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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25 – 상식을 깨는 사람>

     

    정말 긴장감이 없는 꼬마숙녀다.

    점수파밍과 인간사냥, 어느 쪽도 만만찮은 와중에 식량보급과 시험관 추적까지 해내야 한다.

    엄청난 멀티테스킹이 요구되는 초고난이도 관문을 앞두고 있거늘, 벌레를 걱정하고 있다니.

     

    “두렵지는 않으십니까? 벌레 외에 말입니다.”

    “제가요? 왜요?”

     

    의아해하던 오크노디의 얼굴에 소악마스러운 비웃음이 어렸다.

     

    “아~ 지젤 아저씨는 무서우시구나! 숲에서 달리는 게 무서워요? 아니면 파밍 못할까봐? 쫄보~ 겁쟁이~ 너무 약… 응긋!”

    “매를 버니까 꿀밤을 맞는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손이 먼저 나갔지만 원망하는 마음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어느덧 긴장이 풀어졌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말 어른스러운 아이다.

    어른을 먼저 배려하며 긴장을 풀어주다니.

    어쩌면 그냥 약올리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본인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괜히 1차 관문 수석이 아니었다.

     

    ‘그걸 좋아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감의 근거는 실력.

    이 아이의 실력은 아동학대에 가까운 귀족가의 ‘조기교육’에서 비롯된다.

    수백 종의 독을 먹이고, 공격을 피해 숨는 기술을 가르치고, 아이다운 삶이나 인간다운 삶, 귀족다운 삶에 대한 상식은 모조리 텅 비어있다.

    그런데도 순수함만은 남아있는, 그래서 더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아이.

    그런 아이를 팀으로 삼고 함께 시험을 치르기에 도리어 힘이 난다.

     

    ‘티켓을 파는 입장이라면 모를까, 직접 시험을 치른 적은 지금껏 한 번도 없었지만…… 대충 알았어.’

     

    상급시험은 골드티켓 소지자도 우후죽순 쓸려나가는 살벌한 관문. 다른 입시생들 쪽이 오크노디보다 몇 배는 더 힘들어할 거다.

     

    “으윽, 1차 관문에서 입은 부상이.”

    “시야가 어두워. 선발대의 모습을 놓쳤어!”

     

    차츰 뒤처지는 낙오자 그룹이 생기는가 하면, 거뜬하게 시험관과 보조를 맞추는 선두그룹도 생긴다.

     

    ‘문제는 저쪽인가.’

     

    30인 가량의 낙오그룹과 30인 가량의 선두그룹.

    그들 사이에 속한 중간그룹이 다시 100인.

    185인의 응시생 중 남은 25명.

    식량수급이나 보조과제 점수수급을 목표로 개별행동을 하는 이탈그룹이 나타났다.

     

    “사냥감이 될 걱정은 안 하는 걸까요?”

    “자신이 있겠지. 든든한 동료가 있다거나.”

    “본인의 실력에 확신이 있거나.”

     

    이사벨과 손오천의 말대로다.

    식량수급이라면 모를까, 무언가 하나쯤은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는 승점을 노리러 갈 수는 없다.

     

    “그럼 저희도 가죠!”

    “…지금 저희가 하는 얘기, 듣기는 했습니까?”

     

    사냥감이 될 걱정은 진짜 안 하는 거냐고.

     

    “자신 없어요?”

     

    하기야 암살자 훈련을 받아온 아가씨다.

    이깟 시험이 두려울까.

    그런 아가씨를 돕겠다고 따라 나선 사람이 몸을 사려서야 말이 안 된다.

     

    “꼬마숙녀를 걱정했을 뿐입니다.”

    “잘됐네요. 모기는 싫지만 빨리 끝내면 덜 물리겠죠. 보조과제부터 깨러 가요!”

     

    당찬 아가씨를 따라 이사벨이 못 당해내겠다며 난처한 웃음을 짓고, 손오천이 그럴 줄 알았다며 호쾌하게 뒤를 따랐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지젤의 얼굴에도 그늘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도 자신은 있었으니까.

     

     

    * *

     

     

    주조연들에게는 성격이 있다.

    무슨 당연한 생각을 하나 싶지만 이건 <운빨로 아카데미 졸업하기> 게임에서의 얘기다.

