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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꺅? 무슨 일인가요?”

        “나도 몰라. 뭔가…… 위에서 들린 소리 같은데?”

       

        글레시아의 문하생 대표인 세라는 아르투르의 부축을 받으며 출구에 거의 도착한 참이었다.

        그녀는 미궁에 진입한 지 6일차로, 더는 전투가 어려운 몸 상태였다.

       

        갑자기 미궁이 무너질 법한 충격이 두 사람을 덮치자 세라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두운 바닥을 더듬거리던 그녀는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할 마리엘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돌이켜 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지탱해주던 팔에 힘이 더 들어갔었다.

        세라는 어둠 속을 더듬어 아르투르를 붙잡고 물었다.

       

        “그 무소속 마법사는 어디 있죠?”

        “나도 모른다. 중간에 손을 놓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세상에! 아르투르 당신 제정신이에요?”

        “아니 자기가 멋대로 빠져나간 걸 어떡하라고?”

       

        아무리 학파가 다르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미궁에 여자 혼자 놔두고 올 수 있는가.

        메테오가 불 마법이라 주장하는 멍청한 마법사들답게 배려심 따윈 진즉에 증발해 버린 게 분명했다.

       

        “당장 가서 데려오세요. 나중에 클락 님이 화내시면 어쩌려고!”

        “우선 너부터 밖에 던져놓고 생각해보지.”

        “생가아악? 당신은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까지 오는데도 걸어다니는 횃불 역할밖에 못 했으면서.”

        “뭐라? 그런 글레시아야 말로 기껏 해봐야 식수 공급밖에…….”

        “얼음이랑! 물은! 다른 마법이거든요!!?”

       

        쿠르르릉…… 쾅, 쾅, 콰앙——!!

       

        또 다시 들려온 굉음에 서로에게 날을 세우던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다물어졌다.

        미궁 뿐 아니라 마탑 전체를 관통하는 어마어마한 충격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짐승의 울음소리같은 떨림이 다가올수록 피부가 저릿거리는 감각을 넘어 전신의 근육이 공포를 호소했다.

       

        “빠, 빨리 일단은 밖으로 나가요!”

        “거의 다 왔다! 이제 곧…….!”

       

        다행히도 출구는 바로 눈앞에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미궁의 저주를 풀고 11층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어깨를 걸친 아르투르의 발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숨소리마저 멎어버린 듯한 침묵.

        앞이 보이지 않아 그를 재촉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던 세라의 귓가를 낯선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아르투르? 뭐 해요? 빨리 문을…….”

        “흠, 밀로네랑 스카디 쪽인가.”

       

        구둣발 소리, 담뱃재의 향, 호흡만으로 대기를 일그러뜨리는 압도적인 마력.

        시간이 멈춘 듯 얼어버린 세라는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을 마치 없는 사람처럼 지나치는 것에 안도했다.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렸다간, 아니 어떤 방식으로든 이 공간에 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렸다간 개미처럼 짓밟혀버릴 만한 위계의 차이가 느껴졌으니까.

       

        “최근 글레시아의 요람에서도 괜찮은 녀석이 나왔다던데, 확실히 현자의 자리에 앉으면 학파에 인복이 생기나보군.”

        “어라? 원소학파의 문주(門主)는 클라우디아 씨가 아니셨던가요?”

        “등반에 방해가 돼서 밀로네에게 던진지 오래다. 칼레이도스도 앞으로는 소수정예로 가야겠어. 어디였더라? 아이…….”

        “해주의 아이테르? 지랄하네, 네가 걔처럼 혼자 상층 부수면서 올라갈 수 있었으면 진작 그렇게 했겠지.”

        “그보다 10층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데요?”

       

        나긋나긋한 여인의 말이 끝나자 전조도 없이 세라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그녀는 차라리 두 눈을 뽑고 싶었지만, 이미 밝아진 시야는 뇌에게 자신이 본 모든 정보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좀 걷어내 드렸어요. 옆에 계신 애인 분께서는…… 으음, 이건 좀 특이한 저주네요.”

