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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나, 뭘 위해 대회에 나갔을까.

        

       침대 위. 부대끼는 속을 애써 진정시키며 생각해보자면- 사실, 이유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정말로.

        

       도적부흥운동- 은, 성공했고.

        

       스트리머로서의 인지도……는, 솔직히 이미 지금도 과한 수준 아닌가. 오히려 조금 축소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대로 가다 보면, 어떤 과거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지인들이 ‘너 요즘 방송하더라?’라며 연락해올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 지경이니.

        

       그렇다고, 명예나 영광……따위를, 원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말하자면, 시청자들에게 보답하고- 또, 증명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 하지만, 따지고 보면……내가 토너먼트의 사다리를 기어올라가는 게 대체 시청자들한테 무슨 보답이 된단 말인가. 증명을 한다면, 대체 뭘 누구에게 증명하는 거고.

        

       그러니까, 결국……뭘 위해 대회에 나간 걸까.

        

       하물며, 내일부턴 오프라인 대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프라인에 나갔을 때는 결과가 영 좋지 않았던 탓일까. 나름, 나름 큰 결심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지난 오프라인 행사의 결과, 방송이 무너질 뻔했고……언니, 와는 아직도 연락이 안 닿고 있으니.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는 도적부흥운동의 성공으로 이어졌지만, 그것조차도……정말로 좋은 건지 잘은 모르겠어.

        

       씁쓸한, 조금은 싫은 생각들이-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현실도피를 위해 시작한 생각이었는데. 이건, 오히려 역효과인 것 같은 것이- 응. 명백하고 확실하게 역효과다.

        

       그렇다고……현실, 을 직시하자니…….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욱씬거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분명하게 후회되는 일들을 떠올리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후회되는 일보다 무서운 건, 뭘 후회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이를 테면, 전날의 술자리- 정확히는, 편의점에 다녀온 때부터의 술자리처럼.

        

       기억에 공백이 심했다. 술을 이렇게 많이 마신 게 대체 얼마만인지. 어쩌면……최근에 술을 자제한 탓에 주량이 줄어든 걸까.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고 싶기는 한데. 

        

       어찌 생각하든, 조각난 기억은 달라지지 않으니.

       

       떠올려보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집 안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비척거리며 들어와, 굳이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까먹고 잔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있더라.

        

       아마, 지니가 데려다줬겠지. ……아이스크림이 있었던 걸로 보면,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야 한다는 억지도 부린 모양이고.

        

       이만저만 민폐 끼친 게 아니겠는데.

        

       ……분명, 뭔가……후회되는 일을 했을 것 같아. 아니, 확신이 들었다. 이 정도면, 뭔가 후회되는 일을 했을 거야.

        

       아무리 낯짝이 두꺼워도, 얼굴로 열감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필름이 끊기는 건 너무 오랜만이어서, 솔직히……조금, 조금 많이 당혹스럽더라.

        

       대체 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지. 이런……이런 정도로는, 안 마셨는데. 나름의 자제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후우.

        

       기억의 파편을 더듬어보자니……심지어, 정작 애초의 목적이었던 고민상담은 제대로 하지도 못한 것 같은데.

        

       아니, 어쩌면 지니는 성심성의껏 고민상담을 해줬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이건 최악이겠는데. 물어보기도 두려워.

        

       ……그러고 보면……연애 상담도, 뭔가 제대로 해준 기억이 없다. 예상했던, 지니와 레반 간의……무언가를 이야기했다가……뭔가……기억이 날 듯 말 듯하면서, 떠오를 듯, 떠오르지 않을 듯-

        

       아.

        

       레반.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갑자기 솟구치는 듯한 불길한 기분에 다급하게 핸드폰을 집어 들어, 통화 목록에 들어가보니-

        

       [발신- 레반 (2)    오전 1:36]

        

       “……하.”

        

       기억에 없는 통화다. 아예.

        

       혹시나 하고 확인했지만, 통화 녹음은 없었다.

        

       “씨발.”

        

       ……설마, 티배깅은 안 했겠지.

