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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콰직! 콰직!

         

       흔히 절벽을 오른다는 행위는 절벽의 올라갈 발판을 찾아 손과 발로 짚어야 하는 게 상식적인 행동이었다.

       손과 발로 틈을 오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솔직히 버거운 행위가 아닐 수 없기에, 상식적이라기 보단 당연한 행위이기도 했고.

         

       하지만 그가 절벽을 타는 방식은 타인과 달랐다.

       아니 상식과 괴리된 방식이었다.

         

       푸욱!

         

       “후우! 후우우!”

         

       손과 발을 억지로 박아버리는 것.

       절벽이 무슨 모래산도 아닐진대, 절벽을 오르는 그는 오를 때마다 거침없이 발로 절벽을 차서 디딤대를 만들고, 손날을 세워 박아 넣는 것으로 잡을 곳을 만들었다.

       그것도 맨발과 맨손으로.

       아무런 장비도 없이 그저 무식하게 나아갔으나, 그를 보고 있자면 무식하기보단 우직하단 용어가 생각났다.

       그저 정말 우직하게 위만 바라보았으며, 그렇게 절벽을 모두 올랐을 때.

         

       “하아…! 하아아!”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대자로 뻗어누웠다.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으며, 발과 손, 그리고 살결 등에도 쓸린 자국이 많았다.

         

       이는 그가 오르면서도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고, 얼마나 위험천만한 절벽 등반을 했는지 알려주는 증거였다.

       허나 아마 사람들은 모르리라.

       그가 무려 다섯 번이 넘도록 절벽 등반을 했고, 한 번은 떨어지기까지 했었다는 것을.

         

       사실상 살아 있는 게 신기했지만, 사내의 불가사의한 회복력과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단단해지도록 노력한 육체가 그를 보듬어주었으리라.

         

       사내, 이한은 체력을 모조리 소모한 상태였고, 움직일 마음이 추호도 들지 않았다.

       절벽 오르기란 건, 생각보다 더욱 험난한 훈련임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오를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쓰이는 건 물론이요, 체력과 심력도 장난 아니게 사용된다.

       한 번의 방심이 큰 화를 부르며, 얼마든지 다쳐도 이상할 게 없다.

       괜히 절벽 등반을 할 때 무수한 장비가 필요한 게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이한이 하는 행동은 객기였다.

         

       타인이 봤을 때 죽으려고 발광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허나 이한은 이토록 한계를 넘었다고 여겼을 때 육체가 좀 더 성장한다고 믿었다.

         

       뭐, 아직은 그다지 효력이 보이진 않았지만. 이것이 반복 숙달 된다면 언젠가는 그 성과가 나오리라.

       그것이 노력이란 거니까.

         

       “…다음 거 하자.”

         

       한숨 자고 싶을 만도 하건만, 이한은 수면 대신 움직이는 걸 선택했다.

       영양분을 가볍게 섭취해주곤, 곧장.

         

       타악! 타아악!

         

       그는 ‘기술’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기사단에서 대충 남들을 보고 배웠던 간단한 기술들.

       대략 서브미션과 같은 관절기 위주의 기술이다.

       평소 그다지 연습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한은 관절기 연습에 돌입했다.

         

       연습 대상은 모래를 가득 넣어 만든 인간 체형의 인형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게 가장 좋은 연습 수단이지만,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그런 식으로 관절기와 태클 연습, 그리고 유도를 하듯 고목에 줄을 묶고 엎어치기 연습도 했다.

         

       전생 부사관 시절 배워 놓은 유도.

       이제껏 그다지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 또한 단련하다 보면 쓸 데가 있겠지.

         

       이밖에도 검과 창술 연습, 도끼질이랑 비수(匕首) 날리기도 연습해야 한다.

       다른 기사처럼 열 개가 넘는 무기를 자유롭게 다루진 못해도, 할 수 있는 건 다 연습해놔야 하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네, 진짜.’

         

       이한은 하루가 너무 짧다며 투덜댔으나, 그는 묵묵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해 갔다.

         

       대오각성까진 아니지만, 어젯밤 일들이 사내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엔 충분했고. 이한은 가슴속에 독심을 품었다.

         

       발타르, 그 영감을 제외하고도 이겨야 할 양반들이 더 증식했기에.

