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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49

        

         눈앞의 상대를 노려본다. 뚫어져라 노려본다.

         이쪽의 신경이 긁혔다는 걸 감추지도 않고 그냥 속된 말로 존나게 꼬나봤다.

         

         게임에서 엮였던… 혹은 특정 시나리오를 내가 바라는 만큼 나중에 도움과 방해를 요리조리 주고받을 예정이므로 약간의 선입견은 있었을지언정 개인적인 유감은 일절 없었거늘.

         

         유감이야 지금부터 열심히 만들면 된다는 수준의 오프닝 멘트에 머리는 어질어질 해졌으며, 뒷목 근처가 뻐근하게 당겼고, 부족해진 수분 섭취에 입술은 바짝바짝 말라 들어가서….

         

         ……야, 너. 갑자기 왜 다짜고짜 시비냐? 엉??

         

         “그, 그것 참.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해줘서 몸 둘 바를 모르겠네에…!!”

         

         “으응…?”

         

         외부 접근에 대해 까칠하게 반응하는 이쪽의 태도가 비협조적이라는 야유였는지, 단순히 내 전반적인 성향을 그렇게 느꼈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해커라면 사회성 부족이 기본 장착이지 뭘 복잡하게 따져?’의 산물인지 몰라도 간신히 평정을 유지한 -적어도 유지했다고 생각한- 얼굴로 대답하는데 성공한 나를 그녀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다가… 씨익 웃어 보였다.

         

         “혹시… 내 단어 선정이 많이 거슬렸나? 그렇게 짜증낼 정도로?”

         

         탁!

         

         아무래도 열 받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수작질은 무시.

         

         여기서 더 적극적으로 제스처를 섞었다간 대화 내용이 밖으로 안 새게 일대일 통신을 하고 있는 의미조차 없어질 것 같아서 차라리 앞 진열장에 있던 아무 칩을 보란듯이 주워 들고 살피는 흉내를 냈다.

         

         ‘알약형 전투 증강제 400여종 섭취에 따른 고양감과 실효능 기록 일지’… 나쁘지 않다.

         왜 이런 유사 마약 체험 같은 게 서바이벌 장르에 당당하게 걸려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들이 복용하고 달려든다는 걸 가정하면 알아 두는 편이 좋긴 할 테니까.

         

         하지만 제대로 대화할 마음이 없다면 나도 나 대로 딴짓 하는데 열중하겠다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자.

         

         이게 웬 걸? 아웃사이더라는 표현 자체에도 꽤나 노력과 고심이 들어간 결과물이라는 걸 알리듯, 마르티나는 나름 사근사근한 말투로 코드 네임 아이보리라는 해커가 남긴 족적을 읊어주기 시작했다.

         

         “시민권 등재에 사용한 이름은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파라다이스에서 운용하는 비공식 시민권 브로커 하인리히 발렌타인의 손녀로 호적엔 올라가 있으나. 자매인 헬레나 발렌타인과 대비되는 신장 및 머리색, 양측 모두 성형 기록이 없는 걸 고려하건대 어느 쪽이나 혈연 여부는 불분명.

         

         공식 작전인 ‘살찐 쥐잡이(Fat Rat Heist)’를 데뷔전으로 치렀으며 현장 교전도 마다하지 않는 과감성, 변절 용병 무리를 가지고 놀다 일망타진했다는 증언, 어느 기업 관계자의 직속 스카우트 제의마저 거절했다는 목격담까지 더해지며 초신성 해커가 등장했다는 입소문을 탔다.”

         

         “어.”

         

         …아니,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잠시만요…!!

         내가 진지하게 얘기하자고 보챘지, 언제 댁들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남의 흑역사를 낱낱이 후벼파랬냐!?

         

         안 그래도 근거가 있다 한들, 성격 테스트하는 것 마냥 면전에서 낱낱이 해부 당하는 건 별로 즐겁지 않네… 하면서 못마땅하게 탄식하고 있었는데.

         

         심지어 그걸 당사자 앞에서 읊는 걸로 괴롭히는 건 무슨 신종 고문 방식인데!

         

         그러나 반사적으로 튀어나간 짧고 안타까운 단말마로 쉽사리 멈출만한 행동도, 집중력도 아니었다.

