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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세련되지 못했군! 효율적이지 않아!”

         

       호레이스 교수가 파스텔의 밀무역품을 살펴보고 혀를 찼다.

         

       “면포? 향신료? 허허!”

         

       허억.

         

       이 밀무역품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가?

         

       “교수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파스텔은 눈을 빛냈다.

         

       호레이스가 상아탑을 지탱하는 현자의 얼굴로 말했다.

         

       “품목이 밀무역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했네! 과거 트렌드로 밀무역을 하다니 이 얼마나 큰 손해인가!”

         

       밀무역의 최신 트렌드!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이분은 지하실에 갇혀있던 악마의 옛날 지식쯤은 가차 없이 비판할 수 있는 현직 밀무역 전문가시다.

         

       『흠.』

         

       호레이스 교수가 상자를 툭툭 쳤다.

         

       “최고급 면포는 마계가 자체 생산할 수 없으니 확실히 수요가 있지. 하지만 그건 예전 얘기일세. 이제 마계도 그 아래 품질 정도는 자체 생산할 줄 알아. 덕분에 마계가 발전하며 늘어나야 할 수요가 상당 부분 희석됐지. 가격도 옛날부터 현상 유지 중이고.”

         

       파스텔은 눈을 빛냈다. 여태 학교에선 수업도 안 들었지만 여기선 모범생처럼 수업에 집중했다.

         

       “여전히 돈은 되지만 더 좋은 품목을 놔두고 굳이 면포를 밀무역할 메리트는 없다는 얘기죠?”

         

       호레이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훌륭한 학생이군!”

         

       헤헤.

         

       파스텔, 모범생.

         

       “향신료는 그나마 낫지. 마계 자체 생산이 못 따라가고 있으니. 하지만 면포와 똑같이 더 큰 이윤을 두고 향신료를 다룰 필요는 없네.”

         

       오오.

         

       “그렇다면?”

       “무엇을 팔아야 하는가.”

         

       호레이스 교수가 모범생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바로 가공 마석일세.”

         

       가공 마석?

         

       에.

         

       마석은 애초에 마계의 광산에서 나는 거 아닌가? 그걸 마계에 판매한다는 게 무슨 소리지?

         

       파스텔은 혼란해졌다.

         

       슈퍼 울트라 현직 밀무역 전문가가 틀렸을 리 없어. 공부 안 하다가 하니 내 머리가 지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호레이스 교수가 온화한 눈빛을 보냈다.

         

       “필기 수석인 자네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하지만 선량한 머리가 지식을 악용하길 거부하고 있군.”

         

       오잉.

         

       그런 건가? 나 이미 알고 있는데 머리가 너무 선량해서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허억, 맞는 거 같아. 똑똑한 내가 이해 못 할 리 없잖아. 분명 선량한 마음이 악용을 거부하고 있는 거야.

         

       “마석 가공은 마계에서 할 수 없네. 제도적으로 금지돼 있지. 일부 예외는 있지만 자체 생산하는 마석은 모두 비가공 마석일세.”

         

       그러고 보니 밀무역하고 받는 마석이 죄다 비가공 상태긴 했다. 그걸 업체에 맡긴 다음 가공 마석을 냠냠 하는 게 평소 방식이다.

         

       “마계가 발전하며 가공 마석의 수요가 폭증했어. 하지만 가공 마석은 무역 절차가 까다로워 하늘섬 공급이 못 쫓아오고 있네. 우리가 할 일은 그 막대한 수요를 채워주는 일이지.”

         

       가공 마석이야말로 같은 부피의 황금과 비슷한 가격이다. 이걸 밀무역한다면 얼마나 금액이 남을까?

         

       파스텔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가공 마석을 밀무역하면 면포와 향신료를 다루던 때보다 수익이 얼마나 증가하죠?”

       “마석 자체의 이윤도 기존보다 크고, 면포나 향신료로 교환하는 유통 과정도 없어지니 지출도 감소하지. 이것저것 정확한 거야 계산해 봐야겠지만.”

         

       손가락 두 개가 펼쳐졌다.

