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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8

       

       

       

       하수도 철문이 열린다. 곧이어 물비린내가 훅 밀려왔다. 원형의 수로관은 바깥 세상의 빛을 허락하지 않아 어둡고 음산했다.

       

       내 머리 위로 한뼘 정도로 공간이 남는다. 적어도 진입부까지는 허리를 피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자네, 이거 들고 가!”

       

       노인이 내게 커다란 실타래를 건넨다.

       

       “이게 뭡니까?”

       

       “이걸 입구에 묶어두고 풀어가면서 움직여. 신입들은 항상 이걸 들고 가니까 꼭 챙겨! 지도가 있어도 분명 헤맬 게야. 하수도의 크기는 이 도시만큼 크니까 명심해.”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하면 하수도에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니까 조심하게. 우수관에 물이 차면 각 구역의 톱니가 돌아가 벨이 울리게 되니까 소리가 들리면 즉시 근처에 있는 비상 출구로 나가. 정 갈 곳이 없으면 무조건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명심하겠습니다.”

       

       “발광석은 가지고 있나?”

       

       “네.”

       

       “어둡다고 불을 피우면 하수도에 쌓인 가스가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꼭 주의하게.”

       

       나는 지도를 확인했다. 하수도는 도시 전역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다.

       

       지도에 잉크로 표시된 유령 출몰지는 b-14442 구역. 상업 지구 아래다. 

       

       발광석을 꺼내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출입문이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닫힌다. 

       

       끼이이익- 쿵!

       

       정수리에 차가운 이슬이 뚝뚝 떨어진다. 

       

       코를 찌르는 악취, 끈적하고 미끌미끌한 바닥, 그리고 빛을 보고 도망가는 이름모를 벌레들. 

       

       도시의 던전이라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거대한 뱀의 위장 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빛이 닿지 않는 저 굴 끝에서 무언가 나타날 것만 같다. 바르비시아의 부패한 늪지대와는 결이 다른 불쾌함이다.

       

       하수도를 통해서 상업지구까지 이동하려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리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심호흡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십여 분을 앞으로 나아가자 지하 취수장이 나왔다. 여덟 개의 통로에서 흘러온 물이 한곳에 모여 다른 통로로 흐른다.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았던 덕에 취수장은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대부분의 통로는 하수의 양이 소변 줄기만도 못했다.

       

       나는 실타래를 확인했다. 아직은 충분하다. 나는 지도를 확인하고 곰팡이가 까만 핀 한쪽 벽에 [b구역]이라고 적혀 있는 곳을 확인했다. 그 아래에는 사람 한 명은 거뜬히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통로가 있다.

       

       잠시 방심한 틈에 벌레가 내 발을 타고 올라오려 든다. 나는 손으로 벌레를 쳐냈다.

       

       “젠장.”

       

       머리 위엔 거미줄이 가득하고 발 밑에는 지네와 딱정벌레를 비롯한 온갖 종류의 벌레가 기어다닌다. 벌레는 견딜만 했는데 악취가 제일 고통스럽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그렇게 지도를 따라 한참을 나아가자 쇠창살로 막힌 구역이 나타났다. 

       

       [폐쇄 구역]

       

       [진입 절대 금지]

       

       [돌아가시오]

       

       엄중히 경고하는 팻말이 덕지덕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은 쇠사슬로 봉인하듯 꽁꽁 묶어놨다.

       

       그리고 통로 바닥을 따라 검은 실 십수 가닥이 난잡하게 이어져 있다. 먼저 탐험을 떠난 이들이 남긴 흔적들이었다.

       

       나는 미리 건네받은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풀었다. 그리고 쇠사슬들을 다 풀어헤치고 그 내부로 들어갔다. 창살에 손을 넣고 그 안에서 무엇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자물쇠를 다시 걸었다. 

