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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조졌다.

         

       무엇을 조졌냐 하면은….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크르르르르…….”

         

       난데없이 앞에 나타난 드레이크 세 마리가 학교 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다.

         

       뒷산에서 가끔 보이는 아이언 드레이크는 아닌 것 같다. 몸에 금칠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면 변종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애들은 골드 드레이크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번쩍거리는 걸 보니 몇몇 SF 영화 속에서나 보던 메카-공룡을 빼닮았다. 양자역학적으로 만들어낸 기갑공룡이라, 이거 완전 로망이거든요….

         

       “세상에 저게 뭐야…?”

        “마, 마수잖아! 대체 어디서 굴러들어온 거야?!”

       “아가씨, 위험해! 빨리 도망쳐!!”

         

       꿈은 아닌 것 같고.

         

       나는 시민들보고 안전거리를 유지하라고 당부한 뒤 도로 한가운데에 섰다. 도망치라는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다. 내가 스태프를 꺼내들자 그 소리는 잠잠해졌다.

         

       초유의 사태라고 표현하기에는 긴장감이 살짝 부족했다. 이 마수들이 아카데미로 향하는 길을 막고 있었지만, 딱 그뿐이었다. 공격적으로 대치한다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날 응시하며 꼬리만 살랑거리고 있다. 돌격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뒷산에서 드레이크 몇 마리를 잡으면서 이들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줄줄이 꿰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이 당장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우와, 변이종이 세 체나 있잖아요? 저런 애들은 자연적으로 발생 안 하는 놈들인데.]

         

       “그럼 뭐 어쩌라고. 얘네가 이런 데 있는 게 넌 정상으로 보이냐?”

         

       내 핀잔에 양장본이 도리어 화를 내며 펄럭거렸다.

         

       [누가 정상이래요? 제 말은, 이런 애들은 자연에서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인이 따로 있단 소리잖아요!]

         

       쉽게 말해서 어떤 놈이 만들었단 소리네.

         

       그 말이 맞다면, 이 백악기에서 온 친구들이 당장 주변을 공격하지 않고 길막만 하고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는 이해된다. 이런 애들은 고삐가 없으면 대개 생긴 대로 놀기 마련이니까.

         

       [이런 경우에 대처법은 크게 세 가지에요. 첫 번째는 눈앞의 마수들을 그대로 잡아 없애는 것이고, 두 번째는 얘네들을 축조해 낸 연성진을 찾아 파괴하는 것이에요. 세 번째는…….]

         

       “알아. 주인을 직접 잡아 족치란 소리잖아.”

         

       마지막 방법이 어렵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당장 누구인지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잡아낸다고?

         

       중급 마수인 드레이크를 다루므로 조종자는 최소한 상급 이상의 마수다. 그것도 꽤 지능이 높은 녀석.

         

       [드레이크가 온 방향을 보니 아카데미 쪽에서 발생한 모양이에요.]

         

       “그래 보여.”

         

       주인을 잡는 방법은 비현실적이다. 그나마 괜찮은 방법은 시술자가 구축한 축조진을 한시라도 빨리 찾아내서 파괴하는 것이다.

         

       이 또한 어렵다. 축조진의 종류만 해도 수백 가지가 있다. 어떤 형식으로 짜여있는지에 따라 해체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물론 축조진 또한 마력으로 구축되어 있을 테니까…….

         

       [최상급 고유마도 ─ 마소 조작(Element Operation)]

         

       “이걸 어디다가 꼬라박느냐가 관건이겠지.”

         

       연성진의 근원부를 찾아내지 못하면 술식도 파괴하지 못한다. 아마 그 부분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는 한 이런 녀석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생각하는 사이에 땅을 뚫고 두 마리가 더 튀어나왔다. 확실히 원천은 지맥에 있다.

         

       “결국 할 수 있는 건 대증요법 정도란 거잖아.”

         

       당장 근원을 못 찾겠으면 튀어나오는 것만이라도 잡아야 한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

         

       나는 멀뚱히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예 저 멀리까지 대피하라고 소리친 뒤 마력초를 물었다.

         

       물려고 했다.

         

       [잠깐,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또 왜.”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요?]

