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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25. 추억의 반찬

       

       

       아무 문제 없는 하늘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 내린다.

       수련이는 그 빗방울을 손바닥에 고이 모았다.

       

       “심장에서 뻗어 나온 마력은 각자 고유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 나 같은 경우에는 마력을 물로 변환시킬 수 있어. 오로지 나만의 힘으로.”

       “오, 내 생각보다 대단한 능력인데?”

       “딱히, 별거 아니야.”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과 별개로.

       수련이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여전히 첫째와 둘째 녀석들 모두 솔직하지 않았다.

       

       ‘아마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것 말고도 다른 능력이 있겠지. 드래곤은 용언이란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그건 그렇고.

       역시 저 능력은 조심하는 편이 좋겠다.

       내 눈에는 성능이 아주 뛰어난 물뿌리개로 보일 수 있어도,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국가들의 눈에는 다르게 보일 테니까.

       

       “수련아, 뭐가 됐든. 그 능력은 자주 사용하지 마라.”

       “…나도 이제 알고 있어. 인간들의 시선을 끌면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네. 알고 있으면 됐어.”

       

       성장했네.

       나는 수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수련이가 싸늘한 얼굴로 손을 곧바로 쳐냈다.

       

       “마음대로 만지지 마.”

       “너무해… 아빠 슬퍼…”

       “슬픔이란 감정은 삶에 도움 되지 않아.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저번에 질질 짠 게 어지간히 쪽팔렸던 모양이다.

       내가 측은한 눈으로 보고 있자, 수련이는 발작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왜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기분 나빠. 나 갈래.”

       

       너무 놀렸나.

       수련이는 입술을 쭉 내민 채, 투덜거리며 옥상을 벗어나려 했다.

       나는 녀석이 사라지기 전에 크게 소리쳤다.

       

       “수련아! 초련이 올라오라고 말해주라!”

       “…”

       

       찌릿-

       수련이는 나를 노려보고는 모습을 감췄다.

       반응이 그리 크지 않지만, 수련이는 은근 놀리는 맛이 있다.

       살짝 비를 맞고 옷이 젖어 찝찝하긴 했지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 초련이가 옥상에 나타났다.

       

       “좋은 날씨에요, 아버지!”

       

       초련이는 활짝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막 비가 내린 촉촉한 공기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초련이는 의자에 앉기 전에 화단으로 향해, 먼저 식물들을 관찰했다.

       

       “방울토마토는 잘 자라고 있고… 상춧잎도 다시 자라고 있네요…! 다들 잘 자라주고 있어요! 나중에 제가 맛있게 먹도록 할게요!”

       

       싱긋-

       식물들을 향해 웃음을 짓는 초련이.

       녀석은 식물에게 인사를 마친 뒤, 의자에 앉아 나를 마주했다.

       

       “마지막 차례. 그린 드래곤. 이초련.”

       “네에!”

       “요즘 사는게 어때?”

       “저는 마음에 들어요! 만족이에요!”

       “그럼 다행이네.”

       

       딱히 큰 불만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싶은 건 없어?”

       “으음, 저는 있어요!”

       “뭔데?”

       “제가 이 근처 공기가 좋지 않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또 그때처럼 식물원을 만들 속셈인가.

       그 때 갑자기 자란 식물들을 할매에게 해명하느라 죽을 뻔했었지.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환경 보호 운동은 안 돼. 기각이야.”

       “아니에요, 아버지! 드래곤 말은 끝까지 들으세요! 저번이랑 달라요!”

       “다르다고?”

       “네에!”

       

       벌떡-

       초련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획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숨 쉴 권리 운동’이다.

       

       “바깥 공기는 너무 좋지 않아요! 금속과 기분 나쁜 마력들이 섞여 있는 더러운 공기에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어야 해요!”

       “이 삭막한 구역에 나무를 심는다라…”

       “네, 맞아요! 나무를 심는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가 직접 심지 않을 거예요!”

       

       나보고 직접 심으라는 건가.

       나무 심는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할까 생각하던 도중.

       초련이가 내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바로, 이 친구들이 저를 대신해서 나무를 심어줄 거예요!”

       

       초련이가 내민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너도 친구가 없구나, 초련아.”

       

       나도 친구 없는데.

       하지만, 초련이는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닌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정정했다.

       

       “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버지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지금 제 손에는 숲의 정령들이 있단 말이에요!”

       “정령?”

       “네, 정령이에요!”

       

       정령이란 개념은 잘 알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연에 숨어 살며, 함께 뭉치면 거대한 힘을 내뿜는다는 녀석들. 

       현재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S급 영웅 중에 한 명이 정령의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령이 어떤 녀석들인지는 알고 있다.

       

       “그걸 초련이 네가 다룰 수 있다고?”

       “네에!”

       “어떻게?”

       “정령 친구들이 저를 좋아하거든요! 저 친구 많아요!”

       

       아빠보다 친구가 많아서 다행이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지만, 초련이는 친구들을 데리고 옥상 난간으로 향했다.

       

       “제 친구들을 바깥세상에 뿌릴 거에요! 그러면 제 친구들이 알아서 나무를 심을 거예요!”

       “너무 많이 생기면 좋지 않을 텐데…”

       “괜찮아요! 제 친구들은 저보다 약해서 많이 심지 못해요!”

       “으음, 그 정도면 괜찮으려나…?”

       

       드래곤이 지금까지 저지른 일을 떠올리면, 드래곤은 믿고 걸러야 한다는 편견이 생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 딸이 좋은 의견을 냈는데, 거절하는 것보다는 믿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초련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초련아, 한 번 해봐.”

       “네에!”

       

       초련이는 옥상에서 손바닥에 모아뒀던 친구들을 저 멀리 던졌다.