       

       나는 발광석을 앞으로 내밀고 천천히 걸어나갔다. 깊게 들어가면 갈수록 길은 복잡해졌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이 끝도 없이 나와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앞선 사람이 남긴 실을 따라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거미줄로…갑옷…그…좋나?”

       

       그러던 중 사람의 목소리가 하수도에 희미하게 울렸다.

       

       나는 바로 프리실라를 뽑아들었다.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내가 나아가던 방면에서 들리는 소리다. 

       

       “그렇다니까…갑옷 중… 명품….”

       

       잘 들리지는 않지만, 하수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멀쩡한 남자의 목소리다. 

       

       다른 통로로 먼저 들어온 사람이 있는 건가?

       

       앞으로 나아가자 소리가 더 선명해진다.

       

       “그래, 마수의 엉덩이에서 거미줄을 하나하나 뽑아서 갑옷을 만드는데, 그게 족히 열 달은 걸린다는군.”

       

       소리를 따라 계속 나아가니 막다른 벽이 보인다. 

       

       나는 고개를 위로 젖혔다. 천장에서 빛이 내려온다. 우물처럼 좁고 긴 통로 끝에는 격자로 된 철창이 막고 있다. 지상과 연결된 곳인 모양이다. 하기야 빗물이 들어올 구멍이 있다는 건 지상과 연결된 통로가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 고작 몇 시간 있었을 뿐인데 바깥 공기가 이리 반가울 줄은. 

       

       소리는 저 위의 지상에서 흘러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구름 낀 하늘만 보일 뿐 사람이나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그걸 언제 다 엮는단 말인가?”

       

       “그러게 말이야. 조수로 들어온 놈들이 한 달도 못 버티고 도망친다나 뭐라나.”

       

       머리 위로 잿가루가 떨어진다. 연초를 피고 남은 재를 하수구에 털어낸 것이다.

       

       “젠장….”

       

       굴뚝처럼 좁고 긴 통로인지라 밧줄 없이 저 위로 올라가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비상시에도 써먹긴 글렀다.

       

       나는 천천히 뒤로 빠졌다. 그리고 다른 경로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벽에는 구획 표시가 되어 있다. 나는 지도를 들고 확인했다. 벽에는 b-14436 구역이라고 적혀 있었다.

       

       목적지인 B-14442 구역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지도를 접고 나아가려던 중 발에 끈적한 것이 밟혔다.

       

       발광석을 비춰보니 그것은 초록색의 점액질이었다. 오수와 섞여서 묽어진 상태로 발 밑에 고여 있었다. 

       

       “이건….”

       

       초록 점액질에서 캐러멜 향이 난다. 정확히는 오수의 악취와 섞인 캐러멜 향이었다. 이것저것 연구하는 게 많은 도시이니 하수도에 포션을 폐기하는 일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나는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그리고 몇걸음 더 나아가고서 나는 더 기이한 광경을 마주했다.

       

       “대체 왜 이렇게….”

       

       초록 점액질들이 벽과 바닥에 칠을 해댄 것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다. 

       

       주머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바로 세실에게 선물로 주려고 했던 슬라임 향수였다. 

       

       그 내용물과 색이 똑같다. 코르크를 따서 향수를 손목에 살짝 뿌렸다. 냄새가 똑같다. 

       

       이건 전부 슬라임 점액질들이었다.

       

       슬라임은 식수로 마셔도 될 정도로 맑은 물이 있는 곳에서만 산다니까… 살아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보다 대체 이렇게 많은 슬라임 점액질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누가 하수도에 슬라임을 버리는 미친 짓거리를 한 거지?

       

       나아갈수록 점액질은 줄기는 커녕 늘어만 간다. 실험을 끝내고 딱히 폐기할 곳이 없어서 전부 하수도에 폐기한 건가? 그게 아니면 슬라임이 마법에 반응하는 것을 이용해 전부 폭파시킬 작정인 건가?

       

       불길하다.

       

       하수도가 아닌 점액질의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다.

