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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8

        

         “거너(Gunner)로서의 기술을 알고 싶다면 맥클루니의 ‘하이랜드 갱스 라이프’를 추천해. 이 양반이 남의 프라이버시를 개무시하는 타입이라 칩 판매가 자주 중단당하긴 해도 총 다루는 것 자체는 고전적인 논리파라 응용할 부분이 많지~”

         

         “…….”

         

         입을 꾹 다물고 노려봄으로 내가 친근하게 대꾸할 마음이 없음은 명확히 드러낸 것 같건만.

         

         제로의 허용 마지노선과 주변의 눈초리를 경계해 적당히 거리를 두었음에도.

         

         정작 내 냉담한 반응을 신경 쓰고 대응하기는커녕 정말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신나게 떠드느라 바쁜 새끼 거미씨를 찌릿찌릿하게.

         더럽게 엮이기 싫고 귀찮아 죽겠다는 기색을 한껏 담아 시선을 박아주었다.

         

         흑인(African)처럼 새까만 피부는 아니고 태닝한듯 밝은 구릿빛, 남미계(Hispanic; 라틴 아메리카)의 건강한 피부가 먼저 망막에 새겨진다.

         

         조끼 비슷한 겉옷에 억눌렸음에도 확실하게 존재하는 가슴 볼륨과는 달리 시원할 정도로 짧게 쳐진 언밸런스 쇼트커트 헤어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정갈하게 관리된 손톱까지.

         

         칼 쥐는데 방해만 될 뿐이라며 매일 아침 말끔하게 다듬던 헬레나 만큼 짧은 건 아니었으나, 자신을 예쁘게 꾸며서 어필하기보단 일선에서 일하는데 방해받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쳐냈다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으리라.

         

         …아, 그래. 다소 뜬금없게 들릴 수 있겠지만 예전 게임 커뮤니티에선 독보적인 5대 메가코프를 동물에 비유해서 부르곤 했다.

         각자의 개성에 따라 영물 같은 거에 대입하면 썩 어울리기도 했고, 명확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플레이 방향성을 정할 때도 편했으니까.

         

         가령 에나마는 뱀, 무한히 탈피하며 끊임없이 환경에 적응하는. 여차했을 때 내밀 타협점이 별로 없는 하얀 독사라던가.

         

         파라다이스는 코끼리, 비록 늦게 태어났지만 타고난 몸집과 상아-돈-이라는 훌륭한 수단을 무기삼아 경쟁자들을 밀어붙이는 짐승. ……단, 초식성이 아닌 완전 잡식성이라던가 아무튼.

         

         지금 말하고 싶던 건 다른 녀석 중 하나이다. 네트워크의 거미, 엘리시움.

         드넓은 가상 세계의 망망대해를 제집 삼아 군데군데 거미줄을 쳐 놓고 누군가가 건드리길 기다리는 고약한 포식자.

         

         아무래도 본사가 다른 메트로폴리스에 있다 보니 작중 출연이 약간 한정되긴 했어도, 수도인 네오 헤이븐의 동향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대규모 지사를 두고 있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리고… 내가 분명 아까 서킷 리파이너리는 약간 급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손님 층이 넓고 다양해서 민간 동향 파악에도 좋고, 여기저기 커넥션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주인공이 흘러드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고.

         

         하여간 그러한 이유를 바탕으로 이쪽에 상주하는 엘리시움 현장 요원 중 한 명이 이 여성 분이 되시겠다.

         

         마르티나 크립토보아.

         진짜 단골들에게 동류 취급을 받는 걸로도 모자라 헤멧에게도 그럴싸한 프리랜서 엔지니어라는 위장 신분을 각인시킬 정도로 뺀질나게 드나든 가짜 손님.

         

         그나마 패션처럼 챙겨 쓴 뿔테 안경으로 인텔리한 인상을 챙기면서까지 처음 본 플레이어에게 신뢰를 사 놓고, 선택지 몇 번 잘못 고르면 ‘미안!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라며 시원하게 주인공을 물먹이는 인간이다.

         

         뭐, 처음 엮인 퀘스트가 그런 식으로 꼬여도 나중엔 또 벌충하듯 도와주기도 해서 마냥 미워할 이유는 없었지만. 뒤에 기업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시점에서 이미 내 귀찮음이 만땅이라.

         

         ……아니지? 물건을 팔아주니까 가짜 손님이 아니라 진짜고, 엘리시움 소속인 것도 맞으니까 실제로도 인텔리하고, 기업 냄새가 살살 풍기는 건 어쩌면 나도 조금은… 뒷배가 있다는 점에선 비슷할지도?

