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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더블배럴 샷건.
     
   – 어…? 시발? 저거 뭐야?
     
   이게 대체 뭐 하는 방송인지 잠자코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물론, 함께 튜토리얼 하던 각성자들조차 화들짝 놀랐다.
     
     
   총? 각성자가 총을 쓴다고?
     
   그보다 저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등등의 의문.
     
   그러나 소녀는 이 샷건이 악마를 때려잡아 주리라 믿었다.
     
   원래 더블배럴 샷건은 사람이나 짐승, 혹은 짐승 같은 사람을 한 방에 주님 곁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던가.
     
   모 영화에서는 뱀파이어는 물론 악마까지 때려잡았으니.
     
   -“화력! 더 압도적인 화력만이 불결한 악마들을 때려잡을 방법이다!”
     
   소녀는 교단에서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능력으로 소환해 낸 것인지라 단 두 발만 쏘고 버려야 한다는 게 단점이지만.
     
   [축성된 악마 사냥꾼의 폭발형 추적하는 더블배럴 샷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사기적인 물건이었다.
     
     
   철컥-
     
   양손으로 샷건을 꽉 쥔 소녀가 전방을 향해 조준한 채,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구가 불을 뿜으며 뒤이어 날아오던 돌덩어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내렸다.
     
     
   “아니, 이, 뭔, 씹.”
     
   지켜보던 사내가 차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이게 왜 되지?
     
   그보다 저 작은 애가 나보다 힘이 센 게 말이 돼?
     
   겁나 카리스마 있는데?
     
   어디 대형 길드가 각 잡고 요람에서부터 키운 생체병기라도 되는 건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거나?
     
     
   – 아니 저거 어디서 팔아? 나도 사고 싶은데?
     
   – 갑자기 소환하는 거 보면 능력일지도
     
   – ㅇㅇ애당초 가상현실이 각성자 능력은 구현해도 물건을 들고 가지는 못함
     
   – 인벤토리 아이템은 소환되던데?
     
   – 정확히는 ‘귀속’된 아이템은 능력처럼 써지는 거
     
   – 엄마! 나도 각성자가 될래요!
     
   채팅창 역시 혼란의 도가니였다.
     
   비각성자 직원들은 차마 화면을 바라보지 못한 채 채팅창으로 걱정을 쏟아냈고.
     
   각성자 직원들은 심상치 않은 소녀의 몸놀림에 슬슬 흥미를 갖고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싸우실 거죠?”
     
   난데없는 소녀의 물음에 사내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저 작은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데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깨와 허벅지에 박힌 돌조각을 빼내고 있자, 슬쩍.
     
   “이 정도로 다치면 안 되는데….”
     
   고개를 돌려 본 소녀가 미간을 팍 찌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요. 치료해 드릴게요.”
     
   그렇게 조그마한 손을 뻗어 상처를 쓸어내리자 놀랍게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 뭔 시발…”
     
   애 앞이라 욕은 안 하고 싶은데.
     
   아니, 이건 진짜 너무 불합리하지 않나?
     
   대체 각성 능력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거야?
     
   난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지?
     
   현자 타임에 이른 사내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저 소녀가 대단한 거구나!
     
   그럼… 숭배해야겠지?
     
     
   “가자! 내가 앞장서마!”
     
   회복 능력이 있는 각성자는 보호 1순위 대상.
     
   이 작은 보배를 다치게 둘 수야 없다!
     
   사내가 두툼한 팔뚝을 들어 보이며 성큼성큼 앞장서 나갔다가.
     
   텁-
     
   곧장 붙잡혔다.
     
   “왜?”
   “…아저씨 약하잖아요.”
     
   그리고 너 허접이잖아 소리를 듣고 쩌적- 빌런의 석화 능력에 당한 듯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냥 제 뒤나 지켜주세요. 약하시니까 조심히 따라오셔야 해요?”
   “어, 어… 응….”
     
   사내의 자존심을 완전히 산산조각 낸 한마디였는데.
     
   사실 소녀에겐 당연한 말이었다.
     
     
   그간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이교도들을 잡겠다고 무리하다가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는지.
     