        “푸훗, 너한테도 버거운 수준이야?”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본인이 꽤 만족하고 계신 것 같아서 그냥 두는 편이 좋겠어요. 출구는 바로 앞이니 이대로 나가시면 된답니다?”

        “기왕 걷을 거면 이 빌어쳐먹을 공간에 있는 것 전부 치워버려, 거슬리잖아.”

        “그분께서 이대로 두시길 원하신 것 같아서 좀 망설여지네요. 외양이 바뀌니까 재밌잖아요? 갤러리 같이요.”

        “하이고, 누가 가면 분탕 아니랄까봐.”

       

        미궁에 진입한 1일차에 받게 되는 인간과 마수를 구분하기 어려워지는 저주.

        그것으로부터 해방된 세라에겐 세 사람의 본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말해두는데, 나는 겨우 주딱 나부랭이가 그분일 거라고는 죽어도 생각 안 해. 다음부턴 이렇게 차원을 억지로 찢고 넘어오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셋 중 유일하게 짜증을 내는 이는 단발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작은 소녀였다.

        그녀는 마탑의 어떤 연금술사도 직조하지 못할 신비로운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반투명한 천이 물 흐르듯 나풀거릴 때마다 전신에 새겨진 정령문(精靈文)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저는 반대로 분명 주딱이 그분일거라 확신해요. 그래서 공지를 보자마자 남은 ‘영광’을 모두 쥐어짜내서 그분 곁으로 갈 수 있게 해달라 기청드린 거고요.”

       

        눈가리개를 한 여인은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조금 전 손짓 한 번으로 여섯 개의 저주를 날려버린 그녀는 신성학파의 신의를 입고 있었다.

        성신의 사도가 강림한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옷과 몸 곳곳에는 전투의 흔적이 엿보였다.

        소매를 적신 작은 핏물에서 범접할 수 없는 악의가 느껴졌다.

       

        “엄살부리지 마라, 이쪽은 백 개가 넘는 층을 부수고 내려왔으니까. 주딱의 정체는 이제 곧 확인할 수 있겠지. 그보다 마족이라니, 귀찮은 것들…… 쯧.”

       

        마지막으로 미궁의 천장에 구멍을 뚫어버린 여인이 혀를 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담뱃불을 튀기자 샛노란 뇌전이 반짝이더니, 순식간에 미궁의 모든 길로 퍼지며 경로에 있던 잔존한 망자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쿠르르릉——!

       

       뒤이어 우레같은 천둥소리가 쏟아지자 세라는 이를 악물고 귀를 틀어막았다.

        칼레이도스 학파.

        현 메릴랜드 관의 전신인 현자 메릴린이 창시한, 뇌기(雷氣)와 벼락을 다루는 원소학의 일종이었다.

       

        “아, 씨발! 시끄러!”

        “너 주딱 앞에서도 한 번 그렇게 말해봐라.”

        “그러게요. 평소 컨셉과 너무 달라서 놀라시지 않을까요?”

        “누군 좋아서 그런 줄 알아? 정령계는 위치노트 신호가 제대로 안 잡히는데 어쩌라고!”

        “그만 가지. 이러다 늦겠군.”

       

        정신을 차렸을 때, 세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세라는 조금 전 보고 들은 것들을 모조리 깡그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경고는 커녕 주의조차 주지 않았지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다.

        땅에는 지글거리는 번갯불과 정령들이 흩뿌린 가루, 그리고 기청으로 뿌리내린 성신의 문양이 어지러이 자리해 있었다.

       

        “……어이.”

        “…….”

        “나 다시 들어갈까?”

        “아뇨.”

       

        옆에서 진짜로 죽은 것처럼 숨을 멈추고 있던 아르투르 역시 같은 생각이겠지.

        조금도 웃지 못할 농담을 던지는 그에게 세라는 진심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이걸 진짜로 온다고?’