         

         “이래서 요즘은 매대를 뒤지거나, 할인하는 칩을 쌓아 둔 특가 코너에서 재밌는 물건을 찾아 뒤적거리는 재미가 없단 말이죠. 이렇게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어도 들려오는 소문이 너무 많아서 대강 내용물을 알아버리게 되니까~”

         

         딱히 바란 건 아니더라도 일단 공식적으로 등록된 이쪽의 용병 닉네임을 확신을 가지고 불렀으니, 나를 ‘나’라고 특정하고 접근해온 건 분명하다.

         

         혼잣말을 하는 척 중얼거리는 저런 지나가는 문장들도 사실 나한테 던지는 말이나 다름없을 터이고.

         

         간단하게 줄이면 ‘네 소문은 많이 주워들었으니까 발뺌하지 마라~’ 정도로 요약되지 않을까?

         아마 오고 가며 그녀를 자주 본 사람들이 언뜻 보기엔, 가게에 처음 온 뉴비 손님을 상대로 쓸데없는 참견을 걸며 노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근데 요 여자가 흔한 민간 협력자나 하청도 아니고. 엘리시움 정사원이라는 걸 아는 나로선 순수하게 친목 도모하기도 좀 그렇고, 또 완전히 무시하고 떠나기도 뭐한 노릇이라… 진짜 귀찮네.

         

         “음… 그런 식으로 배배 꼬아서 돌려 말해봐야 난 재미를 못 느끼거든? 하고 싶은 말이나 특별한 용건이 있으면 그냥 얼른 던지고 가주면 차라리 고맙겠는데.”

         

         “………흐으음?”

         

         한눈에 알아보고 다가왔다며 있는 대로 티 낸 주제에 갉작갉작.

         주변을 맴돌며 계속 쿡쿡 찌르기. 반응을 떠보려는 게 영 거슬려서,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강조하는 게 괘씸해서 반대로 탐색전 단계를 뻥! 걷어차버리자 저런 애매모호한 반응이다.

         

         솔직히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도 사양일뿐더러 한편으론 적나라한 평가가 궁금하기도 해서 그랬다.

         

         마르티나가 아무리 신임받는 언더 커버 에이전트라 해도 모든 정보를 꿰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니겠으나, 네트워크 피라미드 최상층 거주자인 그 엘리시움은 날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또 그간 겹겹이 둘러쳐 놓은 정보 변조와 제로의 존재를 꿰뚫어 보기는 한 건지, 만약 성공했다면 얼마나 깊게 알아냈는지 등등 말이다.

         

         사실 거창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엘리시움이 나섰을지언정 후자일 가능성을 낮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 때 기업끼리 뒤지게 싸우더라도. 궁극적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인류를 전자 세계의 이상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만이에요~’ 같은 나사 빠진 소리나 일삼는 녀석들이긴 하나.

         뇌내 상상력-이미지-를 코드로 뒤바꾸는 해괴한 인간이랑 자체 진화 중인 인공지능을 봤으면 가타부타 따지기 전에 깡그리 납치해서 해부부터 시도했지 어디를 태평하게 인사나 건네겠어?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녀의 가벼운 떠보기는 생각보다 우리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많았다.

         

         딴에야 충분히 안다고 믿고 다가왔겠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전혀 몰라서 고른 방식. 이게 바로 아이러니가 아닐까?

         

         “별로, 화기애애하게 잡담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네?”

         

         “그…… 크흠! 내가 버는 족족 나갈 구멍이 좀 많아서.”

         

         원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소시민이 지나가다 호구 조사에 붙들리면 다 시간 낭비라 하지 않겠냐…! 고 자신 있게 타박하려 했는데, 죽창 마려운 부르주아 년처럼 보일라 다급히 말을 바꿨다.

         

         생각해보니 경호 드로이드 두 체 이상에, 레지던스 호텔을 사서 거주하는 인간이 크레딧에 쪼들린다면 그건 소시민인 게 아니라 씀씀이가 큰 거지. 휴, 하마터면 ‘혁명’ 당할 뻔했잖아.

         

         “헤에….”

         

         감탄사? 혹은 추임새??

         어느 쪽이라 보는 게 맞는진 몰라도 묘한 콧소리가 섞인 톤으로 나지막하게 말꼬리를 잡아 늘린 마르티나가 주변 눈치를 쓱 살피더니… 잠시 똑바로. 아이 컨택을 시도해왔고.

         

         “크게 떠들 얘기는 아닌 것 같으니까… 어디.”

         

         [ 사이버웨어에 비정상적 접근 감지, 신호 분석 및 역추적을 개시합니다. ]

         

         그녀의 눈동자와 안경알에 일순간 어지러운 홀로그램 문자들이 지나갔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내 임플란트가 발광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패션 안경이 스캐닝 기능 달린 첩보 장비(Spy Gadget) 비스무리한 물건이었나 아무튼 그랬다. 안구 자체를 고가의 의안으로 끼고 있으면 의심받기 쉬워서 일부러 저런 고식적인 흉내를 낸다고 했던가.

         

         하지만 무례한 전파 공격은 별상관이 없었다.