   심지어 교육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아이도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악마를 상대하다 죽는 건 순교.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니 영광스럽고 기뻐할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가서 엄마 아빠를 만나면 안 돼.
     
   엄마 아빠가 날 걱정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천국에 가면, 소녀가 올라갈 자리가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
     
   역시 난 태생부터 죄인인가 봐.
     
   소녀는 실망한 듯한 사내의 표정에 자책하면서도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 나갔다.
     
     
   빌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답시고 엄청난 고난도로 악명 높은 ‘더 히어로’.
     
   그 사이 빌런에게 당해 죽은 각성자 역시 상당했다.
     
   당장 소녀와 멀지 않은 곳.
     
   첫 전투가 이뤄졌던 3차선 도로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광경에조차 소녀의 시선은 한 구석, 살육의 현장으로 향해 있었다.
     
     
   이미 멀쩡히 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사… 살려…. 살려줘….”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서서히 아주 느리게 돌로 변해가기 시작한 사람.
     
   이미 돌이 되어 동상처럼 굳어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한 채 산산조각 난 돌 조각까지.
     
   사방에 흩뿌려진 돌조각들이 꼭 사람들의 피와 눈물처럼 보였다.
     
     
   “크핫! 개새끼들 속 시원하다! 책상물림 하는 비 각성자 새끼들 주제에 뻗댈 때부터 뒤질 각오는 했어야지!”
     
   차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광경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멈칫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 어떡해… 애 트라우마 생기는 거 아니야?
     
   – 무서워서 굳었네
     
   – ㅇㅇ첫 출동에서 패닉에 빠지는 건 흔하지
     
   – 근데 더 히어로 통각 수치가 현실의 80%라고 하지 않았나?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이건 현실이 아니다.
     
   가상현실, 가짜, 게임이라고 했다.
     
   알고 있음에도 울컥 치미는 분노에 양팔을 바르르 떨었다.
     
   역시, 악마는 다 죽어야 해.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저 같은 죄인에게 소원이라는 능력을 내려주신 거니까.
     
   “갈 거냐?”
   “네.”
     
   소녀는 탄창을 다 쓴 샷건을 내다 버리고는, 천천히 빌런을 향해 다가갔다.
     
     
   각성자들에게 제압당하지 않았다는 걸 자랑하듯, 빌런은 기어코 살려달라고 빌던 시민의 발목을 으스러뜨렸다.
     
   콰직!
     
   “끄아아아악!”
   “지랄. 통각도 없을 텐데 소리는 왜 질러?”
     
   선 채로 굳어 있다가 발목이 부서진 꼴.
     
   시민은 어쩔 새도 없이 콘크리트 바닥 위로 쓰러져 내렸고, 그대로 이마가 박살 나버렸다.
     
   퍼석- 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튀는 피.
     
   퉷- 시체 위로 돌로 된 침을 뱉은 빌런은 그제야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봤다.
     
   “뭐야, 꼬맹이? 너도 죽고 싶어서 온 거냐?”
     
   평범한 얼굴이었다.
     
   길에서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상.
     
     
   소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싸늘한 목소리였다.
     
   소녀의 평소 목소리를 알고 있던, 소녀의 생김새를 알고 있던 이들에겐 낯설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마치… 갑자기 어른이 되어 성장한 것만 같은 느낌.
     
     
   그런 목소리에 담긴 살기를 눈치챈 걸까.
     
   낄낄거리며 웃기 바쁘던 빌런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왜긴? 저열한 머글 새끼들 주제에 뭐라도 된 듯 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지. 이 새끼들은 노예의 정체성을 좀 깨달을 필요가 있어.”
     
   소녀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전능 신께 선택받은 이들은 신의 사자.
     
   평범한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무엇보다 그렇게 베풀어야 최후에는 천국에 갈 수 있을 테고.
     
   신께 받은 능력을 제 것처럼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오만의 죄악이었으니.
     
   소녀의 샛노란 눈동자 위로 선명한 경멸이 떠올랐다.
     
     
   분명 같은 각성자임에도 왜들 제 생각을 이해해 주지 않는 걸까.
     
