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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250

        

         

       영험한 부적의 힘으로 윌리엄을 퇴치하자 저택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평소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일상을 되찾은 이들은 행복하게 일상을 보냈다.

         

       엘라가 위치크래프트를 연습하다가 크리스마스에 트리로 사용한 구상나무를 걸어 다니게 만들기도 했고, 아나스타시아가 그것을 보고는 재미있겠다며 꿈에서 데려온 나무 비슷하게 생긴 무언가를 구상나무와 함께 돌아다니게 만들기도 했고, 이아린은 걸어 다니는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어놓고 자려고 했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새해에는 해돋이를 봐야 한다며 가족들을 끌고 등산을 가려는 이양훈에게 오딜리아가 꼰대 짓을 하면서 혼을 내기도 했고, 이아린이 새해에는 운동을 좀 해야 한다며 이세린을 강제로 체력 단련실로 끌고 가서 운동시켰다가 보복당할 뻔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떠들며 즐기고 있을 때, 박진성은 깊은 수면 아래에 있는 것처럼 조용히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끔 이상한 표본이나 생물 같은 것을 주문하면서 말이다.

         

         

         

        * * *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때가 왔다.

         

       “성인식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느냐?”

       “자료는 다 외웠습니다.”

         

       봄기운과 함께 성년의 날이 다가온 것이다.

         

       “쯧, 이놈의 성년의 날 행사는 맨날 오락가락하니….”

         

       성년의 날 행사라는 것은 참 특이한 위치에 있었다.

       ‘성년의 날’이라는 것은 성년이 된 아이들을 축하하는 법적 기념일이었지만 그 대접이 그리 좋지 않았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반복하지를 않나, 권력자의 사정이나 의향에 따라 날짜가 이리저리 바뀌지를 않나, 다른 행사와 겹친다는 이유로 바뀌지를 않나…. 심지어는 졸업 시즌이나 대학 입학 시즌과 겹친다면서 학부모들이 항의해서 바뀌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성년의 날은 4월 20일이었다가 5월 6일이 되기도 하고, 5월 셋째 주 월요일로 바뀌기도 하고, 2월 넷째 주 월요일이 되기도 하고, 아예 음력을 기준으로 바뀌기도 했다.

         

       중구난방에 뒤죽박죽.

         

       달력을 보지 않으면 성년의 날이 언제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니, 그냥 ‘우리는 이런 것도 법적 기념일로 만들었다.’라며 보여주기식으로 만들어낸 기념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

       이 성년의 날 행사에는 갓 성인이 되는 이들이 참가하는 것은 맞았고, 성년의 날 행사를 참여하고 나면 성인 취급을 해주는 것은 맞았으니까.

       갓 성인이 되는 아이들로서는 이 행사는 자신이 한 사람이 되었다고 사회가 인정해주는 기준이었으며, 부모의 축복을 받으며 사회에 발을 디디게 되는 분기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어떤 의미겠는가?

       온갖 고생을 하면서 키운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일이다.

       그 의미가 가볍지만은 않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

       어른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임을 만들기 딱 좋은 핑계라는 것.

         

       기자들은 기삿거리가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작자들이었다.

       당연히 유명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그것을 소재로 온갖 소설을 쓰곤 한다.

         

       재벌 회장들이 같이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술을 마시는 장면을 찍어서 계열사를 분리한다거나 처분한다는 등의 온갖 이야기를 붙였고, 주가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게다가 냄새를 맡은 정치인들이 발을 걸치면서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 위협받는 중소 상인들’이라는 주제로 고래고래 떠들고 다니면서 골치를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정치인들?

       당연하겠지만 당적을 옮긴다는 둥, 야합을 한다는 둥, 술집에서 몰래 뒷거래를 한다는 둥 온갖 이야기가 떠돈다. 게다가 일부러 수상하게 사진을 찍어서 뇌물을 수수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약점을 잡혔느니 애인이 몇 명이니 사생아가 있느니 하는 온갖 추문까지 따라올 때도 있다.

         

       연예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누가 누구와 친하고 누구와 사이가 나쁘다는 이야기서부터 온갖 열애설이 떠돌고, 기자의 머릿속에서 나온 온갖 소설들이 난무하면서 시끌벅적해진다.

         

       그렇기에 유명한 사람들은 함부로 모임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신을 따라다니는 기자 때문에.

       아무 의미도 없는 만남에 의미를 부여해서 확대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에.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핑계였다.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좋다.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유라도 좋다.

         

       어찌 되었건 ‘나는 이런 이유로 만났고 그것 말고는 없다.’라고 둘러댈 만한 핑계가 필요했다.

         

       같이 골프나 하려고 모였다.

       등산 동호회에 속해있는데 같이 등반하려고 모였다.

       자선을 위해서 모였다.

       야구를 좋아하니까 다 같이 보자고 했다.

       …

       …

       …

         

       수많은 이유.

       사람들이 하늘 위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핑계.

         

       그것이 있다면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성년의 날 행사 역시 마찬가지.

         

       이 역시 핑계에 불과한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기자들의 시선을 피해서 비밀스러운 제안이나 계약을 나누게 되리라.

       어떤 이들은 친한 사람들과 옛날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으리라.

       어떤 이들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귀를 쫑긋거리며 돌아다니리라.

