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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이 세상에 만연한 흔한 오해가 있다.

        

        기회라는 것이 그것을 움켜쥐기에 완벽한 준비가 되었을 때 다가온다는 것.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난 뒤 당당히 레드카펫 위를 걸어 준비된 옥좌에 앉을 수 있을 거라는 착각. 그렇기에 다들 이미 어느 정도 이에 대해 대비하고 있다는 착각….

        

        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덜 만연한 사실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매 선택의 순간마다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상당히 흔하게 망각해버린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알림 : 방문증 유형을 선택해주십시오.]

        

        

        

        여의도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검은색 일색의 건물. 한국에서는 그것을 여의도의 연양갱이라고 불렀다면, 여기서는 뉴욕의 다크 초콜릿 바라고 불렀다. 참으로 직설적인 작명 방식이었다.

        

        좌우지간, 나 또한 착각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극적인 무언가가 나를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머잖아 있을 파이널 챔피언십 준비를 위해 수많은 이카루스 직원들이 이리저리 오가며 본인의 일에 매진하는 것을 보자, 어쩌면 내가 뭔가 착각하고 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

        

        

        

        아마 이 생각조차 찰나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잡념을 갈무리하면서 조심스럽게 키오스크 형식의 기계에 손가락을 올린다.

        

        한국과는 다르게, 본사의 방식은 조금 독특했다. 들어가기 전 목적에 따라 직접 일회용 방문증을 제작하는 형식이었는데 –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통은 다양한 발급 방식이 있지만…오늘의 나는 아마 그들과는 다른 길을 걸을 예정이다.

        

        메시지 하나를 홀로그램에 띄운다. 이카루스 인터내셔널 공식 메일을 통해 사전에 보내진 몇 가지 정보와 키워드, 그리고 40분 전에 받은 코드. 그것들을 따라 해당 키오스크에 본래 존재하지 않았던 루트를 따라 새로운 인증 방식을 개방한다.

        

        몇 번의 터치가 끝나고, 개인 인증 코드를 입력한다.

        

        그리고 그 순간,

        

        

        

       ───기이잉!

        

        

        

       “…뭔가가 있긴 했네.”

        

        

        

        정확히 손목을 가져다댈 수 있는 부분. 동그란 홈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빛의 레이저는 척 봐도 무언가를 스캔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가져다댈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알림 : ICARUS GEAR // 인증 중….]

        

       -[알림 : 확인되었습니다. 방문증을 발급합니다. 렌즈의 증강현실 기능을 작동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그렇지.

        

        눈을 한 번 깜빡이자마자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홀로그램. 그것이 누가 보아도 특이하게 생긴 방문증을 스캔하자마자 새로운 정보가 갱신되며 가야만 하는 길을 안내했다.

        

        목에 거는 끈까지 동봉된 그것을 목에 조심스럽게 걸고, 자동으로 열린 유리문 너머 게이트의 센서에 방문증을 찍자 통행해도 좋다는 뜻의 초록색 불빛이 허공을 물들였다.

        

        무시한다.

        

        눈에 담아야 할 곳은, 걸어가야 할 곳은 그 너머였다.

        

        

        

       ───띵!

        

        

        

       “…아하.”

        

        

        

        마치 짠 것 같네.

        

        아주 정확한 순간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문이 열린다.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깔끔히 마감된 벽면에는 키카드를 찍을 수 있는 패널과 해당 건물에 존재하는 층을 표기한 버튼이 있었다.

        

        하지만 목에 달린 방문증을 패널에 가져다대자, 마치 그래야만 한다는 듯 엘리베이터는 지상이 아닌 지하를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런 부분에서는 실로 클리셰다운 움직임이었다.

        

        하강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문이 열리며 드러난 곳은 아무도 없는 소형 게이트와 벽 뿐이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다기보단 아예 무인화된 지 오래된 것만 같은 공간이었다.

        

        바닥도, 게이트, 카운터도 먼지가 쌓여있었다. 옛날에 인기척이 끊긴 공간임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삑!

        

        

        

        게이트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순간, 벽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육중한 굉음을 내며 열린다. 실로 의도적이었다. 일부러 비밀 조직으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꾸며놓은 것 같아 어처구니가 순간 사라져 웃음이 터져나왔다.

