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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그래도 왓슨은 착하니까 기회를 줄게.]

    잘난 척이 심한 오브젝트네.

    날아다니는 플라잉 가스램프, 왓슨을 처음 본 감상은 그것이었다.

    척보기에 태도가 거만했다.

    게다가 피 냄새도 나고, 귀엽지도 않고, 목소리도 섬뜩하고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 오브젝트였다.

    별 관심은 없지만 탐정이 거울의 위치를 알아내는데 필요한 것 같아서 얌전히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니라면 꿀밤이라도 한 대 때리는 건데…

    탐정에게 주절주절 잘난 척하며 떠들던 왓슨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깜짝 놀라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행동을 취했다.

    램프에서 연기가 끝없이 뿜어져 나와 캠프를 뒤덮어버린 것이다.

    마치 구름 속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 구름은 소리마저 먹어버리는지, 탐정과 그 후배의 소란 떠는 소리가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순간, 구름 내부에서는 핏빛 번개가 번쩍이며 흥미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유령의 집 같은 공포 어트랙션인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구름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산처럼 거대한 몸을 한 채로 내려다보는 왓슨의 모습은 굉장히 박력 있고 강해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겁에 질려서 몸을 크게 부풀린 귀여운 복어처럼 느껴졌다.

    [‘눈’인가?]

    [분명 ‘눈’을 느꼈는데?]

    [착각한 거 아니야?]

    왓슨은 나를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나는 소통을 못하는 오브젝트라는 컨셉이므로, 그저 고개를 갸웃? 하며 못 알아들은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지성이 없어? ‘눈’을 가지고 지성이 없을 수 있나?]

    [예지도 없고, 천리안도 없고, 독심안도 없는데.]

    [그래도 ‘눈’이 느껴지는데? 착각이야?]

    ‘눈’? 뭔가를 보는 특별한 눈을 말하는 거라면 나도 하나 갖고 있긴 했다.

    대상을 죽이는 방법을 보는 눈.

    거대한 왓슨은 내 주변은 빙글빙글 돌면서 살펴보다가 연기를 거두고 돌아갔다.

    왠지 성가신 이야기와 관련된 일 같았는데, 소통을 전혀 못하니까 지나간 듯했다.

    역시 소통을 못하는 컨셉은 옳다!

    ***

    왓슨이 갑작스럽게 뿜어낸 연기는 주변을 모두 잡아먹더니, 다시 금세 사라져있었다.

    “선배, 갑자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글쎄, 별로 바뀐 건 없어 보이는데….”

    갑작스러운 사태에 겁먹은 후배는 품에 망치를 꼭 안고서는 다가오는 사람을 후려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회색 사신은 여전히 시큰둥한 표정으로 왓슨을 바라보고 있었다.

    왓슨은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명백히 회색 사신을 신경 쓰고 있었다.

    “아니, 확실히 바뀌었어. 왓슨의 태도가 조금 달라졌군.”

    한없이 사람을 깔보는 듯 한 인상을 풍기던 왓슨이었지만, 연기를 깔고 난 뒤에는 약간의 조심성이 느껴졌다. 

    조심성이라기보다는 뭔가를 두려워하는 건가?

    왓슨은 회색 사신에게서 시선을 떼고 말을 이어 나갔다.

    [반칙을 하면 죽음뿐이지만.]

    [기회를 줄게.]

    [홈즈는 특별하니까.]

    “어떤 기회를 준다는 거지?”

    내 질문에 왓슨은 골똘히 생각하더니 답을 내렸다.

    [아주 가벼운 페널티를 줄게.]

    [이제 절대로 이 캠프에서 나가면 안 돼. 의뢰를 완수하기 전에는 나갈 수 없어.]

    [이정도면 적당한 페널티라고 생각해.]

    [홈즈는 의뢰를 실패하면 거기서 죽어야 하는 거야.]

    [미사일과 함께 불타버리는 거야!]

    왓슨의 말처럼 ‘가벼운 페널티’이기는 했다.

    겨우 24시간도 안 남은 상태에서는 밖으로 나가도 효과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겠지.

    차라리 싱크홀 내부로 기어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여기서 해결을 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만, 난이도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거기서 한 가지 해결책이 생각났다.

    왓슨은 말이 통한다.

    명확한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대가를 요구하는 오브젝트들은 그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면 능력 이상의 일도 해주곤 했다.

    왓슨도 대가를 요구하는 오브젝트의 한 부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지성이 있고, 대화가 통하는 오브젝트다. 

    거래가 가능할 것이다.

    아니, 거래를 꼭 해야만 한다.

    “왓슨 거래를 하자! 나비를 만드는 오브젝트의 위치를 알려줘!”

    [싫어]

    [시련을 피하려는 거야?]

    [사건을 포기하는 거야?]

    시련, 포기, 의뢰, 반칙. 왓슨이 집착하는 키워드들이다. 

    왓슨이 말하는 ‘홈즈’는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러웠지만, 어려운 시련을 정정당당히 뚫고 사건을 해결하는 존재에 가깝겠지.

    그렇다면 그 ‘홈즈’라는 단어에 협상의 키가 있을 것이다.

    “왓슨 거래를 하자! 홈즈에게 걸맞은 다른 시련을 완수하겠어. 그러니까 나비를 만드는 오브젝트의 위치를 알려줘!”

    [시련?]

    [우리가 주는 시련은 지금 이 사건보다 어려울걸?]

