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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0

       오후 늦게 시작한 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해가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노가 그들에게 약속했던 시간이 끝나갔다.

         

       이제 잠시 후면 자신들이 속았다는 걸 깨달은 기자들이 씩씩대며 원래 있던 곳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전에 카렌과 루엘로는 자기네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밤이 되면, 기자들은 귀족들의 별장이 있어 경찰들의 단속이 강화되는 이곳보다는 주로 파파엘이나 샛별 쪽을 기웃거렸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시험 끝나고 또 모이자고. 너희 모두 행운을 빈다.”

         

       목 없는 기사 차림을 한 카렌이 먼저 마차에 올랐다.

         

       내일은 레카체프 서커스 학교의 예선전 예비 소집이 있는 날이었다. 다섯 서커스단 중 황금, 은막, 괴물은 이번 달 시험에 응시했고, 도시에 늦게 도착한 나머지 둘은 다음 달에 시험을 치렀다.

         

       “내일 구경 갈게요, 언니!”

         

       루엘로 역시 그들의 축복을 빌어줬으나, 클라라는 인사를 받는 대신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노려봤다.

         

       “너는 은막 서커스단을 응원한다고 했잖아.”

       “또, 또……그, 그런……그만 하세요…….”

         

       루엘로의 어쩔 줄 몰라 하는 태도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아까 엘라와 레이나는 장난을 칠 목적으로 카렌과 루엘로에게 10월 시험에서 누구를 응원할 건지 물었다. 카렌은 그들의 표정에 담긴 의도를 알아채고는 재빨리 자신은 괴물서커스단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카렌이 대답을 선점하자 루엘로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마음 가는 것은 당연히 괴물서커스 쪽이었지만, 그러면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못한 레이나 언니가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었다.

         

       “루리, 너는 누굴 응원할 거야?”

       “당연히 레이나 네보다 친한 사람이 많은 우리겠지?”

       “불쌍하겠네. 레이나는. 다른 친구들이 응원 하나도 안 해주고.”

         

       결국 루엘로는 황금 카니발을 응원하겠다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트라이머리 삼 형제가 들으라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그렇겠지! 황금 카니발은 모두 일류 곡예사들이니까!”

       “그래. 우리 같은 잡놈들을 응원하면 부끄럽겠지!”

       “실망이네. 그래도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 아니에요, 오빠들. 그, 그런 게 아, 아니라…….”

         

       루엘로가 팔을 휘저으며 애써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그때, 그녀의 뒤에 나타난 우몬이 상처받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우리 응원하는 게 부끄러워?”

       “우, 우몬 오빠, 아, 아니에요…….”

         

       그들에 이어 다른 사람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점점 얼굴이 달아오르던 루엘로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라고요!”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씩씩거렸다.

       만약 유라크네가 재빨리 그녀를 달래주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몰랐다.

         

       루엘로는 자신을 보며 짓궂게 웃는 사람들을 노려봤다.

       언니들은 왜 이렇게 자신을 놀리기 좋아하는 걸까?

       그녀는 그 미소들이 꼴 보기 싫어 병아리 모자를 푹 눌러쓰며 소리쳤다.

         

       “마, 마음 바꿨어요! 저는 은막을 응원할 거예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다들 박장대소했었다.

         

       그녀는 아까의 기억이 떠올라 삐친 듯 입술을 삐죽히 내밀며 마차에 올랐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깃든 악마는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속삭였다.

         

       “생각보다 못 된 인간들이군. 네가 원한다면 내가 모조리 도륙을 내버릴 수 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칼날 형태로 치솟았다. 루엘로는 깜짝 놀라 그를 제지했다.

         

       “사, 삼손아,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다들 장난으로…….”

         

       그러나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리카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크큭, 순진하군. 진짜 내가 그럴 거라 믿은 건가?”

       “이, 이……너, 너까지……그러기야?”

       “저들이 이해가 가는군. 놀리는 맛이 있어.”

       “씨……자꾸 그러면 오늘 머리 안 감고 잔다?”

       “이, 이봐, 그건……치사하다.”

