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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메데이아의 말을 듣고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카자르 유플레인은 ‘로판소’의 서브 남주. 즉, 남자 캐릭터였다. 그런데 내 눈앞에서 자신이 카자르 유플레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여자다.

         

       ‘이건…….’

         

       이 여자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카자르 유플레인은 여자였다는 사실.

         

       “…카자르 유플레인은 남자인 거로 알고 있는데.”

       “네? 저는 지금까지 여자로서의 인생만 살아왔는데요?”

         

       그러고 보니 셀다스의 정보에서도 유플레인 가문의 자손이라고만 했지, 성별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카자르가 남자로 나왔던 이유가 설마…….’

         

       게임에서의 그는 세이렐 백작을 암살하기 위해 성별을 남자로 위장했을 것이다. 백작을 살해한 후 몰래 백작령을 탈출.

         

       그럼 카자르가 범인이라는 걸 전혀 유추할 수 없을 것이다. 백작을 죽인 건 남자고, 카자르는 여자니까.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네.’

         

       이러면 그가 왜 비중이 없었는지, 메인 남주로 고를 수 없었는지 맞아 떨어진다. 실제 성별은 여자였으니까.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카자르는 백작령을 나가면서까지 남자로서의 삶을 이어간 거지? 미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대놓고 물어볼 수도 없고 참.

         

       일단 모든 의문은 뒤로 한 채, 나는 애써 침착하며 말했다.

         

       “실례를 범했군.”

       “아니에요. 정보상이 틀렸을 수도 있죠.”

         

       카자르는 싱긋 웃으며 찻잔을 치웠다. 그러고는 세이렐 백작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세이렐 백작은 정말 악질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악질?”

       “그는 여색을 많이 밝히는 사람이에요.”

         

       찻잔을 다 정리한 카자르는 다시 나와 마주 보고 앉으며 말을 이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누명을 씌워서 데려가거나, 납치까지 진행하죠. 그 이후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악질이었군. 미친 새끼.

         

       “저도 자주 성희롱당했어요.”

       “기분 나쁜 새끼네.”

       “그렇죠?”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니 그동안 쌓인 게 많았나 보다.

         

       “그래서, 작전은 어떻게 할 생각인데?”

       “오늘 열리는 파티가 있어요.”

       “거기서 암살을 진행할 생각인가?”

       “네.”

       “좀 무모한 짓 같은데.”

         

       싱긋. 카자르가 슬쩍 웃었다.

         

       “저는 성별을 바꾸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요.”

       “…뭐? 성별을 바꿔?”

       “네. 다시 되돌아오는 건 불가능하지만요.”

         

       그냥 위장이 아니라 아예 마법으로 성별을 바꿨던 건가. 그래서 이후에도 남자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나 보군. 의문은 풀렸다.

         

       “남자로 성별을 바꾸고 어떻게 할 건데?”

       “세이렐 백작에게 돈이 되는 사업을 들고 왔다고 할 거예요. 그는 여자 말고도 돈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그럼 그와 긴밀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개인실로 이동하겠죠.”

       “거기서 죽이고 도망치겠다?”

       “네.”

         

       꽤 그럴싸한 계획이다. 파티장에서 세이렐 백작이 남자와 이동하는 걸 본 사람들이 있으니 그게 카자르 유플레인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

         

       카자르 유플레인은 여자였으니까.

         

       ‘그러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백작령에서 탈출한 건가.’

         

       유플레인 가문에 피해는 주지 않으면서도, 백작령의 사람들을 위해 성별을 바꿔가면서까지 희생.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도 어려웠을 텐데.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있으면 서브 퀘스트로 넣어주던가 하지.

         

       ‘병신 같은 제작사.’

         

       내가 말했다.

         

       “성별을 바꾸는 마법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을 거 같군.”

       “네?”

       “그냥 내가 들어가서 죽이고 나오겠다.”

       “그거야말로 무모한 거 아닌가요?”

         

       글쎄. 나는 아예 외부인에다가 공작령에서 온 노예라서 범인을 유추할 수 없을 거 같은데.

         

       “그냥 믿어라. 파티에 입장할 때 파트너는 정해뒀나?”

       “아니요. 혼자 들어갈 예정이었어요.”

       “그럼 나를 데리고 들어가라. 가면 두 개 준비해두고.”

         

       카자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면 두 개는 왜요?”

       “하나는 입장할 때, 다른 하나는 놈을 죽일 때.”

         

       그녀는 오호, 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같이 입장한 네가 의심받지도 않을 거고 백작도 내가 처리할 수 있겠지. 자세한 작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파티에 입장만 같이 해주면 돼.”