    [이 의뢰, 사실 홈즈는 할 수 있을 텐데?]

    [0.1%의 해결 가능성을 아예 0%로 만드는 일이 될지도 몰라?]

    “그래, 그래도 나는 거래를 원한다!”

    순간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내 직감과 결정을 믿기로 했다.

    직접 오브젝트를 찾으려고 한다면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직감이 있었다.

    아마 찾게 되더라도 24시간이 지난 뒤겠지.

    [그래, 그러면 시련을 줄게.]

    [홈즈에게 시련을!] 

    [시련에 실패하면 홈즈는 내꺼야.]

    [시련에 성공하면 내가 그 오브젝트를 없애줄게.]

    왓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시련을 공개했다.

    [어려운 시련이네. 어려운 시련이야.]

    [이번 홈즈는 운이 안 좋아.]

    [여기서 홈즈가 찾는 오브젝트를 고르면 돼.]

    ***

    왓슨이 준 시련은 간단한 사진 고르기였다.

    탐정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여러 가지 변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망치를 든 후배는 그 옆에서 탐정을 거들고 있지만, 별 수확이 없어보였다.

    ‘나비를 생산하는 오브젝트’ 

    이런 애매한 단서만으로 100여장이 넘는 사진 속에서 정답을 찾아야한다?

    단순 확률로 봐도 1%미만의 미션이다.

    커다란 문 같은 오브젝트는 문에서 나비가 쏟아져 나온다고 할 수 있고, 나비 고치처럼 생긴 오브젝트는 나비가 계속 태어나는 고치라고 볼 수 있고… 등등 이유는 붙이기 나름이니까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답을 고르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물론 나는 다른 정보를 더 알고 있으니까, 논리적으로 판단이 가능했다.

    나는 나비를 생산하는 오브젝트가 ‘검은 거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도 아는 티는 내지 않았다. 

    왓슨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까 말이다. 

    우선 탐정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겠다.

    ***

    왓슨이 준 시련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정확히 152장의 사진을 나열해두고, 이 중에 하나 목표로 한 오브젝트가 있으니 골라서 맞추라고 하고 있었다.

    주어진 단서는 딱하나, 나비를 생산하는 오브젝트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힌트라고 하지 않는다.

    나비를 만들어낸다는 힌트만으로 고르는 것은 추리가 아니라 ‘찍기’라고 하는 거다.

    왓슨 말이 맞았다.

    맞추는 게 불가능한 문제야.

    운을 믿고 찍어야 하나? 

    운을 믿고 찍을 거라면 차라리 거래를 하지 않고 캠프를 직접 수색하는 쪽이 나았다. 

    1/152 의 확률 보다는 나았을 테니까!

    운에 맡긴다는 황당한 짓을 안 했을 테니까!

    “하아…”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후배조차 뚫어져라 사진을 보며 뭔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여기서 정신 똑바로 차리지 못한다면 선배 자격이 없지.

    정, 운을 믿고 찍어야 한다면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행운을 가늠하는 동전’을 꺼내서 던졌다.

    높게 날아오른 동전을 손으로 낚아채고 손바닥을 열어 확인을 했다.

    나온 숫자는 20. 운에 운명을 맡기려는 이 순간 딱 필요한 숫자가 나온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전에서 20이 나오자, 오히려 다른 쪽에 생각이 돌아간 것이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옆에 선 후배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을 살펴보고 있었다.

    회색 사신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건 오히려 교수가 학생이 하는 것을 관찰하는 시선처럼 느껴졌다.

    답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정답을 고르는지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회색 사신은 뭔가를 알고 있는 건가?

    “왓슨! 이 사진은 꼭 내가 선택해야하는 건가? 후배나, 회색 사신이 풀어도 되는 건가?”

    [후배가 대신 푸는 건 허용해 줄게.]

    [사신은?]

    [‘눈’도 없고, ‘눈’을 빌려오지도 않았으니까 괜찮지 않아?]

    [응, 사신이 대신 푸는 것도 허용해 줄게.]

    나는 내 관찰력을 믿었다.

    1%도 안 되는 운에 맡기기보다는, 내 관찰력에 선택을 맡기겠다.

    “회색 사신. 도와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나를 쳐다보고 있던 회색 사신은 희미하게 웃으면서 사진 쪽으로 걸어 나갔다.

    뚜방뚜방.

    회색 사신은 한 사진을 집어서 머리 위로 높이 들어올렸다.

    그 사진에는 ‘검은 거울’이 그려져 있었다.

    [홈즈가 풀어야 하는데? 동료가 풀어도 돼?]

    [‘눈’?]

    [우리가 허가했어?]

    [‘눈’은 아니야?]

    [반칙이 아니야?]

    [이상해.]

    왓슨은 혼란스럽게 중얼중얼 떠들었다.

    부정형의 그림자는 혼란스럽게 일그러지며 붉은 핏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뒤틀림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다.

    [홈즈. 축하해.]

    그 순간, 외눈 안경에 비치는 나비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뒤이어서 캠프 어딘가에서 거울이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짝짝짝

    왓슨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시련 통과.]

    [다음에 보자.]

    [오늘은 살았네?]

    그 말과 함께 왓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회색 사신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나 봤더니, 하늘에서 갈기갈기 찢겨진 검은 나비들의 시체들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후배! 빨리 뛰어!”

    하늘에서 끝없이 내리는 나비 시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캠프 밖으로 열심히 뛰었다. 

    회색 사신은 어느새 사라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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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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