       

       두 갈래 길이 나오고 나는 발광석을 바닥에 비췄다. 점액질들 속에 검은색 실가닥들이 오른쪽 길로 나아가 있다. 

       

       나는 곧장 오른쪽 길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열 걸음도 못가서 비로소 끔찍한 광경을 마주했다.

       

       “망할.”

       

       작업복을 입은 창백한 사람의 형체가 슬라임 점액질에 묻혀 있었다.

       

       나는 곧장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얼굴에 발광석을 비추고 이를 악 물었다.

       

       신체는 다친 흔적이 없었는데, 얼굴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뭉게져 있었다. 슬라임 점액질에 살이 퉁퉁 불어 있었는데 부패는 진행되지 않았다. 점액이 부패를 막아준 것인지도 모른다.

       

       일전에 목격했던 하늘범선 선원의 시신과 똑같은 양상이다. 시신을 하수도에 처리한 건가? 아니면 이런 짓을 벌인 존재가 하수도에 서식하는 건가? 어느쪽이든 최악의 상황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던 중 발광석이 힘을 잃고 서서히 점멸하기 시작했다.

       

       “어, 안돼.”

       

       큰일이다. 예비로 들고 온 발광석은 없었다. 이대로 불이 꺼지면 얼굴이 뭉게진 시체와 어둠 속에 함께해야 한다.

       

       발광석을 흔들어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젠장!”

       

       내 혼잣말이 하수도를 타고 메아리친다. 그리고 어딘가에 부딪쳐서 다시 선명하게 다시 돌아왔다.

       

       “젠장!”

       

       “젠장!”

       

       “젠장!”

       

       몸이 굳었다. 메아리가 어딘가 이상했다.

       

       발광석이 힘을 완전히 잃는다. 나는 완전한 어둠 속에 잠기고 말았다.

       

       내가 착각한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크게 소리쳤다.

       

       “거기 누구 있나?”

       

       그리고 몇 초 뒤, 어둠 속에서 내 목소리와 똑같은 음성이 돌아왔다.

       

       “거기 누구 있나?”

       

       “거기 누구 있나?”

       

       “거기 누구 있나?”

       

       이건 메아리가 아니었다. 

       

       나는 곧바로 검을 뽑았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등에는 식은땀이 흐른다.

       

       프리실라는 푸른 빛을 내뿜으며 큰일을 예고하는 것처럼 전율하고 있었다.

       

       

       

       

       ***

       

       

       

       “신입!”

       

       제니아가 데미안의 방 문을 노크도 없이 열어 젖혔다. 그리고는 폴짝 뛰어 들어와서는 팔을 벌리고 보란 듯이 포즈를 잡았다.

       

       “이 옷 어때 이쁘… 없네?”

       

       데미안은 침구를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방을 비워둔 상태였다.

       

       제니아가 힘 빠진 듯이 한숨을 쉬었다. 

       

       “…기대했던 거랑 다르네.”

       

       부스스한 머리와 속옷차림으로 복도를 지나던 헤일리가 제니아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신입이 방에서 뭐하냐?”

       

       “가던 길 가세요.”

       

       “야시시한 옷 입고 뭐해. 어머, 그거 망사야? 뭐 그런 옷이 다 있어?”

       

       “야, 김 다 샜어. 신입이는 대체 뭐 한다고 이렇게 바쁘게 살아?”

       

       “…원래 그런 성격이잖아. 걔가 언제 속내 드러낸 적 있니.”

       

       제니아가 다시 한숨을 쉬고는 창가로 가서 창틀에 살짝 몸을 기댔다.

       

       “클라리디움 말야… 기대했던 거랑 너무 다르네.”

       

       “뭘 기대한 건데?”

       

       “신입이 데리고 재밌게 놀고… 신기한 물건도 구경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인생 이야기도 나누고 그럴 줄 알았는데. 뜻대로 되는 게 없단 말이야. 하늘은 우중충하고, 오자마자 이상한 일만 생기고. 신입이는 저혼자 심각해져서 어디로 쏘다니고. 이게 맞나 싶어.”