         이런 돌발 상황이 생긴다면 가장 열 받아 할 제로가 심드렁한 이유에서 추론할 수 있듯이 이건 정말 어떤 위협도 안 되니까.

         

         행위에 불순한 의도가 없다는 것 보다는, 예전에 로잘린이 파고들었던 것처럼 손에 들고 있던 PDA를 간접적으로 노리는 것도 아니고 직접 내 사이버웨어나 임플란트를 목표로 삼는다?

         

         인터페이스 업데이트도 입맛대로 하는 마당에, 잘못 찔리면 치명상이 될 수 있을 게 뻔한 약점을 겁쟁이인 내가 무대책으로 드러내고 살 리가 없지 않은가?

         

         까드드득—!!

         

         현실에서 난 소리가 아닌 만큼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지만, 시야가 명멸하는 것과 동시에 방비가 제대로 작동하나 확인하려고 반쯤 가상 세계에 걸친 내 눈에는 산산조각나는 신호 파편들이 보였다.

         

         얼핏 그물망처럼 펼쳐 놨지만 도산지옥(刀山地獄; 불교의 시왕지옥 중에서 칼로 뒤덮인 산)에 더 가까운. …실은 그냥 가시만 곤두세우고 있으면 돌파 당할라 믹서기처럼 들어온 걸 갈아버리는 커스텀 방화벽은 잘 작동하는 모양이다.

         

         아, 실수. 일단 잘게 다진 다음 분류해서 재조립하는 착실한 공정도 있으니 어디까지나 믹서기보다는… 가공 공장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크, 읏…!?”

         “…….”

         

         메모리 누수를 유발하기 위해서였나? 방화벽을 관통하는 탄두로서 벼려진 파일리스(Fileless; 저장 파일을 남기지 않고 메모리 영역에서만 활동하는 방식) 악성 코드가 가장 먼저 분해.

         

         뒤이어 전화 통화를 유도하면서 이쪽을 살필 속셈이었는지 하이퍼링크에 숨어있던 트로이 목마(Trojan) 바이러스 또한 삭제.

         

         …내 활동과 개인 정보를 마킹하고자 음습하게 포함되어 있던 스파이웨어 기능도 철저하게 짓밟아서 없애 버렸다. 안 그래도 유사한 걸로 골머리 썩고 있는 사람한테 뭘 더 붙이려고.

         

         당한 입장에서는 정확히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다.

         

         갈려 나가는 고통이 당사자에게 링크하는 것도 아니니 그냥 체에 거른 고운 설탕을 물에 한 스푼 넣은 것처럼 사르르 녹아내렸다는 결과만 남았을 것 같긴 하다만.

         어딘가 질겁한듯 뺨 근처를 파르르 떠는 마르티나에게 바란 대로 프라이빗 보이스챗엔 어울려주겠지만 헛수작은 그만두라는 의미로 눈을 한 번 흘겨주고 음성 채널에 접속했다.

         

         그나저나, 눈 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동업자에게 이런 걸 인사 대신 날려? 나도 제로를 안 거치고 한 명만 딱 노리려면 손으로 접촉해야 확실한데.

         

         이러니까 겁도 없이 대낮에 비밀 작전(Black Operation)도 막 돌아가고, 좆 같은 현상이 발생했으면 해커부터 의심하는 소리가 나오지.

         

         “쯧…!”

         

         주변의 과한 이목을 끄는 건 나도 내키지 않았기에 냉큼 고개를 돌렸다.

         

         자, 오늘도 편견 만들기에 일조하신 우리 엘리시움 대리인 씨. 그래서 왜 기웃거리셨다고요?

         

         한 번 신나게 떠들어봐라. 들어만 주겠다. 그런 편한 마인드로 포문이 열리는 걸 기다렸더니.

         

         “역시, 당신 같은 유능한 아웃사이더는 우리 쪽이랑 잘 맞을 것 같은데. 어때? 하루하루 피 말리는 자영업을 계속하느니, 거대한 질서에 몸을 의탁하는 걸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건?”

         

         “……뭐라고?”

         

         헤드헌팅이라는 지긋지긋한 제안은 둘째 치고.

         다짜고짜 면전에다가 ‘이 아싸 놈아!’ 같은 폭언을 박아버리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데!? 그걸 적당한 오프닝 멘트랍시고 고른 거야?

         

         어? 그렇게까지 심하게 말한 적은 없다고? 적어도 내 귀엔 저렇게 들렸어! 갑자기 튀어나와서 왜 때리는 거냐고요 지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팩트(많이 아픔).

    어제 갑작스럽게 휴재하게 되었던 점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도 앞으로 4일에서 5일 정도의 연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걸 추가로 말씀드리게 되서 더 부끄럽습니다.

    좋지 못한 후기로 독자 분들의 즐거운 하루를 더 망치고 싶진 않으니 자세한 내용은 휴재 공지를 수정하여 써놓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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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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