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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건, 지금과 같은 학예회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중요한 배역을 맡은 아이일수록 더더욱 그러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맡은 ‘마법 거울’ 역할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백설공주가 성장하며, 왕비 역의 아이는 총 3번 마법 거울에게 말을 걸게 된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본래라면 ‘아름다운 왕비님입니다’라고 답했을 거울은, 백설공주가 성장하며 그 답이 달라진다.

       가장 아름다운 건 백설.

       그 대답을 세 번 들었을 때, 거울을 깨버린다.

       

       내 첫 버튜버로서의 연기는 그걸로 마무리 되었어야 했다.

       

       “감히!!”

       

       ‘가장 아름다운 건 백설공주입니다’라는 말을 듣기 무섭게, 왕비 역의 아이가 열연을 불사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참고로 이 장면은 민아 선생님이 꼭 추가해주길 바란 장면이었다.

       

       일반적인 백설공주는 심심하니, 나름 어레인지를 가했다고 하나…….

       아무튼 그런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듯 우리 어린 왕비는 힘차게 은박지로 만든 거울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정말 힘차게.

       

       “…….”

       

       종이 판자에 둥글게 구멍을 뚫고, 그곳을 은박지로 덧대어 만든 거울이었다.

       7살 아이의 펀치라도 힘차게 내지른다면 은박지 정도는 간단히 꿰뚫을 수 있는 법.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피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왕비 펀치를 얻어맞을 뻔했다.

       

       ‘어떻게 하지.’

       

       판단은 빨랐다.

       본래 여기서 마법 거울은 ‘악!’하는 단말마와 함께 최후를 맞이한다.

       본래 마법 거울이 여기서 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햇님반 마법거울의 최후는 이렇다.

       아무튼, 이런 왕비의 열연을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건 실례일 터.

       

       다른 아이들의 연기에 맞춰, 적당히 내려놓았던 감정모사를,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그리고.

       

       「아아악!!」

       

       멋진 비명 소리와 함께, 주서연 풀썩.

       그 성대한 사망 연기에 시끄럽던 일대가 순간 조용해졌다.

       좋아, 이걸로 모두의 시선은 우리 둘에게 쏠렸겠지.

       

       이때 왕비가 분위기를 잡고 이야기하면, 썩 분위기가 음산하게 보일 것이다.

       본디 아이의 비명은 공포감을 가장 쉽게 불러일으키니까.

       

       현재 깔린 음산한 배경음악 속에서 내뱉으면.

       평범한 대사도 왕비의 카리스마로 탈바꿈할 터!

       

       ………

       ……

       

       ‘……응?’

       

       분명 이어 왕비의 대사가 들려야 하는데, 조용했다.

       힐끔 감았던 눈동자를 떠서 올려보자 거울을 꿰뚫은 자세 그대로 굳은 게 보였다.

       

       “저, 서연아?”

       

       슬금슬금, 무대의 구석에 올라와 몸을 낮춘 민아 선생님이 물었다.

       

       “살아있니?”

       “네.”

       “그, 연습 때는 이렇게 한 적 없지 않았나?”

       

       그렇게 물으니 변명이 궁했다.

       왕비의 열연에 받아줬다 하면 뭔가 남 탓 같잖아.

       

       “제가 무대 체질이라…….”

       “그건, 그렇기야 한데.”

       

       아무래도 내 죽는 연기가 워낙 실감 나서 민아 선생님이 확인하러 올라온 모양이었다.

       직감했다. 너무 오버했구나.

       주서연 첫 연기 대실패의 순간.

       

       “깜짝 놀랐네요.”

       “순간 너무 실감 나서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는데.”

       

       다행히 관객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음산한 배경음악과 잘 어우러져, 대사가 없던 게 왕비 나름의 감정 연기라 판단한 모양.

       

       “휴!”

       

       민아 선생님도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종이 판자와 함께 나를 질질 무대 뒤편으로 끌고 내려왔다.

       

       덕분에 왕비 역의 아이도 잠시 눈을 동그랗게 떴으나, 이내 연기를 이어 나갔다.

       

       “어휴, 깜짝 놀랐잖니.”

       

       아무튼 연극은 그 외에 별다른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왕비 역의 아이가 백설공주를 내쫓고, 난쟁이 역을 맡은 아이들도 저마다 제 역할을 잘 해냈다.

       

       ‘확실히 연기해본 애랑 그렇지 않은 아이랑 차이가 나네.’

       

       이지연은 아직 광고 외에는 특별히 촬영한 적이 없는 아역이다.

