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25

       천만원.

         

        세고 다시 세어봐도, 입금된 금액은 정확히 10,000,000원이었다.

         

        대체 무슨 밥을 챙겨 먹어야 이걸 쓸 수 있을까.

         

        이런 돈이 필요할 정도로 비싼 음식은 알지도 못한다.

         

        1년치……어쩌면 2년치 용돈을 미리 입금한 거라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확신도 들었다.

         

        이 정도 금액을 보냈으니- 당연히 보내준 돈을 잘 써서, 몸에 좋은 걸로 잘 챙겨 먹었나 확인하러 오겠지.

         

        ……그러겠지.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놓인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무거운데.

         

        이예리가 보기 싫은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와 만날 때면 한없이 작아지며 눈치를 보게 된다.

         

        이예나가 되어버린 내 감정이 아니라, 이예나의 잔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강렬하고, 저항하기 힘든 감정.

         

        그 탓에, 한 번 볼 때마다 상당한 시간 동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차라리 먼저 날짜를 정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날짜가 정해져있으면, 그 날까진 안 오겠지.

         

        보기 싫어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을 것 같은 선에서 가능한 먼 날짜를 제안하는 문자를 보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신나게 장바구니에 한 가득 넣어둔 물건들이 갑자기 모두 철없는 욕구의 발산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건 진짜 필요한데.

         

        턱을 괴고, 입술을 리드미컬하게 톡-톡- 두들기며 고민에 빠졌다.

         

        정말 필요한 것만 사자.

         

        그리고, 혹시라도 도적부흥운동을 지원하는 기부금이 오면……이예리한테 밥 정도는 사도 되겠지.

         

        먼 미래- 그러니까 한……다다다다음주 정도에.

         

        * * * *

         

        밤 10시.

         

        이예리는 회사로 돌아가는 택시에서, 잠시나마 눈을 붙이려 노력하고 있었으나-

         

        죽을 것같이 피곤함에도, 복잡한 생각과 감정 탓인지 잠은 오지 않았다.

         

       떠올려보면, 그녀의 동생은 늘 그랬다.

         

        힘든 일을 얘기하지도, 의존하려 들지도 않는다.

         

        3년 전, 처음 취업하자마자 신용카드부터 만들어 이예나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었다.

         

        리듬체조를 하던 시절, 그 어린 나이에 먹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아내는 모습도 안쓰러웠지만-

         

        부상으로 체조를 포기하고 나서부터, 식사하는 자리에서조차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느라 깨작거리는 모습은 더욱 마음 아팠기에.

         

        한도는 언니가 정해 두었으니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며 편하게 쓰라고 했는데도, 눈치가 보였던 걸까.

       

       서운해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작 현금으로 주었어야 했다는 죄책감과, 그래도 동생이 언젠간 편하게 생각할 것을 기대했던 아쉬움을 함께 곱씹고 있자니,

         

        -우우웅.

         

        손으로 가볍게 쥐고 있던 그녀의 핸드폰이 또다시 진동했다.

         

        그 진동이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어서 밀린 일이나 처리하라는 리마인더처럼 느껴져, 이예리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아, 씨이발 진짜, 쓴다고! 독촉 안 해도 오늘 새벽에 쓴다고오……! 그렇게 급하면 작년에 시켰어야지, 개새끼들아!”  

         

        비명처럼 속내를 토해낸 이예리는, 놀란 눈으로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쳐다보는 택시기사에게 고개를 연신 숙이며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뒤늦게 한참을 길게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다스린 그녀는, 이제 다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냉정하게 일처리를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든 후에야 비로소 핸드폰을 확인했다.

         

        [혹시 다다다음주나 다다다다음주 정도에 밥 먹을 수 있을까?]

         

        그리고, 언니는 항상 바쁘다고 생각하는 건지 머나먼 일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동생의 톡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깨문 채 그만 흐느끼듯 울어버렸다.

         

        ‘이번달엔, 무슨 일이 있어도 4번은 들러야지.’

         

        ‘아니야. 바쁘단 핑계로 미루지 말고, 당장 이번 주말에 가자.’

         

        ‘이번엔 오래 있어야지. 밥도 해주고.’

         

        * * * *

         

        이유 모를 불안감에 괴로울 때는 긴급 알코올 처방만한게 없다.

         

        이 마법의 약물 몇 cc로, 모든 고통이 사라지니까.

         

        생활패턴이 뒤집힌 사람의 유일한 장점은, 언제 술을 마셔도 대낮부터 낮술을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까드득

         

        일어난지 4시간도 되지 않아 소주병을 땄지만, 지금은 밤 11시.

         

        고독한 혼술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다.

         

        아쉽게도 집에 소주잔은 없었지만, 대충 비슷한 크기인 에스프레소용 샷잔은 색깔 별로 여러 개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예나는 커피를 좋아했던 걸까.

         

        에스프레소 잔에 소주를 따라, 쭉 들이켰다.

         

        이런 저런 상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다시 가슴을 죄여오다가 흩어져갔다.

         

        다시 한번 따르고,

         

        다시 쭈욱 들이켰다.

         

        에스프레소 잔이 소주잔보다 조금 큰 걸까. 아니면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이예나의 몸이, 간만큼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걸까.

         

        빠르게도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고, 온 몸에 취기가 돌기 시작했다.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트위트에 접속해서 팔로우 중인 스트리머 목록을 확인했다.