        

        숨겨진 벽이 열렸지만 다시 닫히는 일은 없었다. 내부에 사람이 있는 동안에는 닫히지 않는 구조인 듯했다.  

        

        

        그리 길지 않은 복도를 걸어가면서, 그동안 파편적으로나마 주워들었던 이카루스와 다크 존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상기한다.

        

        보조 AI 통제권을 탈취했다느니, 컨텐츠 업데이트는 자신들이 짜서 하는 게 아니라느니 하는 허무맹랑하고도 SF 장르 같은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었지만, 그것이 인터넷에 흔하게 돌아다니는 찌라시가 아니라 정보 통제가 빈번히 이뤄지는 위쪽 – 정치 쪽이건, 경제 쪽이건 – 에서 나오는 이야기라면 말이 달라진다.

        

        위치가 변하는 순간, 찌라시는 밝혀지면 안 되는 이야기가 되니까.

        

        

        그러던 와중, 두 번째로 굳게 닫힌 벽이 나를 가로막는다. 벽면에는 아까 키오스크에서 보았던 것과 동일한 인식 장치가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자리에서 날 멈출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그극!

        

        

        

        벽면이 열린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드러난 것은 짙은 어둠. 이카루스 기어로 스캔해본 결과 지름만 130m 가량인 거대한 구형 공간이었다.

        

        그 순간, 발 밑에서 살포시 발판들이 떠오른다. 그 어떠한 전자적 시스템도 관여하지 않은 순수한 부양. 이카루스 기어는 이미 검게 물들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작동을 보장하는 시계가 꺼져버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 누구에게도 풀어놓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임을 직감하였다.

        

        

        구형 공간이 조금 밝아지는 가운데, 정중앙에 있는 메인 프레임과 서서히 가까워지면서,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들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AI라니, 너무 허술한 변명거리를 써먹는 거 아닌가요.”

        

        

        

        나를 이곳으로 다시 데려다준 장본인.

        

        그들이 허공 위로 글자를 표시했다.

        

        

        

       -[<—-> : 반가워요.]

        

       -[<—-> : 인디언포인트 원자력 발전소 이후 처음이군요.]

        

        

       

        답변해줄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 많은 것들을 물어봐야 할 시간이었다.

        

        

        

        

        

        

        

        

        

        

        

        

        

        

        

        

        

        메인프레임의 끝자락에는 단 하나의 의자가 나를 위해 예비되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앉고는 생각을 정리한다. 짤막한 정적이 흘렀다. 물어볼 것이 정말로 많았다. 오래간만에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헤집어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첫 번째 질문을 하기도 전에 머리가 지끈거리다니, 웃음도 나오지 않을 법한 이야기였다.

        

        몇 번이고 숨을 가다듬으면서 잡념의 급류를 제어했다. 모든 것이 불가분의 사슬로 얽혀있었기 때문에 이를 간신히 분리하여 질문으로 만드는 과정조차 약간의 어지러움을 유발할 정도였다.

        

        그러나 혼란스러웠던 머릿속이 점차 정리되며 몇 개의 구체적인 질문을 형성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메인 프레임을 앞에 두고 중앙 캠과 시선을 마주한다.

        

        입이 열렸다.

        

        

        

       “…절 구해준 건, 당신들이죠?”

        

       -[<—-> : 그렇습니다.]

        

        

        

        역시.

        

        그제서야 허깨비라도 보았던 것처럼 두루뭉술했던 당시의 환영이 조금씩 구체적인 형상을 갖춘다 – 인디언포인트 원자력 발전소. 당시 죽기 직전의 위기에 몰린 내 목숨을 구해준 건 바로 이들이었다.

        

        그 사실을 듣자마자 던지고 싶었던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뭉근하게 끓어올랐지만, 지금은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그리고 앞서서 해야만 하는 말이 하나 있었다.

        

        숙였던 머리를 들어올리고, 메인프레임의 정중앙 화면에 진심을 담아 시선을 맞췄다.

        

        

        

       “…감사합니다. 정말 진심으로.”

