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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공자, 대체 그 물건은 뭐야?”

     

    아셀라가 갑자기 다급해진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그녀의 태도가 꽤 의아하다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유는 모르겠다. 설마 아셀라가 주삿바늘에 겁을 집어먹었다고는 상상도 안 되고 말이다.

     

    나는 평소와 같은 침착한 어투로 대답했다.

     

    “주사기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이걸로 황녀님의 혈액샘플을 채취해 검사에 사용하려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바늘을 내게 꽂아서 피를 뽑겠다고?”

     

    “그 말씀대로입니다.”

     

    아셀라가 입을 슬쩍 벌리고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얘가 바보 같은 표정을 지을 때도 있네.

     

    “공자, 너 흡혈귀였니?”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마족이면 포털을 어떻게 탔겠습니까.”

     

    “아니, 그건 맞는 말인데… 바늘을 어디에 꽂는데?”

     

    “정맥에 꽂습니다. 팔 안쪽이에요.”

     

    나는 내 팔꿈치 안쪽을 들어 톡톡 두드려 보였다.

     

    아셀라가 귀를 부르르 떨며 내게서 상체를 슬쩍 떨어트렸다.

     

    “황녀님?”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의사는 환자에게 진료 내용에 대해 절대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행여나 오해가 생겨 의료사고가 생기면 큰일이니까요.”

     

    아셀라가 눈을 질끈 감고는 이마를 어루만졌다.

     

    확실히 처음 보는 물건이니 거부감이 들 수 있었다.

     

    흡혈귀냐고 물어보기도 했고, 피를 뽑는다는 게 이 세상에서 일반적이진 않다.

     

    “잠시만요. 지금 황녀님의 옥체에 상처를 내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있어선 안 될 일입니다!”

     

    지켜보고 있던 시녀장 누님이 참다 못했는지 끼어들었다.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상처라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바늘구멍이고, 제가 바로 치료해드릴 테니 문제없습니다. 혈액을 검사하면 황녀님의 건강을 지키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꼭 혈액이어야 하나요? 의학 말고 다른 방법을 쓰시면….”

     

    “그 의학을 사용할 환경을 구비해주겠다고 하신 건 황녀님이었습니다만, 그렇죠?”

     

    “…그랬지.”

     

    아셀라는 내게 동의해 힘을 실어주었다.

     

    입술을 오물거리는 게 뭐라고 반박하고 싶은 건가?

     

    뱉었던 말이 있어서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의학에서 이게 일반적이라면, 쓰라고 한 건 본녀이니… 후우.”

     

    아셀라가 심호흡을 하고는 각오를 굳혔다.

     

    “뽑아.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써.”

     

    “예.”

     

    아셀라의 명령에 시녀장도 물러나야 할 때였다.

    다만 그녀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대신 황녀님의 혈액은 이 자리에서 검사하고, 끝나면 보는 앞에서 폐기해주시기 바랍니다.”

     

    “행여나 흑마술의 재료로 쓰이면 큰일이니 말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내가 시원하게 대답하니 더 토가 달리는 일은 없었다.

     

    “황녀님, 팔을 내밀어 주십시오.”

     

    아셀라는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천천히 나를 향해 오른팔을 내밀었다.

     

    “…어디 해 봐.”

     

    “채혈하겠습니다.”

     

    고무줄로 아셀라의 팔 위쪽을 묶는다.

    그러니 아셀라가 움찔 몸을 떨었다.

     

    “…끝났어?”

     

    “예? 아뇨. 압박띠를 묶었습니다. 혈관을 확인하기 편해집니다.”

     

    다음으로 소독솜을 준비한다.

     

    싸구려 술을 연금술로 변형해 순수한 알코올도 잔뜩 만들어놨다.

     

    연금술, 진짜 만능이란 말이야.

    편하다 편해.

     

    아셀라의 팔 드레스를 걷으니 뽀얗고 얇은 팔목이 드러난다.

     

    팔꿈치 안쪽을 소독솜으로 닦아냈다.

     

    “…히끅!”

     

    아셀라는 알코올과 상성이 안 좋은가?

    알코올 알러지라도 있는 사람 같이 민감한 소리가 나네.

    아닌데, 얘 술 좋아했는데.

     

    “이, 이젠 끝났어?”

     

    “아뇨, 소독을 했습니다. 어쨌든 상처가 생기는 과정이라 도중에 감염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윽… 감염은 또 뭐야….”

     

    아셀라는 고개를 돌린 것도 모자라 눈을 질끈 감았다.