       

        나는 통로 건너편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부랴부랴 주변을 치웠다.

        솔직히 말만 연회지 즉흥적으로 만든 자리였기에 준비된 게 하나도 없었다.

        먹을 거나 음악, 하다 못해 장소마저 망자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안이었다.

        얘들 다시 살려내서 노래나 좀 불러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급한대로 이야기 할 자리라도 만들고자 주변에 있는 커다란 돌들을 굴려 의자처럼 배치했다.

        여러 명이 둘러앉을 만한 테이블은 부서진 명계의 문 한짝을 떼어다가 제일 큰 돌 위에 눕혀 놓았다.

       

        내 것으로 찜해둔 의자의 먼지를 털며 숨을 고르자 이내 발자국 소리와 함께 세 명의 인영이 벽을 따라 가까워졌다.

        부엉이, 사슴, 그리고 늑대.

        그들의 면면을 확인한 나는 지금껏 갤러리의 파딱들을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생각해 보면 갤질에 인생을 바친 미친 놈들이 멀쩡히 탑을 올라갔을리가 없지.’

       

        5년만에 등반을 시작한 나만큼은 아닐지라도, 이놈들도 하나같이 시작의 층 언저리에서 어기적거리고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니 이렇게 부르자마자 재깍 달려올 수 있었던 거겠지.

        뒤통수를 칠 거였으면 처음부터 20층 쯤에서 소집했어야 했는데.

        씁쓸한 후회는 제쳐놓고 우선 모두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환영합니다.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이건…….”

        “마음에 안 드나요? 다 여러분을 위한 건데.”

        “…….”

        “…….”

       

        세 사람은 서로 의미심장한 눈빛을 주고 받더니 엉거주춤 돌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

        시선에 담긴 긴장한 기색이 절로 느껴졌다.

        당장은 어색한 분위기일지라도 갤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곧 친해질 것이다.

        마침 미궁의 안개도 지속되고 있으니 서로 가면을 쓴 채 대화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소개가 늦었네요. 제가 여러분을 초대한 갤러리의 관리자입니다.”

        “그딴 건 관심없고, 난 당신이 탑…….”

        “린지.”

        “방해하지 마 클라우디아. 내가 여기 온 이유는 딱 하나야.”

        “그게 아니라, 누군가 온다.”

        “상태가 제법 나빠 보이네요.”

       

        늑대 가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통로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르투르에게 딸려 보낸 마리엘이었다.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벽을 짚으며 다가온 그녀는 내가 앉은 통로 끝까지 오더니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런, 괜찮나요?”

        “관리인? 무사한 거죠? 부상은 괜찮나요……?”

       

        나는 마리엘의 근성에 감탄했다.

        분명 위치노트는 보지도 못했을 텐데 자기만 빼놓을까봐 비둘기처럼 연회 장소까지 찾아오는 경지라니.

        이건 평생 파딱을 시킬 수밖에 없다.

       

        “죄송해요, 그냥 나가라고 했지만 저 때문에 다친 것을 보니 도저히…….”

        “관리인이라…… 당신은 미궁에서 헤어진 동료가 무사하길 바라나요?”

       “네?”

       

       물론 지금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녀에게 내 정체를 숨기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리 되었습니다.”

        “……!!”

        “원격치료…… 추적과 신성 마법!?”

        “아뇨, 아무런 낌새도 못 느꼈어요. 전혀…….”

       “뭐? 네가 모르면 어떡해!?”

        

       나는 목 뒤를 지그시 눌러 마리엘을 기절시킴과 동시에, 그녀가 가진 위치노트를 꺼내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금 전과 다르게 묘한 두려움을 품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파딱들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모두 도착했으니, 연회를 시작하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KAREN34kr님 후원 감사합니다.
    아무 말도 없이 이런 큰 금액을……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비록 밤에 올리지만, 독자분들 모두 좋은 하루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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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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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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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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