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25

       구현의 권능은 사실 사용하기 매우 까다로운 권능이었다. 구현을 유지하려면 생각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전장에서 그게 얼마나 힘든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나마 유형물 정도라면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특히 반평생을 그 물건을 사용한 사람이라면. 그래서 원작의 아이작은 검을 구현하는 정도로 사용했다.

       

       

       그러나 추상적인 개념을 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최강이라는 개념을 구현하는 자는 둘 중 하나다.

       

       

        정말 한때 최강이었거나.

       

       

       아니면 그냥 또라이거나.

       

       

       * * *

       

       

       모든 것을 내려놓은 두 사람의 주먹이 정면에서 부딪쳤다. 속임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그저 힘과 힘의 대결이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던 자린은 이를 악물었다.

       

       

       설마 족장님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한 인간이 있을 줄이야. 그나마 60년 전에 네메아 요새의 사령관을 제외하면, 다신 없을 줄 알았는데. 저런 인간이 또 나타나다니!

       

       

       “자린님, 지금이라도 족장님을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돕는다고? 우리가? 대체 무슨 수로?”

       

       

       “그건…….”

       

       

       “저건 이미 우리가 관여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어.”

       

       

       사자들 또한 어지간한 인간은 가볍게 압도할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기에 낄 수 있는 레벨은 아니었다. 지금은 가까이만 가도 아마 온몸이 찢겨지겠지.

       

       

       ‘무력하구나. 또 다시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족장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기도뿐이다.

       

       

       사자왕은 포효를 내지르며 약해지려는 의지를 다 잡았다. 그는 죽는 것조차 쉽게 할 수 없었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기에. 그렇기에, 간절히 바란다.

       

       

       부디 전력의 자신을 쓰러뜨려주기를. 사자왕의 운명은 아이작에게 맡겨졌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정면에서 사자왕과 부딪친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멋있는 기술 이름이 없을까.’

       

       

       그렇다. 정말 놀랍게도, 그는 자신의 기술 이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원래 기술 이름을 말하면서 싸우는 것은 창작물의 특권인 법이니. 이윽고, 아이작은 이름을 정했다.

       

       

       Zero Impact

       제로 임팩트

       

       

       얄궂게도, 그 유치한 고민의 정답이 승리를 불러왔다. 이름을 가진 것은 구현에 영향을 받는다. 이름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 정확히는 인식하지 못한다는 뜻.

       

       

       하지만 이름을 정함으로 그것을 확실하게 인식했고. 그 힘을 온전히 현실에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바로 지금처럼. 압도적인 힘이 곧 사자왕의 압도하기 시작한다.

       

       

       사자왕은 이를 악물고 버티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힘에서 밀려버리고 말았다. 주먹에 담긴 충격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서 사자왕의 주먹을 꿰뚫어버렸다.

       

       

       “……훌륭하다, 영웅.”

       

       

       모든 힘을 소진한 사자왕은 미소를 지으며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작은 거친 숨결을 내뱉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아이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존나 아파.’

       

       

       백기사급 전력을 격투로 압도한 아이작이었지만. 사자왕은 절대로 만만한 전력이 아니었다. 사자왕의 괴력은 아이작의 권능을 뚫고, 내부에 피해를 줄 정도로 강했다.

       

       

       덕분에 아이작은 중간중간에 엄청난 고통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로 주먹을 통해서 사자왕의 감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냥 컨셉 때문이었다.

       

       

       컨셉을 위해서는 목숨조차 걸 수 있는 아이작이다. 당연히 뼈가 부러지는 고통 따위는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아픈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지만…….

       

       

       “만족스러운 얼굴이군.”

       

       

       “전력을 다해서 싸웠고, 패배했다. 결과에 불만은 없다.”

       

       

       “그런가.”

       

       

       “그래, 이제 영웅으로서 해야할 일을 해라.”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전력을 다한 싸움에서 패배한 이상, 구질구질하게 사연을 늘어놓을 생각도 없다. 오히려 사자왕은 차라리 이런 결말을 바라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는 짊어진 것과 미련이 너무 많았고. 그렇다고 억지로 패배하기에는 긍지가 용서하지 않았다. 괴물은 영웅에게 죽어야 한다. 그게 나의 결말이다.

