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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0

       [돌아버리겠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덜미를 잡혔다.

       

       내가 에테르라는 것을 들켜선 안 된다. 여기서 마수라는 사실을 발각당하기라도 했다간 그대로 정령에게 개죽음을 당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별다른 수가 없었다. 오리발을 내미는 수밖에.

       

       “플레어를 잘 안다니? 내가?”

       “그도 그렇잖아요. 선생님께선 어떻게 보시자마자 전부 이해하고 설명해 주시는지, 그게 신기해서…….”

       

       나는 손을 들어 유피엘의 이마에 가져갔다.

       

       “아앗!”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유피엘이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내가 얘기했잖니.”

       

       사근사근하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유피엘은 이마를 싹싹 문지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론만 제대로 알면 무엇이든 못 할 건 없다고.”

       

       무언가를 새로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을 교정하는 건 쉽다. 그런 논리로 유피엘을 설득했다.

       

       유피엘은 잘 알아들었는지 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론이 중요하군요.”

       “그냥 이론이라고 하면 추상적이지. 내가 여기서 말한 건 오늘 배운 대칭성과 보존에 관한 이론이란다.”

       

       나는 유피엘이 틀린 부분을 짚어주었다.

       

       식각용 펜으로 오답이 된 부분을 수정해주었다. 대칭성이 깨진 부분을 맞춰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 피드백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앞으로 그녀가 만들 회로들은 더 매끄럽게 작동할 것이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중에는 스크롤을 경량화하는 방법, 출력을 늘리는 방법, 투입 마력량을 낮추는 방법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이런, 많이 늦었지?”

       “아니에요. 덕분에 좋은 배움이 되었어요.”

       

       유피엘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저, 선생님.”

       

       유피엘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렴.”

       “아뇨, 괜찮아요.”

       

       유피엘은 싱긋 웃으며 필기구를 정리했다.

       

       내 입에서 기나긴 하품이 흘러나왔다.

       

       기계라고는 해도 일단 잠은 자야 한다.

       

       안 그러면 머리가 돌아가질 않는다. 컴퓨터도 오래 켜 놓으면 블루스크린 뜨는 거랑 마찬가지다.

       

       나는 유피엘에게 인사하고 나갈 채비를 마쳤다. 우산에 묻은 빗물을 다시 한번 털어냈다. 창밖을 바라보니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빗줄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까보다 더 많이 쏟아지고 있지 않아요?”

       

       점심까지만 해도 얇은 물폭탄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용오름이 이는 것처럼 격하게 내리치는 중이었다.

       

       쏴아아아아아아─!!

       

       온 세상이 물바다였다. 이대로라면 몇 시간 내로 일리야드가 침수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네.”

       “선생님, 바깥에 안 나가시는 게 좋겠어요.”

       

       유피엘이 문득 그런 제안을 해왔다.

       

       “아니야, 불편하잖아.”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학생 기숙사에 교수가 묵는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자존심도 자존심이지만, 학생에게 해를 끼치고 싶진 않았다.

       

       유피엘의 충고를 무시하고 현관으로 나왔다.

       

       야심한 시각이었다. 불빛을 밝혀주는 아크등 하나라도 보여야 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그렇다고 달빛이나 별빛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칠흑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비 내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으스스하군.]

       

       오죽하면 ‘에테르’가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휘이잉, 하고 소슬한 바람까지 불었다. 아직 봄인데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로브를 동여매며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이 길을 뚫고 연구실까지 가야 하는가.

       

       좋아, 시간도 되었으니 교대하자.

       

       에테르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자 홍채가 노랗게 변하며 쌍라이트가 켜졌다.

       

       휙, 휙.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빛도 따라서 움직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한 치 앞이 막막했다.

       

       “이상하군.”

       

       라이트를 켰는데도 불과 수십 센치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 전부라면, 고려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였다.

       

       첫째, 라이트의 세기가 약하거나.

       

       둘째, 어떤 연유로 인해 빛이 먼 거리를 나아가지 못하거나.

       

       둘째는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선 섣불리 행동하면 안 된다.]

       

       자신의 말이 맞았다.

       

       그야말로 악천후였다.

       

       물론 사천(四天)인 만큼 마음만 먹으면 뚫고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정령에게 이목이 끌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하는 입장에선 정말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후우.”

       

       처마 아래로 손을 뻗자 세찬 물줄기가 손목을 때렸다. 팔이 후욱, 하고 꺾이는 감각에선 아릿함마저 들었다.

       

       그만큼 수압이 강하다는 방증이었다.

       

       빗물을 털어내며 생각했다.

       

       “리바이어던의 짓이로군.”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서 불규칙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난 경보였다.

       

       

       **

       

       

       얼마 지나지 않아 처마가 무너져내렸다.

       

       에테르는 이 사실을 경비에게 보고했고, 기숙사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지대가 침수되었다고 하더구나.”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학생들이 불안함에 떨었다.