         

       카렌과 루엘로를 실은 마차가 떠났다.

       남은 사람들은 건물로 들어가기 전에 마당에 둘러앉아 클라라가 짠 시간표의 내용을 경청했다.

         

       “시험에 응시하는 서커스단은 내일 아침 7시까지 학교로 와 달래요. 전원 다 가는 걸로 해서 마차를 총 3대 수배해 놨어요. 출발 시각은 4시 반이에요. 정시에 맞춰서 도착하면 입구에서부터 기자들이 성가시게 굴 테니 한 시간 일찍 도착하는 방향으로 정했어요. 씻고 준비 하는 시간도 있으니까 다들 3시 반에 일어나는 걸로 괜찮죠? 제가 방마다 들러서 깨울게요. 유라크네 씨는 30분 일찍 깨우고? 그리고 각자 입고 갈 복장은 어제 정한 대로니까 맞춰서 갈아입으세요.”

         

       클라라의 똑 부러지는 일정 정리에 엘라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비서의 역할을 해준 덕에 확실히 부단장 일이 편해졌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고 나니 오후 6시가 넘었다. 하늘은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다. 예테린푸르크 같은 극지방은 겨울로 갈수록 밤이 급속도로 길어졌다.

         

       원더스타인을 방으로 데려다주는 역할은 레이나가 맡았다. 그녀는 자기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그와 대화를 나눌 게 있다고 했다.

         

         

       ***

         

         

       방으로 들어온 나는 휠체어에 앉아 레이나를 바라봤다.

       우는 여자.

       한 맺힌 여인의 전설이 깃든 가면은 섬뜩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슬퍼 보였다.

         

       나는 단원 관리 창을 열어서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름: 레이나 마기어

       나이: 19

       호감도: 10 (다음 보상: 호감도 15)

       칭호: 황금 천칭

       직업: 줄타기 곡예사

       특성

       : [페르소나-우는 여자]

         

         

       그녀의 상태창은 오늘만 수십 번은 열었다 닫았다. 그때마다 나는 세 군데에 눈이 갔다.

         

       첫째는 그녀의 나이였다.

       19살은 그녀의 알려진 나이보다 2살 많은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짐작할 근거가 있었다. 그녀는 노예시장을 거쳐 외모를 개조당해 ‘레이나 마기어’가 된 것이었다.

       즉, 사회적 신분은 4살의 레이나부터 시작했지만, 실제 그녀의 육체가 가진 본래의 나이는 충분히 다를 수 있었다.

       또래보다 몸이 성숙했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둘째는 그녀의 호감도였다.

       나에 대한 그녀의 호감도 수치는 여전히 10에 머물러 있었다. 이렇게 비밀스러운 일까지 상담할 정도로 나를 신뢰하면서도 저렇게 호감도가 낮다는 것은 그녀가 겉으로 표하는 호감도가 순수하게 나를 향한 것은 아니라고 봐야 했다.

         

       나를 통해 ‘친절한 아빠’와 함께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즉, 나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애교를 부리던 것은 내가 아니라 ‘10년 전의 지몬’에게 하는 것으로 봐야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아무리 그녀에게 잘해줘도 호감도는 평행선을 그렸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 원더스타인이 아닌 ‘아빠’라는 캐릭터였으니까.

         

       그녀의 그러한 심리 상태가 이 새로운 특성의 등장에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었다.

         

         

       이름: 페르소나-우는 여자

       적용 대상: 우는 여자의 가면

       효과: 오직 가면을 선물한 사람만이 씌우고 벗길 수 있습니다.

       자원: 없음.

         

       비록 내 몸이 정상은 아니었지만, 가면 하나 벗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어떻게 하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게 먼저였다. 단원에게 이런 특성이 붙는 것은 나도 처음 봤다.

         

       “레이나 양, 우선 원더랜드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지 않겠어요? 집으로 돌아가기 전날부터 가면을 벗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가면을 쓰고 있어서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을 꺼내길 상당히 주저하고 있다는 것도.

