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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예사라 양, 괜찮으시겠어요?”

        

       병실로 들어가기 전에, 의사로 위장하고 있던 형사는 나에게 그렇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제가 하겠다고 해서 하는 거니까요.”

        

       갇혀서 지내는 일이라면 이골이 났다. 물론 사라만큼 오래 그런 식으로 지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3월에 입학하기 전 까지는 방에 틀어박혀서 지냈으니까. 심지어 그때는 사라도 없었지.

        

       그땐 괜찮았어?

        

       음, 글쎄.

        

       사실 그때는 최나경이 이렇게까지 미친 존재인지도 몰랐으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행운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일에 시달리는 중소기업 사원에서 갑자기 돈 많은 아가씨가 되었으니까.

        

       물론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예정된 파멸로부터 벗어나는 거였고.

        

       그때는 원래의 사라에게는 거의 관심도 없었지.

        

       무심하기도 해라.

        

       그러게. 그때는 정말 딱 내 생각만 했었는데.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완전히 폐쇄병동은 아니라서 원한다면 병원 건물 내를 돌아다니는 것은 허용이 된다고 하네요. 편할 때 나오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개인 병실에서 양혜인과 하늘이, 수아, 소희와 같이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해야 최나경이 접근할 테니까.

        

       아니면, 적어도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는 시간에 접근하거나.

        

       나는 스스로 미끼가 된 것이다.

        

       “네, 너무 답답하면 나가도록 할게요.”

        

       “그럼 편하게 쉬고 계세요. 혹시라도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알려드리러 오겠습니다.”

        

       원래의 나보다도 몇 살 정도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이 사람은 나에게 계속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다. 어쩌면 ‘예사라’ 앞이라서 조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언젠가 세계 최대 회사의 제일 윗자리에 오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는 조심스럽게 병실 문을 닫고 나갔다.

        

       내가 여닫을 수 있는 문이라지만, 문 자체는 무척 두꺼웠다. 방 바깥과 소리를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 구조였고, 병실 자체도 방음이 잘 되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종종 시끄러운 소리를 내기도 하니까, 아마 그걸 배려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겠지.

        

       뭐, 원래는 아직 병실로 쓰이지 않은 공실이긴 했지만. 원래의 용도가 어떻건 내가 잘 써먹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병원으로서도 빈 병실에 가구가 공짜로 들어왔으니 나쁜 일도 아니고.

        

       “읏차.”

        

       나는 병실 침대에 걸터앉으며 그런 소리를 냈다.

        

       “…….”

        

       내가 입 다물고 있으면, 병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내가 숨 쉬는 소리와 내가 움직이며 나는 옷깃 소리 정도려나.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아서, 창밖에서는 붉은 노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문이 열리기는 하지만, 위쪽만 살짝 열리는 형태다. 혹시라도 환자가 뛰어내릴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렇게 만들었겠지. 병원이 도심에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시설 자체는 괜찮은 느낌이었다.

        

       스마트폰도 뭣도 없이, 그냥 몸에 환자복 하나 걸치고 들어와 이렇게 있으니, 참…….

        

       음, 할 게 없었다.

        

       사실 스마트폰이 없는 것에는 나름대로 적응이 되었다. 이쪽에 오고 나서 학교에 가기 전까지 거의 삼 개월 동안 없이 살아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롭다’는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은 기간보다도 외로웠던 기간이 훨씬 길었으니까.

        

       지방대에 가면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친구들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내향적이었던 나는 대학교에서도 친구를 대단히 많이 사귀지는 못했다. 사실 웬만큼 명문대학교가 아닌 이상, 지방에 있는 대학교는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통학 학생이 꽤 많다. 고등학교 시절처럼 학교 끝나고 만날 수 있는 친구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대학생 때 사귄 동기들도 고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 사귀었던 친구들보다 친하다곤 할 수 없었고.

        

       그렇게 자취하는 기간 내내 외롭게 지내고, 나중에 서울로 다시 올라와 취업한 뒤에도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회사 사람들은 서로 그다지 친했다는 기억도 없고, 나는 누구랑 친해지기도 전에 이쪽으로 넘어왔으니까.

        

       그래서, 사실 외로움에는 꽤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생각했었지만…….

        

       전에도 느꼈지만, 하늘이, 수아, 소희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상상하기도 힘들다. 옆에 언제나 붙어있는 사람의 온기라는 것은 한번 익숙해지면 사라졌을 때 그만큼 지독하게 체감된다. 단순히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문제가 아니다.