   한낱 비각성자들 따위가 위에서 명령하고, 그 혜택만 받아먹는 게 짜증 나지도 않는 걸까?
     
   저보다 한참 어린 소녀조차 저런 반응을 보이자, 빌런 역시 한층 신경질적으로 도발했다.
     
   “왜, 내가 죽인 것 중에 네 애미애비라도 있었디?”
     
   그런 빌런의 도발에 소녀는 말없이 웃었다.
     
     
   아. 역시 이 자는 악마가 맞아.
     
   그리고 악마는 설득하고 교화할 대상이 아니지.
     
   – 아니 애 무섭게 왜 이렇게 실실 웃니…?
     
   “뭐 너무 걱정마라. 너도 똑같이 보내줄 테니.”
     
   그렇게 빌런이 시시덕대며 다가오던 때였다.
     
     
   철컥-
     
   소녀는 다시금 더블배럴 샷건을 소환해 내 들었다.
     
   얇은 팔뚝보다도 두꺼운 새까만 총신.
     
   그렇게 샷건을 들어 겨누자 움찔- 놀라던 빌런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샷건? 지금 그걸로 나랑 싸우겠다고?”
     
   그 역시 사람인지라 크고 웅장한 두 개의 총구를 보자 놀랐던 건데.
     
   그래봤자 결국 총은 총이다.
     
   석화 능력을 각성한 그에겐 기껏 해 봤자 피부에 붙은 이끼나 좀 긁어낼 수준이다.
     
   “이야, 총을 어디서 구해왔는진 모르겠는데 쏠 줄은 아냐? 응?”
     
   다시금 기세등등해진 빌런이 총구 앞으로 이마를 들이밀었다.
     
   돌처럼 단단한 이마에 총구가 맞닿자, 그그극- 기분 나쁜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쏴 봐. 이걸로 날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면 넌 살려줄게.”
     
   이 자리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반응이 비슷했을 거다.
     
     
   저 작은 꼬마가 샷건을 쏠 줄은 알까?
     
   쏠 줄 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죽일 각오는 되어 있을까?
     
   그런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현대 무기로 그를 죽이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소녀의 반응은 빌런의 생각과 달랐다.
     
     
   “완전 루시퍼야.”
     
   아아, 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
     
   분명 저 회색빛 피부 아래 루시퍼가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악마를 죽이는 데 망설임은 죄악.
     
   소녀는 자비 없이 손가락을 당겼다.
     
     
   타아앙-!
     
   더블배럴 샷건의 두 개의 총구로부터 거센 화염이 터져 나온다.
     
   반동을 버티지 못한 소녀의 얄팍한 손목이 우득, 직각으로 꺾이고.
     
   그렇게 가차 없이 쏘아진 총알은 곧장 빌런의 이마에 적중하며 폭발했다.
     
   퍼버벅!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는 탄두와 함께 회색빛 돌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커헉!”
     
   기세등등하게 이마를 들이댔던 것 치고는 볼품없는 비명.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대자로 벌러덩 자빠진 꼴에 시청자들이 미친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 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저거 뭐야?
     
   – 보통 능지가 부족한 애들이 빌런이 되긴 하지ㅋㅋㅋㅋㅋ
     
   – 아니 뭔 위력이 저 정도라고? 그냥 총은 아닌 듯?
     
   – ㅇㅇ위력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한 방 컷이겠는데
     
     
   시청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소녀의 등장에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물론, 언제고 소녀를 지키고자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사내 역시 입을 쩍 벌렸다.
     
   현대 무기는 게이트 너머의 존재에게 통하지 않는다.
     
   게이트 너머의 힘으로 각성한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상식을 박살 내는 상황에 소녀를 걱정하던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대신 소녀의 능력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이어질 독특한 싸움을 기대하는 의견이 떠올랐다.
     
   이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건 소녀의 능력을 알고 있던 길드장과 양조야 강사뿐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은 소녀의 능력이 창조 계열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 인첸터 계열일지도
     
   – 총에 인첸트하는 건 그렇다 쳐도 조금 전 달리기 속도는?
     
