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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다음날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했다.

       

       밤새 잠을 못 잤는지 두 눈이 벌개진 채 올리시아는 나이틀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뭔가 나이틀리가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우리는 갈 테니까 너는 잠 좀 더 자라. 눈이 토끼눈 같아.”

       

       망토를 두르며 문을 나서는데 올리시아가 내 망토를 끌어당겼다.

       

       “디안 님. 잠깐만요.”

       

       나이틀리를 먼저 보내놓고 다시 들어오니 올리시아가 까치발을 딛고 내 귀에 속닥거렸다.

       

       “저 귀족영애 말인데요. 앞으로 거리를 두고 조심하셔야겠어요.”

       “왜? 뭐가 마음에 안 드냐?”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떠나서 그 개인교습이라는 거. 의도가 상당히 불순한 것 같아요.”

       

       그러며 올리시아는 내게 어제 밤 사이에 나이틀리가 이 층의 내 침실로 올라가려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못 올라가게 지키느라 계단에서 잤다고?”

       “아마 저 귀족영애도 디안 님을 흠모하는 학생들 중 한 명일 거예요. 면담을 빌미로 와서 밤에 못된 짓을 하려던 거겠지요. 자칫하다간 발목을 잡히게 된다고요.”

       “흠, 그래.”

       “그런 식으로 한가하게 반응할 게 아니에요, 디안 님!”

       

       내 태도에 올리시아가 단호하게 손가락을 세웠다.

       

       “디안 님은 그냥 교수도 아니고 수석교수시잖아요. 사소한 언행까지도 주의를 하셔야 해요. 특히나 여자관계, 게다가 아직 성년도 안 된 여학생이랑 비밀 개인교습….”

       “교수님! 뭐하세요? 빨리 오세요!”

       

       그때 밖에서 나이틀리가 짜증스럽게 외치자 내 귓바퀴를 잡은 올리시아의 손을 풀어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잘 알았다. 조심할게.”

       “조심 또 조심!”

       “그래그래. 저번 개인교습 때도 다른 교수가 동행했고 이번에도 그럴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다녀온다.”

       

       현관까지 따라나온 올리시아는 팔짱을 낀 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나이틀리를 노려봤고 나이틀리 역시 지지 않고 그 시선을 받아쳤다.

       

       “교수님. 저번에도 말씀을 드렸듯이 아랫건 관리를 잘 하셔야겠어요.”

       

       나란히 강의동으로 걸어가며 나이틀리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저 꼬맹이, 마치 자기가 안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던데요.”

       “안주인이라니. 너는 또 무슨 개소리야?”

       “교수님께서 편하게 대하시니 무서운 줄 모르고 기어오르는 거예요.”

       

       나이틀리가 여전히 멀어지는 우리를 보고 있는 올리시아를 힐끔 돌아봤다.

       

       “저걸 가만히 놔두면 언젠가 교수님 머리 위에서 놀게 될 거고 그때가 되면 바로잡기 굉장히 까다로워져요. 그런 하녀들을 지금껏 몇 번 봐왔어요. 교수님이야 귀족이 아니고 저 애가 유일한 하녀니 잘 모르시겠지만….”

       “아이고, 시끄럽다.”

       

       손가락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나이틀리의 말을 끊었다.

       

       “쟤는 내 가족이야. 여동생 같은 애라고. 교육이니 뭐니 하는 건 귀하디 귀하신 공녀님께서 나중에 본가 돌아가서 많이 하세요.”

       “본가는 돌아가지 않아요.”

       “그럼 공작영애도 아니게 되겠네. 결혼하면 출가외인이고 결혼을 안 했으되 집에 안 돌아가고 연 끊으면 역시 출가외인이고.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나이틀리의 얼굴이 굳었다.

       

       “너 말이야. 인생선배로서 말해주는데 어지간하면 집안하고 연 끊지 마라. 너만 힘들다.”

       “남의 인생에 관심 끄세요.”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너 처음에 나한테 개인교습해 달라고 했을 때 너네 아빠니 가문이니 어쩌고 하지 않았었냐?”