         

       “대략 20%일세.”

         

       흐아아.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품목만 바꾸는데 수익 20% 증가.

         

       그것도 밀무역 때마다 증폭되는 복리 수치.

         

       허억.

         

       이것이 현직 밀무역 전문가의 손길?

         

       허리춤의 마검을 투두둑 쳤다.

         

       악마님! 악마님! 어서 배우세요! 어서어서 배워서 굶주린 아이를 도와주세요!

         

       『이놈에게 이상한 거 너무 배우지 마라.』

         

       으아아, 악마답지 않은 조언.

         

       호레이스 교수가 놀라는 소녀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다 살짝 찝찝해했다.

         

       “한데 어린 자네에게 알려주니 나쁜 어른이 되는 기분이야. 이래도 되는가.”

       『이놈도 양심이 있긴 했군.』

         

       파스텔은 눈이 동그랗게 됐다.

         

       “설마 교수님 양심에 찔린다거나 하시는 거예요?”

       “크흠.”

         

       호레이스 교수가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어떻게 그럴 수가.

         

       “호레이스 교수님, 아니 선배님! 괴로워하실 필요 없어요!”

         

       파스텔은 환자를 살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의사를 보는 심정이 됐다.

         

       “밀무역은 간절한 수요를 채워주는 일이잖아요! 절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는 일! 정의롭고 선량하다고요! 괴로워할 필요 없어요!”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호레이스 교수가 눈을 부릅떴다.

         

       “자네, 아니 후배! 어떻게 그런 참된 발상을?!”

         

       교수의 손이 스스로를 짚었다.

         

       “허어! 찝찝하던 속이 개운하게 풀리고 있어! 곱씹을수록 마음에 드는 발상이군! 그렇지 그래! 우리는 절실한 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전달하는 선량한 배달부였어! 암암!”

       『이놈은 왜 이걸 또 긍정하는 거냐.』

         

       교수가 열기로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역시 필기 수석일세! 한 수 배웠네! 어떻게 이런 참된 발상을 할 수 있었는가? 고견을 들려주게나!”

         

       양심에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낸 파스텔은 뿌듯해졌다.

         

       필기 수석의 위엄을 드러냈다!

         

       손으로 양 옆구리를 짚고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이것이 한치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니까요! 이 순간에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요. 양심에 찔려서는 절실한 사람을 구할 수 없다고요! 비정한 세상에 맞서 인의를 지켜야 해요! 저희만이 할 수 있어요!”

       『어린 크래프트?』

         

       호레이스 교수가 가슴팍을 짚으며 감동했다.

         

       “솔직히 고백하겠네. 사실 난 여태 밀무역을 하며 밤잠을 설쳤어.”

       “선배님?!”

         

       그럴 수가.

         

       난 꿀잠을 잤는데!

         

       침 흘린 게 부끄러워 악마님 몰래 베개를 뒤집어 놓기도 했는데!

         

       호레이스가 괴로워했다.

         

       “교수인 내가 이래도 되는가. 단속은커녕 시류에 올라타는 게 정녕 맞는 일인가. 한낱 돈에 도덕과 명예를 버려도 되는가! 허어!”

       『잘 아는군.』

       “하지만 자네의 말을 듣고 그런 고민이 싹 가시는 기분일세! 그렇지 그래! 절실한 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우리는 인의를 따르고 있다!”

       『아니.』

       “맞아요! 맞아!”

         

       파스텔은 방방 뛰며 환희했다.

         

       이렇게 마음 맞는 사람은 난생처음이야!

         

       “선배님! 선배님!”

         

       한 손을 번쩍 들었다.

         

       “오오!”

         

       호레이스도 한 손을 움직였다.

         

       “하이파이브~!”

         

       손바닥끼리 짝!

         

       야호.

         

       얼마 뒤 진정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눴다.

         

       “아 결국 마계주식회사에 납품하시는 거군요? 수수료 20%를 내면서요?”

         

       커피잔을 든 파스텔은 비즈니스 표정을 지었다. 마석 가루 첨가다.