         

       후우웅!

         

       그의 몸에선 각오 어린 파공성이 짙어져만 갔다.

         

       *

         

       ……그리고 이한은 지각했다.

         

       수업 첫날의 일이었다.

         

       *

         

       “들었어? 그 사람 첫날부터 지각해서 또 학장님한테 불려갔다더군.”

       “입학식 때도 그랬지만, 진짜 여러 의미로 역대급인 사람이네.”

       “실력은 대단해 보이던데.”

       “실력이 대단해도 행동이 불량하고, 예법을 배운 흔적이 없다. 기사가 아니라 그저 용병에 불과한 자가 아니던가.”

       “…그런 점 때문에 좌천된 것일 수도 있겠군. 윗분들 눈에는 마음에 들지 않을 만도 하니.”

       “그도 그렇군.”

         

       아카데미는 넓다.

       하지만 동시에 좁기도 하다.

       아무래도 아직 여러 의미로 활발한 생도들이니, 저들끼리 무리를 지으며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 의미가 뭐냐면 소문이 퍼지기 쉽고, 비밀이 없다는 뜻도 된다.

         

       오늘 아침에 있던 일조차 10분이면 퍼지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그 교관, 괜찮은 거 맞겠지?”

       “글쎄.”

         

       검술학부의 생도들은 걱정이 역력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부터 그들을 가르칠 교관이 영 불안스러웠기에.

         

       약 80명의 생도가 모인 연무장에는 불안감 섞인 떠들썩함이 감돌았다.

         

       2,3학년 생도들도 있긴 했지만. 그들은 대부분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2,3학년부터는 대부분 검술학부에 다니기보단, 가문에서 개인수련을 통해 모든 걸 해결하려는 탓이다.

       그나마 검술대회가 잡히면 그제야 스리슬쩍 모습을 드러내거나.

         

       즉, 이 말은 1학년 생도만 대략 모인 건데 80명이나 된다는 뜻도 되었다.

       이들 중엔 투기법을 익힌 수련기사 수준도 있다면, 검사란 이름을 내는 것도 민망한 부류도 있었다.

       특히 평민 출신들이 그러했는데, 동네 검술학관 같은 곳에서 기초만 대략적으로 배운 이들이었다.

         

       아니, 저걸 보고 기초를 배웠다고 해도 되는 될까 싶은 느낌.

       

       허나 이런 이들은 양반인 게, 아예 검술이나 기사도 뒷전이고, 그냥 미래의 기사가 될지 모르는 이들과 친분을 다질 생각으로 찾아온 이들도 제법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리라.

         

       “한데, 저분이 수업에 나올 줄 몰랐군.”

       “그러니까 말이야. 개인 수련에 시간을 쏟는 편이 저분한텐 좋을 텐데.”

         

       그러나 올해는 나름 풍년인 상황이었다.

       아무리 인원이 많아도, 대부분 쭉정이인 경우와 달리, 올해는 거물급이 더러 섞여 있는 것이다.

         

       일단 올해 입학생 중 독보적인 존재.

         

       로엔 공자.

         

       정식 기사와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는, 유력한 차기 대공 후보 중 한 사람이었다.

       허나 이밖에도 쟁쟁한 이들은 많다.

         

       용병총합이 총수, 또는 용병왕이라 불리는 위대한 용병의 제자라든지, 아니면 검술 명문가인 오펜 가문의 장남이라든지.

       또한 사막과 초원, 밀림 등에 산다고 전해지는 신비종족, 혹은 야만 전사라 불리는 바바리안의 후손이라든지.

       끝으로 주문세계를 확립하면 신비로운 힘 마력을 쓰는.

         

       ……마법사라든지.

         

       “…저분은 왜 여기 있지?”

       “마법학부의 수업은 자율적인 게 대부분이니 이리로 온 게 아닐까? 학점이나 채울 겸. 아니면 다른 이들처럼 안면이나 트러 온 거겠지.”

       “그, 그런가?”

       “마법사치곤 특이한 행보군.”

       “동감이야.”

         

       요정처럼 아름다운 천재 여마법사.

       아이린 윈들러를 보며 사람들은 이채 섞인 시선을 주었다.

       아무래도 검술학부 수업에 마법사가 있는 경우는 드무니까.