       

       연달아 얻어 맞은 나이틀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수석교수님!”

       

       나이틀리의 일방적인 침묵 속에 강의동에 도착하니 앞에 서있던 교수 두 명이 내게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수석교수님!”

       “안녕하세요….”

       

       앳된 외모에 주근깨 가득한 마법대응교수 오렌디와 음침한 흑발에 어깨를 잔뜩 웅크린 전투승마교수 애나였다.

       

       “오, 나이틀리도 같이 왔구나. 오는 길에 서로 만난 모양이죠?”

       “그건 아니고. 나이틀리도 같이 데리고 가려고.”

       

       그 말에 오렌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학생을 데려가요? 이건 수업이 아니라 교보재 확보 목적 출장인데요?”

       “교보재 아닌데요….”

       “아하하, 미안.”

       

       애나가 소심하게 지적하자 오렌디가 쾌활하게 웃으며 자신의 실수를 정정했다.

       

       “여튼 그래서, 나이틀리를 데리고 가신다고요?”

       “그래. 일종의 심화학습이지. 너도 알다시피 나이틀리는 수석이잖냐. 일반적인 수업은 안 맞아.”

       “하긴 그건 그렇네요. 좋습니다. 나이틀리, 너 차원문 넘어본 적 없지?”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채 나와 오렌디의 대화를 정신없이 따라가던 나이틀리가 ‘차원문’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한번도 없는데요. 그런데… 지금 어디를 가는 거죠?”

       

       나이틀리의 물음에 오렌디가 나를 쳐다봤다.

       

       “나이틀리에게 말씀을 해주시지 않으신 겁니까, 수석교수님?”

       “일단은 시간 없으니까 얼른 가자. 해지기 전에는 돌아와야지.”

       “알겠습니다. 바로 이동하도록 하죠. 그 전에 마지막으로 좌표를 확인하겠습니다.”

       

       오렌디와 나는 지도를 펼쳐서 우리의 목적지를 교차확인하고 또 몇 번이나 좌표계산을 실시했다.

       

       우리가 갈 곳은 지형이 다소 험해서 차원문 출구가 잘못 열리면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원문의 좌표를 따는 계산작업을 보는 것은 처음인지 나이틀리가 입을 반쯤 벌리고 나와 교수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럼 차원문을 열겠습니다.”

       

       오렌디의 양손에 파란 마력이 영글며 우리 앞 허공에 작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천천히 돌던 마력의 소용돌이가 갑자기 빨라지며 일순간 타원형의 차원문으로 확장되었다.

       

       “헉?!”

       

       차원문을 처음 보는지 나이틀리가 작게 헛숨을 들이켰다.

       

       “긴장 풀어…. 이상한 곳으로 가지는 않을 거야….”

       

       애나 교수가 음침한 말투로 나이틀리에게 말했다.

       

       “내가 먼저. 그 다음은 애나, 나이틀리, 오렌디 순으로.”

       “네, 수석교수님!”

       

       우리는 줄줄이 차원문을 통과했다.

       

       다행히도 차원문의 출구는 낭떠러지나 늪지대가 아니라 평평한 땅으로 뚫려 있었다.

       

       “이럴 수가….”

       

       차원문을 나와 땅에 발을 디딘 나이틀리가 멍청한 표정으로 입을 떡 벌렸다.

       

       “여기가… 대체….”

       

       나이틀리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바라만 봤다.

       

       “야, 가슴이 뻥 뚫리는군요.”

       

       오렌디는 쾌활한 미소와 함께 크게 숨을 들이켰고.

       

       “으으, 바람이 차요….”

       

       애나는 의기소침해져서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곳은 대륙 북동부의 브론 고원.

       

       대륙에서 가장 광활한 고원인 이곳 브룬고원은 넓고 평탄한 초원과 함준한 바위산들이 어우러진 독특한 지형을 자랑한다.

       

       고원의 경계에 자리잡은 어두운 숲은 푸른 산맥으로 이어지고 병풍처럼 줄줄이 늘어선 산들은 꼭 그림과도 같다.

