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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라다토크는 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괴물의 껍질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검이 빗겨났다.

       평범한 몬스터보다 훨씬 두터운 외 껍질. 거기다가 집게발에 실린 힘 또한 만만치 않다.

       

       대장 개체인 건가. 라다토크는 불꽃을 거세게 일으켰다. 화력을 높여 온몸에 불을 휘감았다.

       

       검과 기적의 시대. 그 시대를 온몸으로 받아냈던 태양신교의 철혈곰은 거세게 날뛰었다.

       

       종교의 시대는 저물어갔다. 날마다 그 뜻이 흐릿해졌다. 이단심문관들의 역할도 옅어졌으며, 마법사들의 입지가 늘어남에 따라 '이단'이라는 글자가 가진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단심문관들의 입지가 줄어들었다. 할 일이 줄어듦에 따라, 이단심문관들은 이단을 처리하는 것 대신, 다른 것에 집중해야만 했다.

       

       사람을 해치는 몬스터를 토벌함으로 태양신교의 명성을 널리 떨치는 것.

       

       이단심문관 라다토크의 또다른 별명은 몬스터 도살자였다. 거대한 중검이 움직임에 따라 이족보행 가재류의 대가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하지만 전황은 좋지 않았다. 대장 개체는 하나가 아니었다. 라다토크는 어렵지 않게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하위 성기사들에게는 무척 까다로운 적들이었다.

       

       "이런 미친?!"

       "뭐 이리 단단해?!"

       "성력을 높여!"

       "하지만 그랬다가는 나중에 지쳐서 쓰러질 수도…!"

       

       전투는 길었다.

       너무 길다는 게 문제였다.

       

       화력을 높이기에는 체력이 금세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라다토크에게는 문제점이 아니었지만, 휘하의 다른 성기사들에겐 큰 문제점으로 다가왔다.

       성력이 떨어지면 다시 충전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화력을 높였던 성기사들의 불꽃 중 일부가 꺼지기 시작했다. 훈련을 따라오지 못하던 이단심문관부터 불꽃이 약해졌다.

       

       "이런 씨…!"

       

       욕설을 내뱉으려던 이단심문관의 얼굴 앞으로 이족 보행 가재가 다가왔다. 둔탁한 집게발이 인간의 머리를 부수기 위해 거세게 날아들었다.

       라다토크가 흠칫했다. 눈앞의 게딱지들에게 이목이 쏠린 탓에 반응이 늦었다.

       

       안 돼.

       죽는…!

       

       "아 씨."

       

       불꽃이 번뜩였다.

       

       "집중 안 해요?"

       

       거세게 피어오른 불꽃이 집게발을 먹어치웠다. 유려한 검이 외껍질 사이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었다.

       사방으로 튀어 나가는 체액. 한순간에 잘려버린 이족보행 가재가 바닥에 철푸덕 엎어졌다. 

       

       이단심문관의 검술.

       단죄의 검.

       

       라다토크가 어지러운 전황에도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느라 뒤늦게 눈치챘다.

       언제 저렇게…

       

       저렇게나 성장한 거지…?

       

       자하드.

       내부고발자가 된 견습 사제.

       

       처음에는 단순히 싹싹한 견습 사제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비유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낳지도 않은 아들이 생각나고는 했다.

       하지만 틀렸다. 라다토크는 자신의 생각이 크게 틀렸음을 인지했다.

       

       단죄의 검은 배우기 어렵다. 성기사들의 기초 검술인 불의 노래에서 파생되었다고 배우기 쉬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입문 난이도만 보면 몇 배는 되는 수준.

       거기다가 단죄의 검은 높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타고난 성력이 없다면 펼치는 것도 불가능하다.

       

       저걸 어떻게 며칠 만에 배워서 쓰고 있는 거지?

       

       라다토크는 등골이 서늘함을 느꼈다. 자신이 검을 배웠던 시절에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빠른 습득력. 넓은 시야. 약점을 찾아서 쑤시는 잔혹한 검. 적재적소에 터지는 성화(聖火).

       

       라다토크는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해내고 말았다.

       

       "축복받은 아이…!"

       

       이단심문관이 되기 위해 태어난 자로다!

       

       하지만 라다토크와 자하드의 분전에도 전황은 어지러웠다. 게딱지들 사이사이에 섞인 두 발로 선 가재들의 숫자는 제법 많았으며, 단순히 두 명으로 감싸기에는 힘듦이 있었다.

       두꺼운 외껍질. 그것을 파고들 만한 화력이 없었다. 맷집은 약하지만, 껍질을 뚫기 위해서는 날카로운 절삭력이 필요했다.

       

       단순한 화력으로는 부족…

       

       "곰탱이."

       

       어둠이 번뜩였다.

       

       "비켜라."

       

       달려들던 가재들의 머리에 구멍이 박혔다. 한순간 멈춰버린 신체가 흐물흐물 바닥으로 엎어졌다.

       깔끔한 검격. 뱀 교단의 사제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합류하며 자신들의 적을 찾아 움직였다.