     

    신중한 성격의 캐릭터는 돌다리가 나오면 두들길 지팡이부터 찾는다.

    저돌적인 성격의 캐릭터는 돌다리가 나오면 일단 달리고 본다.

    악랄한 성격의 캐릭터는 먼저 돌다리를 지나가고는 부수기도 한다.

     

    ‘그 악랄한 캐릭터들이 문제란 말이지.’

     

    이번 시험, 언뜻 보면 누구나 보조과제에 도전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막상 보조과제를 치르러 향한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악성향 캐릭터들이 깽판을 치려면 어떻게든 깽판을 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착순 10명>

    <흰 꼬리 몽구스를 잡아 베이스캠프에 제출하시오.>

     

    늦게 오면 국물도 없었다.

    한 명이 변장으로 흰 꼬리 몽구스를 10번 점수로 바꾸거나 자기 몫의 몽구스만 구하고 나머지는 전부 죽여놓고 지나갔다.

    다행히도 아직은 그런 깽판이 벌어지기 전인지 여유가 있었다.

     

    “다들 푯말은 봤겠지?”

    “우리는 이 베이스캠프에 머무르는 교관들이다. 흰 꼬리 몽구스를 잡아오는 선착순 10명에게 각각 10점을 주마.”

    “정산방식은 간단하다. 흰 꼬리 몽구스를 우리 교관들이 넘겨받는 순간, 제출자의 티켓시계에 점수를 부여한다.”

     

    교관들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이탈그룹의 응시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흰 꼬리 몽구스가 뭐냐?”

    “원숭이수인이면 동물은 잘 알아야 하지 않아?”

    “알 리가 없잖냐. 내가 자란 숲에는 그딴 건 안 살았는데.”

     

    손오천의 말에 이사벨이 맥 빠진다는 얼굴로 설명해주었다.

     

    “족제비랑 쥐를 섞은 것처럼 생긴 녀석들이야. 딴에는 독사도 잡는 흉폭한 놈들인데, 보통은 몬스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무리생활을 해.”

    “강하냐?”

    “2m가 넘는 원숭이수인을 기준으로 강하냐고 묻는다면 엄청 약한 편이겠지? 얘들은 1m도 안되는 소형종이니까.”

    “흥이 안 나네.”

    “그리 실망하기엔 이르다고? 몽구스 녀석들, 엄청 날래니까. 특히나 흰 꼬리 몽구스는 몽구스 무리 사이에서도 대장 격이고 쉽게 보이지도 않아.”

     

    음, 역시 모험가네!

    틀린 설명은 하나도 없다.

     

    “오, 저기 저놈들이 잡는 게 몽구스냐?”

    “맞아.”

     

    마침 근처 나무를 타고 오르던 몽구스 한 마리를 응시생 한 명이 붙잡았다.

     

    “캬아악!”

    “하하, 약해빠지긴. 하찮다, 이 미물아!”

     

    손으로 몽구스를 덥썩 잡아 냅다 나무에 두들겨 패서 기절시킨 응시생.

    그는 기절한 몽구스의 꼬리를 보고는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쳇. 쓸모없네.”

     

    휙!

    내던져진 몽구스를 냅다 달려간 내가 붙잡았다.

     

    “응? 헛수고 했구나, 꼬마야. 그건 갈색 꼬리 몽구스란다.”

    “알아요!”

    “흰 꼬리도 아닌 걸 잡아서 뭐하게? 그러고 보니 너… 수석이었지?”

     

    주변에서 갈색꼬리 몽구스를 사냥한 응시생들이 하나같이 수상쩍다는 눈으로 날 쳐다본다.

    이크.

    역시 경계를 사버렸나?

    어떻게 둘러댈지 고민하는 그때, 손오천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 쥐방울이 한창 성장기라서 말이야. 고기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먹는다고?”

    “과연. 식량인가.”

    “누굴 먹보 취급 하는 거예요!”

    “공중뷔페의 100종 음식을 열흘만에 전부 먹어치운 먹보는 어디 사는 누구였더라?”

    “윽. 그, 그때는 열흘 밖에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요!”

     

    응시생들이 말했다.

