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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풀숲을 헤치던 루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예르나, 또는 다이튼과 같은 자신과 긴밀한 사이의 어른에게 사정을 잘 설명하면 오히려 호위를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자신이 이렇게 남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서클의 마력을 숨기며, 흔적을 지우며 숲길을 헤쳐나갈 필요도 없었을텐데.

     

    ‘하지만 고민해봤자 어쩔 수 없지…….’

     

    그럼에도, 루크가 그 선택지를 포기한 데에는 그만한 당위성이 있었다.

     

     

    본래 원래 마법사란 모두 개인적인 공간을 중요시한다.

     

    그것은 비밀스러운, 알려지고 싶지 않은 연구 때문일수도 있고, 타인의 손길이 닿지 않았으면 하는 값진 물건 때문일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고 싶지 않은 기억일 수도 있고…….

     

    헌데 루크는 예부터 그 아공간을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몰래 그려서 아공간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레니에의 그림 같은 걸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은 많으니까.

     

    특히나, 효수한 죄인들을 걸어 둔 것이라던가, 각종 몬스터나 마수들의 장기를 적출해 보존해둔 것들…….

    그 당시의 감성으로는 별로 특이할 것도 없지만, 지금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겠지.

     

    ‘아마, 예르나나 다이튼이 본다면 기겁을 할지도…….’

     

    뭐, 딱히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만지는 것, 또는 보는 것, 심지어는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신에 영향을 주는 아티팩트도 존재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심각하게 위험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바람을 따라 바스락거리는 잎사귀 소리, 그리고 어렴풋이 방향만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멀찍이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약간 씁쓸한 풀 내음.

    그런 숲을 마법사 복장을 입은 채 걸으며, 추적을 떨쳐내는 것은 어쩐지 옛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헌데 생각보다 순찰이 너무 잦은 것 같군…….’

    순찰이 강화된 걸까?

    그게 아니라면…….

     

    잠시 방향을 가늠하던 루크는 가까이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황급히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모자의 끝을 당겨 눌러썼다.

    “이 쪽으로 온 것 같지?”

    “흔적을 보면 맞는 것 같습니다.”

    “냄새는 맞아?”

    “네,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까지 이곳에 있었군요.”

     

    그들은 일반적인 순찰조가 아닌, 추적에 특화된 수인족 숲지기 페어였다.

    게다가 모르는 얼굴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리엔느 숲 소속인 듯 하고…….

     

    게다가, 대화의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벌써 들켜버린 것일까?

     

    ‘그럼 파이는…….?’

     

    혹여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파이가 날아와 자신에게 알려주기로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루크는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푸른 정령, 파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루크! 케이트, 들켰어!

     

    역시 그렇게 되었나?

    루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건 예상보다 너무 빠르지 않은가.

    “파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게냐?”

    -그게…….

     

    파이는 간단히 경위를 설명했다.

     

    ——–

     

    루크가 허수아비를 세워 둔 후, 몇 십분이 지난 시점.

    케이트가 루크의 명령대로 충실히 화단을 가꾸고 있을 때다.

     

    “야, 루크. 샌슨씨가 귀찮게 한다면서?”

     

    다이튼이 화단의 울타리에 팔을 올린 채 웃었다.

    그런 다이튼에게 한번 눈길을 준 케이트는, 곧 자신에게 새겨진 논리회로에 따라 적합한 반응을 출력한다.

     

    “음, 그래.”

     

    조금 심드렁한 루크의 대답에, 다이튼은 그동안 샌슨이 꽤나 귀찮게 했나 보구나 하고 생각하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네가 이해해줘, 저 아저씨도 다 너한테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알고 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하긴, 루크는 그런 걸로 남한테 막 뭐라고 하는 성격은 아니니까.

    그래도 꽤나 시달렸는지, 다이튼은 어쩐지 평소와는 다른 반응이 신경쓰였다.

     

    “목소리가 묘하게 힘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 혼자 산책하지 못해서 그러냐?”

    “글쎄.”

    “흐음.”

     

    다이튼은 그런 루크의 반응을 보다가 문득 제안하듯 말했다.

     

    “루크, 기분 별로면 이따가 네가 좋아하는 꼬치라도 만들어 줄까? 어때?”

    “사양하지.”

     

    맙소사, 루크가 꼬치를 다 거절하다니?

    꽤나 별일이구나 싶다.

     

    “왜? 화단 관리하는 중이라서 그래? 그거 언제 끝나는데?”

    “모르겠군.”

    “흐으음……. 그래?”

     

    다이튼은 거듭 단답으로만 떨어지는 루크의 대답에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게다가, 아까부터 계속 보고 있으니까, 뭔가 화단에 물을 주는 순서가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치, 기계처럼…….

     

    그 모습을 보며 다이튼은 한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지금은 나도 귀찮은 건가?’

     

    하긴, 원래 사람이 뭔가 하나에 불만이 생기면 세상 모든게 다 불만스럽고 그런다.

