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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더 크리스마스’를 본 윌리엄은 마치 길을 가다가 입에 피를 묻힌 공룡이라도 마주친 사람 같았다.

       메두사의 눈이라도 본 것인지 그대로 돌이 된 것처럼 굳어있었고, 눈은 당장이라도 눈알이 빠져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커다랗게 되었으며, 욕설을 내뱉어야 하는 입은 꾹 닫을 힘조차 잃어버린 듯 서서히 벌어질 뿐이었다.

         

       “어….”

         

       굳어버린 윌리엄의 입에서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목소리가 나왔다.

       그것도 언어라기에는 한참 모자란, 어찌 보면 공포와 놀라움이 담긴 자그마한 비명이었다.

         

       윌리엄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동공으로 조형물을 빤히 쳐다보았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거칠게 비볐다.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듯 눈이 빨갛게 변할 때까지 비비고 비벼도 조형물은 그 자리에 존재했다.

         

       “저게 왜 저기 있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윌리엄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위에 붉게 타오르는 감정을 끼얹었다.

         

       그 감정의 이름은 분노였다.

         

       공포를 희석하기에 가장 적합한 감정이자, 피식자를 한순간이나마 포식자에게 반항할 수 있게 해주는 위대한 감정이기도 했다.

         

       “이 새끼들아! 저거 때려 부숴!”

         

       윌리엄은 그 분노를 올바른 방향으로 표출했다.

       감히 자신의 악몽을 현실로 끌어온 조형물을 눈앞에 치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자신의 소환수를 시키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수족같이 사용하고 있는 존재, 경호원에게 그것을 시켰을 뿐이다.

         

       하지만 경호원들은 그러한 윌리엄의 히스테릭한 외침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위험해 보이는 적이나 거동 수상자도 아니고 조형물을 때려 부수는 일이다.

       진짜로 경호원이 윌리엄의 명령에 죽고 사는 심복이라거나, 윌리엄을 하늘처럼 여기며 모시는 신도도 아닌데 왜 그런 명령을 듣겠는가?

         

       경호원들은 직접 기물을 때려 부수고 사람을 패고 다니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문에서 그를 보호하라고 붙여준 자신에게까지 오물을 묻히려 하는 윌리엄을 곱지 않은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런 명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경호원들을 이끄는 리더가 윌리엄에게 쐐기를 박기까지 했다.

         

       “도련님. 우리는 도련님의 안전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들이 실제로 경호에만 집중한 채 윌리엄의 옆에 서 있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당장 의상점에서 윌리엄의 명에 따라서 원단을 커튼처럼 사용해 의상점을 밀실로 만든 적도 있고, 윌리엄에게 당한 피해자에게 돈을 쥐여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그것들은 경호의 연장에 있는 것이다.

         

       남의 집에 세워진 조형물을 때려 부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 너희한텐 기대도 안 했다! 가문의 개새끼들 같으니! 러셀!”

         

       윌리엄은 그러한 경호원들의 반응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허구한 날 유모라도 된 것처럼 잔소리만 뱉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경호원들이 자기 말을 따르리라고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대신에 그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기 말을 잘 따라주는 충실한 존재의 이름을 불렀다.

         

       이딴 경호원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소중한 존재, 소환수의 이름을 말이다.

         

       그러자 소환수는 윌리엄의 명에 따라 반응하며 몸을 부풀렸고, 몸통 박치기를 하려는 듯 몸을 살짝 낮추고 근육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힘이 충분히 모였다고 판단되자마자 뛰어가 그대로 들이박았다.

         

       콰앙!

         

       조형물은 소환수의 몸통 박치기에 손쉽게 부서져 버렸고, 윌리엄의 기분을 망쳤던 조형물은 그의 눈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하, 빌어먹을. 저딴 게 왜….”

         

       하지만 조형물이 사라졌음에도 윌리엄은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조형물의 실체는 사라졌으되 그 잔재는 계속해서 윌리엄의 머릿속에 남아있었으니까.

       그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던 트라우마는 이미 수면 위로 끌어올려진 상태였으니까.

         

       다만 윌리엄의 개차반 같은 성격이 그를 공황에 빠지게 하는 대신에 분노하게 했을 뿐이다.