         

         애당초 누군가의 신상 명세서를 나열하느라 바쁜 마르티나는 장난하듯이 건들거리는 게 아니라 심각한 표정으로.

         정색한 채 조목조목 그 낱말이 내포한 진의를 씹어 뱉으며 차근차근 읊고 있었으니까.

         

         “허나 별개의 외압이 존재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HPPD 관문 수비대에 취업. 동거하던 자매와 함께 근무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곧장 지급받은 보상금과 저금으로 돌보미 로봇을 한 대 구입해서 네오 헤이븐으로 이주한 것을 고려하면 마음의 상처가 큰 것으로 보여짐.”

         

         “그… 중간중간에 넣은 각주는 누구 의견인지가 정말, 궁금해지는데…!!”

         

         으득.

         만약 동물 보호소의 문건이었다면 ‘외로움을 잘 타니 주의해주세요~’ 같은 어지러운 헛소리가 적혀 있을 법한 평가에 이를 꽉 물고 참견을 걸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구렁이 담 넘듯 무시당했다.

         

         그래도 긍정적인 점이라면 그녀가 준비한 본론이 나오기까지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진 않았다는 것 정도려나.

         

         “현재 공공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해커 중에선 최상위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으며 의뢰를 수행하였고. 일각에서 흘러나온 루머에 따르면 잠시 에나마에 소속되었던 건 분명하지만 또 금방 퇴직 처리.

         

         하지만 부동산 취득 과정에 파라다이스의 배려가 있던 점을 고려하면 여전히 모종의 커넥션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며, 도박판을 전전한 행보는 여전히 종잡을 수 없고, 늘어난 드로이드의 구매처가 불분명한 걸로 보건대 암시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서 구한 걸로 보임. 따라서….”

         

         거기까지. 단번에 말한 마르티나는 서로 앞에 있는 진열장을 향해 평행하게 서있던 몸을 살짝 비스듬하게 기울여, 이쪽의 안색을 깊게 살피며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리 화려한 경력으로 바탕으로 추론하건대. 해커 아이보리에 해당하는 인물은 굉장히 충동적이고 치기어린, 인생을 길게 보기를 거부하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바보거나. 반대로 하나의 확고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위험한 재능의 이단아… 라고 보인다.”

         

         “……헤에.”

         

         ‘아, 덧붙여서 들어가는 조직마다 얼마 버티지 못한 채 때려치우고 나오는 걸 보면 내향적이거나 아웃사이더적, 그러니까 조직 생활 부적응도가 매우 강하다고 봐도 무방함!’이라는 뒷말을 해설처럼 곁들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결국은 그거다.

         

         어이,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모를 해커. 너가 여기저기 돌아다닌 거랑 실력은 대강 잘 봤다. 근데 아무리 봐도 너 같은 녀석은 엘리시움에 수감(?)하는 게 맞다. 거 괜히 싸돌아 다니지 말고 우리 쪽에 합류해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게 아닌 이상 얻어낼 수 없는 일부 정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다 인지한 걸 보면 아마 여기저기에 남은 기록들을 몽땅 취합해서 짜맞춘 것 같은데.

         

         이 동네는 이게 참 문제다.

         

         내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던 데이터와 증거들을 닥치는 대로 다 정리하더라도, 먹고 마시고 사회 시스템망 안에서 살아 숨쉬는 이상 어딘가에는 이런 전문가 애들이 어떻게든 더듬을 흔적이 남는 게.

         

         이런 형태의 접근을 완전 방지, 배제하려면 아예 파이브 아이즈 같은 지하 조직 애들처럼 이중 신분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사용하면서도 블랙 마켓과도 거리를 좀 두었어야 하는데… 선택지가 좁았던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신분 추적은… 뭐, 도중부터 자리에 맞게 유리한 대로 애매모호하게 섞어 쓴 탓에 전산 상의 아나스타샤와 현실의 나를 완전히 분리하지 못한 내 잘못이 조금 크지만. 음.

         

         “그래서, 이만큼 잘 알고 있으니 함께하자고?”