     

    “먹보네.”

    “대식가.”

    “푸드파이터 아니야?”

    “살 찔 거야. 저건 무조건 살 쪄.”

     

    아니, 니들이 내 식품도감 컬렉션에 하나라도 보태준 거 있어?

    도감 하나 채워준 것도 없으면서 왜 난리람.

     

    “그래서 진짜로 먹으려고 잡은 겁니까?”

     

    흥미를 잃은 응시생들이 떨어져나가는 사이, 나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겸사겸사 식용으로 몇 마리 더 잡아도 나쁘진 않겠네요.”

    “호오. 우리 꼬마숙녀가 무언가 생각이 있나봅니다.”

    “일단 더 잡아주세요. 끼니 대신으로 삼을 거면 넉넉하게 잡아서 총 여덟 마리 정도?”

     

    몽구스가 야생의 소동물들 상대로는 나름 포식자 노릇을 할 수도 있겠지만, 능력치가 잔뜩 오른 인간들을 피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순식간에 여덟 마리의 몽구스들이 죽거나 기절한 채로 줄줄이 잡혔다.

     

    “요리라면 할 수야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덟 마리는 너무 많지 않아?”

    “걱정 말아요, 이사벨씨. 반은 시험에 제출하려고 잡은 거거든요.”

    “시험에? 흰 꼬리가 아닌데?”

    “흰 꼬리가 아니면 하얗게 만들면 되죠.”

    “그래도 돼?!”

    “안될 거 뭐 있어요? 손오천씨, 여기 이 나무 껍질 좀 창으로 깨주세요.”

     

    손오천이 가볍게 힘주어 나무껍질을 깨부수자 하얀 수액이 새어나왔다.

     

    “와. 너 천재야?”

    “티켓시험 때도 느꼈지만 재치 하나는 정말 대단하군요. 오크노디양.”

    “쥐방울 녀석, 잔머리 하나는 끝내주네.”

     

    갈색 꼬리에 수액을 잔뜩 칠해 하얗게 만들고는 베이스캠프에 가져오니 교관들이 황당한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걸 흰 꼬리 몽구스라고 받아줘야 하나?”

    “우리가 판단할 상황이 아니군. 시험관님에게 직접 물어봐야겠어.”

     

    2차 관문 시험관 미네르바.

    레인저 클래스를 지닌 그녀는 야생에서의 순발력과 응용력을 높이 평가하는 성격이다.

    결과는 뻔한 노릇.

     

    “시험관님께서는 재치 있는 시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넷 모두 합격이다. 승점 10점을 주지.”

    “헤헹.”

    “해냈구나, 쥐방울!”

    “한숨 돌렸군요.”

    “긴장 풀지 마.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고인물 편법으로 클리어한 건 좋지만 문제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승점을 노리는 다른 응시생들, 특히나 악성향의 주조연 캐릭터들을 어떻게 떨쳐낼 것인가.

     

    “잠시 비켜주겠나? 몽구스를 제출하고 싶은데.”

    “앗, 네.”

     

    편법을 쓴 나와 달리 쌩으로 흰 꼬리 몽구스를 잡아온 응시생이 교관에게 승점을 교환받았다.

     

    “그럼 먼저 실례.”

    “저놈이다!”

    “흰 꼬리 몽구스를 언제 찾고 자빠져? 그냥 저놈을 잡자!”

     

    네명인 우리들과 달리 혼자 활동하는 응시생을 노리고 의욕적으로 덤벼드는 응시생들.

    홀몸인 응시생은 힐끔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가까운 나무를 박차고 올라가 단숨에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며 멀어졌다.

     

    “아니, 하…”

    “저게 뭐야…”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올려다보듯이 억울함 가득한 눈을 한 응시생들이 이쪽을 돌아봤다.

    특히나 가장 많은 시선을 받은 것은 원숭이수인인 손오천이었다.

     

    “뭐 이 자식들아. 원숭이수인이면 다 나무 탈 줄 알아야 되냐?”

    “헐. 못 타요?”

    “당연히 탈 줄 알지.”

    “…….”

     

    이 아저씨, 역시 미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너굴희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흰 꼬리 수액 몽구스 인형이 갖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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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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