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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26. 정정당당한 승부(1)

       

       

       내가 검은 송곳니를 자칭하자마자 맹인 소녀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소녀는 계속 우물쭈물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검은 송곳니가 뭐예요?”

       

       너무나도 당연한 물음.

       

       …하긴, 생각해 보면 저 아이가 검은 송곳니에 대해 아는 쪽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여태까지 흑마법 연구용 소재로 잡혀 있었을 테니까. 

       

       오히려 흑마법사가 자기 제물한테 친절하게 제국 정세를 가르쳐 주는 편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썩어빠진 제국을 갈아엎고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려는 조직…… 일 거야 아마.”

       

       일단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사실 이게 맞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전작에서도 언급되지 않았고 스포일러 글에서도 안 나온 조직이니까. 내가 그놈들의 목적을 알 리가 없다.

       

       제국에 끊임없이 테러를 저지르는 걸 보면 분명 제국에 불만이 있는 건 확실하다.

       

       그런데 그놈들은 딱히 무언가 슬로건이라든지, 목적 같은 걸 발표한 적이 없었다.

       

       검은 송곳니의 진짜 목적이야 거기 단장만 알고 있겠지.

       

       그리고 내가 검은 송곳니의 단장 같은 거물이랑 친분을 쌓게 될 리 없으니, 앞으로도 검은 송곳니의 목적은 오리무중이리라.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일단 그 사람들이 제국을 무너트리고 혁명을 일으키려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전작의 떡밥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최종 보스는 제국과 관련되어 있을 확률이 높으니까, 혁명이 성공한다면 나야 이득이다.

       

       나는 그냥 검은 송곳니 분들이 열심히 활동하기를 응원할 뿐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너희를 구하러 왔다는 거지.”

       

       나는 그리 말하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내 눈이 자연스레 소녀의 목으로 향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1201.

       그런 숫자가 소녀의 목에 각인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자연스레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저 번호의 의미를 유추해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 새끼는 도대체 얼마나 학구열이 높은 거야.’

       

       이런 블랙마켓을 운영하니까 돈이야 당연히 썩어넘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네 자릿수나 되는 사람을 죽이는 건 좀 선을 넘었다.

       

       흑마법사에게 도덕을 따지는 게 의미없는 일인 건 알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선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갑작스레 의협심이 들끓었다.

       

       이런 탐관오리의 재산 따윈 빠르게 몰수해야 한다는, 의적으로서의 직업정신이 솟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잠깐 발목 좀 내밀어봐.”

       

       나는 그리 말하며 아이들을 묶은 마력사슬을 확인했다. 

       

       왜 노예를 가둔 우리 문을 이렇게 활짝 열어놨나 했는데. 사슬을 믿고 배짱을 부렸던 모양.

       

       꽤 공들인 술식이다.

       힘으로 여는 것도 불가능하리라.

       

       허나, 딱히 상관은 없었다. 

       이건 내가 아는 마법이었으니까.

       

       ‘스승 꺼 파쿠리했네.’

       

       다회차 플레이를 하면서 몇 번이나 마주쳤는지를 모르겠다.

       

       재미없는 미니게임.

       오래 걸리는 데다가 스킵도 안 되서 유저들의 원성을 샀지만, 끝까지 개선되지 않은 요소였다.

       

       인생만사 새옹지마라더니 진짜 사람 일이라는 게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기는 하다.

       

       병신같이 5만원 더 주고 구매한 프리미엄 에디션은 지금 내 생명줄이 되었고,

       

       다회차 플레이로 익힌 디스펠 기술은 앞으로도 유용하게 쓰일 테니까.

       

       술식의 형태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딱히 역산 과정 같은 걸 거칠 필요는 없었다.

       

       그냥 정답을 외우고 있는 셈이었으니.

       

       슬쩍 마력을 불어넣어 주기만 하면… 완성이다.

       

       마력으로 구성되어 있던 사슬이 녹아내린다. 사슬은 얼마 가지 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풀었으니까, 이제 움직여 봐.”

       

       내 말에 소녀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든다. 

       소녀는 자기 발목을 어루만지면서도, 진짜 사슬이 사라졌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듯 했다.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었다.

       여태까지 계속 저 사슬에 묶여 있었을 테니까. 갇혀 있는 삶에 익숙해지고 체념하며 살아왔겠지.

       

       갑자기 얻은 자유에 당황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 이 상황.

       내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소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녀를 이끌어 주었다.

       

       그렇게 소녀는 처음으로 우리 밖으로 나왔다.

       

       소녀는 잠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당황하다가…. 

       

       그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대체 무슨 위로를 건네야 할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언뜻 보아도 8살이 넘지 않아보이는 나이.

       그곳에 갇혀서 죽음만을 기다렸을 꼬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허나, 그럼에도 그 소녀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서.