         

       카자르가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죽이시려고요?”

       “그냥 손으로 죽일 생각이다.”

       “그럼 시간이 좀 걸릴 텐데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따라오기만 하면 돼.”

         

       그녀는 눈을 얕게 뜨고 나를 노려봤다.

         

       “만약 실패하면요? 그럼 타격이 좀 큰데요.”

       “실패할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마.”

       “당신이 강한 건 겉보기에도 알겠어요. 하지만…….”

         

       사실 나도 걱정되긴 한다. 소드 마스터의 힘이 익숙해지고 제어가 가능해지고 있긴 하지만, 암살은 다르니까.

         

       피가 튀는 것도 예상해야 한다. 게임에서의 카자르 유플레인은 마법으로 암살을 했기에 이런 걱정을 하지 않았겠지만, 나는 근접전이 필수인 오러를 사용하니까.

         

       “흐음…….”

       “역시 제가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니, 내가 할 거야.”

       “이상한 데에서 고집을 부리시네요.”

         

       내가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이유. 카자르가 남자로 변하면 곤란해지는 게 있다.

         

       나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소미레는 분명 카자르에게 호기심을 가질 거다. 그렇게 되면 서브 남주의 운명대로 소미레에게 갈 수도 있고. 그러니 아예 여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게 만들어 아예 가능성을 배제하는 게 좋겠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펜 같은 거 있나?”

       “펜이요? 깃털 펜이라면 있어요.”

         

       카자르가 어질러진 방을 뒤적이며 깃털 펜 하나를 꺼냈다.

         

       “근데 펜은 왜요?”

       “이리 줘봐.”

         

       나는 펜을 잡고 오러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푸른빛이 펜을 감싸 안았다.

         

       “될 거 같네.”

       “설마 그걸 던지시려고요?”

       “그래.”

         

       허어, 카자르가 입을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지. 위력이 얼마나 되는지 시험해보고 싶어.”

       “네에…….”

         

       그렇게 집 밖으로 나오고,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 앞에 섰다. 깃털 펜에 다시 오러를 흘려 넣고, 팔의 근육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흐읍!”

         

       촤악!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깃털 펜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간다. 퉁!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나무에 주먹이 들어갈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지금 뭘 하신 거예요?”

       “보면 모르나? 펜을 던졌다.”

       “아니, 오러를 어떻게 사용하면 저렇게 돼요?”

         

       나도 몰라. 그냥 하니까 됐어.

         

       “설마 저렇게 세이렐 백작을 죽일 건 아니죠?”

       “그럼 어떻게 죽이나?”

       “허어.”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카자르.

         

       “이걸로 방법은 해결됐고, 나머진 파티에 참석하는 것뿐이군.”

         

       나는 카자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면을 구할 곳은 있나?”

         

         

       * * *

         

         

       시간이 지나고, 백작령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가면 가게에서 두 개의 가면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남색 털이 달린 고양이 가면. 그리고 다른 가면은 프란체를 떠올리는 토끼 가면이었다.

         

       “파티는 언제 시작하지?”

       “곧 시작될 거예요.”

       “입고갈 옷은 있나?”

       “저는 있는데, 남자 옷은 없어요.”

       “흠.”

         

       공작가의 제복을 입고 가는 건 불가능하고. 파티에 입고갈 옷을 하나 사야 하나? 그럼 정장을 사야 하잖아. 나 돈 없는데.

         

       “카자르. 정장 살 돈 있나? 내가 돈을 안 가져와서.”

       “…지금 돈 없다고, 저보고 사달라는 거예요?”

       “그래.”

         

       하아, 카자르가 한숨을 쉬었다.

         

       “뻔뻔하시네요.”

       “그럼 이 제복을 입고 갈 수는 없잖나. 정체가 들통날 텐데.”

       “아마 동생이 입던 옷이 있을 거예요. 크기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카자르가 앞장섰다.

         

       “따라오세요. 본가로 갈 테니까.”

         

       가는 길에 물었다.

         

       “본가는 잘 사는 편인가?”

       “말했잖아요? 백작가 아니면 다 못산다고. 그게 평민이 되었든, 귀족이 되었든. 똑같아요.”

         

       백작가에서 고혈을 많이 빨아먹나 보군. 하긴, 그런 인간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존재했으니.

         

       그렇게 한참을 거닐고, 카자르의 본가에 도착했다. 수수하면서 작은 저택이었다.

         

       “들어오세요.”

         

       저택에 들어왔다. 시종은 없었다. 다른 가족까지도.

         

       “아무도 없는 건가?”

       “동생이랑 부모님은 백작가로 일하러 가셨어요.”