       

       

       그리고 사자왕은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끝은 다가오지 않았다. 거기에 이상함을 느낀 사자왕은 눈을 떴다. 아이작은 끝을 내지 않았다.

       

       

       그저, 사자왕의 근처에 앉아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설마 조롱하는 건가? 하지만 그런 기색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제야 아이작의 입이 열렸다.

       

       

       “마지막의 그것을 제외한 너의 주먹에서, 나는 미련을 느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가족.”

       

       

       “……!!”

       

       

       “너 같은 남자가 미련을 가지는 것은 그 정도가 유일하겠지.”

       

       

       놀랍군, 이 자는 짧디짧은 공방으로 거기까지 파악한 건가. 확실히 그는 이야기만 듣고 흘려보내는 것이 아닌. 마주 보려고 하고 있다. 사자왕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괴물을 마주보려는 건가. 영웅이여.”

       

       

       “스스로 자책하고, 저지른 죄업을 후회하며. 남겨질 이웃을 걱정하는 자를.”

       

       

       “…….”

       

       

       “우리는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우르칸.”

       

       

       “못 당하겠군.”

       

       

       정말로 오랜만에 이름으로 불렸다. 요새를 공포에 몰아넣은 괴물 사자왕도, 부족을 지탱하는 부족장도 아닌. 그저 나 하나의 이름으로. 우르칸은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이 남자에게 전부 간파당했다.

       

       

       그러니, 자기도 모르게 기대하게 된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빠짐없이 말해다오.”

       

       

       구원을 얻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기대를.

       

       

       * * *

       

       

       우르칸은 아이작과 지크를 자신의 움막으로 초대했다. 부족장의 움막이라고 하기에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움막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눈을 반짝이며 움막을 구경했다.

       

       

       “움막은 처음 보는 건가?”

       

       

       “그렇겠지. 시골 출신 아이니까.”

       

       

       “아, 그.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 아이들의 그런 점은 싫어하지 않아.”

       

       

       의외로 우르칸은 아이들을 매우 좋아했다. 소설에서는 그런 우르칸을, 혹시나 품에 들어왔을 자신의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겹쳐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원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핥은 아이작은 그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주먹과 주먹을 통해서 전해진 게 있다는 식으로 밖에 안 보였다.

       

       

       덕분에 우르칸은 생면부지의 타인인 아이작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해줄 각오가 들었다. 혹시 이 남자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우르칸은 그것을 건네주었다.

       

       

       “이건……?”

       

       

       “읽어보게.”

       

       

       [지속적으로 요새를 공격하되 함락시키지는 말 것. 만약 어긴다면 아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음.]

       

       

       전형적인 협박 편지에 아이작은 혀를 찼다. 그래, 이게 원작에서 우르칸이 네메아 요새를 공격하기 시작한 이유였다. 그러나 사정을 모르는 지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은 사자 부족의 족장님이 아닌가요?”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당신의 아들을 데리고 있는 거죠?”

       

       

       “그건 내 아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지크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러나 우르칸은 거릴 게 없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어딘가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60년 전에 널 고전시킨 인간이 너의 아내인가?”

       

       

       “그렇다. 그녀는 동시에 요새의 전 사령관이기도 했지.”

       

       

       “어쩌다 사령관과 부족장이 서로 만나게 된 겁니까?”

       

       

       지크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령관과 부족장은 각각 해당 공동체 최고 지휘관이다. 그런데 그 둘이 서로 만났다고? 자칫 죽거나 하면 어쩌려고?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네?”

       

       

       “그녀는 혼자서 이곳으로 찾아왔다.”

       

       

       [족장은 당장 나와서 이 몸을 맞이하라!!]

       

       

       아직도 그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당시 사자 부족과 네메아 요새는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증오와 원망이 쌓이고 쌓여버린 최대의 적.

       

       

       미케스 왕국의 입장에서는 북동부로 영역이 확장되면 해안까지 진출할 수 있었고. 반대로 사자 부족은 예전부터 살아왔던 고향을 미케스 왕국에게 잃어버릴 수는 없었기에.