       꽃가루를 흩뿌리는 것처럼.

       

       “…이상하게 자라지는 않겠지?”

       “의심하지 마세요! 제 친구는 저를 닮아서 똑똑하단 말이에요!”

       “…”

       

       그렇게 말하니까 좀 걱정되는데.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나는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수련이의 말에 의하자면 드래곤은 두 번 실수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일단 믿어 봐야 하는 것이다.

       서로 종족은 달라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무럭무럭 자라서! 이 썩은 세상을 정화하는 거예요!”

       

       

       ***

       

       

       드래곤 녀석들의 면담을 무사히 종료했다.

       녀석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결론을 내리자면…

       

       ‘드래곤은 아무리 생각해도 농사에 특화되어 있어.’

       

       드래곤의 능력을 고작 농사에 사용한다는 점이 이상하긴 했지만.

       나는 그 뛰어난 능력들을 가만히 썩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훌륭한 1차 산업 종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얘들아. 우리의 미래는 농사에 있다. 농사하자.”

       

       나는 아침밥을 먹으며 녀석들의 앞에서 선언했다.

       농사를 통해 열심히 돈을 벌자고.

       수련이는 그 말을 듣고는 졸린 한숨을 내뱉었다.

       

       “하으음… 아빠. 왜 아침부터 이상한 소리야…”

       “수련아, 우리는 농사를 해야 한다니까? 그 능력으로 농사를 하지 않으면 국가적 손실이야!”

       “그 많은 일 중에서 하필 왜 농사냐는 소리야… 나는 농사 귀찮아… 안 해…”

       

       훽-

       수련이는 밥을 반절 정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녀석은 아침을 먹기 귀찮다는 핑계로 밥을 남기고는 한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성장기에 아침밥을 남겨? 안 돼. 김에 밥 싸줄 테니까 한 입만 먹어.”

       “싫어. 나 안 먹어.”

       “먹어 빨리! 아빠 일하러 가야 해!”

       “아침부터 귀찮게…”

       

       수련이는 투덜거리며 입을 벌렸다.

       

       “아아-“

       

       냠-

       김에 싼 밥을 맛있게 입에 넣었다.

       

       “잘 먹으면서 튕기기는. 아빠 일하러 간다.”

       “…칫.”

       “다들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어라.”

       

       오늘은 인력 사무소에서 일하는 마지막 날.

       나는 이상한 기분과 함께 녀석들을 집에 두고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일하게 될 직장으로 향하던 중.

       아스팔트 길의 옆 부분에 작은 새싹이 돋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길에 이런 게 피어있는 건 또 오랜만이네.”

       

       이 구역에서는 보기 힘든 건데.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새로운 길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일을 끝낸 후.

       나는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아있는 사무소장 조현규에게 다가갔다.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소장님.”

       “그래, 수고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지?”

       “예.”

       “확실히 이 일보다는 영웅이 여러모로 훨씬 낫지.”

       

       끼익-

       조현규는 낡은 가죽 의자에서 일어나, 허름한 냉장고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여러개의 락앤락통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

       

       “너 임마, 애가 있다고 그랬지?”

       “그런 느낌이긴 하죠.”

       “느낌이 아니라 임마. 애를 키우고 있다며. 뭐가 됐든 니 애가 맞지.”

       

       스윽-

       조현규는 락앤락 통을 내게 내밀었다.

       

       “아내한테 반찬 좀 해달라고 했어. 가져가서 같이 먹어.”

       “아니, 뭘 이런 걸 다…”

       “애들 제대로 못 먹이잖아. 한창 클 때인데. 골고루 먹여야지. 저기에 김치도 있으니까 가져가. 한국인이 김치가 없으면 되겠냐?”

       

       조현규는 그리 말하고는 내게 손짓했다.

       

       “빨리 안 받고 뭐해? 어서 퇴근 안 해? 애들 보러 가야지.”

       “…예, 감사합니다.”

       “들어가라. 새로운 일 잘하고.”

       

       나는 조현규가 챙겨준 반찬통과 김치통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두 손이 무거웠다.

       

       “…너무 많이 챙겨줬잖아. 마음이 쓸데없이 따듯하다니까.”

       

       저러다가 다른 사람한테 또 사기를 당할까 싶어 걱정이다.

       사고 없이 잘 지내야 할 텐데.

       나는 아무도 없는 길목을 걸어가며, 두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말했다.

       

       “아빠 왔다. 너희 사고 안 쳤지?”

       “나는 사고 안 쳐!”

       “…나도 이제 사고 안 쳐.”

       “저도요! 저도요!”

       

       녀석들은 저마다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그중에서 화련이가 호기심이 생겼는지, 두 손에 들린 반찬통을 보며 물었다.

       

       “이거 뭐야, 아빠?!”

       “받았어.”

       “누구한테!?”

       “…넌 모르는 고마운 사람 있어.”

       

       아마 기억에 많이 남겠지.

       나는 옷을 갈아입은 후, 반찬통을 열어 녀석들과 밥을 먹었다.

       

       “…”

       

       그 반찬들은 상당히 맛있었다.

       아마도 오랜만에 먹는 집 반찬이라 그런 것 같았다.

       

       “…아빠 울어?”

       “내가 왜 울어.”

       

       고작 집반찬을 오래 먹었다고 울리가 있나.

       울지 않았다.

       …진심으로.

       

       “밥이나 먹어, 수련아.”

       “흠…”

       

       나도 나중에 집반찬이나 해볼까.

       먹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반찬은 항상 그리움이 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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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Dragon Egg

I Picked up a Dragon Egg

드래곤의 알을 주웠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picked up an Egg from the Dragon’s Nest. “Shakk!!!!” “Should I just sell?” I should have picked some other treas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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