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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엿새 뒤에 만나자.”

       

       올리비아가 그렇게 말하며 키엘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그대로 돌아섰다.

       

       “……음?”

       

       키엘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은 보통 다음을 기약할 때 하는 말이니까.

       

       지금도 바로 앞에 서있잖는가.

       

       곧바로 반문하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냐? 다시 만나자니?”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푹 숙인채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 어깨가 숨소리에 맞춰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올리비아?”

       

       묘한 기시감을 느낀 키엘이 다가가려던 순간, 올리비아가 고개를 확 치켜들었다.

       

       날카롭게 주변을 흝던 눈동자는 키엘을 마주하자마자 사르르 녹아 없어졌다.

       

       “혹시 방금 뭐라고 했어?”

       

       움찔, 미세하게 달라진 목소리를 듣고 키엘이 멈칫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나?

       

       “키엘?”

       “…….”

       

       사람이 하루만에 달라질수는 없다. 가면이 벗겨질수는 있을지언정.

       

       그리고 올리비아는 누구보다 가면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방금 전까지는 그랬다.

       

       말문을 떼기가 힘들었다.

       

       “……혹시 못 들었나?”

       “응. 미안. 정신이 딴데 팔려있었나봐.”

       

       올리비아는 솔직한 사람이다. 대답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하지,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릴 인간은 아니다.

       

       키엘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최대한 조곤조곤하게.

       

       “방금 네가 엿새 뒤에 다시 만나자고 하지 않았나. 그게 무슨 의미였는지 묻는거다.”

       

       올리비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내가 그런걸 물어봤다고?”

       

       키엘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건가?”

       “나 장난친적 없어. 아, 검날 상했다. 이리 줘봐. 내가 고쳐줄테니까.”

       

       올리비아가 손을 뻗어 단숨에 대검을 붙잡았다. 아니, 키엘이 뒷걸음치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되었을것이다.

       

       “너…….”

       

       키엘은 손을 뻗어 올리비아를 다가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두어 걸음 더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

       

       올리비아가 평소처럼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미소.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낯설다.

       

       키엘은 그렇게 생각한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여태껏 아무 문제 없이 같이 다녔으면서, 수없이 저 미소를 마주했으면서.

       

       ‘저 모습이 낯설다고?’

       

       아니다.

       

       지금 모습이, 올리비아의 평소 모습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 기시감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혹시 검이 아니면 갑옷? 그것도 아니면 어디 다쳤다거나? 싫으면 요리라도 해줄까? 너 샌드위치 엄청 좋아하잖아. 피클이랑 햄도 있고, 아! 토마토는 뺐어.”

       

       올리비아가 아공간에서 샌드위치를 꺼냈다. 눈 앞에서 흔들리는 빵쪼가리를 보고 키엘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이걸 좋아한다고 얘기했던가?’

       

       자신은 그런걸 이야기하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다. 하지만 저렇게 준비까지 해온걸 보면, 어디선가 말을 꺼내기는 했을 것이다.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알리는 없잖은가.

       

       “여기 물도 있어. 아, 시원하게 마시게 지금 바로 얼려줄까? 얼음 동동 띄워서?”

       

       하지만 그걸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기억력 좋은 사람이, 불과 몇 초 전에 일어난 일을 기억 못한다고?

       

       그게 말이 되나?

       

       정말, 정말로 아무런 기억이 안난다고?

       

       키엘은 저도 모르게 손을 앞으로 뻗었다. 이 기시감을 해소하지 않으면, 도무지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턱.

       

       키엘이 올리비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올리비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기대했던 반응은 없었다.

       

       – 아파 임마.

       

       한참을 기다리다 참다 못한 키엘이 입을 열었다.

       

       “……아픈가?”

       “응?”

       “내가 이렇게 잡으면 아프냐고 물었다.”

       “음……. 아니? 참을만해.”

       

       왜 대답이 다르지?

       

       일부러 방금 전보다 조금 더 세게 눌렀다. 그 잠깐 사이에 없던 인내심이 생기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원래 있던 인내심이 그 잠깐 사이에 사라졌던 것인가?

       

       도대체…….

       

       키엘이 말 없이 손을 떼어냈다. 올리비아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거 안 먹을거야? 네가 좋아하는 베이컨도 넣었는데?”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키엘은 그날 처음으로 올리비아의 호의를 거절했다.

       

       

       

       *****

       

       

       

       ‘기억 속의 대화가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키엘하고 대화를 해보는 수밖에.’

       

       올리비아는 아직 얼음 속에 기절해있는 키엘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키엘 로트실드]

       – 레벨 : 83

       – 직업 : 검성

       – 호감도 : -100

       – 칭호 : 회귀자, 공작, 방랑 검사.

       

       지금의 키엘은 드래곤 슬레이어도 아니고, 대수림의 유적을 돌파한 탐험가도 아니다. 아무리 회귀를 했다고 한들, 지난날의 업적까지 따라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회귀자에게 허락된 것은 오직 비참한 과거의 기억뿐.