       

       “야, 그보다 빨리 나와, 바깥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고?”

       

       “뭐 어때. 밖에는 빈테라인지 뭔지 양철인형 밖에 안 보이는데.”

       

       헤일리도 제니아의 옆으로 다가와 창밖을 감상했다.

       

       바깥에는 수십 구의 빈테라가 어딘가로 분주히 이동하고 있었다. 

       

       “빈테라는 암컷일까 수컷일까.”

       

       “그냥 모르는 편이 좋겠는데.”

       

       헤일리 뇌리엔 순간 과거의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그러고 보니까 클라리디움에서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하지 않았어? 작년에 견학 다녀온 애들이 그랬었는데.”

       

       “그러게. 나도 기억나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없네. 음… 유행이 일찍 끝난건가.”

       

       “인간을 만드는 데엔 한 쌍의 남녀만 있으면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건지도 모르지.”

       

       그러던 중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헤일리 선배!”

       

       릴리트가 급하게 달려와서는 헤일리를 찾았다. 헤일리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왜?”

       

       “데미안이 돌아왔어요. 근데….”

       

       “돌아왔다고? 그래서 그게 왜?”

       

       “선배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릴리트가 복도쪽 창문을 활짝 열고 손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헤일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와서는 그녀가 지목한 곳을 바라보았다.

       

       저택의 바깥 담장에 데미안이 몸을 붙이고 서 있었다.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술에 취한 듯한 멍한 표정으로 창문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신입?”

       

       “헤일리 선배.”

       

       헤일리가 창가에서 소리쳤다.

       

       “어서 들어와. 거기서 뭐해?”

       

       “헤일리 선배.”

       

       헤일리는 순간 섬뜩함을 느끼고 한발 뒤로 물러났다. 데미안의 말투엔 감정도 영혼도 느껴지지 않았다.

       

       “…데미안?”

       

       “헤일리 선배.”

       

       제니아가 소리쳤다.

       

       “야! 신입! 왜 헤일리만 찾아!”

       

       데미안은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헤일리 선배.”

       

       “야, 신입이 상태가 좀 이상한데?”

       

       헤일리는 정문에서 데미안을 마중나오는 부원들을 발견하고는 곧장 소리쳤다.

       

       “전부 멈춰! 신입이한테 접근하지 마!” 

       

       

       

       ***

       

       

       

       

       “아니야.”

       

       세실은 잉크로 휘갈겨 쓰던 편지를 찢어서 던져버렸다.

       

       그러곤 바로 다음 양피지를 꺼내 다시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가득한 마도학 공식들을 적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글을 써내려가던 세실은 감정의 북받쳐 올라 하던 걸 멈추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그 제국에서 온 분홍머리 여자애를 떠올렸다.

       

       작고 하얀 얼굴, 발그레한 볼, 분홍빛 입술….

       

       데미안이 휴버트의 이름으로 그 소녀의 스티치 마커를 얻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리그베드 항구에서 만난 그 분홍머리 소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저어는… 휴버트님한테는 별로 관심 없어요. 그분도 그냥 로툴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러신 거예요]

       

       [그보다 혹시 달콤이를 아세요?]

       

       사탕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인상착의를 물으면서, 그 소녀는 그를 ‘달콤이’라고 불렀다.

       

       [혹시… 달콤이랑 하얀 머리 여자애랑은 어떤 관계인지 아시나요?]

       

       하얀 머리카락. 데미안의 침대에서 발견했던 그 머리카락의 주인공이 실재했었다. 사탕이의 모습으로 함께 있었으면서 데미안의 침소에도 뒹굴었으니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또다른 여자였다.

       

       분홍머리 소녀는 순진한 얼굴로 세실의 내장을 뒤집어 놓았다.