       

       하이엘프, 그냥 엘프 가릴 것 없었다. 재난 앞에선 모두가 평등한 존재였다.

       

       “바깥으로 나가는 길이 완전히 막혔습니다!”

       “어떻게 하죠?”

       

       지금 기숙사에는 사감 한 명과 관리 인력 서너 명이 전부였다.

       

       그 외에 학생들을 보호해 줄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스테야 하이젠버그’ 교수 한 명뿐이었다.

       

       “교수님.”

       

       사감이 달려와 물었다.

       

       “마법으로 입구를 뚫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에테르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안 됩니다.”

       

       그리 대답한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이 이 자리에서 마력초를 물지 않으면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지금 잔해를 치우면 물이 이쪽으로 들어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도 1층은 발목까지 잠긴 상태였다.

       

       제아무리 카우렐리아가 비가 많이 내리는 아열대성 기후에 속한다지만,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이번 폭우는 그 수준이 궤를 달리했다.

       

       “그러면 어떡한단 말이에요? 구조대가 언제 도착할지도 모르는데!”

       

       사감이 하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일도 수업인데, 하루빨리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수자의 역할이었다.

       

       “저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에테르는 당당하게 말했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오직 한 명, 유피엘만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제(祭)를 지내겠습니다.”

       

       

       **

       

       

       미신이 많이 사라진 시대.

       

       제사라는 건 과거를 흠모하는 엘프만 하는 것이었다. 마도학이 정립되고 기술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로는 재앙이 닥쳤을 때 제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에테르는 해야만 한다고 답했다.

       

       “하늘이 노하신 게 분명합니다.”

       “교수님, 지금 농담할 시기가 아닙니다.”

       “농담 아닙니다.”

       

       에테르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뜻이 아닌 마수의 뜻이다.

       

       리바이어던이 바닷물을 하늘로 끌어올려 흩뿌리는 것이니, 가히 마왕군에 의한 재앙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떤 새끼가 명령해서 이 사달이 벌어진지는 모르겠으나, 상천(上天)인 에테르가 당장 원하는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테니, 그동안 여러분은 1층으로 들어오는 물을 퍼서 바깥으로 버려주세요.”

       

       그 말에 사감은 마지못해 알겠다고 답했다.

       

       그래도 교수까지 단 사람이니까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제를 지내기 위해선 연성에 필요한 물품이 필요합니다.”

       

       절멸급 마수를 막을 수 있는 건 같은 절멸급 마수뿐.

       

       세실 르네이 총장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대책을 마련하고 있겠지만, 당장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의 근심을 덜어줄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

       

       에테르는 의도치 않게 적이라고 판단한 무지렁이들을 구제해야 했다.

       

       그래야만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혹시 창고 위치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2층 등사실 곁으로 하나 있어요.”

       

       에테르는 창고로 향했다.

       

       복합기, 간판, 마석 등등. 더는 안 쓰거나 세월을 탄 폐품들이 즐비했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킨 것들 중에서 쓸만한 것을 몇 개 빼내어 먼지를 걷어냈다. 철은 물론이고, 중급 마석도 몇 개 얻어냈다. 연성진을 그릴 때 필요한 초크도 발견했다.

       

       “좋아.”

       

       연성진을 구축하기엔 딱이다.

       

       에테르는 근처 경보계를 부수고 카렐리슘을 끌어냈다. 이것도 괜찮은 마석원이다.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들어가서 마력초를 물고 한 모금 피웠다. 신체에 마력이 충만하게 들어찼다.

       

       슬슬 나와서 마전지를 깔고 식을 구축하려던 참이었다.

       

       “뭘 하시려는 건가요?”

       

       빗물에 흠뻑 젖은 유피엘이 달려와 물었다. 에테르는 고개를 돌리고는 거대한 마전지에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잘 봐두렴.”

       

       에테르는 분필 하나를 반으로 쪼개어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두 손을 사용하며 연성진을 그려나갔다.

       

       마석을 배치하고, 고철을 올려놓고.

       

       유피엘은 입이 떡 벌어졌다.

       

       양손잡이를 본 적은 있어도 이 정도로 두 손을 현란하게 다루는 사람은 처음 본다. 한 손으로 해도 빨랐을 작업이 두 배로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유피엘이 넋 놓고 바라보는 사이에 연성진이 전부 완성되었다.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에테르가 적어내린 연성진의 모든 부분엔 대칭성이 녹아있다는 것을.

       

       촤악!

       

       도료를 뿌리자 폐품들이 이리저리 변하며 어떤 물건을 만들어냈다.

       

       등대 같은 곳에 쓰이는 지향등이었다.

       

       “이걸로 뭘 하시게요?”

       “보면 안다.”

       

       에테르는 조명을 카트에 옮기고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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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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