       나는 그저 그 소녀의 손을 꽉 붙잡고 있었다.

       

       적어도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도록.

       

       *****

       

       나는 그렇게 내가 구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인원수는 총 다섯.

       

       하지만, 제대로 대화가 통하는 건 저 맹인 소녀뿐이다. 나머지는 내 말을 알아듣고 고개는 끄덕여도 입을 열지는 못했다.

       

       나는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목에 세겨진 숫자.

       맹인 소녀는 마지막 순번이었으니까.

       

       앞의 아이들은 무언가를 당해 망가진 것이리라.

       

       ‘아마 악마한테 뭔가를 바쳐진 거겠지.’

       

       전작에서도 비슷한 짓을 하던 놈이 있었으니까.

       

       말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빼앗긴 게 아닌가 싶다. 말만 못할 뿐이지 내 이야기를 알아듣고는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다섯 명의 꼬마들과 함께 창고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태까지 보인 게 흑마법에 대한 연구자료나 실험용의 노예라면, 지금 보이는 것은 온갖 은화와 금화들이었다.

       

       아까까지가 연구공간으로 쓰인 곳이라면, 여기서부터가 진짜 창고로 쓰인 공간인 모양.

       

       “최대한 많이 담을 테니까… 빨리 여기서 도망치죠!”

       

       어느새 기운을 차린 맹인 소녀가 그리 이야기했다.

       내가 여기 도둑질하러 왔다고는 한 마디도 안 했는데, 눈치가 꽤 빠르다.

       

       내가 목표로 하는 물건을 얻을 때까지 여기서 나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말도 안 꺼냈는데 도와주려 하는 것도 기특하네.

       

       “근데 금화나 훔치려고 여기 들어온 건 아니야.”

       

       돈이라면 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루비아 씨와 포션 제조사업을 벌일 예정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무거운 걸 대체 어느 세월에 다 옮겨?

       

       결국 귀중한 것만 골라서 챙겨야 했다.

       

       아티팩트…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본 성검을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나는 소녀에게 따로 찾아야 하는 물건이 있다고 이야기하려다가…, 문득 이상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너, 여기 금화가 있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눈, 안 보이는 거 아니었나?

       내가 당황하며 그리 묻자 소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보이지 않아도 감각 같은 걸로 느낄 수 있어요.”

       

       별 신기한 놈이 다 있네.

       보통 사람보다 더 잘 보는 맹인이라니, 소설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혹시 원작에서 나온 중요인물인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타이밍 좋게 주인공이 나와 같은 행보를 취해서 이 꼬마를 구했을 확률은 희박하다. 

       

       원작에서는 아마 등장조차 하지 못하고 죽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결론내리고 창고를 계속해 걸어나가다가…… 순간 떠올렸다.

       

       “혹시 말이야, 부러진 검 같은 게 어디 있는지 찾아줄 수 있어?”

       

       만약 주위의 물건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다면 성검의 위치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기대를 하며 소녀에게 그리 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분홍 머리의 소녀는 계속해서 묵묵부답이다.

       

       …붙잡은 손이 벌벌 떨리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바라본 소녀의 표정은 창백하게 질려 있다. 그 얼굴에서 학습된 두려움이 엿보였다.

       

       자연스레 내 얼굴이 굳어진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

       

       하얀 머리의 노인이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인은 아니다.

       

       대마법사는 전작 스토리 도중에 제자 손에 죽었으니까. 자기 스승을 살해한 제자가 스승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약하다는 건 아니었다.

       

       압도적인 마력이 느껴진다.

       그렇게 많은 제물을 바치더니 효과는 확실히 있었나 보다.

       

       전작에서 보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라고밖에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 테러 진압으로 바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일이 꼬인 모양.

       

       하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이지.’

       

       남자가 나를 뚫어져라 노려본다.

       

       위압감이 전해져 온다.

       허나, 나는 멈추지 않고 남자에게 나아갔다. 

       

       딱히 내 승리를 확신해서 이런 짓을 하는 건 아니었다. 생각해 둔 계획을 써도 아마 승률은 반반 정도 아닐까.

       

       ‘근데, 난 져도 괜찮잖아.’

       

       당연한 일이다. 

       아직 내 목에는 시엘이 준 부적이 걸려 있으니까.

       

       내 몸에 상처라도 나는 순간, 즉시 그 둘이 그림자를 통해 나에게로 달려올 것이다.

       

       적당하게 강한 상대.

       보장된 안전.

       

       다시 말해, 실전 경험을 쌓을 완벽한 기회였다.

       

       “너는 누구냐.”

       

       남자가 안광을 빛내며 그리 물어왔다.

       허나, 딱히 대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심호흡 한 번에 마나의 흐름을 안정시킨다.

       

       한쪽 목숨만 걸려 있는 생사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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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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