         

       윌리엄은 바닥에 침을 퉤 뱉고는 소환수에게 손짓해서 자신의 옆에 오게 했다. 그리곤 말도 없이 저벅저벅 걸어 저택으로 향했다.

         

       그 발걸음 하나하나에 분노가 묻어나오고 있는 것이, 저택 주인이 보인다면 면전에 욕부터 박고 행패를 부릴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거침없는 행보는 곧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들이 미쳤나….”

         

       그의 눈에 또 다른 ‘더 크리스마스’가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더 크리스마스’들이 보였다.

         

       나무 사이에 있는 것이 하나.

       인공적으로 만든 호수에 하나.

       다리 아래에 하나.

       가로수 사이에 하나.

       …

       …

       …

         

       어림잡아도 10개 가까이 되어 보이는 ‘더 크리스마스’들이 저택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지만 길을 따라서 저택으로 향하다 보면 반드시 보이는, 아주 절묘한 위치에 말이다.

       게다가 그 크기도 다양해서 어떤 것은 사람 머리통만 한 크기에 지나지 않았고, 어떤 것은 몇 사람을 합친 것처럼 커다랬다. 게다가 그뿐만 아니라 현관문에 장식으로 달아놓은 종 아래에도 손바닥보다도 작은 더 크리스마스 조형물이 붙어있었다.

         

       윌리엄은 그 수많은 더 크리스마스의 존재에, 자신을 빤히 바라다보는 듯한 더 크리스마스들의 모습에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저도 모르게 호흡을 두 번씩 내뱉으며 가쁜 숨을 쉬었고, 손발이 저릿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손발에서 시작된 저릿함은 팔과 다리를 타고 올라가며 몸을 마비시켰고, 이윽고 가슴까지 도달해 바위라도 얹어놓은 것처럼 그의 숨통을 콱 막아버렸다.

         

       그리고 윌리엄의 숨은 점점 가빠지고 안색이 변했으며,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느낌과 함께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바닥에 풀썩 쓰러져버렸다.

         

       “도련님?”

       “진정해. 과호흡이다.”

         

       과호흡.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의 존재에 결국 윌리엄이 과호흡 증후군으로 쓰러져버린 것이다.

       경호원들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쓰러져버린 윌리엄을 업었다.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입고 다니던 재킷을 벗어 윌리엄의 얼굴을 덮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저택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과호흡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안정이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윌리엄의 무례한 저택 방문은 그것으로 끝이 나버렸다.

         

       ‘부적’의 훌륭한 효과를 입증하고서 말이다.

         

         

         

        * * *

         

         

         

       아이라는 존재는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집착하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고상한 말로 표현하자면 ‘철이 덜 든’ 윌리엄 역시 집착이 심했다.

       미수로 끝나버린 저택 방문을 다시 시도할 정도로 말이다.

         

       물론 멍청하게 그냥 들이박지는 않았다.

         

       엘라와 아그네스에게 당장 저 엿 같은 조형물을 치우라고 온갖 난리를 피우고, 경호원을 부려서 저택에 방문하게 해서 저 엿 같은 조형물을 치우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행패를 부릴지도 모른다면서 협박 같은 말을 전하게 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난 뒤, 윌리엄은 ‘이 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말했으니 당연히 치웠겠지?’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품고 다시 저택을 방문했다.

         

       하지만 윌리엄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면 이곳은 영국도, 유럽도 아닌 한국이라는 것.

       그리고 그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곳이 영국이나 유럽, 하다못해 미국이었다면 그의 말을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했으리라.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었다.

         

       아르투아 가문?

       돈 많고 권력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광양 그룹이 아르투아 가문의 힘이 미치는 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광양 그룹과 아르투아 가문은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같이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르투아 가문이 광양 그룹 관련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윌리엄의 같잖은 영향력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구멍가게도 아니었다. 게다가 아르투아 가문에게 딱히 아쉬운 것도 없고, 아르투아 가문에게 원하는 것도 딱히 없었다.

         

       게다가 아르투아 가문이 아니더라도 윌리엄에게 설설 기면서 아부할 이유는 없었다.

         

       애초에 저 조형물을 세운 이유가 집에 머무는 손님을 위해서였다.