         

       쿵─.

         

       그들 중 한 마리가 나를 향해 발을 구르더니 앞으로 한 발자국씩 내딛었다.

         

       “넌 저게 대화하려는 자세로 보이냐? 조금 있으면 공격할 것 같은데?”

         

       [그랬으면 진작 여기까지 이것저것 다 부수면서 왔겠죠.]

         

       불쏘시개 양장본의 말도 일리는 있다. 그랬기에 더욱 문제였다.

         

       배후가 명령만 내린다면 이 드레이크들이 언제라도 여기서 날뛸 수 있을 테니까. 수도 한가운데에서 이런 녀석들이 난동을 피운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쿵─. 쿵─. 쿵─.

         

       녀석들이 점점 다가온다. 느긋하게, 마치 잠자리를 잡기 위해 뒤에서 다가오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그러나 덩치는 전혀 아이가 아니다. 드레이크가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도로가 움푹 파였다.

         

       본능적인 수축이 느껴진다. 폐가 쪼그라들기만 하고 다시 펴지지 않는 감각이다.

         

       난 드레이크를 여럿 상대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 공포감이 눈앞의 수각류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드레이크는 알기 쉬울 정도로 행동패턴이 단순했었으니까.

         

       내가 두려워하는 건 공룡이 아니다.

         

       나는 공룡이 아닌, 그 너머의 누군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안녕. 내 말 들리니?>

         

       선두에 있는 드레이크가 나를 향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는 힙색에서 예비용 스크롤을 꺼내 언제든지 격발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쳤다.

         

       자세히 보니 드레이크의 하악관절이 있는 부분에 작고 얇은 구멍 몇 개가 뚫려있었다. 신원미상의 음성은 이곳으로부터 나왔다.

         

       <미안, 생각보다 널 늦게 찾아버렸네. 아카데미 입학식에 참석해서 다른 친구들이랑 다 같이 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래서 깽판 좀 쳐버렸지 뭐야.>

         

       변조된 음성이라 성별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변조된 목소리에서조차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저나 운이 좋아 보이더라? 어떻게 거길 시험 쳐서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그래서 난 네가 부러워. 나라면 절대로 그런 일 못 벌이거든.>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별다른 잡담을 늘어놓고 싶었던 건 아냐. 오늘은 그냥 인사차 온 거라고.>

         

       “인사차…?”

         

       순간 등에서 오한이 들었다. 다음에 이어질 말을 예측했기에 그런 걸까.

         

       <그래. 제국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수도는 반쯤 우리 손에 떨어졌어. 굳이 손볼 필요도 없다고.>

         

       “무슨…….”

         

       <근데 말이야, 그러면 너무 시시하다고 아랫것들이 계속 땡깡을 쳐 피우잖아. 마왕님 부활시키는 게 애새끼들 장난도 아니고, 뭔 재미를 그리 찾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육감이고 뭐고 사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건 대화로 유추하지 못하는 게 병신이었다.

         

       이 녀석은─.

         

       <아무튼 너도 알고는 있지? 그 나라가 황실이고 뭐고, 완전 개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이 녀석은…….

         

       <다 계획대로야.>

         

       재앙, 그 이상이라고.

         

       <자, 더 대화할 내용은 없는 것 같네.>

         

       나는 그 음성이 들리자마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럼 행복한 아카데미 생활을 하길 바라. 아, 참고로 축조진의 중심부는 학교 중앙광장에 있는 분수대에 새겨 놨어. 해제하고 싶으면 당장 해도 되고, 마석 좀 얻고 싶으면 웨이브 끝날 때까지 사냥터로 써먹어도 돼.>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크워어어어어─!!”

         

       ‘툭’ 하고 스피커가 끊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눈앞에 있는 마수의 이성도 단체로 끊겨버렸다. 상대쪽에서 조종을 포기하고 완전히 방생했다는 뜻이다.

         

       [거 상견례 선물 한 번 지랄맞네요.]

         

       “내 말이 그 말이야.”

         

       [이럴 줄 알고 여신님께서 절 업그레이드 시켜놓은 거예요. 지금부턴 품에 스크롤을 끌고 다니지 않아도 절 매개로 마법을 격발할 수 있어요.]