        

       -[<—-> : 그렇다니 보람이 있네요. 이전보다 훨씬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 : 아직 감사 인사를 받기에는 좀 이르겠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도 많고, 궁금한 것도 상당히 많을 테니. 그렇지 않나요?]

        

       “….”

        

        

        

        사실이었다.

        

        이카루스와 다크 존의 정체는 무엇인지, 나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결국 발현자라는 건 무엇인지…그 외에도 정말로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나를 살려준 이들의 바짓가랑이조차 잡고 늘어져야 할 정도로.

        

        아마 저 사람들도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겠지만…이들은 그런 내 생각을 꿰뚫어보았다는 듯,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듣기에 결코 거슬리지 않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 : 그런 질문에 답해주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 때문이니, 부디 이 대담이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으면 좋겠네요.]

        

        

        

        팔락.

        

        스피커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낭랑한 목소리로 충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졌다.

        

        

        

       -[<—-> : 아마도, 이 즈음에서 당신은 다크 존이라는 게임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이를 논하기 전, 당사자가 어째서 이러한 일에 휘말렸는지에 대한 설명이 먼저 필요하겠죠.]

        

       -[<—-> : 유진. 당신은 두 개 이상의 세계선 충돌 사례의 대표적인 피해자입니다. 해당 세계의 법칙으로 결코 설명 불가능한 사태를 겪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고요.]

        

       “…세계선 충돌 사례요?”

        

       -[<—-> : 신체가 그렇게 되었던 첫 날,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의 연속적인 발생을 기억하시나요?]

        

        

        

        …기억한다.

        

        악몽과도 같았던, 그 어떠한 전조도 없이 어느 대도시에 내던져진 날. 집에서 자고 있던 와중 갑작스럽게 인기척 없는 겨울 뉴욕의 길바닥 위에서 눈을 떴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길바닥에 널려있는 사람 정도 크기만한 물체들과, 그 위에 소복히 쌓여있던 눈. 난잡하게 버려진 쓰레기와 그 어떠한 사람 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집, 차량. 살을 에다 못해 구역질이 나왔던 추위, 그리고 느닷없이 변해버린 신체와 엉덩이에 달려버린 거대한 뱀의 꼬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느 빈 집을 간신히 열고 들어가기 전, 브루클린 브릿지 너머로 몇 번이고 보았던 기괴한 색깔의 벼락들까지.

        

        그 기이하고도 충격적인 광경은 설령 내 머릿속을 조각칼로 파낼지언정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들의 말에 따르면…그게 세계선의 충돌이란 건가?

        

        

        머리가 지끈지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외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비상식적인 일은 비상식적인 이유로밖에는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충돌이라면,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소리였군요.”

        

       -[<—-> :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저희 부서 역시도 해당 충돌을 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은 존재하지 않고, 뒷수습만이 가능했지요.]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일.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아마…운이 좋지 않아서,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5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지옥을 거닐었던 이유가 단순히 재수가 없었기에 발생했다는 말을 듣게 되자마자 느껴지는 감각은 뒷목의 뻐근함이었다.

        

        참 그럴싸한 이유였다.

        

        그러나,

        

        

        

       “…만약 이 세계에 돌아왔을 때 바로 이 사실을 들었더라면, 정신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 같지만….”

        

        

        

        반대로 말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소리였다.

        

        과연 어째서일까. 여전히 목덜미에 잘 모셔두고 있는 이 자그마한 훈장 때문일지, 혹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대거 팀원들 덕분일지, 아니면 투 브리지스와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내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내 제자들 때문일지.

        

        다시 돌아온 지 고작해야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고, 비록 전부 지워버리기는 어려운 양의 마음의 상흔과 여러 간접적인 PTSD, 그 외에도 많은 종류의 실질적인 피해를 온 몸에 입었으나, 이 정도의 강풍에 흔들릴 정도로 얄팍한 인간관계를 쌓아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은 아니네요. 지금까지 꽤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제 과거는 부정당하지 않았고, 그동안의 헌신은 물질과 정신적 측면이라는 양쪽에서 이미 그 무엇보다도 충분한 형태로 보답받았으니….”

        

        

        

        목에서 느껴지는 금속의 무게는 자부심의 무게였다.