   – 희귀한 케이스긴 한데 생체 인첸트가 가능한 경우도 있지
     
     
   그런 혼란에도 가상현실 속 상황은 점차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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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배럴 샷건.

– 어…? 시발? 저거 뭐야?

이게 대체 뭐 하는 방송인지 잠자코 지켜보던 길드원들은 물론, 함께 튜토리얼 하던 각성자들조차 화들짝 놀랐다.

총? 각성자가 총을 쓴다고?

그보다 저거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등등의 의문.

그러나 소녀는 이 샷건이 악마를 때려잡아 주리라 믿었다.

원래 더블배럴 샷건은 사람이나 짐승, 혹은 짐승 같은 사람을 한 방에 주님 곁으로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던가.

모 영화에서는 뱀파이어는 물론 악마까지 때려잡았으니.

-“화력! 더 압도적인 화력만이 불결한 악마들을 때려잡을 방법이다!”

소녀는 교단에서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능력으로 소환해 낸 것인지라 단 두 발만 쏘고 버려야 한다는 게 단점이지만.

[축성된 악마 사냥꾼의 폭발형 추적하는 더블배럴 샷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사기적인 물건이었다.

철컥-

양손으로 샷건을 꽉 쥔 소녀가 전방을 향해 조준한 채, 곧장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총구가 불을 뿜으며 뒤이어 날아오던 돌덩어리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내렸다.

“아니, 이, 뭔, 씹.”

지켜보던 사내가 차마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이게 왜 되지?

그보다 저 작은 애가 나보다 힘이 센 게 말이 돼?

겁나 카리스마 있는데?

어디 대형 길드가 각 잡고 요람에서부터 키운 생체병기라도 되는 건가?

아니면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라거나?

– 아니 저거 어디서 팔아? 나도 사고 싶은데?

– 갑자기 소환하는 거 보면 능력일지도

– ㅇㅇ애당초 가상현실이 각성자 능력은 구현해도 물건을 들고 가지는 못함

– 인벤토리 아이템은 소환되던데?

– 정확히는 ‘귀속’된 아이템은 능력처럼 써지는 거

– 엄마! 나도 각성자가 될래요!

채팅창 역시 혼란의 도가니였다.

비각성자 직원들은 차마 화면을 바라보지 못한 채 채팅창으로 걱정을 쏟아냈고.

각성자 직원들은 심상치 않은 소녀의 몸놀림에 슬슬 흥미를 갖고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저씨, 싸우실 거죠?”

난데없는 소녀의 물음에 사내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저 작은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데 물러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어깨와 허벅지에 박힌 돌조각을 빼내고 있자, 슬쩍.

“이 정도로 다치면 안 되는데….”

고개를 돌려 본 소녀가 미간을 팍 찌푸리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자요. 치료해 드릴게요.”

그렇게 조그마한 손을 뻗어 상처를 쓸어내리자 놀랍게도 상처가 아물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뭐, 뭔 시발…”

애 앞이라 욕은 안 하고 싶은데.

아니, 이건 진짜 너무 불합리하지 않나?

대체 각성 능력을 몇 개나 갖고 있는 거야?

난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지?

현자 타임에 이른 사내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저 소녀가 대단한 거구나!

그럼… 숭배해야겠지?

“가자! 내가 앞장서마!”

회복 능력이 있는 각성자는 보호 1순위 대상.

이 작은 보배를 다치게 둘 수야 없다!

사내가 두툼한 팔뚝을 들어 보이며 성큼성큼 앞장서 나갔다가.

텁-

곧장 붙잡혔다.

“왜?”

“…아저씨 약하잖아요.”

그리고 너 허접이잖아 소리를 듣고 쩌적- 빌런의 석화 능력에 당한 듯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냥 제 뒤나 지켜주세요. 약하시니까 조심히 따라오셔야 해요?”

“어, 어… 응….”

사내의 자존심을 완전히 산산조각 낸 한마디였는데.

사실 소녀에겐 당연한 말이었다.

그간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이교도들을 잡겠다고 무리하다가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는지.

심지어 교육을 버티지 못하고 죽은 아이도 두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악마를 상대하다 죽는 건 순교.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니 영광스럽고 기뻐할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천국에 가서 엄마 아빠를 만나면 안 돼.