       하지만, 다른 애들과 비교하면 선명해 보일 정도의 존재감을 지녔다.

       

       평소 말괄량이 같던 모습도, 지금은 제대로 백설공주로서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대사 전달도 시원시원했고, 저 모습만 보면 이지연이 후에 조용히 잠적한 게 납득 되지 않았다.

       

       그만큼 소속사에서 입은 상처가 컸던 거겠지만.

       

       “서, 선생님.”

       

       그렇게 연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

       병사 역의 아이가 잔뜩 찌푸려진 얼굴로 민아 선생님에게 다가가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의아한 마음에 잠시 무대에서 시선을 떼고 그쪽을 바라보자.

       

       “왕자의 바지 색깔이 이상해요…….”

       

       라는 매우 끔찍한 답변이 돌아왔다.

       

       ***

       

       어린 이지연의 첫 무대.

       아직 광고 CF 정도나 찍은 게 전부였기에, 비록 학예회의 무대임에도 이지연은 최선을 다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마도 보고 있을 거다.

       

       ‘아이참, 다들 왜 제대로 연기를 왜 못하는 거야?’

       

       그런 불평이 치솟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이 나이에 제대로 연기를 배운 애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이정도면 괜찮은 편.

       그렇게 생각했음에도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적어도 저 왕비 역의 아이만큼만 해주면 좋을 텐데.

       

       ‘역시 주서연이 다른 역을 맡았어야 했어.’

       

       하다못해 난쟁이 역만 맡았어도 지금보다 나았을 거다.

       다들 웃는 얼굴로 아이들의 재롱을 보고 있었지만, 이지연은 그보다 대단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게 아이의 마음이니까.

       

       그렇게, 백설공주는 독 사과를 먹고 쓰러진다.

       준비된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유리관.

       

       그곳에 누운 이지연은 감은 눈을 살며시 뜨고 무대의 옆을 보았다.

       

       ‘왕자 녀석, 제대로 못하기만 해봐.’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제비뽑기로 걸린 왕자 놈.

       연기에 의욕도 없고 대사도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탓에, 중간에 한번 등장했을 왕자는 마지막에나 딱 나타나서 몇 마디 내뱉는 게 다였다.

       그거라도 잘하자.

       이지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왕자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난쟁이들의 울음소리 연기와 함께, 비장한 배경음악이 깔리는 순간.

       

       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어째서인지 순간, 관객석이 술렁였다.

       

       ‘뭐야?’

       

       이지연은 실눈을 뜨고 무슨 일인지 보려 했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왕자놈이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저러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졌다.

       

       「왜 그렇게 슬프게 울고 있죠?」

       

       구슬프게 우는 난쟁이들에게 왕자가 말했다.

       맑은 소년의 목소리였다.

       

       ‘어?’

       

       이지연은 순간 눈을 크게 뜰뻔했다.

       익숙한 목소리다.

       정확히는 방금 전까지 들었던 거울의 목소리보다 좀 더 낮은. 

       소년다운 목소리였다.

       

       그리고 지연이 아는 한,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

       매번 쓸데없이 발성 연습을 하며 자랑하던 주서연 뿐이었다.

       

       “아니, 여보. 저 아이, 서연이 아니에요?”

       “어, 맞는 거 같은데……. 하지만 서연이는 분명 거울역을 맡았잖아?”

       

       주영빈은 아내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무대를 보았다.

       아까 무대 뒤편이 묘하게 소란스럽더니 무슨 일이 있었나?

       

       ‘딸의 연기를 이렇게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지만.’

       

       두유 광고 때 연기하는 걸 보긴 했지만, 이런 ‘극’의 연기는 처음이다.

       그것을 본 감상이 어땠냐면.

       놀라웠다.

       

       당장 주변의 반응도 그랬다.

       

       자신의 아이가 가장 눈에 띄길 바라는 부모의 특성상.

       달가운 상황은 아닐지 모른다.

       

       어제 뜬 드라마 티저 영상으로 관심을 받은 아이가, 주변의 관심을 한 번에 쓸어가는 건.

       하지만, 그럼에도.

       

       「백설공주?」

       

       눈이 갔다.

       그저, 계속.

       

       「그런, 이런 선량하고, 아름다운 공주님에게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다니.」

       

       난쟁이들의 설명을 들으며, 왕자의 얼굴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긴 흑발을, 등 뒤로 한 갈래로 묶고, 검은 바지에, 비교적 무던한 인상의 상의는 그다지 왕자에 어울리지 않는 의상이었다.

       

       단지, 머리 위의 왕관이 그가 왕자임을 나타낼 뿐.