         

       나는 끈기 있게 그녀가 용기를 내기를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그녀는 가면의 표정처럼 우는 듯, 화내는 듯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솔라네 마기어의 극장을 찾아갔던 일을 털어놓았다.

         

       나는 그녀가 엄마를 찾으러 나섰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짐작하고 속으로 탄식을 삼켰다.

       실제로 이야기는 예상했던 그대로 흘러갔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분위기가 슬프거나 엄숙하게 흘러갈 때 내가 취하는 버릇 같은 거였다. 내 얼굴의 미소를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하는 나만의 배려였다.

         

       “그래요. 제 삶은 모두 가짜였던 거예요.”

         

       이야기를 마친 그녀는 울음을 참는 듯 끅끅 숨을 삼켰다. 나는 음향실의 기능을 써서 재빨리 그녀의 목소리를 나 외의 대상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했다.

         

       “소리를 차단했어요. 얼마든지 울어도 됩니다.”

         

       내 말에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그 비통한 울음소리는 그녀가 쓰고 있는 가면의 표정 때문에 더 슬퍼 보였다.

         

       나는 뻣뻣한 팔을 간신히 움직여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녀는 내 다리에 얼굴을 파묻고 더 서럽게 울어댔다.

       나는 그녀에게 내려진 저주의 정체에 대해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페르소나는 무대 위에서 연기한 배역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이 ‘레이나 마기어’라는 배역을 연기한 무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페르소나는 교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칼로 살가죽을 벗기지 않는 이상 산 사람의 얼굴을 바꾸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침 쓰고 있던 가면을 페르소나로 대체해 버린 것이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했다. 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죄송해요. 단장님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데……제 개인사에…….”

         

       한껏 울음을 토하고 나니 감정이 많이 가라앉았는지 그녀는 사과를 늘어놓았다.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아요. 언제든지 기대도 돼요.”

         

       엄밀히 말해서 그녀의 일과 나는 무관하지 않았다.

       아이 판매 상회인 콤프라치코스의 부회장은 원더스타인의 3자매 중 하나인 ‘까마귀 마녀’였고, 회장은 바로 나였다.

         

       TT3에 등장하는 3대 조직의 우두머리는 모두 원더스타인이었고, 세 마녀는 각 조직의 2인자를 맡고 있었다. 물론 세 조직 실무를 맡고 이끄는 것은 내가 아닌 그들이었지만, 내가 그 모든 음모 뒤에 서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눈물을 잔뜩 흘려 놓고 가면 때문에 닦지 못해 난처해하는 그녀를 보며 이만 이야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제가 힘을 쓰면 벗길 수 있을 것 같군요.”

       “괘, 괜찮으시겠어요? 그 몸으로?”

       “아, 힘이라 했지만, 근력하고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이리 가까이 오세요.”

         

       페르소나는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었다.

       호크도 경비대원으로서의 복장과 곡예사로서의 복장을 하루 정도 명상을 하면 바꿀 수 있었다고 했다. 결국 페르소나는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나는 그녀가 저택에 갇혀 기자들에게 시달리느라 그런 거 아닐까 하고 하루를 즐겁게 노는 데 써보라고 한 것이었는데,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고작 명상 따위로 그녀가 지금 겪고 있는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나는 팔을 움직여 그녀의 가면을 벗겨 주었다.

         

       “아.”

         

       그녀의 얼굴이 드러났다. 눈물 때문에 눈가가 퉁퉁 불어 있었지만, 여전히 조각상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이걸로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속박이긴 했지만, 내가 손대면 바로 풀 수 있다는 것에서 별거 아닌 일이었다.

         

       “괜찮나요?”

         

       내 물음에 가면을 벗은 레이나는 마치 알에서 막 깨어난 새끼 새처럼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곧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빠?”

         

       단원 관리 창을 통해 그녀의 상태를 살피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가면을 벗기는 순간 새로운 특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 레이나 마기어

       나이: 19

       호감도: 10 (다음 보상: 호감도 15)

       칭호: 황금 천칭

       직업: 줄타기 곡예사

       특성

       : [그림자-4살의 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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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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