         

        평행세계니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과거 내가 즐겨 보던 스트리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지난 6개월을 허투루 보내진 않았다.

         

        나름의 기준에 따라 엄선한 팔로우 목록을 구축한지 오래다.

         

        아크……는 휴방일이고.

         

        도댓……은 이 정도면 장기 휴방 아닌가 싶은데.

         

        곧 돌아오겠지?

         

        ‘도댓에게 메일쓰기’를 머리 한 켠의 할 일 목록에 적어두고, 스크롤을 움직였다.

         

        아이크는 방송중이네.

         

        그런데……아, 지금은 술 마셔서……어지러운데.

         

        이런 상태에서 골드의 플레이를 보면, 정말로 토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 사람, 내 기억으론 도적 주포에 사제 서브다.

         

        함부로 클릭했다가 사제 중이면……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따왕? 이 사람은 언제 팔로우했지?

         

        아. 기억났다.

         

        아니다. 까먹었다.

         

        어……‘따’로 검색해서 팔로우했던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스크롤을 드르륵거리며 오프라인 중인 스트리머들과, 방송 중인 스트리머들의 목록을 무의미하게 왔다갔다하기를 한참.

         

        그나마 볼만한 아이크의 방송 썸네일을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다가, 흉물스러운 사제 지팡이가 손에서 삐죽 튀어나온 걸 확인하고 인터넷을 종료했다.

         

        가슴을 메우는 실망감을 애써 눌러담으며, 다시 소주병을 기울였다.

         

        ……에스프레소 잔조차 못 채웠다.

         

        별로 크지도 않은데.

         

        비척거리며 냉장고로 이동해서, 새로운 소주병 하나와 이전에 아껴둔 아이스크림 통을 꺼내왔다.

         

        민초가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깡소주를 버티기엔 이예나의 몸이 나약한 탓이다.

         

        입에 아이스크림과 소주를 털어넣고 의자에 푸욱 기대고 있자니, 하루 정도는 그냥 이렇게 멍하니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할 일……이 있었는데.

         

        두 눈을 감고, 머리속에 저장해둔 이런저런 목록들을 떠올렸다.

         

        ……당장 할 만한게…….

         

        아, 맞다.

         

       첫 방송 컨텐츠.

         

        미리 사과하기로 했지.

         

        * * * *

         

        아크, 김진희는 최근들어 인간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라는 철학적인 의문에 빠져 있었다.

         

        이예나 탓이었다.

         

        천성이 착하고 밝은 덕에 어떤 사람과도 잘 교류하고, 누구의 이야기도 잘 들어주며, 놀라울 정도로 친화력이 좋다는 평가를 받아오던 아크.

         

        그녀의 좌우명 중 하나는, ‘세상에 가치관이 다른 사람은 있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였다.

         

        온실 속에서 살아온 탓에 지킬 수 있었던 좌우명일지도 모르지만, 23년 인생을 살며 나름 꿋꿋이 지켜온 인생관이었다.

         

        -우우웅

         

       진동하는 핸드폰 화면에, ‘이예나’라는 이름 석 자가 떠올랐다.

         

        이예나.

         

        감사 인사를 표하며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자, 어째서인지 아무 말없이 *스타그램에서 자주 쓰이는 합장 이모지만 5개 연달아 보낸 사람.

         

        ‘치킨 취향은 DM으로 문의주시고 보내주세요’라는 뜻일까-라는 생각마저 하며 고민했지만,

         

        다음 날 확인해보니, 빠르게도 기프티콘을 사용했음이 확인됐다.

         

        그리고는 그로부터 무려 몇 주간 톡으로 답장을 하지도 않고, 방송에서 도네이션도 하지 않으며, (이건 다행이었지만) 저격도 하지 않더니-

         

       [아크님,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잠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라고, 몇 주만에 톡을 보내온 것이다.

       

       ‘차라리 저격러로만 알고 있던 때에는 그저 악질 관심종자라고만 생각하면 그만이었는데.’

       

       지난 일을 계기로,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아따먹, 이예나.

         

       ‘은인……까지는 절대 아니어도, 고마운 사람이긴 하고…….’

       

       게다가 희귀하디 희귀한 여성 고티어 유저에, 방송에 출연해서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갈 수 있는 사람.

       

       방송 컨텐츠 소재로도 훌륭했다.

         

        늦은 시간이라고 했지만, 평소 저녁 7시부터 새벽까지 방송을 이어나가는 패턴을 가진 아크 입장에서는 전혀 늦은 시간이 아니었고-

         

        이 기회에 조금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그녀는 YES라는 팻말을 들고 끄덕거리는 귀여운 토끼 이모티콘과 함께 ‘그럼요!!!ㅎㅎㅎㅎ 당연하죻ㅎㅎㅎ 무슨 일이세요?’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톡에서 1이 사라진 순간, 바로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딴다다 딴.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크님.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네네! 그럼요. 무슨 일이세요?”

         

        《네……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순간, 아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따…, 아니, 예나님 맞으시죠?”

         

        《네에. 이, 예나아입니다아.》

         

        곧이어 제대로 들었음을 깨달은 후에는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 특유의 목소리는 도저히 헷갈릴 수가 없었다.

         

        ……이전에 비하여 약간, 비음이 섞인 느낌이었고,

         

        -꿀꺽.

         

        뭔가를 삼키는 소리가 함께 들려오고 있었지만.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