        

       ‘제가 그렇게 캐릭 3개는 할 줄 알아야 된다고 했는데, 나무꾼만 팔 때부터 알아봤다……고 하면 안 되겠죠.’ 같은 말이라거나.

        

       ‘가라, 스컬카나리아몬! 진- 화- 아앗! 실패!’ 같은, 감탄사라거나.

        

       ‘이긴 세트에라도 신 좀 내고, 티배깅도 좀 하지 그랬어요. 어차피 3세트에 시원하게 당할 거. 어우, 머리가 진짜 높이 올라가시던데.’ 같은…….

        

       ……했을 법한 말이어서, 너무 무서운데. 아니, 제정신으로는, 절대 안 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텅 비어버린 기억의 공백은, 최악의 상상을 불러일으켜서.

        

       핸드폰을 쥔 채 잠시 고민하다가, 최대한 먼 거리에 덮어두었다.

        

       ……내일, 안 오겠지.

        

       그래. 이미 탈락했는데 왜 오겠어.

        

       ……안 오겠지?

        

       * * * *

         

        “……이거 대진운이 좋은 거예요, 안 좋은 거예요?”

         

        “이겨도 아따먹 떨어트렸다고 창나고, 져도 여자한테 졌다고 창날 텐데 좋을 리가 있냐. 우리 코치님 불쌍해서 어떡해……!”

         

        “결승에서 만나는 거보단 낫죠, 뭐. 아니, 그리고……이제 여자한테 졌다고 창날, 그런 건 좀 지나지 않았어요? 이벤트성 대회라고 해도 프로들 뚫고 4강까지 올라온 사람인데.”

         

        “VR게임 남녀 차이 생각하면, 뭐. 그래도 창은 나죠. 여태까지 진 애들 하나같이 좆되고 있던데. 어우, 요즘 나갤 진짜 살벌하던데요.”

         

        GP허슬러의 숙소, 연습실. 하라는 훈련은 안 하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선수들은, 격돌 대회 대진표를 띄워둔 채 갑론을박 중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서 연습들 하자. 창난다 같은 말도 쓰지 말고……내가 니네 인터뷰 할 때마다 조마조마해서 살 수가 없어.”

         

        이를 발견한 오소독스, 주호는 짐짓 눈살을 찌푸리며 한 소리 했지만-

         

        “그……코치님. 이래도 창나고 저래도 창날 거, 이기고 세리머니나 시원하게 한번 박아주시면 안 돼요? 저 아따먹 당황한 표정 보는 게 소원이에요. 진짜로.”

         

        “장하다, 진짜. 코치님 응원하러 직관가는 거라며. 거짓말이라도 좀 끝까지 해라.”

         

        “아니, 응원은 당연히 코치님 응원하죠! 근데 보는 정도는 괜찮잖아요. 그 시위 이후로 첫 오프라인 행산데. 아, 시위도 못 가게 했잖아요! 악수회도 했다는데! 평생 마지막 기회였을 수도 있는데!”

         

        “그걸 제 정신으로 보내주는 구단이 어딨어, 미친놈아.”

         

        20대 초반 특유의 기운으로 잔뜩 흥분한 선수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코치라지만, 얼마 전까지 선수였던- 동료라는 느낌이 더 강한 오소독스다. 아깝게 은퇴한 동료이자 형이 대회 4강에 진출했는데, 들뜨지 않을리가.

         

        솔직히 말하면, 오소독스 본인도 기대와 긴장으로 가슴이 살짝 울렁거리고 있었다. 대회 경험이야 많았으나- 홀로 진출하는 건 처음이었으니.

         

        물론, 티를 낼 수는 없는 감정이었다.

       

        이제 그의 본업은 코치니까. 선수들의 케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하물며, 개인적인 일탈에 불과한 대회로 선수들을 방해하는 건……그야말로 어불성설인 고로.

         

        “뭐, 다들 신난 건 알겠는데- 우리 할 일 많다. 다음 시즌 메타 적응 못하면 미끄러지는 건 한 순간이야. 태영이는, 도적 연습은 좀 하고 있어?”

         

        “동하랑 같이 시청각자료로 학습 중입니다!”