         

       반대편 테이블의 호레이스 교수가 마신 와인잔을 내려놨다.

         

       “안전하고 손쓸 필요가 없으니 말일세. 교수 신분상 너무 눈에 띄는 활동은 어렵네.”

       “후배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파스텔은 가볍게 으스댔다.

         

       “블루웨이브에 범죄조직을 구해놨거든요. 계약도 끝내놓은 상태라 방문하면 수수료 20% 없이 즉시 거래할 수 있어요.”

       “오호. 자네 추진력이 남달라. 역시 크래프트군!”

         

       1학년이 범죄조직 운운하는데 교수는 한 치의 의심과 검증도 없이 감탄했다.

         

       “그래 준다면 마석 가공 업체를 주선해 주겠네! 교수로서 장기간 신뢰를 얻어 간신히 거래를 튼 업체지. 고품질에 가격도 훌륭해! 사용처를 묻지 않는 무거운 입까지 갖춘 곳일세!”

       “좋네요.”

         

       시크하게 답한 파스텔은 역시나 시크하게 커피를 한 모금했다. 검은 액체가 입안을 적셨다.

         

       으엑, 써.

         

       완전 써.

         

       맛없어.

         

       딱히 안 시크한 감상이 머리를 채웠지만 즉시 날려 보냈다.

         

       비즈니스, 비즈니스.

         

       호레이스 교수가 아쉬워했다.

         

       “다만 이번 밀무역엔 자네 도움을 받기 어렵겠군.”

       “어째서요?”

       “마계주식회사와 이미 스케줄을 잡아놓은 상태라 깨기 곤란해.”

       “아 그럼 별수 없네요. 스케줄대로 거래한 뒤 블루웨이브로 찾아오시는 건 어떨까요. 제가 미리 가서 준비해 놓고 안내해 드릴게요. 무역 자체는 다음에 하면 되니까요.”

       “음! 고맙네. 즉시 방문하지!”

         

       구두 계약을 끝마쳤다.

         

       분위기를 풀고 담소를 나눴다.

         

       호레이스 교수가 치즈 비스킷을 입에 털어 넣었다.

         

       “학교에서 지내며 뭐 곤란한 일은 없나? 자네가 학생회긴 해도 교수만 해줄 수 있는 일도 있으니.”

       “곤란한 일이요?”

         

       비즈니스 업무를 끝내자마자 커피는 버리고 우유를 가져온 파스텔은 울상이 됐다.

         

       “당연히 있죠! 실수로 학기 보고서를 깜빡했다니까요!”

         

       으아아.

         

       “필기 수석에서 연구 수석으로 진화하길 원했는데 완전 불가능해졌어요!”

         

       모두가 파스텔이 멍청하다고 오해하겠어.

         

       “허어!”

         

       호레이스 교수가 한탄했다.

         

       “자네 같은 똑똑한 사람이 연구 수석을 놓치다니! 그래서는 안 되지!”

       “맞아요! 맞아!”

         

       파스텔 완전 똑똑해.

         

       파스텔은 격하게 공감했다.

         

       “후배!”

         

       호레이스 교수가 자기 가슴팍을 쳤다.

         

       “이 선배만 믿게! 내가 누군가?”

         

       잉.

         

       “호레이스 교수님이요?”

       “그리고 학기 보고서 최고 담당자지!”

         

       오잉.

         

       “선배만 믿게!”

         

       호레이스 교수가 미소 지었다.

         

       “그 고민 깔끔히 해결해 주지!”

         

       오이잉.

         

         

         

       #

         

         

         

       교수와 헤어진 파스텔은 블루웨이브에 도착했다.

         

       거리를 걸으며 편지를 읽었다. 조직이 확장돼서 거처를 옮겼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코너를 돌면 보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 건물 아닌가?』

       “저건 좀 크지 않아요? 범죄조직의 음흉한 거처 같지가 않은데요.”

         

       두리번거리니 누군가 황급히 다가왔다.

         

       입술의 칼자국이 익숙한 남자였다.

         

       저번에 조직까지 안내해 준 착한 사람!

