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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오늘은 전투날이었다.

     

    어렴풋이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평소와는 다른 날이라는 걸 알려준다.

     

     

    수없이도 경험한 토벌전이지만, 역시나 매번 그 긴장감이 다르다.

     

    동료들이 무더기로 죽을 수 있는 날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이 모든 압박감도, 내가 결국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자리에서 홀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한다.

     

    어깨를 돌리고, 목을 푼다.

     

    그리고는 방 한구석에 놓아두었던 검을 허리에 찬 뒤, 걸음을 옮겼다.

     

     

    “…이제 가시나요?”

     

    그때, 뒤에서 울려온 목소리.

     

    익숙지 않은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네르가 침대에서 상체를 반쯤 세운채 침대 중앙에 놓인 베개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일어날거라고는 어째서인지 예상하지 못했다.

     

    깨우고 싶은 마음도 크게 없었다.

     

    서로 해줄말이 크게 없을것만 같아서.

     

    “…그래야지.”

     

    “…”

     

    나는 문득, 우리의 사이가 좋아진다면 나중에 그녀가 내게 어떤 말을 해줄지 상상해보았다.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조금 더 감정적인 이별을 했을까?

     

     

    나는 헛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몸을 돌렸다.

     

    문에 손을 올리고 힘을 주었다.

     

    “…그.”

     

    다시 나를 부르는 네르.

     

    “…왜?”

     

    “…”

     

    그녀는 한참을 망설였다.

     

    무슨 말을 꺼내려는 듯 보였지만, 결정은 내리지 못한 느낌.

     

    나는 굳이 그녀를 압박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게…”

     

    “…”

     

    “…그러니까…”

     

    시간을 주어도 그녀가 끝내 말하지 못하자, 내가 말했다.

     

    오늘만큼은 여유가 없었다. 아무리 준비를 많이 했다한들, 가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다녀올게.”

     

    네르는 그 말에 끝내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본 뒤, 나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

     

     

    ****

     

     

    야영지로 향하는 길에 특이한 행동들을 보았다.

     

    여러 쌍의 늑인족 부부들이 집 밖에 나와 있는 것.

     

    여기저기서 간단해보이는 주술이 행해지고 있었다.

     

    늑인족들이 전투와 의술, 그리고 주술에 능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흔할줄은 몰랐다.

     

    눈에 보이는 모든 쌍의 부부가 모두 이행하고 있었다.

     

    남자는 아내같아 보이는 여성들에게 등을 내어주고 있었고,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의 등에 양손을 올려놓았다.

     

    그 상태로 중얼거리는 여성들의 몸에서는 주황색으로 반짝이는 빛들이 뽑아져 나왔고, 그 빛들은 손을 댄 남성들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늑인족은 꽤나 봐왔다고 자부했지만, 이러한 것은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기를 나눠주는 겁니다. 전투에 나서는 남편을 위해서.”

     

    뒤를 돌아보니, 기딘이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아담 형도 그 옆에 서 있었다.

     

    ‘기’라는 생소한 단어에 내가 멈춰있자, 기딘이 말했다.

     

    “…분명 부단장님도 받으셨을거라 믿는데.”

     

    미약한 조소가 담긴 그의 표정.

     

    네르와 이런 의식은 하지 않았다는 걸 분명히 아는 눈치였다.

     

    “…”

     

    나는 아담 형의 눈치를 보았다.

     

    굳이 그가 나와 네르의 관계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어쩌면 네르가 아침에 망설이며 전하려 했던게 이것이 아니었을까.

     

     

    기딘과 난 오랜 말을 나누지 않았다.

     

    그저 눈빛만 교환할 뿐.

     

    “아담 단장님. 저는 이만 제 병사들을 확인하러.”

     

    “네. 나중에 보시죠.”

     

    기딘이 먼저 떠나며 아담 형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렇게 멀어져가는 기딘의 등을 바라보았다.

     

    아담형이 천천히 걸어와서 내게 말한다.

     

    “…기딘과 작전에 관해서 오랜 시간 이야기했어.”

     

    “…”

     

    “확실히 이해도가 빠르긴 하더라고. 진지하게 상황을 관찰하기도 하고, 조언도 하고…적대해도 목표는 같다는 거겠지.”

     

    “…”

     

    “…그러니 헛짓은 하지 않을 것 같다만, 기싸움은 계속해서 거네.”

     

    “…”

     

    형은 침묵하는 나의 표정을 보며 말했다.

     

    “…베르그. 허튼 짓 하지마.”

     

    나는 의아하게 형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얼굴에 다 써져 있어. 하여간…은근 욱하는 성격이 있다니까.”

     

    “…형만 할까.”

     

    나는 형의 말을 크게 부정하진 않았다.

     

    기딘이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고 있었다.

     

    전날, 네르가 오랜시간 혼자 밥을 먹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심해졌을 것이다.