        

       옆에서 나에게 웃어주고, 내가 힘들 때 지탱해주고, 부드럽게 끌어안아 주는 사람의 존재는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사면 그만이고, 인터넷은 통신사에 전화해서 연결해달라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람. 사람은 모두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들이다.

        

       하늘이도, 수아도, 소희도, 나에게 있어서는 다른 사람으로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었으니까.

        

       ……나도 있는데.

        

       내가 천장을 가만히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사라가 나에게 말을 걸어와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그렇지.

        

       사라도 있다.

        

       내가 죽는 순간까지도, 옆에서, 정확히는 완벽하게 같은 자리에 함께 있어 줄 존재.

        

       그러니까, 뭐.

        

       당분간 몸은 혼자라고 해도 조금 덜 외롭기는 하겠다. 어쨌거나 사라가 있기는 하니까.

        

       “잠이나 잘까.”

        

       솔직히, 아직 잘 시간은 아니긴 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해가 길어졌다고 해도 노을이 지는 시간은 잠들 시간과는 조금 거리가 있기는 했으니까. 물론 조금만 기다리면 슬슬 잘 시간이 될 테지만.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친구들의 온기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나는 그 짧은 시간을 기다리는 것조차 지겨웠다.

        

       ……그 아이들은,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

        

       “아, 안 되겠다.”

        

       사라가 입원한 정신병원……은 아니고, 그 정신병원 근처의 호텔의 한 방에서 소희가 중얼거렸다.

        

       물론 이 지역이 관광으로 대단히 유명한 곳은 아니었던지라 호텔이라고 해도 대단한 규모의 호텔은 아니었다. 그저 근처 연인들이 와서 지내라고 만들어진 모텔보다는 조금 덜 화려하고 비교적 차분한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작은 숙소였다. 사실 간판만 바꿔 달면 모텔이라고 불러도 될 듯한.

        

       한 번에 세 사람이 자기에는 그렇게 넉넉한 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불을 하나 받아다가 바닥에 깔아두니 자리가 나오기는 했다. 소희는 그 바닥에 깔아둔 이불 위에 앉아있었다.

        

       “사라랑 붙어있지 않으니까 적응이 되질 않네.”’

        

       “지금 이 자리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소희가 투덜거리자,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하늘이가 대답했다.

        

       “그래도, 이번 일만 끝나면 우리도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잖아.”

        

       수아가 두 사람을 달래듯이 말했다.

        

       “우리, 사라를 믿자.”

        

       “…….”

        

       수아의 말을 부정할 사람은 이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세 사람 다 사라를 믿었다. 설령 사라가 조금 엇나간 선택을 하더라도, 사라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세 사람은 아마 기꺼이 함께 했을 테니까.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걱정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정신적으로 굉장히 성숙한 사라였지만…… 가끔 조금 허당같은 면을 보이기도 하고, 마음도 약하다. 세세한 곳 하나하나에 엄청나게 신경을 써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제나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는 사라였다.

        

       “……그런데, 양혜인 씨는?”

        

       한동안 침묵하고 있던 하늘이가 물었다.

        

       “혜인 선배는 다른 방을 쓰기로 했어. 우리가 불편하지 않게.”

        

       소희가 대답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2인실을 두 개 빌리는 게 더 나았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물어보긴 했는데, 엄청나게 정중한 목소리로 우리 셋이 함께 있으라더라.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 때는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거라고.”

        

       “그건 그 사람한테도 적용되는 거 아니야?”

        

       소희의 말에 하늘이가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왠지 혼자 있어도 안전할 사람인 것 같지 않아?”

        

       소희가 먼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러게. 다시 생각해보니까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긴 해.”

        

       하늘이가 자기 말을 정정했고,

        

       “오늘도, 엄청나게 무서웠었지…….”

        

       수아가 몸을 살짝 떨었다.

        

       따져보면 그 사람은 제일 먼저 회장을 쫓아가서 장도리로 차 창문을 깨고 사라를 구했었다. 물론 여기 있는 세 사람 다 양혜인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녀가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되었다.

        

       “……아니지, 잠깐만.”

        

       각자 상상에 잠겨있는데, 하늘이가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혼자 있다는 거, 혼자 움직여도 우리 세 명은 그 사람이 움직였는지 모른다는 소리잖아?”

        

       “그렇, 지?”

        

       소희가 하늘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조금은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그 사람이, 사라를 만나러 갈지도 모른다는 뜻이야?”

        

       수아가 물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밤중에 병원으로 숨어들어 가지는 않겠지만…….”

        

       하늘이가 말했다.

        

       바로 조금 전에 소희가 한 대답보다도 자신 없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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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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