       

       껍질은 약하지만 튼튼한 맷집을 가진 게딱지들은 태양신교의 이단심문관들이 막아섰다.

       맷집은 약하지만 단단한 외껍질을 가진 사람을 닮은 가재들은 뱀 교단의 성기사들이 막아섰다.

       

       "뭐야 너희들?!"

       "미친 거냐?!"

       "당장 안 떨어져?!"

       

       뱀 교단의 성기사들이 가재들의 머리에 구멍을 냈다. 날카로운 관통력이 그들의 힘 그 자체였다.

       

       "너희를 죽이는 건 우리야."

       "이단 새끼들이 어디서 함부로 뒤지려고."

       "빚을 갚는다. 그뿐이다."

       

       이단심문관들이 자연스레 뱀 교단의 성기사들과 등을 맞댔다. 전선이 뒤섞이며,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게끔 바뀌었다.

       

       "합을 맞추는 건 이번 한 번 뿐이다! 비늘!"

       "내가 할 소리다! 이단!"

       

       펼쳐진 기묘한 공동 전선에 라다토크는 눈을 깜빡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이자벨라가 검을 휘둘렀다. 그림을 그리듯 부드러운 움직임에 가재들의 전신이 토막 났다.

       

       "죽을까 봐 두려워서 발이라도 멈춘 거냐. 곰탱이."

       "…무슨 소리를."

       

       라여. 지금의 나를 인도하소서.

       

       라다토크는 숨을 골랐다. 검을 늘어트리고 이자벨라에게 달려오는 게딱지를 날려버렸다.

       

       "비늘이 눈앞에 있는데 무릎 꿇을 리 없지."

       "이하동문이다. 곰탱이."

       

       이자벨라와 라다토크가 등을 맞댔다.

       

       ""내가 죽이기 전까지 죽지 마라.""

       

       

       

       

       . . .

       

       

       

        

       열흘째의 밤.

       

       모두가 잠든 아래, 또 한 번 지면이 요동쳤다. 이단심문관들은 이제 익숙해진 듯 계속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일어섰다. 대충 4시간 잤으니 숙면은 충분. 찌푸등한 몸을 대충 푼 뒤, 침낭을 빠져나왔다.

       

       얼음 동굴 내부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가운데를 가로지르던 선도 슬그머니 없어진 상태였으며, 일부는 아예 중간을 넘어서, 아무 곳에서나 자고 있었다.

       

       첫째 날을 생각하면 기적에 가까울 지경. 이래서 한솥밥 먹는 게 중요하다니까.

       

       차라리 잘 됐다. 서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것보다는, 나가기 전까지 완전한 동맹인 게 낫지. 그렇고말고.

       

       나는 검을 잡았다. 이가 전부 나가 있었다. 검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철 덩어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검술을 펼칠 수도 없겠지.

       

       수르트를 대뜸 꺼내 들 수도 없으니까 뭐…

       

       만족할 수밖에 없나.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검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구석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시선이 있었다. 나는 몸에 흐른 땀을 대충 닦으며 말을 건넸다.

       

       "이자벨라 사제님. 할 말 있어요?"

       "……"

       

       그림자 속에서 이자벨라가 걸어나왔다. 씻지 못해 엉망이 상태였지만 그 미모는 바래지 않았다. 위험한 분위기를 잔뜩 풍기는 쎈 여자의 냄새.

       하지만 그 안에 든 게 은근히 정 많고 허당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열심히 하지만 늘 부하한테 치여 사는 불쌍한 리더였지.

       

       "무슨 검을 연습하고 있지?"

       "단죄의 검이에요. 예쁘죠?"

       

       쓱 검을 휘둘렀다. 이자벨라가 코웃음 쳤다.

       

       "쓰잘데기없이 패도적이군. 강하나 날카롭지 못하다. 몬스터를 사냥할 때나 유용하겠군."

       "사람도 두들겨 패면 죽어요."

       "…태양신교의 사제가 할만한 말은 아니군."

       

       이자벨라가 내 앞에 섰다. 자세를 일부 교정해주었다.

       

       "네 검에는 세밀함이 부족하다. 패도적인 것도 좋지만, 항상 화염이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건 아니다."

       "뱀 교단 사제가 이런 거 가르쳐줘도 돼요?"

       "조용히 해라."

       

       교정해준 자세로 검을 휘둘러보았다. 전보다 훨씬 편했다. 크기만 한 톱니바퀴 사이에 작은 톱니바퀴를 끼워 넣은 기분.

       음.

       

       무리없이 굴러가는군. 단순 스킬만으로 부족한 경험에 무언가 끼어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이스. 이자벨라 사제님."

       "…내가 가르쳐줬다고 하지만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군."

       "왜요? 이상해요?"

       "넌 태양신교의 사제이지 않나? 뱀 교단의 가르침을 자연스레 거부하는 게 보통…"

       "뭐 어때요."

       

       나는 씨익 웃었다.

       

       "남도 아니잖아요. 우리."