       

       세실은 고개를 흔들며 분홍머리 소녀의 말을 머리속에서 치워버렸다.

       

       그리고 다시 격하게 편지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펜을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가만히 천장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여자는 하나면 충분한데… 왜 남자는 하나로 만족을 못하는 걸까….”

       

       그녀는 다리를 위로 쭉 뻗고는 이를 감상하며 중얼거렸다.

       

       “최고의 여자 하나면 충분하잖아.”

       

       똑똑.

       

       누군가가 그녀의 기숙사 방문을 노크했다.

       

       “안 잠갔어.”

       

       그러자 문을 조용히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세실의 친한 친구 중 하나인 나이아스였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책상에 살짝 걸터 앉으며 말했다.

       

       “뭐하고 있었어?”

       

       “생각.”

       

       나이아스가 편지를 들고는 눈으로 대충 훑었다.

       

       “어머, 이게 그거야? 최후통첩?”

       

       세실은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몰라.”

       

       “데미안한테 진짜 화 난거야?”

       

       “네가 알아서 뭐하게.”

       

       “데미안이 질려서 이제 다시 사탕이한테 돌아가려나 싶어서.”

       

       “둘 다 싫어 이젠….”

       

       나이아스가 편지를 쭉 읽다가 말했다.

       

       “잠깐… 접근금지는 무슨 소리야? 정말 걔랑 거리 두려고?”

       

       “아니, 그런데 걔도 이 몸의 소중함을 알아야지. 이제는 그쪽에서 나한테 매달릴 차례야.”

       

       “네가 먼저 바람 피웠으니까 이건 정당하다는 문구는 뭐야? 잠깐, 바람을 피웠다고? 걔랑 정식으로 교제하는 중이었어?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아직 진도 나간 것도 없다며!”

       

       세실이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바람 맞아! 같이 껴안고 춤도 추고… 이래저래… 아무튼 교제한다고. 도장은 안 찍었어도 우리 사이엔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어. 분명해. 걔가 먼저 바람….”

       

       “입맞춘 적은 있어?”

       

       “아니! 근데 내가 들이대면 걔는 거절 안 할거야.”

       

       “사귀는 거라고 제대로 확인 받기는 한 거야?”

       

       “…아니.”

       

       나이아스가 편지를 내려놓고는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하, 교제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입술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바람이야? 그냥 넌 수많은 여자 동료 중 하나 아니야?”

       

       할 말이 없어진 세실은 나이아스에게 등을 보이며 누워버렸다.

       

       “……함부로 단정하지 마.”

       

       “하아, 그 똘똘한 세실이 왜 이렇게 고집불통이 되었을까. 얘, 구속할 명분을 만드려면 확실하게 도장을 찍어야지. 그러지도 않고 혼자 저 앞으로 앞서나가서 바람피웠다고 구박하면 남자는 식겁해서 도망간다?”

       

       세실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고 툴툴거렸다.

       

       “….”

       

       “어머, 이미 한 번 도망갔었지?”

       

       “바람 핀거 맞으니까 헛소리 하지 마.”

       

       “그렇게 자꾸 관계의 우위를 차지하려 드는 것도 병이야.”

       

       “시끄러워.”

       

       “너 정신차릴 때까지 계속 할건데?”

       

       세실은 주머니에서 보석을 꺼내 손가락으로 계속 만지작거렸다. 데미안이 클라리디움으로 떠나기 전, 그의 옷에 달아주었던 거와 똑같은 것이었다.

       

       “…어?”

       

       그녀의 눈이 점점 커졌다. 회색 빛깔의 보석이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계속 한다고.”

       

       세실이 벌떡 일어나고는 급하게 겉옷을 입었다.

       

       “나 가야할 곳이 있어.”

       

       “잔소리 듣기 싫어서 도망치려고?”

       

       “아니! 데미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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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ggone Academy

Doggone Academy

Damn Academy, 망할 놈의 아카데미
Score 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My childhood friend went to the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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