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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8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을 바르셀로나에 초대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도 지브롤터다.

     지브롤터에 감히 발을 들이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자가 둘 있다면, 한 명은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고 다른 한 명은 발자크 렘부르 군터다.

     차라리 제국 황제에게 지브롤터 출입 자유 이용권을 줬으면 줬지, 굳이 발자크 렘부르 군터라는 인간을 이곳으로 부를 이유는 없다.

     즉, 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경비병들이 아직 바르셀 후작령인 줄 알고 있어서 그래.’

     만일 지브롤터 성이었다고 한다면 경비병들부터 발자크 남작을 쫓아냈을 것이다.

     

     아버지, 크림슨 후작이 그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영지민 모두가 알고 있으며, 그 얼굴 또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니까.

     혹시나 이전과 달리 너무나도 초췌해지고 죽어가는 몰골이라서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라고 하기에는 옷에 대놓고 렘부르 군터의 문장을 달고 바르셀로나에 기어들어왔다.

     도대체, 왜?

     ‘어제는 술만 마셨지.’

     그가 갑자기 들어온 술집에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지만, 그자는 조용히 술만 퍼마셨다.

     술이 그다지 강하지도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따라온 늙은 집사가 부축하며 허름한 여관으로 향할 정도로 그는 과음을 했다.

     그게 꼭 왕국 멸망 이후, 제국의 자본과 기술에 견디지 못하고 가문이 망하기 직전에 몰린 노스트럼의 몰락귀족을 보는 것 같아 나는 기시감이 들었다.

     ‘대부분 망했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던가.

     3년보다 더 일찍 망한 가문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가문의 일원이 혁명군으로 활동하는 바람에 그 배상금을 지불하느라 파산한 가문도 있었고, 어리숙하게 제국의 기업을 받아들였다가 계약서를 잘못 써서 파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일부는 내가 열어둔 경룡장이라거나 사설 도박, 제국의 유흥거리에 심취하여 돈을 탕진하는 경우도 있었다.

     애초에 제국의 탈러가 들어오고 탈러가 공용화폐가 되면서, 골드는 쓰레기가 되었다.

     ‘그제서야 다들 알게 되었지. 자신들이 금고에 귀중히 보관하고 있던 금화들이 대부분 위조화폐라는 걸.’

     그래도 금이니까.

     라고 생각해서 금으로서 팔려고 했더니 금이 아니란다.

     

     검증이 잘못되었을 것이라면서 보석감정사들을 죽이는 일도 있었고, 금화를 몰래 녹이려다가 적발한 장소에서 금보다 구리가 더 많이 나오는 걸 보고 자결한 이도 있었다.

     그렇게 망하고 난 귀족들이 대부분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자신은 이제 자신들이 세금을 내라고 독촉하던 영지민들보다 못한 존재가, 과거에 높은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자신을 인정했을까?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그나마 글쓰는 재주를 살려 제국인을 상대로 번역을 해주는 걸로 먹고사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생을 쉽게 살려고 했다.

     바로 지금의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처럼.

     “총독!! 내가 그대의 외할아버지요!!”

     쾅쾅쾅.

     총독부 집무실 문 밖에서 거친 노크 소리와 함께, 성대가 약한 노인 특유의 쇳소리가 문틈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

     집무실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내 눈치를 보고 있다.

     오전 정기회의 시간이라 제국 행정관 중 간부급을 모아 일곱 가지 안건에 대한 처리를 진행하려고 했는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회의는 자연히 중지되었다.

     “이보시오, 남작. 지금은….”

     “놔라! 내가 누군지 아느냐!”

     “알고 있지만, 지금은 회의 중이라고 하지 않았소!”

     “이 놈! 나는 남작이다! 어딜 함부로 만지려고 하는 것이냐!”

     “크으, 진짜…!”

     입구를 막고 있는 기사가 최대한 작게 호통을 내지르며 눈치를 주지만, 발자크 남작은 오히려 큰 소리를 치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카를로스 경이 진지한 얼굴로 허리에 찬 검을 만지작거렸다.

     “그 장부를 사용하면 비리 및 횡령으로 고발할 수 있습니다. 도련님이 정 그렇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그대가?”

     “렘버리 캠프에 다녀온 자로서, 비리 장부를 발견하기에는 충분한 환경이었기에.”

     카를로스 경에게는 비리 장부가 없다.

     그 장부는 모르가니아에 있으며, 나리아가 쥐고 흔들며 렘부르 군터 남작에게서 막대한 돈을 뜯어내고 있다.