       "…뭐?"

       "같은 전장에서 구르고, 같이 게딱지 뜯고 그러는데 전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전우…라…"

       

       이자벨라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너는 일반적인 사제랑 다르군."

       "이자벨라님도요."

       "나는 다르지 않다. 나는 너희를 뼛속 깊이 증오한다."

       "저도요?"

       "너는…그러니까…"

       

       이자벨라가 고민하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검을 한 번 더 휘둘렀다. 검 끝에 일어난 불꽃이 썩 마음에 들었다.

       

       뱀 교단 고위 사제 이자벨라. 성기사로 유명하며, 뱀 교단의 실질적인 기둥이 될 사람 중 하나.

       그녀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연을 맺어둔다면 후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렇게나 열심히 같이 싸웠는데, 다짜고짜 죽이는 건 입맛이 씁쓸하단 말이지.

       

       "이자벨라 사제님."

       "뭐냐?"

       "말 놓으실래요?"

       "뭐?"

       

       이자벨라가 뒤로 스스슥 물러섰다.

       

       "너 진짜…제정신이냐?"

       "왜요? 나이 차도 얼마 안 나 보이는구만."

       "뱀 교단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니! 이단이 할법한 말이다!"

       "그쪽이 그런 말 하니까 웃기네요."

       "헛소리하지 말고 검이나 휘둘러라!"

       "진짠데."

       

       나는 검을 내렸다. 그녀를 쓱 돌아보았다.

       

       "누나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뭐, 뭐?"

       "저는 이자벨라 '사제님'말고 그냥 이자벨라를 더 좋아하거든요."

       

       그동안 몇 번 구해줬는데 빼지 마라.

       검 가르쳐줄 정도면 친밀도도 제법 높다는 소리니까, 확실히 이참에 도장을 찍어놔야지.

       

       "이자벨라 누나라고 불러도 돼요?"

       

       호칭이 바뀌면 관계가 바뀐다!

       그것이 인간관계의 모토!

       

       "……."

       

       이자벨라가 나를 내려다보았다. 한숨과 함께 검을 가리켰다.

       

       "…검이나 잡아."

       

       말투가 부드럽게 바뀌었다.

       

       "진짜 너 같은 사제는…본 적이 없네."

       "견습사제잖아요."

       "정식 사제가 되면 달라지는 거야?"

       "그럴 리가요."

       

       나는 코를 세웠다.

       

       "더 강해질 뿐이지!"

       "…너 때문에 머리 아파."

       "잘 부탁해요. 누나."

       "…남들 앞에서는 쓰지 마. 오해사기에 십상이니까."

       "왜요. 누나?"

       "내 앞에서도 자제해. 부끄러우니까."

       "누나란 호칭이 싫어요?"

       "……."

       

       이자벨라가 쓱 시선을 피했다.

       

       "검이나 움직여."

       

       좋아.

       인연 맺기 완료군.

       

       

       

       . . .

       

       

       

       이주가 지났다. 스테이지 3이자, 보스전에 다다르기 직전인 베이그니스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

       그런데 이상이 발생했다.

       

       왜지?

       

       왜 아직 잡아먹히지 않은 거지?

       

       나는 인상을 썼다. 뭔가 진행도가 느리다. 베이그니스가 깨어나기 전에 뭔가 처먹기라도 한 듯, 아주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얼마 걸리지도 모르는 상황.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량 또한 바닥나고 있었다.

       

       뭔가 망한 루트를 타버린 거 같은데.

       

       이거 진짜 왜 이래?

       

       "형제님. 식량 배분입니다."

       

       이단심문관들은 전부 홀쭉해진 상태였다. 라다토크가 내게 마지막 크래커를 건넸다.

       

       "더는 먹을 게 없습니다."

       "……"

       

       아니다.

       아직 있다.

       

       나는 쓱 뱀 교단을 바라보았다. 그들 또한 먹을 게 바닥났는지, 산 입에 거미줄을 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하.

       

       일단 보스전까지 가려면 어떻게든 버텨야 하니까…

       

       나는 쓱 게딱지들을 보았다. 시체 일부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 있었다. 차가운 지형 탓에 상하지도 않았다.

       

       "…먹죠."

       "예?"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

       

       나도 시발 처음 먹어보기는 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일단 살아남고 봐야지.

       

       "저거 전부 먹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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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The Paladin Monopolizes the Sacred Relics

성기사가 성물을 독차지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 world where magic reigns supreme and the influence of gods wanes, a young boy finds himself unexpectedly thrust into the role of an acolyte in the declining Sun God’s Temple. Blessed with the divine stigma of the Sun God, he must navigate the temple’s internal politics, the hostility of his fellow acolytes, and the challenges that come with his newfound powers.

As he delves deeper into the mysteries of the temple, he discovers hidden secrets and powerful artifacts that could change the course of his destiny. With the guidance of an enigmatic senior acolyte and the unwavering faith in his own abilities, he sets out to prove his worth and carve his own path in a world that has all but forgotten the true power of the div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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