         

       지방 남작이라 했으니 백작가의 일은 다 도맡아서 하겠군. 보아하니 세이렐 백작이 일하는 거 같진 않은데.

         

       ‘혹사가 아닐지 모르겠네.’

         

       뭐, 이건 세이렐 백작을 죽이면 해결되는 문제니까 깊게 상관하지 말자.

         

       “이 옷이에요.”

         

       카자르가 가져온 옷은 베이지색의 정장이었다.

         

       “입어 보세요. 크기 확인해야 하니까.”

         

       잠시 상의만 입어봤는데 크기가 조금 작았다. 내 몸이 적당히 우락부락해야지.

         

       “이 정도면 괜찮을 거 같군.”

       “…찢어지면 안 돼요?”

       “알고 있다.”

       “일단 나가 있을 테니 다 입어 보세요.”

         

       쿵. 카자르가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제복을 벗어 던지고 베이지색 정장을 차려입었다. 조금 꽉 끼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들어와.”

       “어때요? 안 찢어질 거 같아요?”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찢어지진 않을 거야.”

       “…조심하셔야 해요? 그 정장 사줄 때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으니까.”

         

       그 정도로 가난한 건가? 공작령의 평민보다 못사는 거 같은데.

         

       “만약 찢어지기라도 하면 공작가에서 배상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

       “…하긴, 데카르트 공작가인데 돈이야 별거 아니겠죠.”

         

       내가 사실 노예였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거다.

         

       “그런데 목은 왜 붕대로 가리고 계세요?”

       “훈련하다가 다쳤다.”

       “역시 공작가라 그런가, 훈련도 격한가 보네요.”

         

       아니야. 노예 인증 초커 가리려고 감은 거야.

         

       “파티 시작은 언제 하지?”

       “얼마 안 남았어요. 지금부터 백작가로 향하면 시간이 딱 맞을 거예요.”

       “바로 출발하지. 마차를 타고 가나?”

       “네? 백작가까지 가는데 마차를 탈 수는 없잖아요? 안 그래도 없는 살림인데.”

         

       이런. 그 정도로 못사는 건가.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걸었다. 백작가로 향하는 길에 카자르가 물었다.

         

       “제가 마법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 누군지만 알려주면 안 돼요?”

       “데카르트 공녀님이시다.”

       “공녀님이 마법을 사용하세요?”

       “아니, 이제부터 배울 거야.”

       “흐음, 마법을 사용하긴 쉽지 않은데.”

         

       카자르가 턱을 어루만졌다.

         

       “마력에 대한 재능도 있어야 하고, 마법식을 풀어내야 할 수학 실력도 필요해요.”

       “그건 문제없어. 내가 다 확인했으니까.”

         

       게임에서의 프란체는 흑마법을 사용했다. 이건 마력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이고, 마법식을 푸는 능력은 내가 차근차근 키워주면 되니 모든 게 잘 풀릴 거다.

         

       “근데 꼭 제가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나요? 공작가면 다른 좋은 스승을 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여기엔 깊은 사정이 있어.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사람 궁금하게 만드시네.”

         

       그녀가 도와준다면 프란체가 마법을 익히는 데에도 문제없을 것이고, 나중에 카자르를 이용한 대규모 사업도 진행할 수 있을 거다.

         

       ‘계획대로 흘러가는군.’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하지?”

       “곧 도착이에요.”

         

       하늘을 바라보니 해가 지고 있다. 파티를 시작하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해가 완전히 지고 캄캄한 밤이 되었다.

         

       “도착했어요.”

         

       백작령을 돌아보면서 봤던 건물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 얼마나 사치를 부렸는지, 저택 입구로 향하는 길목마다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었다. 정원은 어찌나 큰지, 공작가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왜 백작령 사람들이 못사는지 알 거 같네.”

       “그렇죠? 아무튼. 들어가요.”

         

       카자르는 백작가의 입구를 지키는 기사에게 문양과 초대장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기사는 고개를 숙이곤 문을 열어주었다.

         

       “이제 시작이에요.”

       “그래.”

         

       나는 얼굴 상단을 가려주는 고양이 가면을 썼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에 그녀에게 속삭였다.

         

       “파티장에 입장하는 즉시 나는 따로 움직일 거다. 세이렐 백작을 만나야 하니까.”

       “네. 저는 뭘 하면 될까요?”

       “파티를 즐겨.”

       “네?”

       “파티나 즐기고 있으라고.”

         

       카자르가 어벙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녀에게 입꼬리를 올리고 싱긋 웃어주곤 깃털 펜을 만지작거렸다.

         

       ‘백작 하나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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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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