         

       “크래프트 님, 어서 이쪽으로.”

         

       남자가 지난번과 다르게 존댓말로 입을 열었다.

         

       “반가워요! 또 만나네요! 우와우와!”

         

       파스텔은 상큼발랄하게 인사를 건넸다. 높은 톤의 목소리가 거리에 울렸다.

         

       남자가 창백해지더니 입가에 검지를 댔다.

         

       “쉿! 쉿! 조용히 따라오십쇼.”

         

       엥.

         

       아 맞아!

         

       비밀 조직은 조용히 따라가야 하는 거지!

         

       오예.

         

       룰루랄라 남자를 뒤따랐다.

         

       두근두근.

         

       하지만 구석진 작은 건물에 당도하자 기대와는 다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네? 습격이요?”

       “저희가 조직 확장을 하다가 무리를 해버렸습니다. 상대 조직에서 준기사급의 용병을 고용했어요.”

       『호오.』

         

       준기사급?

         

       『정말 준기사급인지 물어봐라.』

         

       물어보자 완전히 그런 건 아닌 듯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준기사급의 벽에 막힌 자인가. 벽을 뚫고자 강자를 찾는 수도자는 수두룩하지. 그중 대부분은 죽고.』

       “용병이 저희 건물을 점거한 채 대기 중입니다. 서른 명을 학살한 크래프트 님과 맞붙길 고대하고 있습니다.”

         

       조직원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시죠. 무역품은 마계주식회사에서 처리하시면 될 겁니다.”

       “자, 잠시만요. 혼자 생각해 볼게요. 자리를 피해주시겠어요?”

         

       파스텔은 조직원을 보내고 마검을 꺼냈다.

         

       “악마님, 악마님. 준기사급이 뭐예요?”

       『무술을 수련하다 보면 존재의 격이 오른다. 자연이 동조하고 질서가 뒤따르지. 세상이 사람을 중심으로 흐른다.』

         

       잉.

         

       “검격 한 번에 산을 가르고 하늘을 베요?”

       『그건 동화 속 이야기야. 현실과 혼동하지 마라.』

         

       에.

         

       마왕도 있는데 이건 아니야?

         

       뭔 말인지 아리송하다.

         

       “직관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목검으로 강철을 벨 수 있다. 하지만 총 한 방에 죽지.』

         

       허억.

         

       너무 직관적.

         

       『경지의 벽을 뚫은 자와 벽에 막힌 자는 차이가 커. 용병은 후자니 이 정도는 아닐 거다. 하지만 위험한 상대는 맞지.』

         

       으아아.

         

       목검으로 강철을 베기 직전인 용병.

         

       『무리하게 싸울 필요 없다.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손쓸 틈도 없이 죽을 수도 있다.』

         

       으아아.

         

       『조직원 말대로 오늘은 자리를 피해라. 저들이 행동했으니 스스로 책임질 사안이다.』

         

       온화한 목소리가 울렸다.

         

       『넌 장래가 밝아. 준기사급은 물론 기사급까지 닿고도 남겠지. 위험을 자초하지 마라. 시간은 너의 편이야.』

         

       파스텔은 마검을 꼭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 그러고 싶지 않아요.”

         

       두려움과 생존 본능을 최대한 억눌렀다.

         

       “악마님, 악마님. 오는 길에도 이런 얘기 하시지 않았어요?”

       『그랬지.』

       “하지만 결국 교수님을 구했고요.”

       『네가 선택한 건 아니다.』

         

       고개를 저었다.

         

       “제가 받아들인 결과죠. 그랬더니 어때요? 즐거웠잖아요.”

         

       파스텔은 말과 다르게 몸을 떨었다.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옮겼다. 발걸음 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그러니.

         

       “계속 즐거울래요.”

         

       그러고 싶으니까.

         

       『죽을 수 있다.』

       “틀렸어요.”

         

       소녀는 고개를 저었다.

         

       “이럴 땐 응원을 하셔야죠.”

         

       악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말해왔다.

         

       『넌 할 수 있다.』

         

       소녀는 두려움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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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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