설의 무기냐!”

       

       “어··· 글쎄···?”

       

       나는 삽을 들고 표시해둔 흙을 향해 다가섰다.

       

       푹-!

       삽으로 땅을 찍자, 옆으로 다가온 레비나스가 함께 땅을 파기 시작했다.

       

       푹-! 푹-!

       그리 깊지 않게 땅을 팠을까?

       안쪽에서 뚜껑 덮인 플라스틱 용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투명해서 내용물이 보이지 않았다.

       

       “왕아, 이게 뭐냐?!”

       

       “이거 내 비상식량.”

       

       “비상식량?!”

       

       “응. 정말 최후의 최후에만 먹는 음식이야.”

       

       “허억···!”

       

       레비나스가 눈을 빛내며 플라스틱 박스를 내려다보았다.

       새벽이도 빨리 열어보라며 호기심을 내보이고 있었다.

       

       탁-! 탁-!

       플라스틱 용기의 뚜껑을 열고, 안쪽 내용물을 꺼내보았다.

       용기의 밀봉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안쪽에 흙이 차 있었다.

       

       “이건···”

       

       새벽이가 용기 안쪽의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언제나 무표정이던 새벽이가 흔치 않게 당황해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제대로 버리려고 꺼낸 거지···?”

       

       “아니, 먹으려고 꺼낸 건데···?”

       

       “이걸···?”

       

       흙이 묻었으나 상관없었다.

       내가 꺼낸 건 장기 보존이 가능한 캔 통조림이었으니까.

       오늘은 음식값도 아낄 겸 집에 가서 통조림을 먹기로 했다.

       

       

       **

       

       

       ‘위험한 건 없네.’

       

       아이들을 위해 공원을 순찰하는 게 한여름의 일과 중 하나였다.

       오늘도 별다른 위협이 없음을 확인한 한여름이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이만 집으로 돌아갈까.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언제나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던 새벽이가 다급한 모습으로 달려왔다.

       

       “크, 큰일···”

       

       새벽이가 옷을 죽죽 잡아당긴다.

       한여름은 본능적으로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저기 겨울이가···”

       

       새벽이가 손끝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겨울이의 천막이 있는 방향이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지?

       새벽이를 안은 한여름이 천막을 향해 달렸다.

       

       “아···!”

       

       그렇게 도착한 천막 앞.

       아이들이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 두런두런 앉아있다.

       냄비를 위에 올려둔 게 무언가 조리를 하려는 것 같았다.

       

       “왕아, 이거 당근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겠다.”

       

       “응. 우리 당근도 넣자.”

       

       딱히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한여름은 안심하지 않았다.

       새벽이가 달려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얘들아, 뭐해?”

       

       “저희 밥 만들어 먹으려구요.”

       

       “밥?”

       

       겨울이 한여름에게 통조림을 보여 주였다.

       흙이 잔뜩 묻어 외부가 녹슨 참치 통조림이었다.

       

       ‘이게 뭐야.’

       

       참치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대략 7년 정도.

       헌데 겨울이 보여준 참치 통조림은 이미 유통기한이 지나 있었다.

       겨울이 태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겨울이보다 나이가 많은 통조림이었다.

       

       ‘내가 겨울이 만할 때 만들어진 건데···’

       

       겨울이 세계의 통조림인가 싶었으나, 브랜드 자체는 이 세계의 것이었다.

       누군가 버린 걸 주워왔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걸 대체 어디서 주운거지?

       아니, 그보다 이걸 먹으려 했다고?

       한여름이 빠르게 겨울의 통조림을 빼앗았다.

       

       “겨울아, 이건 먹으면 안 되는 거야.”

       

       “왜, 왜요···?”

       

       “유통기한이 한참이나 지났잖아. 먹으면 배가 아야 할 걸?”

       

       한여름이 배를 문지르며 울상을 지어 보였다.

       아야아야, 그런 소리도 내뱉었다.

       아파하는 모습으로 작게나마 겁을 줄 생각이었다.

       

       순하고 겁이 많은 겨울이니까.

       이 정도면 포기하겠지?

       한여름이 그리 생각했으나, 겨울의 표정은 당당했다.

       

       “통조림은 유통기한이 백 년 지나도 먹을 수 있어요.”

       

       “그, 그래?”

       

       “네. 멸균 상태라 아주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거든요. 부풀지만 않으면 먹어도 돼요.”

       

       주세요 주세요.

       겨울이 통조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발 뒤꿈치를 들고 손을 쭉 뻗었으나, 한여름이 높이 들어올린 통조림까진 손이 닿지 않았다.

       

       ‘어쩌지.’

       

       일단은 능력을 써볼까.

       한여름은 곧장 탐지능력으로 통조림의 상태를 살폈다.

       의외로 내부의 상태는 괜찮았다.

       

       ‘···먹어도 되긴 하네.’

       

       통조림 내부에 균은 없었다.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줘도 상관없으려나?

       고민하던 한여름은 겨울을 향해 통조림을 건네주었다.

       

       “자.”

       

       “아···!”

       

       겨울이 두 손으로 통조림을 건네받고는 망설임 없이 뚜껑을 땄다.

       

       카악-!

       통조림 특유의 소리와 함께 내용물이 나타난다.

       흙이 묻은 외부와 달리 내용물은 나름 깨끗했다.

       

       “왕아!”

       

       “응···!”

       

       겨울이 냄비 안에 참치를 집어넣었다.

       먹음직스러운 크기로 자른 당근 스틱도 몇 개 집어넣었다.

       

       저건 나름 먹을만하려나?

       한여름이 곁에서 아이들이 하는 요리를 구경했다.

       딱히 못 먹을만한 요리는 아니었다.

       

       “내가 먼저 먹어볼게.”

       

       겨울이 낡은 숟가락으로 참치와 당근 스틱을 퍼올렸다.

       식히기 위해 후후 입바람을 불기도 했다.

       옆에선 레비나스가 함께 후후 입바람을 불어주었다.

       

       “겨울아, 언니가 대신 맛봐볼까?”

       

       “괜찮아요.”

       

       냠.

       겨울이 숟가락을 입속에 밀어 넣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입을 우물거렸다.

       

       “우···”

       

       “우?”

       

       “우웨···”

       

       겨울의 턱을 타고 씹다 만 참치가 흘러내렸다.

       맛이 상당히 별로였다.

       

       겨울은 그제서야 잊고 있던 기억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참치캔의 유통기한은 ‘맛’의 보장기간이라는 것을.

       

       유통기한이 지난 참치 통조림의 맛은 끔찍했다.

       최근 너무 맛있는 음식들만 먹은 탓이었다.

       수인족의 섬세한 미각이 ‘맛없음’을 더 강하게 느끼기도 했고.

       

       “내 통조림···”

       

       아직 까지 않은 통조림이 한가득 인데, 이걸 다 버려야 하는 건가?

       배고픔을 참아가며 아껴온 통조림인데!

       

       차라리 지금보다 미각이 둔했을 인간 시절에 다 먹어 버릴걸.

       너무 아까워서 전신에 힘이 빠져나갔다.

       

       울적해진 겨울이 자리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 추천 또한 감사합니다! 언제나 힘이 되네요!

    실제로 멸균된 몇 통조림의 유통기한은 반영구적이라 하네요…!
    전부는 아니고 몇 개만요!
    그리고 찌그러지거나 부풀거나 녹슨 통조림은 절대 먹으면 안 된다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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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I Was Kidnapped By The Strongest Guild

최강 길드에 납치당했다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When I opened my eyes, I was in a den of mon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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