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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아무거나 얘기하렴.”

       

       사근사근하게 말해주었는데도 레니냐는 대답이 없었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교수님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한 선배라고 생각해.”

       

       이런 말을 하면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막상 교수가 되고 나니 이런 말밖엔 해줄 수가 없었다. 

       

       “말 안 하면 근처에서 가장 비싼 가게로 갈 거야.”

       

       결국 협박 아닌 협박까지 하고 나서야 레니냐가 입을 열었다.

       

       “…밥이요.”

       “응?”

       “초밥이 먹고 싶어요.”

       

       레니냐는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초밥이라.

       

       초밥은 비싼 음식이었다.

       

       특히 리바이어던이 앞바다를 접수하고 깽판을 치기 시작한 무렵부터는 어획량이 크게 줄어 돈 있는 집 자제들이나 먹을 법한 고급 요리가 된 지 오래였다.

       

       레니냐도 그걸 아는 모양인지, 머뭇거리며 얼굴을 펴질 못했다.

       

       “죄송해요. 너무 과하시면 다른 걸로 먹어도 괜찮은데….”

       “그래, 먹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허락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레니냐의 표정이 멍해졌다.

       

       “저, 괜찮으세요?”

       “아무렴 어때.”

       

       제아무리 흑심이 있다고는 하나, 같은 금안족에게 횟감 하나 못 먹일 만큼 궁색하지는 않다. 나는 ‘에테르’에게 의중을 물어보았다.

       

       [왜 유피엘 피어바인을 신경 쓰지 않는 거지?]

       

       그런 핀잔을 듣기는 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인망을 높이는 일이라고 변명했더니 입을 다물었다.

       

       유피엘에게 의도치 않게 두 번째 스트라이크를 내어준 이후로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수면시간인 6시간을 제외한 하루 18시간 중 절반, 그러니까 9시간 정도는 내 마음대로다.

       

       당연히 누구와 밥을 먹을지도 내가 알아서 정한다.

       

       “마침 유명한 집을 알지.”

       

       나는 레니냐를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옹달샘』

       

       정령계에 위치한 ‘정령의 샘’의 모습을 본뜬 인테리어로 유명한 교내 초밥 전문 식당이었다.

       

       “굉장하네요.”

       

       레니냐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감탄했다.

       

       “꼭 세계수 내부에 들어온 것 같아요.”

       “가본 적 있니?”

       “아뇨. 금안족은 출입할 수 없는걸요.”

       “그렇구나.”

       

       우리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메뉴판을 둘러보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다시 한번 인테리어를 구경했다. 벽지의 질감이나 조명의 밝기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말로 세계수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나도 여기 온 건 처음이다. 그리고 아마 레니냐도 처음일 것이다. 레니냐는 이곳저곳을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둘러보다가, 나온 밑반찬을 보고는 경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요리는 처음 봐요.”

       “아직 반찬밖에 안 나왔어.”

       “선생님은 여기서 식사해 본 적 있으세요?”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아시나요?”

       “내 지도교수님.”

       

       헤를라인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사님이 한 분 계시거든. 그 사람이 나를 틸레트 근처에 있는 횟집에 데리고 가 주신 적이 있었어.”

       

       간장에 레몬즙 뿌려 먹던 일.

       

       그 일이 벌써 1년 전이다. 세월 참 빠르구나 싶었다.

       

       “자, 먹으렴.”

       

       광어, 새우, 연어를 비롯한 초밥 세트가 코스요리처럼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새 접시가 나올 때마다 레니냐를 먼저 먹였다.

       

       생선구이가 나오면 가시를 발라주었고, 간장은 레몬즙에 뿌려 먹는 것이 좋다고 알려주었다. 보글보글 끓는 탕에서 조개를 꺼내 뜯어주었고, 혹여 먹다가 흘리는 일이 있으면 재빨리 냅킨을 가져다주었다.

       

       레니냐는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착실히 받아먹었다. 한 접시를 비울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빛났다.

       

       “맛있니?”

       “맛있어요.”

       

       레니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금안족 기준으로는 아주 귀한 감정표현이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좋아하고 있었다.

       

       동시에 귀를 활어처럼 파닥거리고 있었다. 엘프의 감정 표현인데, 저것 또한 기분이 좋으니까 움직이는 것 같았다.

       

       탁.

       

       “선생님.”

       

       접시를 비운 레니냐가 슬쩍 말을 꺼냈다.

       

       “저 부탁이 있어요.”

       “말해보렴.”

       “선생님 밑에서 학부 인턴을 할 수 있을까요?”

       

       마침 입에 캘리포니아 롤을 털어 넣고 있었던 나는 목이 막히고 말았다.

       

       황급히 탄산으로 목을 축이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진정시켰다.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안 되나요?”

       “아니. 안 될 건 없는데.”

       

       어느 타이밍에 얘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레니냐가 먼저 말을 꺼내다니. 횡재했다.

       

       “저도 장학금 말고 다른 방법으로 학비를 충당하고 싶어요.”

       

       레니냐는 빈민촌에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금안족 대다수가 그러했다. 카우렐리아에서 금안족은 소외 계층이었다. 이들을 위한 지원금을 국회에서 책정할 때마다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에 부닥쳐 무산되곤 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폐지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다. 카우렐리아는 여전히 혼란스러웠으며, 레니냐 같은 학생이 일리야드에 입학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았다.

