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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

        

       제웅이란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을 말한다. 그 유래는 신라의 처용(處容) 설화의 주인공, 처용에서 왔다고 하며, 설화의 특성 때문인지 한국에서 사용하는 짚인형은 액막이, 액땜, 액신(厄神) 퇴치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처용무까지 곁들이면 효과가 배가 되니 참으로 좋다. 장소가 좁다고 한들 마음을 다해 바라면 어찌 비책이 나오지 않을까.’

         

       어두컴컴한 수직 동굴 안은 횃불과 제웅이 그 그림자를 계속해서 바꾸며 기괴한 모습을 드러냈다. 바람이 제대로 불지 않음에도 횃불은 태풍이라도 만난 것처럼 춤을 추었고, 제웅은 제자리에 가만히 있음에도 그 형상은 계속해서 움직이는 듯 동굴을 쏘다니며 움직이고 있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춤을 추는 모습과 같았다.

         

       제 몸뚱어리를 움직이지 못하는 제웅이 영혼을 그림자로 보내 춤을 추듯, 제웅은 팔을 이리저리 늘어뜨리고 사방으로 미치광이처럼 움직이고, 다리를 뻣뻣하게 움직이며 뒤틀며 이곳저곳을 누비니 그 모습이 참으로 신과 접한 무당과 같다.

         

       “아ᅀᅡᄂᆞᆯ 엇디 ᄒᆞ릿고. 아ᅀᅡᄂᆞᆯ 엇디 ᄒᆞ릿고. 아ᅀᅡᄂᆞᆯ 엇디 ᄒᆞ릿고.”

       “처용아바 이시인생(以是人生)애 상불어(相不語) 하시란대. 이시인생애 상불어 하시란대. 이시인생애 상불어 하시란대.”

         

       그리고 그와 함께 진성의 처용가가 울려 퍼지고, 동시에 짚인형의 중앙에 박아놓은 테이프 레코더가 또 다른 처용가를 악기 소리와 함께 울려 퍼뜨리니.

       동굴의 안은 그야말로 작은 무대가 되었고, 제웅은 생명을 품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놀이패가 되었다.

         

       “누고지서 세니오 누고지서 세니오. 바늘도 실도 업시 바늘도 실도 업시. 처용아비랄 누고지서 세니오. 열병신이사 열병신이사 처용아비랄 누고지서 세니오.”

         

       그리고 그렇게 미친 듯 춤추는 그림자의 저 건너편에 처용의 적이자 처용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가 될 것이 매여있었으니.

         

       채 수습되지 못한 뼛조각의 위에 매달린 인간이 바로 그것이었다.

         

       한때는 단련된 무인이었을 그것은 무언가에 쪽 빨리기라도 한 듯 근육이 어디론가 사라져 군살만 가득했고, 마치 옛 성인이 매달린 것처럼 십자(十)의 형태로 축축하고 비린내가 풍기는 동굴의 벽에 말뚝 박혀 피를 줄줄 흘리고 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은 상반신이 포대로 뒤덮여 오직 하반신만이 그 모습을 밖에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속옷 하나까지 싹 다 벗겨버린 하반신은 고통 때문인지 경련하듯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입에서는 아주 작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요승 놈…. 다 말했다…. 풀어….”

         

       혀를 움직이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것인지, 혹은 상반신을 빈틈없이 덮은 자루 속에서 제대로 호흡을 못 해 정신이 혼미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 소리는 개미가 외치는 소리보다 작았고 동굴의 종유석에서 떨어져 내라는 물방울 터지는 소리보다도 약했으니, 그것은 오직 근처에서만 맴돌 수 있는 호소요 메아리일 뿐.

         

       하지만 그 간절한 마음이라도 닿았던 것일까?

       제웅의 가슴팍에 꽂힌 테이프 레코더가 작동을 멈추고, 동시에 처용가를 끊임없이 말하던 진성의 입 역시 꾹 닫혔다. 그리고 미친 듯 춤을 추는 횃불 역시 제 본분을 찾겠다는 듯 얌전해진 채 타오르며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쓰리 쓰리 마하 쓰리 쑤 쓰리 쓰와하(sśrī śrī mahā śrī su śrī svāhā).”

         

       진성은 제웅을 향해 조용히 진언을 읊은 후 제웅의 머리를 휘어잡고 벽에 매달린 무인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진성이 걸음을 옮기자 바닥에 깔린 뼛조각이 밟히며 부서지는 소리가 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유해가 부서진 것에 화난 악귀와 악령이 사념과 저주를 보내 크게 앓을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진성에게 있어선 그런 것은 모기가 무는 것보다도 타격이 없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오히려 제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념과 저주가 그들에게 돌아가 배(倍)의 타격을 줄 뿐이니.

         

       끼—아아악!

         

       진성의 힘, 제웅이 가지고 있는 액막이의 힘, 되돌아가며 증폭된 저주.

       그 모든 것이 진성을 악령과 악귀에게서 무사하게 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 것을 보았으면 몸을 빼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건만, 이미 오랫동안 수직 동굴 밑바닥에서 원한을 곱씹으며 존재하며 이지를 잃어버린 것들은 최소한의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불에 달려드는 나방처럼 그렇게 타들어 갔다.

         

       끼악!

         

       영혼이 터져나가면 터져나갈수록 제웅의 머리 부분에 박힌 은화에 주술의 힘이 실렸다. 은화가 세월과 함께 가지고 있던 때는 점점 벗겨지고, 광원이라곤 횃불밖에 없는 동굴임에도 스스로 빛을 발하려는 듯 점점 반짝임을 더해갔다.