    루크도 아마 그런 거겠지.

     

    그럼 어떻게 기분을 풀어줘야 하나, 그렇게 좋아하던 꼬치마저 귀찮아 하는데.

     

    ‘아.’

     

    그러고보니 루크는 가끔 뒷목이나 어깨를 주물러주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지.

    루크의 할아버지 같은 반응을 보면 그게 딱히 고양이라서 그런 것 만은 아닌 것 같지만.

     

    디아나는 어깨를 조금만 주물러도 기겁을 하면서 아프다고 하던데, 루크는 그 조그만 녀석이 벌써부터 마사지를 좋아한다는 건 나름대로 귀여운 점이다.

     

    그렇게 생각한 다이튼은 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루크의 뒤로 다가가 한손으로 뒷목을 잡아 주무르며 말했다.

     

    “야,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꼬치 구워 먹으러 가…….”

     

    그 순간이었다.

     

    -펑!

     

    케이트의 뒷목에 써두었던 마법식이 다이튼의 갑작스러운 안마로 지워지면서, 루크가 걸어둔 허수아비 마법의 인챈트가 풀리고 만 것이다.

     

    “뭐, 뭣?!”

     

    덕분에 루크의 인형과 덩그러니 남게 된 다이튼은 크게 당황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난 뒤 한숨을 쉬었다.

     

    “뭐야……. 루크의 장난인가.”

     

    그 녀석, 마법을 자꾸 이런 데에 쓴 단 말이지.

    허수아비에 자기 옷을 대신 입혀 둔 건가?

     

    다이튼은 루크의 인형, ‘케이트’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하.”

     

    그러고보면 자신도 옛날에 원장선생 몰래 지팡이로 이런 장난을 쳤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추억이네.’

     

    차이점이라면, 자신은 이 정도로 정교한 마법은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일까?

    말까지 하는 걸 보고 진짜 깜빡 속았다.

    아주 조금 위화감은 느꼈지만 말이다.

     

    “가만 보면 녀석도 어린이는 어린이란 말이지.”

     

    그런데, 인형한테 자기 옷을 입혀둔거면, 자기는 무슨 옷을 입은 거지?

    설마, 이 인형이 입고 있던 마법사 옷을 입은 건가?

    그걸 생각하니 다이튼은 피식 웃어버렸다.

     

    ‘이녀석, 이제 혼자서 숲 산책을 못하니까 이런 장난이나 치고 말이야.’

     

    “야! 루크! 어딨냐! 깜짝 놀랐잖아! 이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며 고함을 치던 중, 다이튼은 발 밑에 떨어진 한 쪽지를 발견했다.

    아마도 인형의 품 속에 숨겨두었던 모양이다.

     

    편지를 읽어보니, 대충 자신은 산책을 갔고, 좀 기다리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뭔가 용의주도한데…….’

     

    혼자 산책을 하지 못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불만이었던 것 같다.

     

    ‘뭐, 사실 원래 루크는 혼자서 잘 다녔으니까……. 이제 몸도 다 나았으니 별 문제는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다이튼은 조금 안색이 나빠진 샌슨씨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

     

    “그렇게 된 거로군…….”

     

    파이에게서 사건의 전말을 전해들은 루크는 이마를 짚었다.

     

    혹시나 걱정하고 자신을 찾아올까봐 일부러 편지까지 써놨건만, 이번에도 그 샌슨이라는 남자가 문제다.

     

    그가 쓸데없이 리엔느 숲에서의 직급이 있고 그의 사정 또한 알려져있는 탓에 이렇게 수색이 동원되는 모양.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파이리스에게 의태를 가르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후에 의태를 알게 된 파이리스가 자신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장난을 치는 걸 걱정해야 했다.

    파이리스가 대체 자신의 모습으로 무슨 짓을 할 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루크는 그런 짓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루크가 조금 고민하는 듯 보이자, 파이가 걱정하며 물어왔다.

     

    -어떡해? 돌아갈거야?

    “됐다, 어차피 곧 목적지니까.”

     

    그래도, 시간은 이미 충분히 벌었다.

     

    혹 마법을 썼다가 발각될까 순수한 육체능력으로만 걸었으나 몬스터도 마주치지 않고 곧장 이동해온 것이기 때문에 이미 좌표엔 거의 다가온 상태였다.

     

    비록 이렇게 된 이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문’만 열 수 있으면 그만이다.

     

    “파이, 잠시 떨어진 곳에서 마력 모사를 좀 해주겠나? 그 쪽으로 사람들이 유인될 수 있도록.”

    -응, 알겠어.

    “그래, 고맙군.”

    -대신, 쿠키는 꼭이야!

    “그래, 그래. 알겠다. 마력도 듬뿍 넣어서.”

     

    루크의 말에 크게 만족했는지 파이는 위아래로 크게 통통거리며 끼룩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빠르게 사라지는 정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화만에 초스피드 발각;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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