엄마 아빠가 날 걱정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천국에 가면, 소녀가 올라갈 자리가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

역시 난 태생부터 죄인인가 봐.

소녀는 실망한 듯한 사내의 표정에 자책하면서도 성큼성큼 앞장서 걸어 나갔다.

빌런에 대한 경각심을 높인답시고 엄청난 고난도로 악명 높은 ‘더 히어로’.

그 사이 빌런에게 당해 죽은 각성자 역시 상당했다.

당장 소녀와 멀지 않은 곳.

첫 전투가 이뤄졌던 3차선 도로는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광경에조차 소녀의 시선은 한 구석, 살육의 현장으로 향해 있었다.

이미 멀쩡히 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사… 살려…. 살려줘….”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서서히 아주 느리게 돌로 변해가기 시작한 사람.

이미 돌이 되어 동상처럼 굳어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한 채 산산조각 난 돌 조각까지.

사방에 흩뿌려진 돌조각들이 꼭 사람들의 피와 눈물처럼 보였다.

“크핫! 개새끼들 속 시원하다! 책상물림 하는 비 각성자 새끼들 주제에 뻗댈 때부터 뒤질 각오는 했어야지!”

차마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끔찍한 광경에 소녀가 저도 모르게 멈칫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 어떡해… 애 트라우마 생기는 거 아니야?

– 무서워서 굳었네

– ㅇㅇ첫 출동에서 패닉에 빠지는 건 흔하지

– 근데 더 히어로 통각 수치가 현실의 80%라고 하지 않았나?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이건 현실이 아니다.

가상현실, 가짜, 게임이라고 했다.

알고 있음에도 울컥 치미는 분노에 양팔을 바르르 떨었다.

역시, 악마는 다 죽어야 해.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저 같은 죄인에게 소원이라는 능력을 내려주신 거니까.

“갈 거냐?”

“네.”

소녀는 탄창을 다 쓴 샷건을 내다 버리고는, 천천히 빌런을 향해 다가갔다.

각성자들에게 제압당하지 않았다는 걸 자랑하듯, 빌런은 기어코 살려달라고 빌던 시민의 발목을 으스러뜨렸다.

콰직!

“끄아아아악!”

“지랄. 통각도 없을 텐데 소리는 왜 질러?”

선 채로 굳어 있다가 발목이 부서진 꼴.

시민은 어쩔 새도 없이 콘크리트 바닥 위로 쓰러져 내렸고, 그대로 이마가 박살 나버렸다.

퍼석- 소리와 함께 주변으로 튀는 피.

퉷- 시체 위로 돌로 된 침을 뱉은 빌런은 그제야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소녀를 바라봤다.

“뭐야, 꼬맹이? 너도 죽고 싶어서 온 거냐?”

평범한 얼굴이었다.

길에서 한 번쯤은 마주했을 법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상.

소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싸늘한 목소리였다.

소녀의 평소 목소리를 알고 있던, 소녀의 생김새를 알고 있던 이들에겐 낯설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마치… 갑자기 어른이 되어 성장한 것만 같은 느낌.

그런 목소리에 담긴 살기를 눈치챈 걸까.

낄낄거리며 웃기 바쁘던 빌런의 표정이 설핏 굳었다.

“왜긴? 저열한 머글 새끼들 주제에 뭐라도 된 듯 구는 게 마음에 안 들어서지. 이 새끼들은 노예의 정체성을 좀 깨달을 필요가 있어.”

소녀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전능 신께 선택받은 이들은 신의 사자.

평범한 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무엇보다 그렇게 베풀어야 최후에는 천국에 갈 수 있을 테고.

신께 받은 능력을 제 것처럼 막무가내로 휘두르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오만의 죄악이었으니.

소녀의 샛노란 눈동자 위로 선명한 경멸이 떠올랐다.

분명 같은 각성자임에도 왜들 제 생각을 이해해 주지 않는 걸까.

한낱 비각성자들 따위가 위에서 명령하고, 그 혜택만 받아먹는 게 짜증 나지도 않는 걸까?