         

         “특별한 신념이 없다면 너의 재능을 높이 사주고… 또 급여도 최고 수준으로 챙겨주고. 비슷한 인간들끼리 모여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게 피차 행복하지 않겠어?”

         

         “…언제는 위험 인물일 수도 있다 평가하더니? 엘리시움 정도 되는 대기업이 그렇게 막 아무한테나 권유해도 괜찮나?”

         

         “다른 요소도 만만히 볼 게 없는 데다가. 이렇게 화나서 피 쏠리는 게 얼굴로 다 드러나는 귀여운 타입은 보통 음흉한 배신자나 마스터마인드가 아니거든. 그리고 감춘 실력이 단순히 ‘좋다’는 지레짐작과 거리가 먼 것도 방금 확인했고 말이지.”

         

         우뚝. 실제로는 마르티나 방향으로 한껏 곤두선 신경을 조금이나마 자연스럽게 누그러트리고자 포장된 칩 케이스의 모서리를 더듬던 손길을 끊었다.

         

         무슨 소리지 저게.

         확인? 혹시 채팅을 거는 겸 사이버웨어로 쏘아냈던 그 악의적인 코드덩어리를 말한 건가?

         

         일차적으로 내 방화벽이 무력화하긴 하긴 했어도 모르는 인간이 다짜고짜 날린 접속 링크를 재밌어 보인다고 클릭하는 멍청이가 오히려 더 적지 않나?

         

         오히려 그거 가지고 후하게 가산점을 쳐주는 게 이상하지 않냐는 의도를 듬뿍 담아, 아니꼬운 눈초리로 흘겨보았지만, 나지막이 키득거린 그녀는 이쪽 대전제의 맹점을 지적해왔으니.

         

         “난 여태 엘리시움 소속이라고 한마디도 안 했을뿐더러 이름조차 밝히지 않았는데, 이미 내 밑천을 들여다본 것처럼 올 것이 왔다는 투로 질색하고 단정하기까지 하는 건 우연으론 안 되지.”

         

         “응…?”

         

         ……시발?

         

         마르티나가 슬며시 들어올린 팔로 자신의 가슴팍을 툭툭 두드리며 선수끼리 너무 재미없게 놀려고 한다 한탄하거나 말거나.

         나는 여지껏 이어진 대화의 흐름을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되짚어보느라 바빴다.

         

         진짜? 아니, 정말로? 그야 상대방도 동요나 혼란을 유도하려고 일부러 긁은 거겠지만 정신없이 몰아치는 정보-흑역사-의 파도에 내가 그걸 놓치고 먼저 말실수를 했다고?

         

         쓰읍, 개… 망할.

         아주 사람 속여먹는데 도가 튼 현지인을 상대로, 감히 말을 섞으면서 빠져나가려 시도한 내가 바보 병신이구나 그냥.

         

         “이런 솔직한 애가 어떻게 천재 도박사로 이름을 날렸나 조금 이상했는데, 그걸 만회하는 수준의 직관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얼추 이해가 되긴 하네. …대체 어떤 식으로 응용한 건지는 감도 안 오지만.”

         

         “칭찬, 겁나, 고맙네요. 예…!”

         

         저는 저어어언혀 빡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목이 좀 말라서 대답이 뚝뚝 끊겨 나갈 뿐입니다.

         

         대충 알아듣지 않으면 ‘이걸’ 쓰겠다는 생각으로, 무력 제재의 대명사인 제로를 힐끔거리며 한 글자씩 씹어 내뱉자 장난은 이만 해 두겠다는 것처럼 그녀도 자세를 똑바로 고쳐 섰다.

         

         “그럼 어디 정식으로 요청할까? 반갑습니다. 아나스타샤 양, 짐작하신 대로 엘리시움 대민간 방첩부 소속 마르티나 크립토보아라 합니다. 귀하의 사이버 엔지니어로서의 능력, 해커로서의 과감함을 높이 산 상부에서 좋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만. 어떻게, 시간 괜찮으실까요?”

         

         ……음, 절대 싫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걸 속네!

    거의 일주일 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자판을 두들기는 감각이 영 생소한 기분인데, 일단 열심히 노력해서 기다려주신 만큼 재밌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시고, 추천 눌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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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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