     

    …슬슬 나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 황금의 마녀께서 고작 피 한 방울 흘리는 걸 무서워하실 리가 없다고 생각했건만.

     

    ‘진짜 겁먹은 건가?’

     

    마음 깊은 곳에서 한 방 먹여줬다는 만족감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아니지. 라스, 정신 차려.’

     

    진짜 아셀라가 깊게 겁먹었다면 나는 지금 배드엔딩으로 직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흠, 그런 것 치고 시스템에서 변동되는 숫자는 안 보였다.

     

    괜찮겠지 뭐.

     

    작업을 계속한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셀라의 피부는 얇아서 혈관이 잘 보였다. 팔을 탁탁 칠 필요는 없었다.

     

    ―쭈우욱…

     

    채혈은 금방 끝났다.

     

    소독솜으로 채혈부위를 꾹 눌러주니 아셀라가 천천히 입을 뗐다.

     

    “…끝났어? 진짜 끝났다고 해, 좀….”

     

    “네, 끝났어요. 멍이 질 수 있으니 잠시 기다려 주시….”

     

    “너!”

     

    아셀라는 이제껏 본 적 없었던 분한 표정을 한 채 나를 향해 홱 고개를 틀었다.

     

    씩씩대는 게 증기기관차 마냥 콧김도 뿜어낼 기세였다.

     

    “쓰읍.”

     

    나는 아셀라와 눈을 마주치며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필사적으로 참아야만 했다.

     

    그 천하의 아셀라가 겨우 주삿바늘을 무서워한다니.

     

    오구오구, 잘 참았어요.

    입에 사탕이라도 물려줄 걸 그랬나?

     

     

     

    멍이 지지 않도록 아셀라의 팔을 누르며 시간이 조금 흘렀다.

     

    “…후우.”

     

    아셀라가 깊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이미 채혈한 자국은 진작 없어졌건만 밴드까지 감아달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바늘, 엄청 얇은 거였는데.

     

    “그래서, 공자.”

     

    “예, 황녀님.”

     

    아셀라는 채혈한 팔의 느낌이 아직도 어색한지 그곳을 만지작거렸다.

     

    “내 피를 뽑아간 만큼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결과를 만들어올 자신은 있겠지?”

     

    “물론입니다.”

     

    시원하게 대답했지만 순간 아셀라의 가치 관념이 어느 정도일지 신경 쓰여서 아차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원하십니까?”

     

    아셀라가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이젠 슬슬 알 것 같다. 저 표정을 지을 땐 주로 악마 같은 발상을 떠올린 거다.

     

    “루시.”

     

    “네, 황녀님.”

     

    “공자에게 비상시 매뉴얼에 대해 알려준 적 있어?”

     

    “업무가 시작하신 오늘 전달 드릴 예정이었습니다.”

     

    “공자, 지금 내 혈액에서 알아낸 사실을 기반으로 대응책을 제안해 봐.”

     

    시녀장이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뭐에 대한 어떤 매뉴얼인데.

     

    조금이라도 운을 띄워줘야지,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사탕 드실래요?”

     

    혹시나 뇌물을 바치면 과제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처벌이 줄어들까 해서 장미 사탕을 하나 꺼내 아셀라에게 내밀었다.

     

    “…….”

     

    음, 표정이 안 좋다.

     

    역시 고귀하신 분 입맛에는 안 맞는 저렴한 간식이었구만.

     

    다시 사탕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아셀라가 날카롭게 말했다.

     

    “그건 내려놓고.”

     

    조심스레 사탕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아셀라는 포장을 뜯고는 조그마한 혀로 사탕을 핥기 시작했다.

     

    “그럼 검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검사용 혈액은 바로 사용하지 않으면 온도, 습도에 의해 변성될 위험이 있다.

     

    채혈해서 두 개의 유리병에 담은 아셀라의 피가 붉게 찰랑인다. 각각 3밀리리터다.

     

    혹 스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경우나, 위생에 의해 변질되었을 때를 대비한 예비는 필수다.

     

    병 하나를 열 번 정도 흔들어 마개를 개봉한다.

     

    샬레에 슬며시 흘려보내니 바닥이 빨갛게 물든다.

     

    ‘오염되지 않아야 할 텐데.’

     

    검사 전에 다른 성분이 들어가 결과가 달라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샬레는 미리 소독해 뒀지만 이 시대의 위생상태니 아무래도 조금은 의심이 간다.

     

    ‘어디, [혈액검사].’

     

    스킬을 가동한다.