         

       그리고 누군가는 소중한 인맥을 얻게 되겠지.

         

       “참. 내가 자료를 주기는 했지만, 거기 나오는 사람들이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다. 그러니 자료에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런 것은 주의하거라.”

       “알겠습니다.”

         

       이양훈은 성년의 날 행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진성에게 직접 찾아와 신신당부했다.

       그런 그의 태도는 묘하게 쌀쌀맞으면서도 정이라도 든 것인지 묘하게 감성적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진성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듯 눈동자가 흔들리기도 했다.

         

       그것을 보며 진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성년의 날이라, 성년의 날. 이 행사가 끝나면 이 저택에서 제가 나가게 되겠군요.”

       “…그렇겠지.”

         

       이양훈은 진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양훈이 진성을 책임져야 하는 계약은 진성이 성인이 되는 시점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그 성인의 기준은 바로 성년의 날 행사.

         

       성인이 되었음을 축복하고, 성인식을 무사히 끝마쳐 사회적으로 성인의 상징을 얻게 되는 바로 그 날이었다.

         

       “네가 이곳에 처음 오게 된 날을 기억하느냐?”

       “잘 기억나지 않는군요.”

         

       이양훈은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진성에게 물었다.

         

       그의 말투에는 진솔함과 각오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진성과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으니까.

       지금이 그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진성은 그의 질문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잘 기억이 나지 않았으니까.

       이양훈에게야 긴 시간이 아니었지만, 진성에게는 아니었다.

       진성에게는 회귀 전의 일생이라는 또 다른 시간이 있었다.

         

       “네 부모가 기억나느냐?”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진성은 미안한 듯 자신을 바라보는 이양훈에게 고개를 저었다.

         

       이양훈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답변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부모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부모의 얼굴이라고 제대로 기억이 날까?

       게다가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박진성의 부모라는 인간들도 제대로 된 인간들은 아니었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부모는 아니었다.

         

       진성보다는 일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었고, 자신들의 몸을 불태워 애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당연하게도 집을 비우는 것은 예삿일이었고, 시도 때도 없이 이사하는 덕분에 진성이 제대로 친구를 사귈 수 없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마저 계속해서 옮기는 통에 제대로 공부조차 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친구를 사귀고 그 안에서 사회성을 기르는 것 역시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게다가 진성에게 가족으로서의 정은 느끼기는 하되 그 형태는 매우 간단했다.

       그냥 돈을 쓰고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면 그만이라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본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추억’은 실제 박진성의 친부모보다는 이씨 가문과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에 와서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아직도 나는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죄책감이라고 해도 좋겠지. 그래, 죄책감이다. 아무리 오해라고 해도 그 눈덩이를 굴린 것은 우리였어.”

         

       이양훈은 그 말을 시작으로 진성의 앞에 앉았다.

         

       그리곤 여러 감정이 섞인 얼굴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는 미안함과 죄책감, 대견함, 정 등의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무언가 하나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처럼.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너도 알고 있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진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를 수가 없었으니까.

       오해가 겹치며 어처구니없이 터져버린 그 사건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나를 원망하느냐?”

       “원망이라.”

         

       진성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이양훈에게 고개를 저었다.

         

       “무엇을 원망하겠습니까? 악의도 없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을 사람들은 사고라고 부르고 재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것이었지요.”

         

       진성은 이양훈을 원망하지 않았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져서 물이 많이 증발하고, 하늘로 올라간 물이 먹구름을 만들고, 그 먹구름에서 번개가 쳐서 사람을 죽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 죽은 사람의 가족은 더운 날씨나 물을 증오하고 복수해야 하는가?

         

       진성의 부모가 죽은 것 역시 그와 같았다.

       오해의 시작은 이양훈이되 그것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튕기고 몸체를 불려 나가기를 거듭하여 재해가 되었을 뿐이다.

         

       나비가 날갯짓해서 폭풍이 일어났다고 한들 그 나비가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괴물이 아닌 것처럼, 이양훈 역시 그와 마찬가지.

         

       박진성의 부모는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죽었다.

       그냥 그것이 자신의 명이라는 듯이, 자신의 운명이라는 듯이 그저 불나방처럼 제 몸을 태웠을 뿐이다.

         

       게다가 이양훈은 충분한 책임을 다했다.

       그냥 대충 돈과 주거지만 줘도 그만인 상황에서 그를 끝까지 자기 가족과 함께 지내게 했으며, 한 식구처럼 함께 지냈다. 거기다가 어색하기는 하되 정을 붙이려고 노력했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결코 회피하거나 버리려고 하지 않았다. 게다가 과거의 진성이 온갖 기행을 하고 다녔음에도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고, 되려 주술 자료나 재료를 구해주는 등 그가 자립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무엇을 원망하겠는가.

         

       “그런가.”

         

       이양훈은 자신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진성의 말에 입을 꾹 닫았다.

       그리곤 잠시 눈을 감다가 뜨고는 선반에서 술병 하나를 꺼내왔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술이었다.

         

       “나는 너를 식구로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는 술잔 두 개에 술을 부었다.

         

       “주도(酒道)는 집안의 어른께 배우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

         

       그렇게 술이 오가기 시작했다.

         

       회귀 전에는 없었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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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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