       그럼에도 동작 하나하나가, 그 기품을 보였다.

       왕자 역을 맡은 아이는 분명 여성일 텐데도.

       

       그 걸음걸이나 행동이 완벽히 남성의 것이었다.

       마치 남자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것처럼.

       

       이윽고 왕자는, 관에 누운 백설공주를 양손으로 번쩍 안아 들었다.

       

       “야, 뭐해. 주서연.”

       

       이지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눈을 뜨고 옆을 보자, 검은 머리칼을 가지런히 뒤로 넘긴 왕자가 있었다.

       바로, 소년으로 분장한 주서연이.

       

       “그냥 고개를 숙이는 건 자세가 안 나오니까.”

       

       이후 민아 선생님이 구성한 연극은 장렬한 뽀뽀 장면이다.

       애들이니 뭐 키스 씬까지는 아니었고.

       근데 유리관의 크기 때문에 작은 아이의 몸으론 좀처럼 좋은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너 진짜…….”

       “왜?”

       

       피식, 하고 서연은 그야말로 왕자답게 웃어 보였다.

       그야 당연하다. 

       지금은 왕자니까.

       

       “제대로 연기해주길 바란 거 아니었어?”

       

       그 말에 지연이 ‘아니, 이건 좀 다르잖아’, 라고 말하려는 순간.

       왕자는 그대로 백설공주를 안아 들고는 몸을 돌렸다.

       

       “특히.”

       

       사람들을 등지며, 둘의 머리 위치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도록.

       이어, 왕자의 머리가 기울어졌다.

       

       “마무리는 멋지게 해야지.”

       

       당연히 입을 맞추거나, 뽀뽀를 한 건 아니었다만 관객들이 보기엔 그런 식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걸 노린 거고.

       관객들의 새된 감탄을 들으며, 서연은 코앞에 보이는 댕그래진 이지연의 두 눈을 응시했다.

       

       “첫 연기 데뷔잖아?”

       

       뭐, 이쯤 되면.

       꽤 화려한 피날레다 싶었다.

       

       ***

       

       아무튼 그리하여, 이지연의 화려한 첫 극의 데뷔는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참여한 아이들도 모두 만족했고.

       성공적으로 휴가를 쟁취한 민아 선생님은 기쁨의 눈물마저 글썽였다.

       

       ……단 하나. 긴장감에 바지에 실례를 해버린 왕자 역이었던 남자아이만 빼고.

       덕분에 애드리브가 가능한 내가 급히 투입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그때 내가 왕자로서 떠든 대사는 전부 애드립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나무로 다시 등장하긴 했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백설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되살아났고.

       이후 왕비와의 대결전 끝에 승리하며 연극은 해피엔딩으로 맞이했다.

       

       끝나고 사람들에게 한참 시달려야 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나름 좋은 추억이 되었고.

       

       “근데요, 엄마.”

       “응?”

       

       나는 자동차의 뒷좌석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꼭 참여해야 해요?”

       “아무래도 이번 시사회에선 정우 군이랑, 우리 딸이 주역이잖니?”

       

       이윽고 다가온 시사회.

       솔직히 이전의 이벤트도 부담스러웠던 나로선 기필코 피하겠다고 마음먹은 자리였다.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는 법.

       

       ‘나중에 배우 일하려면 PD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겠지…….’

       

       듣기론 드라마 국장까지 말이 갔다던가.

       그런 높으신 분들도 주목한 상황에서 괜히 빼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거기다.

       

       ‘엄마도 기대하고 있으니.’

       

       싱글싱글 웃으며 운전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 뭐어, 이런 것도 괜찮다 싶었다.

       어차피 내가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일은, 이제 당분간은 없을 테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더불어, 후원으로 노맨스인지 여쭤보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이 기회에 말씀드리자면.(이 부분은 소설 내용으로만 보여드리면 오해가 있을 것 같아서)

    이 글은 기본적으로 완결까지 노맨스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배제한 건 아니고, 적당히 어느 쪽이나 향(?)은 느껴질지 모릅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을 쓰는 건 좋아해서요.

    어디 까지나 느낌적인 거지, 다시 말하지만 소설 자체는 노맨스 지향입니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깊이 들어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조미료 정도로 생각해주세요.

    완결이 나면 이후의 내용을 외전으로 암타든, 백합이든, 그냥 순수 노맨스는… 나이 먹어서 불쌍하니까 적당히 열린 결말 외전으로 끝낼 수 있겠죠.
    이건 아직 미정이지만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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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I Want to Be a VTuber

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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