     영지전에서 사망한 유가족들의 관리 및 사후 대처라거나, 그들을 위한 배상금 지급이라거나, 렘버리 역 재건축이라거나, 불타버린 제국열차에 대한 배상이라거나.

     억지 아니냐고?

     렘버리에 관한 모든 책임은 렘부르 군터 남작에게 있고, 그 사람은 당연히 발자크 남작이다.

     그 배상금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실제로 렘부르 군터의 모든 자산을 팔아치워도 전부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상의 형벌.

     죽을 때까지 배상금을 갚으며 죽으라는 나리아 지오 노스트럼 차기 여왕의 심판.

     그 심판으로부터, 발자크 남작은 구명줄을 잡겠다면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귀족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고, 내 외조부이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한다. 흠.”

     아마도 저 남자를 막지 못한 건 저 호통과 허세가 통했기에 여기까지 당도한 것일 터.

     “회의, 잠깐 중지하지. 카를로스 경. 문을 열어주시게.”

     “저희는….”

     “그대로 있어.”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제국 행정관들을 그대로 앉혀놓은 뒤, 나는 상석에서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자마자, 발자크 남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정면으로 보이는 나를 보며 눈에 생기가 들어왔으나, 그는 곧 내 좌우로 배석한 제복의 행정관들에 흠칫 놀랐다.

     “예고도 없이 찾아온 것이 무척이나 당황스럽군요.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

     “…….”

     “이 정도면 지금 제 뜻을 전하기에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발자크 남작은 눈치가 없는 이가 아니다.

     눈치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자존심을 내던지거나 고개를 얼마든지 숙여왔다.

     “그레이 지브롤터 총독 각하.”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부디, 이 할아비를 도와주십시오.”

     “헉…!”

     “…….”

     제국인들이 보는 앞에서도, 다른 귀족들이 보는 앞에서도, 그리고 친교를 제대로 나누지도 않은 외손자를 상대로도 저렇게 무릎을 꿇고 엎드릴 수 있는 게 저 인간이다.

     “도, 도련님.”

     카를로스 경이 당황하며 어쩔 줄 몰라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행정관들은 앞에 놓인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 좌우로 눈을 굴리기만 한다.

     “…….”

     오직 나만이 여유롭게 찻잔을 들며 차를 마신다.

     무릎을 꿇은 것으로도 모자라 넙죽 엎드려 고개까지 땅을 향하고 있어서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저 비어있는 정수리 아래에 있는 표정이 훤히 보였다.

     굴욕, 분노, 슬픔, 절망.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위기만 넘어갈 수 있다면.

     다시 재기하여 권력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자신의 몰락을 무시하고 비웃는 이들에게 나중에 복수를 할 수 있다면.

     ‘많이 봤지.’

     노스트럼의 수호자, 지브롤터.

     왕국을 몰락시킨 제국군의 선두에서 직접 왕국을 무너뜨렸으나, 많은 귀족들은 적어도 내 앞에 이렇게 찾아왔을 때는 다들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 남작께서는 국왕 전하께 충성하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왜 국왕 전하께 가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본인이 어리석었소이다. 노욕에 눈이 멀어, 어떤 길이 정말로 노스트럼을 위한 길인지 오판하였소이다.”

     과거에 대한 부정.

     “지금이라도 본인의 실수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오. 그러나 본인에게 남은 것은 늙은 몸뚱어리 하나뿐. 본인과 친하게 지내던 귀족들은 모두 외면하고 떠났소. 가솔마저도 하나둘 떠나가는 중이오.”

     “…….”

     면검부 사느라 금고 속 현금이 크게 비었을테니 도울 자금도 없었을 것이며, 도울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배상금부터 갚느라 가솔들에게는 월급을 제 때 주지 못하거나 그마저도 적게 주면서 ‘조금만 버텨라’라고 하고 있을테니, 가솔들도 떠나가는 게 아니라 도망쳤을 것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 눈이 멀어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딸의 얼굴을 제대로 한 번 보지 못했소.”

     어디서 새빨간 거짓말을.

     9년 전에 왕국으로 어머니를 불러냈던 사람이 누구인가?

     설령 그 때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때 접점이 있었던 건 사실.

     “부디 본인에게, 기회를….”

     “기회라고 하셨습니까?”

     “……!”

     발자크 남작이 고개를 치켜든다.

     “기회라. 흐음. 그렇군요.”

     최대한 표정을 감추려고 하지만, 나는 이렇게 찾아온 이들에게서 언제나 같은 표정을 보고는 했다.