         

       그것도 사업적 제휴를 할 수 있는 데다가, 광양 그룹이 유럽에 진출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손님 말이다.

         

       아르투아 가문에서 ‘예언자’라는 이유로 끼고도는 망나니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가치를 가지고 있는 손님이었다.

         

       그러니 왜 망나니 놈의 말을 순순히 들어주겠는가?

         

       오히려 늘려버렸다.

         

       열 개 남짓했던 조형물의 숫자는 세 배가 늘어났으며, 그것으로 멈추지 않고 착시현상을 이용해서 특정 지점에 다다르면 벽의 무늬가 조형물의 형상이 되도록 저택 벽면 한쪽에 그림을 그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창고 방의 창가 쪽에 조형물을 교묘하게 세워놔서 눈이 마주치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이, 이…!”

         

       윌리엄은 대놓고 자신에게 엿이나 먹으라는 태도에 분노했다.

       하지만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 어쩌란 말인가.

         

       저 부적 때문에 저택에는 접근도 못 하고, 할 수 있는 거라고 해봐야 아그네스나 엘라에게 생난리를 치는 것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런 난리도 그냥 아그네스와 엘라가 외출을 삼가고 번호를 바꿔버리면 그만이었다.

         

       혹시 열받아서 밖에서 덮치는 것?

         

       그것은 오딜리아가 ‘정중하게’ 아르투아 가문에 연락해서 항의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혹시 허튼짓하면 가문에 ‘끔찍한 일’이 연달아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벼운 경고와 함께 말이다.

         

       아르투아 가문은 그러한 오딜리아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다.

       이양훈이 경고했으면 웬 동양 놈이 헛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하고 넘어갔을 테지만, 오딜리아는 대마녀라고 불리는 강력한 능력자인데다가 수많은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인맥은 단순히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연관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딜리아의 인맥은 가문의 원로, 전 대통령이나 군부의 영웅과도 같은 이들과도 닿아 있었다. 단순히 힘으로 찍어누르는 것 정도가 아니라, 존중받고 존경받는 위치의 사람들을 이용해 그들을 압박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윌리엄에게는 한참 부족하기는 하지만 오딜리아도 한 성질 하는 사람이었다.

         

       박진성과 아그네스의 앞에서나 쩔쩔매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오딜리아는 성질머리가 고약한 진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오죽하면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마귀할멈’이라며 욕을 먹을까.

         

       거기에 더해 오딜리아가 ‘예언이고 나발이고 저 망나니 새끼가 뒤지도록 내버려 둘 테니 알아서 해라.’라는, 아르투아 가문에게는 아주 끔찍하기 짝이 없는 협박까지 더했다.

         

       윌리엄이 한국에 있는 이유가 뭔가.

       그를 위기에서 구원할 ‘구원자’가 아그네스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오딜리아가 그 ‘구원자’가 절대로 윌리엄을 구할 수 없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윌리엄이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끔찍하기 짝이 없는 존재들에게서 무사히 도망칠 수 있을까?

         

       『 경호원들을 시켜 자제시키겠다. 예언을 이루는데 협조해달라. 』

         

       아르투아 가문은 오딜리아의 손에 윌리엄의 목숨줄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했고, 적어도 예언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그녀를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윌리엄이 자기 말 들어주지 않았다며 난리를 피우는 거야 그냥 받아주면 그만이지만, 오딜리아가 정말 눈이 뒤집혀서 ‘구원자’를 꼭꼭 숨겨둬 버리면 소중한 예언자의 목숨이 날아가 버리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아르투아 가문은 윌리엄을 경호하는 경호원들에게 명령해 윌리엄을 별장에다가 잘 모셔두었고, 그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철저하게 보호했다.

         

       말이 보호였지, 연금에 가까운 조치였다.

         

       그렇게 부적은 아주 훌륭히 제 역할을 해냈다.

         

       망나니의 방문을 두 번이나 막았고, 윌리엄이 아나스타시아를 직접 마주치는 것도 막았으며, 성인식이 일어날 때까지 그를 별장에다가 처박아두는 것에 성공했다.

         

       짐승 같은 놈 하나 빼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으니,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 *

         

         

       평화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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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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