         

       “…끙.”

         

       그리고 그녀, 아이린 윈들러는 이러한 관심이 어색하기 그지없는지 쭈뼛대고 있었다.

         

       저 또한 이 자리가 영 껄끄러운 모양이다.

         

       ‘괘, 괜히 신청했나?’

         

       아이린 윈들러는 본인도 정작 자기가 신청하고도 이게 맞나 싶었었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었다.

       이는 그의 뇌리에서 떠드는 유령 탓이 아니라, 이번에는 온전히 그녀가 수강신청기간 때 실수를 한 탓이니까.

         

       ‘남는 수업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지….’

         

       [아린이 바보. 그러니까 미리미리 하라니까.]

         

       ‘시끄러! 따지고 보면 집구하느라 시간이 부족했었단 말이야!’

         

       [시야가 좁아서 그래, 바보 아린이.]

         

       ‘말이면 단 줄 아나!’

         

       하루에도 몇 번이고 다투는 유령과 오늘도 싸우는 그녀였으나, 내심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그래도 안면 있는 교관의 수업을 듣게 되는 거니까.

         

       ‘의, 의외로 신경 써 주실 지도 몰라.’

         

       이웃이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은 사이가 아닌가.

       아이린은 내심 일이 잘 풀리란 기대감을 품었다.

         

       그때.

         

       “아, 모두 여기 있었군.”

         

       그가 드디어 연무장에 모습을 드러냈고, 아이린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반가운 얼굴로….

         

       “…응?”

         

       -맞이하려고 했으나, 아이린을 포함하여 나머지 생도들은 눈을 끔뻑거리며 의문을 느꼈다.

         

       그도 그럴게.

         

       “의자.”

       “예에!”

       “목청 음량 좀 줄여. 시끄럽다.”

       “아, 알겠습니다.”

       “목소리 떨지 말고. 누가 보면 내가 너 잡아먹는 줄 알겠다.”

       “…예에.”

       “이제야 좀 낫네. 응? 의자가 뭐가 이렇게 낮아!!”

       “히익!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아카데미 생활 끝나냐?”

       “…….”

       “농담이다.”

       “…….”

         

       …언제 백작가의 공자가 하인으로 전직한 걸까?

         

       데미안 폴렛.

         

       전날 입학식 사고의 시발점을 연 철없는 도련님이 그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얼굴은 무슨 불어터진 라비올리마냥 부푼 것이 영 볼썽사납기도 했고.

         

       생도들은 눈을 끔뻑였다.

         

       *

       *

       *

         

       이한은 오늘도 본의 아니게 학장에게 혼나고 돌아온 길이었다.

       아침 회의 시간부터 지각을 했으니, 혼나도 이상할 건 없었다.

         

       ‘…이번에만 몇 번째더라.’

         

       전생에는 교장실조차 가 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이번 생은 학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게 된다.

       뭐, 자초한 것이기에 억울한 건 없지만,

       자신이 이토록 불성실한 놈이었나 싶어 죄의식 비슷한 게 생기기도 했다.

       이제 학장 얼굴 보면 좀 미안함부터 든다.

         

       그러나

         

       “아, 안녕하십니까, 경….”

       “…….”

         

       전혀 미안하지 않은.

       불어터진 만두, 아니 라비올리 녀석이 그를 아는 척하는 것에 이한은 아침부터 기분 잡쳤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 자식이 감히 내 앞에 나타나!

         

       “장갑이 또 맞고 싶어서 왔나 보지?”

         

       이한은 눈을 반개하며 장갑도 없는 손을 매만졌다.

       대충 이번엔 구리 동전이라도 던질까 싶다.

         

       한데.

         

       털썩!

         

       “저, 저를 경의 종자(從者)로 삼아주십시오! 조, 종기사가 되겠습니다!”

       “……뭐?”

         

       뜬금 놈은 무릎을 꿇으며 종기사로 받아달란 미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종기사, 그거 내가 알기론 분명 말만 종기사지….’

         

       …노예가 되겠다는 신체포기 선언 아니었던가?

         

       슬쩍.

         

       이한은 슬그머니 놈에게서 벗어나랴 뒤로 물러섰다.

         

       거 취향 한 번 거지같은 놈이란 경멸과 함께.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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