         

        “……둘이 아따먹 방송 봤단 얘기면 죽인다, 진짜로.”

         

        “헤헤.”

         

        “당장 가서 연습하고- 태영이 넌 이따가 펑고다. 스크림 끝나고 남아. 방패 잡아줄 테니까.”

         

        “아니, 코치님! 지금 4강전이 내일인데 그럴 시간이 어딨습니까! 당장 개인 연습하러 가시죠!”

         

        “내 대회는 그냥 사적인 취미고. 당장 시즌 개막이 다음 달이다. 정신 안 차려? 동하 너도 같이 펑고야.”

         

        “아-!”

         

        비명을 지르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오소독스는 짐짓 엄한 표정을 지은 채 쓰게 웃을 뿐이었다.

         

        일대일 대회 따위, 별 의미도 없다는 듯이. 그저, 은퇴한 코치의 소일거리인 양.

         

        100퍼센트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미 은퇴한 몸인 것도 사실이었고- 코치로서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하지만-

         

        아직, 가슴에서 승부욕이 들끓고 있는 것도 사실이어서.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우승하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그러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코치니까, 라며 스스로를 속여왔을 뿐이지.

       

        아무렴, 이 정도 승부욕이 없었으면 그토록 길게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며 버텨낼 수 있었을 리가 없다.

       

        이기고 싶었다.

         

        겸사겸사, 그……파골을 결승전에서 만나서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고. 레반은 좋은 동생이었고, 그가 보기에도 파골의 세리머니는 과한 면이 있었으니.

         

        하지만, 그것도 아따먹을 넘었을 때의 얘기다.

         

        거대한 벽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빨리 아따먹의 진가를 발견했던 사람으로서, 자연재해라는 별칭이 이 이상 공감될 수가 없을 정도로. 

         

        비상식적인 반응 속도. 소름끼칠 정도로 차분한 경기 운영. 언제 새로운 빌드를 가지고 나올지 모르는 의외성.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박수를 던지는 광기. 그리고, 무엇보다도……과연 그 경험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는- 대체 어디서 쌓은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연륜.

         

       프로가 아니라고, 여자라고 방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전형적인, 정형화된 패턴에 의해 정석적으로 움직이는 현역 프로들보다 몇 배는 부담스러운 상대였으니.

         

        ‘그래도, 길은 있을 거야. 변칙 투성이라고 해도……패턴은 있어.’

         

        오소독스의 머릿속에서는, 아따먹을 상대할 전략이 떠올랐다가 폐기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쉽지는 않았으나- 결코 싫지도 않았다.

         

        그에겐,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을 때가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으니.

         

        프로로 데뷔하고 무명으로 몇 년. 또, 병풍 노릇만 하며 다시 몇 년. 그 기나긴 세월을 뚫고, 끝끝내 정점에 도달하게 만든 마인드였다.

       

        ‘길은, 있을 거야. 우선, 빌드를-’

         

        * * * *

       

       [별포크: 예나쌤]

        [별포크: 쌔애앰!]

        [별포크: 내일 경기 가지?]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응]

         

        [별포크: 다행이다!!!]

        [별포크: 내가 절대 걱정해서는 아닌데]

        [별포크: 같이 갈까??]

        [별포크: 내가 집으로 픽업 가줄게!! 싱싱한 면허도 있어요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별포크: 승낙으로 이해할게]

        [별포크: 내일 3시 예나 집앞!]

         

         

        [별포크: 대답 안 해도 갈 거야]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귀찮지 않겠어?]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대회 빠질 일은 아마 없을 거야]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고민은 했는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걱정 안 해도 괜찮아]

         

        [별포크: 일단 아마가 붙는다는 게 문제고]

       [별포크: 고민은 대체 왜……]

        [별포크: 암튼!!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 걱정하지마.]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응]

         

        [별포크: 그리고 방송 언제 키나요 선생님 😠]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별포크: 공지 댓글이 1000개가 넘었어]

        [별포크: 신기록이세요 선생님]

        [별포크: 축하드려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감사합니다? 🤔]

         

        (별포크 님이 메시지를 작성중입니다…….)

         

        [별포크: 내일 3시야]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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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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