         

       이윽고 진성이 바닥에 깔린 뼛조각 대부분을 밟으며 벽에 매달린 무인에게 다다랐을 때, 동전은 스스로 작은 달이라도 되는 것처럼 빛을 발하며 동굴을 작게나마 비출 정도가 되었다.

         

       “역병 귀신아, 열병신아. 역병을 옮기는 부정아. 여기 처용이 왔다. 천금도 칠보도 말고, 너 역신을 잡아 쫓아낼 처용이 여기에 왔다.”

         

       지푸라기는 ‘사람에게 이로운 형태의 다변’을 뜻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에게 이롭고 무엇이 사람에게 해로운가?

       이롭고 해로운 것은 오직 주관적 판단으로 결정되는바. 그 기준을 잡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장작 대신 태우는데 그 불이 하늘을 뚫을 듯 치솟는다면 그것이 과연 이로운 것인가? 질기고 성기게 바뀌어 밧줄을 강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이로운 것인가? 더 빨리 삭고 장을 더 빠르게 부패시킨다면 그것이 이로운 것인가?

         

       이 ‘이로운 형태’라는 것은 참으로 모호한바, 다룬다면 한없이 잘 다룰 수 있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만 못한 가치를 지니게 되기에 충분한 상징이었다.

       진성은 이를 잘 다룰 자신은 있었으나, 이 ‘이로운 형태’라는 것은 훌륭한 힘이자 하나의 족쇄.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가공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진성은 이 처용무를 통해 ‘사람에게 이로운 형태’라는 것을 주물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었다.

         

       지푸라기가 사람이 되고, 사람과 함께하여 그 존재감에 무게추를 올리고.

       그리고 그 반대편에 사람의 적을 올린다.

         

       제웅의 원형이 되는 처용은 제 아내를 탐낸 역신(疫神)을 감복시켜 쫓아냄에 따라 벽사진경(僻邪進慶)의 상징이 되었다. 삿된 것을 쫓아내고 경사스러운 일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진, 지푸라기로 만들 수 있는 것 중에선 손에 꼽을 정도로 강력한 형태란 이야기.

       거기에 지푸라기가 사람의 형상을 하였으니 사람에게 더 가까워지니 주술의 힘이 더 강해졌고, 거기에 무인을 벽에 매달고 상체를 가려 역신과 형상을 똑같이 만듦으로써 역신의 상징을 부여했다.

         

       그리고 역신은 처용에게 발원(發願)해야 하는바.

       바라고 원하는 생각을 내어야만 했다.

       처용이란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상징 앞에서 말이다!

         

       “풀어줘….”

       “그래, 너 역신아. 네 몸에 박힌 말뚝을 뽑고 숨을 붙여 천 리 밖으로 쫓아내기를 원하느냐.”

       “풀어줘….”

         

       소원을 원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 역시 존재한다. 적어도 원래의 처용 주술에는 그 대가가 없었을지 모르나, 지금 그의 앞에 매달려 있는 무인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의 몸을 감싼 포대기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제웅에 모인 액을 흐트러트릴 삼거리를 뜻하는 ‘Y’ 형태의 그림이 빠져나갈 수 없는 벽을 뜻하는 원 안에 갇혀 원을 지우기 전까지는 액이 그 안에서만 맴돌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고, 그 포대기 안의 사람은 액신의 역할을 맡았기에 자력으로는 액(厄)을 바깥으로 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은 자력으로는 절대로 벗을 수 없는 포대기.

       그는 액을 뗄 수 없다면 몸을 감싸고 있는 포대 자체를 벗을 수 없으니, 반드시 진성이 원하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리고 무인이 원하는 소원은 ‘풀어줘.’

       살려달라는 것이 아닌, 풀어달라는 소원이다.

         

       그게 무슨 말인고 하니….

         

       “소원의 대가를 치르지 아니하면 억겁의 세월이 지나 종말이 찾아와도 그 포대 밖으로 영혼조차 빠져나갈 수 없으리라.”

         

       진성은 포대에 눈구멍을 하나 뚫어주며 그리 말했다.

         

         

         

        * * *

         

         

         

       사람의 말은 때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바.

       창(窓)에 비친 상(狀)으로 진심을 말하라.

       오직 마음을 다해 형(形)을 그리고 끄집어내어.

       해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모든 것을 보이라.

         

         

         

        * * *

         

         

         

       “대가를 참으로 잘 지불해주었다. 자네는 이제 오랜 쓸모를 다했으니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

         

       진성은 포대기가 벗겨졌음에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풀린 눈으로 입에서 질질 침을 흘리는 무인을 보며 그리 말했다.

       무인의 눈에 모인 푸르스름한 마나는 계속해서 홀로그램을 만들 듯 움직이고 있었고, 다 풀려버린 입가 위에서는 걸쭉한 코피가 옷 전부를 적실만큼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대답을 못 하는가?”

         

       무인은 진성의 말에 반응도 하지 못한 채 계속 바닥을 뒹굴었다.

         

       “기생 주술이 아닌 다른 주술로 심문한 것은 참으로 오랜만인즉. 약간의 실수는 이해해주기를 바라네.”

         

       진성은 그렇게 말하며 남자에게 등을 돌렸다.

         

       “심문이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로다. 다만 명복만은 빌 수 있으니.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 옴 마니 파드메 훔(ॐ मणि पद्मे हूँ).”

         

       끼-익.

         

       그렇게 진성은 축지(縮地)를 사용해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사라진 동굴에 남은 것은 심지가 얼마 남지 않은 횃불.

       가루에 가깝게 되어버린 뼛조각들.

       그리고.

       그리고….

         

       “그윽….”

         

       소원을 이룬 행복한 무인 하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른 편의 오타를 수정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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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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