         

       “뭐?”

         

       [화계든 수계든 배워서 알고 있는 거라면 어느 정도는 쓸 수 있다는 소리예요. 회로는 제 몸 안에 전부 내장되어 있으니까요.]

         

       양장본이 한 말은 충격적이어서 믿기 어려웠다. 금안족이라는 종족 페널티를 완전히 무시한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단, 하루에 세 번 정도까지만요.]

         

       염병, 그럼 그렇지.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루에 제 몸에 저장해둘 수 있는 마소의 수치는 100시버트가 한계에요. 마법 하나 전개할 때마다 30시버트씩 해먹으면 된다고 생각하시고 사용하세요. 당연하지만 상위 마도면 그만큼 마력을 더 잡아먹어요.]

         

       단순하게 생각해서 여기가 VR 게임 속 세상이라고 해 보자. 그러면 퀘스트가 있고, 그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자들이 적당한 시간대에 적절한 장소에서 쓸만한 아이템을 줄 것 아닌가?

         

       이 아렌스 대륙이라는 이름의 게임 운영자가 여신이라는 존재로 비유할 수 있다면, 요 양장본은 적당한 시간에 맞춰 게임 난이도를 조절하기 위해 내린 선물이라는 뜻이 된다. 그 게임의 이름이 ‘인생’이라는 게 좀 문제였지만.

         

       어떻게 세이브 로드도 안 되냐. 이러니까 한 번 그만둔 유저가 다시 안 돌아오지.

         

       좌우간 새 능력을 얻은 만큼 앞으로의 난이도도 올라간다는 건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그래도 마력초 없이 세 번 정도 쟁여뒀다가 쓸 수 있단 소리지?”

         

       그럼 쓸 만한 건 정해져 있다.

         

       [최상급 고유마도 ─ 마소 조작(Element Operation)]

         

       [아, 그건 한 번 밖에 못 써요. 최상급이잖아요.]

         

       별 게 다 깐깐하다.

         

       당장은 상황이 급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도 벌써 몇 초가 지났다.

         

       저 괴물들이 고삐에서 풀려나자마자 한 행동은 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건물을 부숴대는 것이었다. 내가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금이라도 가까운 건축물부터 해체하려는 모양이었다.

         

       “쓰읍, 간다.”

         

       한 손으로 책을 잡았다. 양장본에게서 마력이 흘러들어오는 게 촉각으로 느껴진다.

         

       축조진으로 연성해낸 마수는 그 내부의 동력원조차 마력으로 돌아가는 이질적인 생명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수와는 결이 다르다.

         

       즉 마력회로가 따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실기 시험에서 했던 것처럼 쇼트로 잡아내면 된다.

         

       나는 합선을 준비했다.

         

       준비하려고 했다.

         

       “에테르!”

         

       저 멀리서 타탁, 하고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불구덩이가 피어올랐다. 전투마도 시험을 봤을 때 마주했던 십자포화와 닮은 꼴이었지만 더 세련되고 큰 녀석이었다.

         

       그 불길은 내가 있는 곳 대신 마수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상급 화계마도 ─ 어드밴스드 불렛(Advanced Bullet) X 20]

         

       [저 나이에 저만한 마력량이라…. 엄청난 재능이네요.]

         

       그러니까 알 수 있었다. 날 향해 달려오는 여자아이의 정체를.

         

       “인사할 시간도 없어. 따라와!”

         

       순식간에 중급 마수 다섯 체를 쓰러뜨린 로테는 날 만나자마자 안부를 나눌 틈도 없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유턴하더니 빠른 속도로 나를 이끌며 아카데미가 있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로테가 달리면서 내게 물었다.

         

       “너 오늘 입학식에 왜 안 왔어?”

       “…귀찮아서.”

       “아니, 겨우 그런 이유로…! 됐다. 지금은 그런 말 할 때 아니야! 학교가 난장판이 됐어!”

         

       그래. 그럴 것 같더라.

         

       그래서 로테와 잡담을 나눌 시간은 일 분 일 초도 없었다.

         

       어떻게든 중앙광장까지 가서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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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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