       

       특히나 오늘 같은 봄날에는 맑개 개인 하늘 아래 만발한 야생화와 부드럽게 물결치는 풀밭이 정말 장관이지.

       

       “브룬 고원이요?”

       

       내 설명을 들은 나이틀리가 깜짝 놀랐다.

       

       “그럼 거의 대륙을 횡단했다는 뜻인데…. 여기는 대체 뭣 때문에 오신 건가요?”

       “말을 잡으러 왔다. 전투승마수업에 필요해서.”

       

       우리 전투학과에는 애나가 담당하는 전투승마 과목이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세계 이동수단의 기본이 되는 말 타는 법을 배우는 과목.

       

       단순히 말을 타는 것뿐만 아니라 마굿간에서 말을 탈취하는 법, 마구 없이 말을 타는 법, 말을 타며 싸우는 법 등을 배운다.

       

       거기에 추가로 마차 모는 법이라거나 닳아버린 편자를 가는 법이나 심지어 말을 키우는 법과 극한상황에서 말을 도축해 식량조달하는 법까지, 말에 관련된 온갖 것을 다 가르치는 과목이다.

       

       현생으로 치자면 국정원 신입들에게 자동차 운전부터 열쇠가 없을 때 시동 거는 법, 긴급정비 등을 가르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런데 문제는 지금 우리 아카데미에 제대로 된 말이 많지 않다.

       

       애나 교수와 조교들이 관리하는 마굿간에 가보니 전투마는 몇 마리 있지도 않고 대부분은 키가 작은 조랑말들뿐.

       

       전투마는 덩치가 크고 성격이 거칠어 사고위험이 높고 유지비용이 상상을 초월하기에 키르린 교장이 규모를 축소를 했던 것이다.

       

       내가 온 이후 만든 전투학과 개편계획에 따라 전투승마에 약 서른 마리의 말이 필요한데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숫자.

       

       이에 키르린은 제국군에서 더는 현역으로 뛰지 못하는 늙은 말들을 싸게 사들이자고 했지만 그건 좀 아닌 듯하다.

       

       제국군의 전투마는 워낙 훈련을 많이 받다 보니 퇴역했다는 것은 제 속도로 달리지 못한다는 뜻. 그런 말들로 실습을 할 수는 없다.

       

       여기는 운전면허학원이 아니라 간첩학교고 현장에서는 말을 가려 탈 여유가 없다.

       

       그러니 처음부터 빡세게 숙달하는 게 나아.

       

       그리고 확인해 보니 다행히 다들 기본적인 승마술은 익혔단다.

       

       하지만 전투마 서른 마리를 쌩으로 구입한다는 건 현생에서 중형차 서른 대를 일시에 구매하는 거나 마찬가지라 예산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 버린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한 방법이 바로 야생마 포획.

       

       여기 브룬 고원의 야생마들은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수십 마리씩 무리지어 생활하는데 이것들을 통째로 잡아 온다면 예산문제도 해결하고 학생들은 상태 좋은 말로 실습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게다가 야생마는 주인도 없다. 이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냐. 그래서 곧바로 야생마 포획파티를 꾸렸다.

       

       여기에 나이틀리가 한밤중에 찾아와 개인교습 왜 자주 안 해주냐 항의해서 곁다리로 끼워 넣은 거다.

       

       “그런데 말이 안 보이는데요.”

       

       나이틀리의 말대로 초원 어디에도 야생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다 숨은 거야. 안전하다고 생각되기 전까지는 나타나지 않을 거다.”

       “그럼 어디 숨어서 기다리죠? 저기 어떤가요?”

       

       오렌디가 초원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사선으로 기울어진 채 땅에 절반쯤 묻힌 어떤 구조물들이 널려 있었다.

       

       기다란 통나무가 직사각형으로 서로 이어진 채 기울어져 있는 모양새로 잡초와 덩굴에 뒤덮힌 것이 안에 숨어 야생마를 기다리기에는 안성맞춤.