     

     

    네르를 괴롭히는 분위기를 만든데에는, 장남이었던 기딘의 입김이 크게 적용했을테니까.

     

    이렇게 화를 낼만큼 네르에게 마음이 있는가…하면 좀 의문이지만.

     

    그래도 아내라 그럴까. 가만히 있기는 뭔가 또 억울했다.

     

    무언가 되갚아줘야만 마음이 후련할 듯 했다.

     

    내 편은 챙겨야만 한다는 슬럼에서 배운 습관들은 쉽게 나를 떠나지 않았다.

     

     

    툭하고, 어깨에 아담 형의 팔이 걸린다.

     

    “베르그. 그건 그렇다치고, 잘 쉬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나도 상태 좋다.”

     

    “…”

     

    “맞다, 베르그. 토벌이 끝나고의 이야긴데…”

     

    “…응?”

     

    “이제는 너도 더는 숨어있지만 말고 좀 나서보자.”

     

    형은 일전에도 말했던 그 소리를 했다.

     

    “저번에도 말했듯, 홍염단은 유명해지는데 부단장이 누군지 아무도 모르잖아. 이번을 계기로 이름 좀 날려보자고. 이름을 날렸다면 지금 기딘과의 이런 귀찮은 일도 없었을거 아니야.”

     

     

    나는 여태 홍염단에서 부단장으로 생활하며 단 한번도 나선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은 마음이었다.

     

    형에게 결국 머리써야하는 일들을 떠넘긴 것이다.

     

     

    하지만 지내다보니, 그 공을 챙기기 껄끄러운 마음도 생겨났다.

     

    결국 우리 우두머리 조가 쌓은 업적들은, 단원들의 죽음으로써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으니.

     

    그걸 다 내 몫으로 챙기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왔다.

     

    같은 우두머리 조의 단원들은 그런 생각말라며, 좀 나서보라며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나는 여태 그 제안들을 모두 무시했었다.

     

    나의 명성이 높아진다해서, 달라지는 건 크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나도 점차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정말 형의 말대로, 내 토벌기록과 나의 이름이 유명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결혼도 했잖아.”

    “…?”

     

    아담 형이 말했다.

    “…이제 네 이름에는, 네 아내의 명성도 같이 따라오게 되는거야.”

     

    그런식으로 생각해본적은 없었지만…어쩌면 이번에도 형의 말이 옳을지 몰랐다.

     

    “…조금만 생각해봐, 베르그. 난 네가 기딘 같은 놈한테 이렇게 무시 당할때마다 화가 나.”

     

    형의 말에, 나는 내 목을 가볍게 주물렀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웃는다.

     

    “정 싫다면 또 강요하진 않겠지만…어쨌든. 자, 그럼. 이제 일이나 빨리 끝내고, 스탁핀으로 돌아가자.”

     

    형의 말에 머리가 한층 가벼워진다. 나도 다시 마음을 다잡으며, 형과 함께 홍염단의 야영지로 향했다.

     

     

    ****

     

     

    모든 준비가 끝나자, 우리는 나아갔다.

     

    두꺼운 갑옷을 둘러싸고 말에 올라탄채, 서북쪽의 있을 거대한 우두머리, ‘드라이그’를 향해.

     

    아담 형이 가장 앞서서 말을 천천히 몰았고, 그 뒤에는 나의 우두머리 조와, 기딘의 일행이 따라오고 있었다.

     

    나의 우두머리 조와, 기딘의 일행은 각각 30명 쯤 됐다.

     

     

    내 뒤에 있던 바란이 우두머리 조 대원 숀과 잭슨에게 무언가를 소곤댔다.

     

    “네?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허…그래요?”

     

    바란이 대체 무슨 말을 한건지, 숀과 잭슨이 숨을 집어삼킨다.

     

    그리고는 기딘을 흘기기 시작했다.

     

    아마 나와 기딘의 싸움에 대해 설명한게 아닐까. 간부들만 아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그러는 동안 기딘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부단장님. 새신랑인데…잠은 잘 주무셨습니까.”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자, 기딘과 그의 형제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벼워 지적하기에는 애매한 모욕. 하지만 지속되는 도발에 감정이 꿈틀댄다.

     

     

    홍염단 이전의 용병단에서 정말 자주 맛봤던 느낌이다.

     

    워낙에 다양한 종족들이 많아, 이런식의 기싸움이 많이 벌어져왔다.

     

    홍염단에 들어오며 인족만 상대했으니 잊었던 것들이었다.

     

    “…”

     

    하지만 조금은 어안이 벙벙하기도 했다. 이렇게나 어리석을수가 있을까?

     

    우리가 나쁜마음을 먹으면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건지.

     

     

    어쩌면 우리가 용병단이 아닌, 잘 훈련된 군대처럼 보이는 것 때문일지도.

     

    또 어쩌면, 또 우리가 그들을 해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토록 기고만장 한 것 같기도 했다.