     “현금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건 횡령이죠. 재물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총독부의 자산은 제 개인 자산이 아니며, 제 자산은 오직 이 찻잔 하나 뿐이거든요.”

     “그게 무슨…!”

     “실제로 그러합니다. 제 집은 저기 지브롤터에 있고, 저는 제 월급에서 총독부 관저 이용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고 있으니.”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걸 굳이 언급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돈이….”

     “저한테는 없습니다. 저는 아직 19살이고, 총독부 관리에 대한 의무는 있으나 금전에 관한 부분은 아직 부모님께 맡기고 있는 중이라.”

     “…….”

     “예. 어느 분들이 말씀하신대로, 저는 아직 어린 아이라서요.”

     문 앞에 선 카를로스 경이 순간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움 정도는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무, 무슨…!”

     “총독부에서 관리하는 구역 중 아직 개발권을 양도하지 않은 구역이 있습니다. 정확히는 금광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바르셀로나는 현재 거기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인력이 항상 모자라서, 이들도 어젯밤 밤을 지새우고 이곳에 왔거든요.”

     나는 행정관들을 두 손으로 가리켰다.

     “잠시, 긴급 안건을 하나 회의하도록 하지. C7구역의 금광,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인근 마을의 광부들이 임의적으로 캐고 있습니다. 감독관이 파견되어 있으나, 다른 구역처럼 외부에서 온 인력이 없어 마을 자체적으로 사금을 캐고 생산량을 총독부에 납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발자크 남작의 눈에 서서히 불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해당 구역에 대한 개발권을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에게 양도하겠다. 행정관은 즉시 계약서를 작성하도록.”

     “그, 계약에 대한 대금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표준으로 하지.”

     나는 솜누스 잔을 비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핏줄을 위한 특혜를 한 번 제공하도록 하겠네.”

     “총독…!”

     “행정관은 계약서를 들고 남작을 모시게. 발자크 남작. 죄송하지만,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요.”

     나는 회의용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를 가리켰다.

     “이만, 물러가주시겠습니까?”

     “……!”

     순간적인 표정 변화.

     자신을 위해서 ‘고작 회의’정도도 멈추지 못하냐, 라는 그런 눈빛.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렇게 빼앗긴 시간조차 아깝다.

     “…다음에, 또. 감사하오, 총독.”

     발자크 남작은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며 일어나,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물러났다.

     끼이익.

     문이 닫히고 난 뒤.

     “……하여튼.”

     나는 꼬아놓았던 다리를 풀고 다시 바르게 자세를 잡았다.

     “집에 가면 아버지에게 한 소리 듣겠군.”

     문 밖, 복도를 걸어가던 어느 한 노인의 발걸음이 순간적으로 멈췄으나, 곧 다시 앞으로 걸으며 내색하지 않는듯 걸어갔다.

     “저기, 도련님.”

     “왜 그러지, 카를로스 경?”

     “그 마을 있지 않습니까. C7구역 말입니다.”

     “응.”

     “…거기, ‘광부의 무덤’아닙니까?”

     “…….”

     금광인데도 불구하고, 경매장에 왔던 이들 중 누구도 개발권을 구매하지 않았다.

     “무덤은 무덤이지. 무너진 돌에 깔려 죽은 사람만 한 달에 한 명씩 꼬박 나오는 것이니까.”

     

     마을의 이름은 사르코파구스.

     ‘석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그 누구도 마을의 이름을 부정할 수 없는 곳.

     “목 마른 사람이 직접 우물을 파야 하는 법이고, 금이 필요한 사람이 직접 파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다 죽…크흠.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요?”

     “죽기라도 하면, 그건 운명인 거지.”

     나는 빈 찻잔을 들었다.

     “핏줄된 도리를 아무것도 없는 금광 하나 내준 특혜로 처리했으면 그걸로 된 거지.”

     “도련님….”

     “나는 발자크 렘부르 군터 남작을 도운 게 아니야.”

     도울 생각도 없었다.

     “문전박대했다가 저 인간이 눈깔 돌아서 지브롤터 성에 찾아가기 전에 내가 먼저 처리한 거지. 죽더라도 혼자 땅 파다가 죽어야지, 크림슨 후작에게 살해당하기라도 하면 그 뒤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거든.”

     “…….”

     “쓰레기는 원래 먼저 본 사람이 치우는 게 도리야. 오로솔 아카데미에 쓰레기통이 곳곳마다 있는 게 그 이유지.”

     나는 송장 하나를 치웠을 뿐이다.

     “죽더라도 자연사로 돌아가셔야지, 존속살해에 의한 패륜적 살인이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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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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