       

       그런 불리함을 재능과 능력으로 해결하였으나, 돌아오는 건 은근한 멸시와 값비싼 등록금뿐이었다.

       

       “선생님, 부탁할게요.”

       

       레니냐가 물컵을 꽉 쥐며 말했다.

       

       “3만 엘랑이나 되는 금액을 매 학기 낼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여태까진 스콜라십을 받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3만 엘랑이면 한화 4천만 원에 육박하는 값이다. 물론 이것도 기숙사비를 제외한 값이다.

       

       생각해 보니 레니냐를 제외하면 다들 잘 사는 집 자식이었다. 유피엘이나 리케는 하이엘프였고, 그 외에 일반 엘프들도 가문 내력만 부족할 뿐이지 실속은 다부진 집 자식들이 와서 수학하고 있다.

       

       틸레트에서 온 애들은 또 어떻고? 로테는 살리에르 백작가의 딸이고, 프레이와 버멜은 로즈마리가 보낸 편지에서 하스펠트 공작의 뒷배를 받고 있다고 들었다.

       

       결국 레니냐 말고는 다들 등록금 걱정이 덜하다는 것인데.

       

       “학부 인턴으로 되겠니? 많이 줘 봐야 달에 4천 엘랑이야.”

       “그, 그렇게나 많이요?”

       

       레니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생님 연구실이 돈이 좀 많거든.”

       

       사실 이론을 하는 입장에서 득보단 실이 많다.

       

       그렇다고는 해도 마왕성에서 바리바리 싸 온 금화가 있으니 환전하면 몇 년은 풍족하게 살 돈을 마련할 수 있다. 여기서 티끌만 한 양을 레니냐에게 준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일단 마저 먹으렴.”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레니냐를 향해 웃어주었다.

       

       속에서 끄응, 하고 앓는 소리가 났다. ‘에테르’는 내 행동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다.

       

       [세계수에 접근하려면 유피엘 피어바인에게 신경을 써야 한다.]

       

       그거야 네 사정이고.

       

       [학생들을 강의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겠다고 네가 말했을 텐데.]

       

       사람이 어찌 단조로운 목적으로만 살아가는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였다면 레니냐를 돌아보지 않았겠지. 하지만 인간은 시간에 따라 변해간다. 2년 주기로 세포가 전부 갈아치워지는 것처럼, 생각도 경험이란 자극이 있을 때마다 목적과 함께 변해간다.

       

       그리고 나는 이 소녀를 보고 목적이 하나 더 추가됐다.

       

       만에 하나 내일 ‘내’가 이성을 잃고 이 세상을 멸망시키는 일이 벌어질지라도, 레니냐를 후학으로 삼고자 한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자세한 보수는 나중에 이야기하자. 일단은 먹어, 먹으렴.”

       “감사합니다.”

       

       레니냐는 방긋 웃으며 남은 스시를 먹어치웠다.

       

       

       **

       

       

       유피엘의 보습은 주 5회 진행한다. 그 이상으로 했다간 흑주를 연구·개발할 시간이 없어서였다.

       

       내 책상은 샷건으로 박살이 난 뒤였기에 개인 연구실에서 유피엘을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네 기숙사에서 가르쳐 줘도 되겠니?”

       “상관없어요.”

       

       원만한 합의를 한 뒤 유피엘의 기숙사에 발을 들여놓았다.

       

       “들어오세요.”

       

       침대도, 책상도 하나뿐이다.

       

       “너 혼자 사는 거니?”

       “네.”

       

       1인 기숙사라.

       

       게다가 평수도 넓다. 거진 8평은 되는 것 같다. 이래서야 기숙사에 들어온 건지 호텔 원룸에 들어온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내가 알기로 이 정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려면 달에 3천 엘랑은 내야 한다. 원화로 400만원에 준하는 금액이다.

       

       “2인실이나 4인실은 생각이 없었니?”

       “혼자 있는 게 편해서요.”

       

       과연. 주변을 둘러보니 왜 홀로 있는 걸 선호하는지 알겠다.

       

       스크롤을 모작한 것들이 주술사 벽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었다. 무슨 무당집에 온 것 같았다.

       

       “전부 네가 그린 거니?”

       “네.”

       

       유피엘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상당한 재능이구나.”

       “과찬이세요.”

       “개중에 플레어도 있고.”

       “앗, 그건…….”

       

       어느새 내 눈동자는 가장 큰 마전지에 가 있었다.

       

       어디서 공수해 온 건지 실제 트랜지스터를 빚어 집적한 회로. 뇌를 이루는 신경세포처럼 오밀조밀 깔린 도선과 기판이 실내 조명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살짝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그래도 엄청난 완성도였다.

       

       “이쪽 논리회로를 잘못 식각했구나.”

       

       나는 침음을 흘리면서 틀린 부분을 하나씩 짚어주었다.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물 흐르듯 이어진 행동이었다.

       

       “이쪽이 대칭성이 안 맞구나.”

       

       오늘 수업에서 대칭성과 보존법칙 이야기도 했겠다.

       

       내준 과제에 대해서 유피엘이 쉽게 할 수 있도록 보충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유피엘은 열심히 내 보습을 따라왔다.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질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플레어에 대해 이리도 잘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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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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