        

        미국에 오기 전부터 직간접적으로 과거의 인연을 마주했고, 본토에 발을 디딘 이후로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마음을 통째로 깎아내는 삭풍조차 견뎌낼 수 있었고, 이 자리에 당당히 섰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 아니, 그리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그런 뒷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으니.

        

        그렇게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자니, 어쩐지 안도했다는 듯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부터 흘러나왔다.

        

        

        

       -[<—-> :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다행이군요.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사실이었는데.]

        

       “아직 갈 길이 멀잖아요.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죠.”

        

       

        

        어쩐지, 건너편으로부터 작게 웃음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지자, 그동안 묵혀두었던 수많은 질문들이 머리 위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금방 의미를 잃게 되었는데, 첫 번째로 할 말은 이미 정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로렌티나의 말을 통해서 얻어낸 힌트.

        

        

        

       “…세계선 동기화란 단어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었죠.”

        

        

        

        짤막한 정적.

        

        그러나 말은 이어진다. 흩어진 파편들이 하나의 단순한 영감에 이끌려 조금 더 거대한 파편을 형성하고, 그것은 또 다른 공리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어 하고자 하는 말을 보강하는 받침대가 된다.

        

        부적절한 이야기를 쳐내고, 본질에 집중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선 동기화라는 단어의 등장 수가 두 번이라는 점이었고, 추가적으로 – 해당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이 세계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둬야만 했다.

        

        메인 미션을 전부 끝마쳤을 때 이 단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잠재되어 있던 타 세계선에 대한 기억을 촉발시켰다. 이것이 첫 번째 동기화였다.

        

        하지만-

        

        

        

       “첫 번째 인커젼 시나리오를 끝냈을 때, 분명히 더 이상은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해당 단어가 재차 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실.

        

        그러나 로렌티나의 말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생각의 수도꼭지를 열었고, 그리하여 논리의 전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커져가기 시작했다.

        

        요지는 간단했다 – 저쪽의 세계가 지금 이곳에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도 성립한다면?

        

        현재까지 진행한 인커젼 시나리오는 몇 가지가 있지만, 이것이 가리키는 점은 명백했다 – 해당 미션은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었으며, 앞으로 최대 세네 개의 시나리오 이후, 나는 이전 세계에서 마지막으로 투입되었던 인디언포인트 원자력 발전소 방어 작전에 돌입하게 될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해당 미션이 끝나는 그 시점에서 두 번째 세계선 동기화가 마무리될 예정이란 뜻.

        

        

        그리하여 나의 예상이 맞다면,

        

        만약 그 미션까지 끝을 맺는다면,

        

        그렇게 된다면-

        

        

        

       -[<—-> : …인커젼 시나리오는 과거만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이후를 묘사한 미션을 통해 건너편의 세계에도 간섭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싶으신 거겠죠.]

        

       -[<—-> : 정답입니다. 실제로 가능합니다.]

        

        

        

        그 말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 짤막한 탄성이 터져나온다 – 그렇다는 것은, 이를 통해서 다크 존의 정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이 게임이 도대체 어떠한 방도를 통해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의 과거를, 그리고 오메가 바이러스가 휩쓸고 간 세계선 내 미국의 상황을 그토록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어떻게 단순한 게임이 세계선 동기화를 통해 내가 있는 이 세계선에까지 이런 특정한 형태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하지만 확신을 담아.

        

        중앙 캠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다크 존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었군요. 오히려 두 세계를 잇는 일종의 통로이자, 양쪽을 관측 가능한 연결점 역할을 하는 장치에 가깝겠어요. 그렇죠?”

        

        

        

        침묵이 잇따랐다.

        

        하지만 나는 이 답변이 완전한 정답이었기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다크 존은 그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야만 하는 세계를 그토록 정확하고도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수많은 이들에게 존재하지 말아야만 하는 기억을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겠지.

        

        

        그리고 다음 순간,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오는 한 마디.

        

        나는 그에 빙그레 웃었고, 슬그머니 덧붙였다.

        

        

        

       “아무래도 이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좀 길어질 것 같네요.”

        

        

        

        아직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행히 끔찍했던 추위가 다시 조금씩 물러가고 있습니다

    다들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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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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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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