저보다 한참 어린 소녀조차 저런 반응을 보이자, 빌런 역시 한층 신경질적으로 도발했다.

“왜, 내가 죽인 것 중에 네 애미애비라도 있었디?”

그런 빌런의 도발에 소녀는 말없이 웃었다.

아. 역시 이 자는 악마가 맞아.

그리고 악마는 설득하고 교화할 대상이 아니지.

– 아니 애 무섭게 왜 이렇게 실실 웃니…?

“뭐 너무 걱정마라. 너도 똑같이 보내줄 테니.”

그렇게 빌런이 시시덕대며 다가오던 때였다.

철컥-

소녀는 다시금 더블배럴 샷건을 소환해 내 들었다.

얇은 팔뚝보다도 두꺼운 새까만 총신.

그렇게 샷건을 들어 겨누자 움찔- 놀라던 빌런이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샷건? 지금 그걸로 나랑 싸우겠다고?”

그 역시 사람인지라 크고 웅장한 두 개의 총구를 보자 놀랐던 건데.

그래봤자 결국 총은 총이다.

석화 능력을 각성한 그에겐 기껏 해 봤자 피부에 붙은 이끼나 좀 긁어낼 수준이다.

“이야, 총을 어디서 구해왔는진 모르겠는데 쏠 줄은 아냐? 응?”

다시금 기세등등해진 빌런이 총구 앞으로 이마를 들이밀었다.

돌처럼 단단한 이마에 총구가 맞닿자, 그그극- 기분 나쁜 긁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쏴 봐. 이걸로 날 조금이라도 다치게 하면 넌 살려줄게.”

이 자리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반응이 비슷했을 거다.

저 작은 꼬마가 샷건을 쏠 줄은 알까?

쏠 줄 안다고 하더라도 사람을 죽일 각오는 되어 있을까?

그런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현대 무기로 그를 죽이는 건 불가능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소녀의 반응은 빌런의 생각과 달랐다.

“완전 루시퍼야.”

아아, 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

분명 저 회색빛 피부 아래 루시퍼가 숨어 있음이 분명하다.

악마를 죽이는 데 망설임은 죄악.

소녀는 자비 없이 손가락을 당겼다.

타아앙-!

더블배럴 샷건의 두 개의 총구로부터 거센 화염이 터져 나온다.

반동을 버티지 못한 소녀의 얄팍한 손목이 우득, 직각으로 꺾이고.

그렇게 가차 없이 쏘아진 총알은 곧장 빌런의 이마에 적중하며 폭발했다.

퍼버벅!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는 탄두와 함께 회색빛 돌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커헉!”

기세등등하게 이마를 들이댔던 것 치고는 볼품없는 비명.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대자로 벌러덩 자빠진 꼴에 시청자들이 미친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 ㅋㅋㅋㅋㅋㅋㅋ아니 저거 뭐야?

– 보통 능지가 부족한 애들이 빌런이 되긴 하지ㅋㅋㅋㅋㅋ

– 아니 뭔 위력이 저 정도라고? 그냥 총은 아닌 듯?

– ㅇㅇ위력이 조금만 더 강했으면 한 방 컷이겠는데

시청자들뿐만이 아니었다.

소녀의 등장에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플레이어들은 물론, 언제고 소녀를 지키고자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사내 역시 입을 쩍 벌렸다.

현대 무기는 게이트 너머의 존재에게 통하지 않는다.

게이트 너머의 힘으로 각성한 각성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상식을 박살 내는 상황에 소녀를 걱정하던 이야기는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대신 소녀의 능력이 무엇인지 추측하고, 이어질 독특한 싸움을 기대하는 의견이 떠올랐다.

이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건 소녀의 능력을 알고 있던 길드장과 양조야 강사뿐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대부분은 소녀의 능력이 창조 계열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 인첸터 계열일지도

– 총에 인첸트하는 건 그렇다 쳐도 조금 전 달리기 속도는?

– 희귀한 케이스긴 한데 생체 인첸트가 가능한 경우도 있지

그런 혼란에도 가상현실 속 상황은 점차 치열해졌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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