    샬레 바닥을 적신 선홍빛 피를 바라본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진단이랑 사용법이 다른가? 그럼 진단 먼저 써보자.’

     

    부상자의 혈액만 봐도 발동하는 진단이었으니, 무언가 반응이 나타날 터.

     

     

    ―――――――――――

     

    부상 상태 : ■■■

    부상 상태 : ■■■

    부상 상태 : ■■■

    부상 상태 : ■■■

    부상 ■■ : 랭크■ 부족■니다

     

    ―――――――――――

     

     

    상태창의 글자가 깨지기 시작했다.

     

    “윽.”

     

    확 두통이 일었기에 바로 진단을 멈추고 머리를 흔들었다.

     

    아셀라가 내 모습을 지켜보다가 턱을 괴고는 말했다.

     

    “생각처럼 안 되나 봐?”

     

    “잘 되고 있습니다. 기다려주시죠.”

     

    “지금 무언가 주문을 쓰려고 했지? 튕겨나갔나 보네.”

     

    의기양양한 태도의 아셀라.

     

    내 실패를 맘껏 즐기고 계신다.

     

    진단은 안 먹혔지만 한 가지는 알아냈다.

     

    아셀라의 용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것.

     

    재능의 디버프에 의한 부상이 있다.

     

    그녀가 가진 재능의 경지를 내가 이해할 수 없기에 디버프인 부상도 무엇인지 진단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역시 혈액검사를 써야 해. 어떻게 발동하는 걸까.’

     

    실제 혈액검사는 검체를 기기에 접촉시켜서 판단하게 된다.

     

    의학 스킬은 내 지식에 기반해 만들어졌다.

    나 자신이 기기로 취급된다고 치면.

     

    “흠.”

     

    소매를 걷고 검지를 슬쩍 샬레에 넣어본다.

    손톱 끝이 아셀라의 피로 끈적하게 물든다.

     

    그 모습을 본 아셀라가 조금 질겁했지만 뭐, 아무 것도 못 알아내고 그녀를 실망시키는 것보다야 낫다.

     

    그러니 빙고.

     

    상태창에 글자가 좌르륵 출력됐다.

     

     

    ―――――――――――

     

    혈액검사가 발동합니다.

     

    환자명 : 아셀라 폰 뷔르템펠트

    혈액형 : B Rh-

    WBC : 24.7

    HGB : 8.9

    HCT : 28.8%

     

    ―――――――――――

     

     

    ‘뭐야, 이거.’

     

    암호문과도 같은 온갖 알파벳과 숫자가 끝도 없이 길게 쓰여있다.

     

    조금 헷갈리는 용어가 있긴 했지만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려 지식을 되살려본다.

     

    우선 혈액형이 특이하다.

    꽤 희귀하기에 수혈이 힘든 타입이다.

     

    ‘염증 수치가 왜 이래?’

     

    아셀라의 몸 상태는 엉망진창이었다.

     

    나이도 어리고 좋은 식사를 하다 보니 혈당이나 칼슘, 단백질 등 영양적인 지표에서는 문제가 없다.

     

    당연하지만 간수치도 정상이고.

     

    문제는 염증.

     

    혈액 안의 백혈구가 어마어마하게 증가한 상태다.

     

    내장 어딘가에 부상과 감염이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되는 중이다.

     

    ‘이만하면 통증이 없을 리가 없는데.’

     

    슥 아셀라를 돌아본다.

     

    표정은 내가 아는 평소와 다름없다.

     

    지금도, 10년 후에서도 그녀는 전혀 아픈 기색이 없다.

     

    10년 후에서 들은 적은 있다.

     

    아셀라는 마법의 대가로 통증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폭주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지만 폭주보다 과거인 지금이나 미래 시점에서는 관계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나는 통증이 내 성장형 디버프처럼 마법의 경지에 도달해 얻은 것이 아닐까 무심코 추측했었다.

     

    그런데.

     

    ‘지금도 참고 있다고?’

     

    믿기 어려웠다.

     

    이만하면 속에서 내장을 쥐어짤 정도의 불편함이 계속 있을지도 모르는데.

     

    나도 모르게 왕진가방에 조심히 보관하고 있던 무통약 통에 손이 간다.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재고는 단 한 알이었다.

     

    “황녀님.”

     

    “응.”

     

    “혹시 가슴이나 배 속에서 쥐어짜거나 찌르는 듯한 통증은 없으십니까?”

     

    내 질문에 아셀라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마치 들켜선 안 될 비밀을 들킨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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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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