       

       “이건 뭘까요?”

       “아마… 마왕군의 수레요….”

       

       구조물 안에 들어가 앉은 오렌디가 묻자 애나가 음침하게 대답했다.

       

       “여기 브룬 고원 야생마들은… 다른 전투마들에 비해 몸집이 크고 힘이 세서… 마왕군에서 상당히 탐을 냈어요…. 이건 아마 야생마들을 포획하기 위해 여기까지 끌고 왔던 수레일 거예요….”

       “호오, 그렇구나. 그런데 뒤쪽에도 이런 게 굉장히 많은데, 이크! 이건 뭐야?!”

       

       엉거주춤 바닥에 앉던 오렌디가 기겁하면서 펄쩍 뛰었다.

       

       뭔가 하고 보니 오렌디가 앉았던 흙바닥에 백골이 튀어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으헉?!”    “아얏!!”

       

       그것을 본 나이틀리와 애나가 동시에 일어나다가 수레의 기둥에 머리를 세게 박았다.

       

       “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해…! 여긴 무덤 위야…!”

       

       겁에 질려 밖으로 도망치려는 애나의 망토를 붙잡으며 웃었다.

       

       “다들 진정해라. 이거 마족의 뼈니까.”

       

       비죽 튀어나온 두개골을 끌어 올리자 산양처럼 빙빙 꼬인 두 개의 뿔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그만 앉아. 너네가 시끄럽게 하면 야생마들이 더 멀리 도망친다고.”

       “아, 인간의 것이 아니었군요. 깜짝 놀랐네.”

       

       마족의 뼈임을 확인한 오렌디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고 애나 역시 뭐라고 웅얼거리면서 도로 수레 내부로 들어왔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나이틀리가 구석으로 던져 버린 마족의 두개골을 보면서 물었다.

       

       “여기도 그렇고 저 뒤쪽에 버려진 수레들이 보이는 것만 수십 대인데… 그렇다면 결국 이 많은 마족들은 야생마 포획에 실패하고 여기서 죽었다는 뜻인가요?”

       “그런 거 아닐까? 혹시 여기에 대해 아는 거 있어요, 애나 교수님?”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문으로 들은 바는 있어….”

       

       오렌디의 물음에 애나가 음산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좋은 전투마가 필요했던 마왕군에서… 여기로 몇 번이나 부대를 보냈는데… 어느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대….”

       “왜요?”

       “주변 지형을 봐…. 거대한 게 숨기 좋은 바위산맥…. 날아오르기 수월한 평지…. 뭔가가 살기 아주 좋아 보이지 않아…?”

       

       그 말에 오렌디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드래곤이라는 말씀을 하시려는 건가요? 말도 안 돼. 그럼 야생마들도 살 수가 없겠지요. 이미 먹이가 되었을 텐데.”

       “그럼 대체 이 많은 마왕군을 여기서 몰살시킬 수 있는 게 드래곤 말고 뭐가 있겠어…?”

       “흐음, 그런가…. 하긴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마족의 흔적만 있는 것으로 봐서는 확실히 인간연합과의 전투는 아닌 듯합니다.”

       “그렇다니까…. 일방적으로 마왕군을 학살하려면 드래곤이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 돼….”

       

       

       # # # # #

       

       

       오렌디와 애나 교수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이틀리는 어딘가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야생마를 기다리며 숨어 있는 수레의 잔해 귀퉁이.

       

       굵직한 통나무를 휘감은 덩굴 사이로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언뜻 보였기 때문이다.

       

       손을 뻗어 덩굴과 잡초를 뜯어내자 어떤 글자가 나타났다.

       

       글자는 모두 날카로운 칼로 통나무의 표면을 깎아 새긴 것들이었다. 그 내용은….

       

       ‘최강특임대 여기 왔다감!’

       ‘뿔쟁이 공동묘지 조성 기념’

       ‘라이너스♡셀린느 제발 결혼해라’

       ‘우리 우정 영원히 함께!’

       

       이게 도대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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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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