       

       

       그 둘이 부딪치는 것은 필연적인 상황이었다. 근데 그런 상황에서, 네메아 요새의 사령관이 직접 사자 부족을 찾아온 것이다. 그것도 병사들을 동원하지 않고. 단 혼자서.

       

       

       “그녀는 사자 부족과 공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었지.”

       

       

       “무모함을 관철할 수 있는 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다. 지금에 비하면 미숙하지만, 그래도 당시 부족 최강이었던 나는 그녀에게 패배했다.”

       

       

       힘에 취해서 오만함에 빠져있던 우르칸은 그 당시, 그녀에게 철저하게 패배했다. 부족 최강인 내가 패배했으니, 이제 사자 부족의 운명도 끝이구나. 그렇게 낙담했었다.

       

       

       [자, 손!]

       

       

       [……빨리 죽이기나 해라. 네놈에게 전사로서 긍지가 있다면.]

       

       

       [죽여? 내가 왜? 이 몸은 그냥 대화를 하려고 온 거라고.]

       

       

       [그런 년이 다짜고짜 주먹을 휘두르나?]

       

       

       [원래 진짜 대화는 주먹으로 나누는 법이라고.]

       

       

       엉망진창에 논리 따위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싫어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어쩌면 그 엉뚱한 매력에, 자기도 모르게 끌리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왕국과 부족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향부터, 좋아하는 음식이나 단련 방법 등등.”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기면, 자연스레 서로의 마음에 깊숙히 남는 법이지. 설령 종족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또.’

       

       

       사랑이라는 말을 듣기 무섭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냥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두 시선이 마스터에게 고정되어버려, 움직이지 않아.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혹시 나를 유혹해서 부족을 삼키려는 속셈이 아닐까 의심도 되었지.”

       

       

       “그래서? 결국에는 헤어졌나?”

       

       

       “아니.”

       

       

       우르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했던 적도 있었고, 거기에 상처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과 의심조차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그날, 그러니까 지금부터 50년 전. 그녀는 갑자기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웃던 얼굴이 생생하다.

       

       

       “그때부터 연락이 끊겼지.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것이 이 편지와 목걸이였다.”

       

       

       “특이한 목걸이네요.”

       

       

       “그야 그렇겠지. 우리 부족의 전통대로 직접 그녀에게 만들어준 목걸이니까.”

       

       

       “목걸이와 편지가 도착한 것은 언제쯤이지?”

       

       

       “3년 전이다.”

       

       

       아무리 목걸이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고 하더라도. 믿기 쉬운 내용은 아니다. 이미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 흘러간 시간을 생각하면, 오히려 가능성이 더 높다.

       

       

       하지만.

       

       

       그렇게 냉정하게 자식의 목숨을 저울질할 수 있는 부모가.

       

       

       세상에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만약에 정말로 살아있다면? 그녀와 나의 흔적이 이 세상에 남아있다면? 그러면 어떻게 하지? 그 옅디 옅은 단 하나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못해. 그는 손에 피를 묻혔다.

       

       

       “그래도 남에게 말하니 속이 후련하군. 내 이야기는 이제 잊어버려도 된다.”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어요!”

       

       

       “수십 년이 지났다. 편지가 온 다음의 시간만 따져도 무려 3년이나 시간이 흘렀지.”

       

       

       아이작과 싸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탓일까. 지금 우르칸은 그 누구보다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판단으로 내려진 결론은 항상 부정했었던 답.

       

       

       “그녀와 내 아들은 이미 죽었다.”

       

       

       “그러니까, 아직 확인된 것은 아무것도……!!”

       

       

       “어떻게 확인을 하겠다는 건가? 이미 시간이 그리 지났는데. 아니면 그대들이 내 아들을 찾아주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그건 진지한 부탁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모든 것을 깨닫고 포기해버린.

       

       

       슬픔밖에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지크조차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러나.

       

       

       “알았다.”

       

       

       아이작은 그 목소리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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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I Became the Guild Master in Exile

Status: Ongoing
I possessed the body of a guild master who ruined the guild. "We are all family." Since I was already possessed, I decided to stick to the concept hard. The guild members' obsession is no joke. Hel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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