     

    삼 형제와 더불어 블랙우드의 군대가 우리를 따라왔는데, 모두 죽어돌아간다면 우리로서도 할말이 없으니까.

     

     

     

    “…사이좋은 형제들도 잠은 잘 주무셨는지? 한시도 떨어지는 모습을 못보는군요.”

     

    나도 가벼운 모욕을 담아 그들에게 되물었다.

     

    기딘의 얼굴에 떠올라있던 미소가 점차 사라진다.

     

     

    나는 그런 그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 기딘님. 그나저나 아직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다던데.”

     

    “…그래도 계획은 모조리 외우고 있으니, 나름의 공을 올리려고 생각중입니다. 베르그님은 뒤에 숨어 계시기나 하시죠.”

     

    나는 이제껏 굳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던 사실을 말해주었다.

     

    “우두머리 조가 뒤에 숨어있어서 되겠습니까?”

     

    “…”

     

    우두머리 조라는 말을 듣자마자 기딘의 표정이 변한다.

     

    워낙에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는 분대라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부단장님이 우두머리 조라고요?”

     

    “그렇네요.”

     

    “…거짓말 하지 마시죠. 어느 어리석은 용병단이 부단장을 우두머리 조에 둔답니까?”

     

    아담 형이 앞에서 혀를 찼다.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라니까, 베르그. 다들 저렇게 생각하잖아.”

     

    기딘은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머리를 굴리던 그가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말한다.

     

     

    “…하, 우두머리 조를 이끄는 사람의 토벌기록이 20마리라는 걸 믿으라고요?”

     

     

    나는 굳이 일전의 거짓말에 대해 변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제안한다.

     

    이왕 이렇게 된거, 분노를 조금이나마 풀어볼까 했다.

     

    형의 말대로 이름을 날렸다면 이런 일은 없을까 싶었다.

     

     

    “기딘님. 그러지 말고 위치가 정해지지 않았다면 우리와 함께하시죠.”

     

    “…뭐라고요?”

     

    “우두머리 조라는 걸 믿기 힘드시다면, 따라오면 될거 아니겠습니까. 26마리나 토벌한 전사의 힘을 좀 보고 싶네요. 그렇게 좋아하시는 명예도 올릴 겸.”

     

    “…”

     

    기딘은 쉽사리 답하지 않았다.

     

    그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갑자기 우두머리조에 함께하자는 말을 해봤자,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한 줌일 것이다.

     

    죽을 확률을 배로 높여보자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26마리의 토벌기록을 가진 기딘이라면 수용할 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이미 뱉은 말들이 있어, 발을 빼는 것도 모양이 빠질 것이었다.

     

     

    기딘이 고민하자, 숀이 뒤에서 외쳤다.

     

    “아, 도련님이 겁을 집어삼키셨나 봅니다.”

     

    바란과 숀, 그리고 잭슨이 그 장난에 낄낄댔다.

     

     

    이제야 군대같은 경직된 분위기가 아닌, 용병단의 날 것의 분위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나도 기딘을 바라보며 웃었다. 거기에는 미약한 무시도 담았다.

     

    나는 걸려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았다.

     

     

    그들도 이제야 우리들이 군대가 아닌 용병단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는지, 경계심을 높인다.

     

    기딘이 속삭이듯 말했다.

     

    “…역시나 인족은 야만스럽군..”

     

    나도 그의 속삭임에 답한다.

     

    “아셨으면 입조심 좀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뭐? 이 평민새끼가-”

     

    아담 형이 앞에서 말했다.

     

    “자자. 싸움은 여기까지. 베르그, 너도 그만해.”

     

    이번에도 역시나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리는 건 아담 형이었다.

     

    이러니 내가 계속해서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형도 내편이라는게 등을 통해 느껴졌으나, 입장상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듯 했다.

     

     

    나는 단원들 앞에서만큼은 형을 언제나 존경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형의 명령에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딘님, 실례했습니다. 장난이 지나쳤나보-”

     

    “-됐다.”

     

    하지마 외려 기딘이 열을 올리며 내 말을 끊는다.

     

    나를 향한 존중도 모두 내려놓은 모습이었다.

     

     

    나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도발에 넘어왔다는 걸 가볍게 알 수 있었다.

     

    기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 따라가지. 그래봤자 대원들 뒤에 숨는 겁쟁이보단 공을 더 올릴 수 있을테니. 단장님, 저는 부단장과 함께하겠습니다.”

     

    아담 형이 기딘의 선언에 걱정을 표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마시죠. 아무리 말다툼을 했다고 한들, 그보다 블랙우드 영지의 해방이 먼저이기에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담 형이 나를 살핀다.

     

    “…”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형도 긴 한숨을 내쉬며 기딘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런걸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기딘에게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응기잇피야님! 2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 조금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그 과정을 유심히 지켜봐주신다면 나중에 원하시는 상황이 나올때 재밌을테니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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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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