       

       그런 강렬한 기억들 사이에 새로운 이야기를 덮어씌우려면 어지간한 것들로는 안된다.

       

       ‘시간의 편차도 크겠지.’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올리비아에게는 방금 전의 이야기지만, 키엘에게는 몇 년 전의 이야기다.

       

       대화의 내용을 떠올리기는 커녕 대화를 했다는 사실이나 안 까먹으면 다행이었다.

       

       ‘뇌에 각인될 정도로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해야 돼. 그래야 기억 속에 남길 수 있어.’

       

       물론 단서 속의 기억이 현재에도 영향을 끼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영향을 끼친다’고 가정한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니.

       

       올리비아가 종이와 펜을 들어 무언가를 적어나갔다. 그건 몰살 회차의 일정표였다.

       

       제국력 몇 년에 키엘과 무엇을 했고, 무엇을 목표로 행동했고,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기억나는 일들을 적어나가던 올리비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표본이 부족하기는 해. 이번에 제한시간이 두 배씩 늘어났다고 앞으로도 그럴 보장은 없어. 하지만…….’

       

       원래 데이터로 예측을 시도하려면 표본이 최소 세 개는 필요하다. 만약 다음 번에 들어갔을 때 제한 시간이 20분으로 늘어나있다면, 그때부터는 제한시간이 두 배씩 늘어난다고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기회 한 번을 생으로 날려야 한다.

       

       앞으로 여덟 번. 하나도 허투로 쓸 수 없었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더하면 3.5일정도 된다. 물론 제한 시간이 계속 두 배씩 늘어난다는 전제 하에.

       

       ‘이 이상 생각해봤자 의미 없어. 최선의 수를 찾는게 우선이야.’

       

       올리비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제 감을 믿기로 했다.

       

       올리비아의 의식이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되짚어나간다.

       

       키엘과는 마경들을 주로 다녔다. 목(木)의 마경 에우란, 토(土)의 마경 모리아…….

       

       마경을 돌아다닌 가장 큰 이유는 원활한 호감작 때문이었다. 등을 맞대고 하는 치열한 전투만큼 전사형 NPC들의 호감도를 따기 좋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NPC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행동해야 좋아하는지 알아두는 것은 기본 소양이었다.

       

       ‘전투중에 샌드위치 만들고, 무기 수선해주고……. 난리도 아니었네.’

       

       그렇다는 뜻은 기억 속의 올리비아도 열과 성을 다해 키엘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호감도를 올리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결국 그것도 내 플레이 기록일테니까.’

       

       그러니 그 반대로 행동하면 기억 속에는 확실히 각인된다는 말이다.

       

       20분, 40분, 80분은 직접적으로 행동을 옮기기에는 너무 짧다. 그러니 이때는 기억 속에 존재를 각인시키는 것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후에는.

       

       160분, 320분, 640분…….

       

       이때부터는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마지막에는 무려 42시간동안 기억 속에 들어가 있을 수 있다. 다른 것들을 다 합친 것보다, 마지막 하나가 중요할 정도였다.

       

       제한 시간이 42시간으로 늘어나는 시점은 대수림 공략을 완료한 시점에서부터 4년 후.

       

       그렇다면 제국력으로 996년이다.

       

       ‘그때 내가 어디 있었지? 996년에 내가 뭘 하고 있었더라?’

       

       기억이 마구 뒤섞인다. 게임을 오랫동안 접었기 때문인지, 그도 아니라면 수없이 엔딩을 보았던 탓인지.

       

       올리비아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회차가 스쳐 지나간다.

       

       “…….”

       

       생각났다.

       

       제국력 996년. 그것은 악마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해였다. 악마를 처치한 것은 올리비아 자신이었고, 수많은 NPC들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도 상관 없겠지.’

       

       째깍. 째깍.

       

       올리비아가 눈을 감고 마음 속으로 몇 초를 더 셌다.

       

       “…….”

       “…….”

       

       어느 순간부터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올리비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얇은 얼음을 사이에 두고, 키엘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오래 걸렸네.’

       

       사실, 올리비아는 키엘이 의식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제압이 불가능합니다!]

       – 의식 불명인 적은 제압할 수 없습니다.

       – 제압은 하루에 한 번, 한 명씩만 가능합니다.

       

       제압에는 쿨타임이 있었다. 그 때문에 하루를 생으로 기다려야 했다.

       

       손아귀에서 전류가 파직거렸다.

       

       고요함 속에서 키엘이 입을 열었다.

       

       “……또냐?”

       

       올리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대화를 나누어봤자 의미가 없다.

       

       올리비아는 손바닥을 살포시 들어 키엘의 이마에 갖다 댔다.

       

       일순간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띠링!

       

       이제는 익숙해진 알림음이었다. 

       

       [남은 시간 : 20분 00초]

       

       메세지를 확인한 순간 입가에 반달같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기억을 갈아엎을 시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끼야아아아악
    분뇨조절장애님 1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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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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